포기하지말아야지.
지난주 금요일, 알라딘 고객센터 직원과 통화를 했다. 나는 어떤 요구사항이 있었고 그것대로 될 수 있는지를 물었는데 고객센터 직원은 굉장히 친절하게 응대해줬으며 내 요구사항도 들어줬다. 심지어 더 나은 다른 방법을 유도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대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 오전의 통화가 기분이 좋아서 하루종일 기분이 나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직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상황, 그래도 그 직원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고객센터에 글을 남겼고, 그 글은 그 직원에게 전해졌다.
이 일을 친구에게 얘기하니 도대체 얼마나 친절했길래 너의 기분이 좋은거냐 물었다. 그런데 친절도 친절이지만, 나는 그 직원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차분하고 조용하며 똑똑한 목소리, 라고 하면 다 표현이 될까. 내가 갖지 못한, 내가 낼 수 없는 그런 목소리였다.
목소리, 라고 하니까 내가 십년도 더 전에 읽은 할리퀸 로맨스 소설이 생각났다. 그 소설의 제목은 당연히 기억이 안나는데(참 이상하다, 할리퀸 로맨스는 제목이 기억이 안난다 -_-), 여자주인공이 전화상담원인가 고객상담사인가 뭐 그런 직업을 가져서 전화로 대응을 해줘야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근사해서 가끔은 호감을 가진 남자들이 접근하는거다. 따로 만나자고 하거나 회사로 찾아오거나 하는 그런 일들. 그런데 그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외모를 보고는 실망해서 돌아간다. 마치 그녀가 그녀가 아닌것처럼. 그녀의 목소리때문에 사랑에 빠진듯 그녀를 찾아왔다가, 그녀에게 실망을 하고 돌아가는 것도 그들이다. 병신들. 그녀는 보통의 여자들보다 덩치가 컸다. 키도 크고 몸집도 컸다. 그녀는 그들이 상상속에서 그려왔던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상상했던 그녀는 두 팔로 안아 들어 침대로 데려갈 수 있는 여자여야 했는데, 그녀는 두팔로 안아 침대로 데려가기엔 너무나 거대했던 것. 그러다 우리의 남자주인공도 보통의 다른 남자들 처럼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녀의 대화가 기분 좋았고 그녀의 목소리를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남자도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다른 남자들처럼 실망한다. 그녀는 그의 실망을 느끼고 또 실망한다. 그 남자는 아주 멋졌으니까. 그러나 그 남자는 그녀를 다시 만나고 그녀의 거대한 덩치에 가려진 그녀를 차츰 찾아내가면서 사랑에 성공한다 뭐 그런 내용의 소설이었다. 하하하하. 다시 읽어보고 싶은데 제목이 절대 생각이 안나네. 하하하하.
그리고 또 있다. 목소리로 먼저 사랑하는 대표적인 영화. 고양이과 개에 관한 진실.
이 영화속에서 여자주인공은 좀 뚱뚱하고 (본인이 생각하기에는)예쁘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라 정확한 것들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녀는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가끔은 라디오에 출연해서 청취자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곤 했다. 남자주인공과도 아마 그렇게 인연이 되었던 것 같은데, 남자는 개 때문이었나, 문제가 있어서 그녀와 통화를 했고 그녀가 그것을 해결해주었던 것 같다. 이 통화는 서로에게 꽤 기분 좋은 것이었고 어쩌다보니 그들은 개인적으로도 통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통화가 반복되면서 그들은 폰섹스까지 하게 되고 서로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르는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올것이 오고야 말았다. 남자가 만남을 제안했다. 여자도 그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예스를 말했지만 그의 앞에 자신있게 나설 외모가 아니었던 것. 그녀는 결국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자에게 자신인 척 나가달라고 부탁을 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자가 바로 우마 써먼이었는데, 그녀는 모델이 직업인 예쁘고 쭉쭉빵빵한 여자였던 거다.
