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전, 팩스의 기록을 확인할 일이 있었는데 도무지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는거다. 팩스 제조회사로 몇번이고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화는 잘 연결되지 않고 여섯시가 되자 영업시간이 끝났다는 멘트만 나왔다. 아 진짜. 똑같은 팩스를 타부서1 도 타부서2도 쓰고 있는 상황이라 나는 타부서1의 L 대리에게 그동안 내가 팩스 보낸 목록과 송신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목록이 있는데, 그걸 확인하고 싶은데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혹시 아느냐고 메신저로 물었다. L 대리는 모른다고 답했다. 타부서2의 Y 씨에게도 같은 걸 물었다. 역시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이런 쓸모없는 젊은 남자들, 이라고 궁시렁 거렸다. 그러나 잠시후, Y 씨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과장님. 이버튼 저버튼 다 눌러봤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네요.] 

앗, 모른다고 하고 끝낼줄 알았더니 그걸 다 눌러보고 찾아봤구나. 기특해라. 나는 '나도 그래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며 심드렁하게 답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참 기특한 젊은이라고(응?) 생각했다. 그리고 또 잠시후 L 대리로부터 인터폰이 왔다. 

[과장님, 트랜스미션만 보시면 되는