우마 써먼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고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우마 써먼도 그 남자에게 호감을 가진다. 그 남자는 당연히 우마 써먼이 그녀인 줄 알고 호감을 가지고 그를 대한다. 여자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고 답답해한다. 그리고 통화는 끊이질 않고, 이 남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마 써먼과 통화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느 순간 여자는 우마 써먼과 그와의 데이트에 함께하게 되고 그 남자는 그녀와 더 이야기가 잘 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통화를 하던 여자가 바로 그녀였는데.
뭐가 먼저가 될지는 모르지만, 사랑을 하게 될 사람들은 결국 사랑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남자가 먼저 다가서든 여자가 먼저 다가서든, 혹은 만남이 먼저이든 목소리가 먼저이든. 예전의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의 나는 모든 일에는 운명이란게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면, 사랑하게 될 사람은 사랑하게 되는 것.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에서 보여지듯이, 그녀와 그를 '통화부터' 하게 한 어떤 힘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마주침'이나 '만남'이 먼저였다면 서로 호감을 가지지 않고 뒤돌아섰을지도 모르니까. 너희들은 그러면 안돼, 만나야 하고 사랑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 방법을 달리하자, 하는 그런 운명의 힘이 작용한 게 아닐까. 훗. 참 소설같은 생각이다.
책을 읽었다.
나는 이 책이 사진을 잔뜩 싣고 짧은 글들을 시처럼 적어 놓은 그런 여행기가 아니라서 마음에 든다. 부탄 이라는 나라는 내가 한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라였는데, 오, 이 나라, 참 재미있다.
수도인 팀부는 사발처럼 오목한 골짜기에 있으며 약 10만명이 살고 있다. 그곳엔 교통신호등이 없다. 스티로폼도 찾아보기 힘들고 플라스틱 용기조차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앞서 말한 계몽적인 왕이 칙령을 선포했는데, 부탄 국민을 위해서 GNP(Gross National Product, 국민총생산) 보다 GNH(Gross National Happiness), 즉 '국민행복지수'를 우선하겠다고 했다. 군대에서 럼주와 위스키를 제조하고, 정부는 콘돔을 나눠준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기 취향에 따라 골이 지거나, 향기가 나거나, 오톨도톨한 콘돔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 (pp.22-23)
오! 군대에서 럼주와 위스키를 제조하는 나라란다. 그러니까 갑자기 며칠전에 꾼 꿈이 생각나는데, 꿈 속에서 나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건의 증인이었던 것 같은데, 이 나라가 -그러니까 대한민국- 나를 증인보호프로그램을 적용시켜 보호하고 지키려고 하는거다. 해군과 육군이 모두 나 하나를 감싸고 산으로 도망갔는데 내 위에서 헬리콥터가 막 돌다가 착륙하는거다. 앗 저건 뭐죠? 라고 내가 옆의 육군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가 답했다. 공군들이죠. 다락방씨를 지키기 위해서 육해공군이 모두 출동했어요. 이러는거다.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산에 여자는 나 하나였고 나머지는 죄다 육해공군이었다. 멋진 꿈이었어!! 각설하고, 부탄에서는 누구나 국민이라면 취향에 맞는 콘돔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단다. 나는 항상 이 나라-역시 대한민국-가 여자들에게 생리대를 좀 공짜로 나누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택도 없겠지? 흥!!
이 책의 지은이는 미국 여자인데, 부탄의 남자와 결혼을 한다. 아주 나이가 많아져서 아이도 갖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됐을 때, 그때 그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된 것.
중요한 건 우리가 마침내 서로를 찾은 것이다. 남편은 그렇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둘 다 예전에 결혼할 뻔한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기다려온 것이다. 나는 그렇게나 먼 곳에서 여기 부탄까지 달려왔다. 우리가 만날 가능성은 처음부터 너무나 희박했다. 남편의 믿음에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이제 나 역시 믿는다. 이성을, 합리성을 거스르는 많은 것들을 믿는다. 부탄에서는 모든 것이 그저 있는 그대로임을. (pp.72-73)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직업을 가지고 살다가 부탄의 남자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걸 그녀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녀는 아마도 자신의 미래가 부탄에서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겠지.
거봐, 운명이란게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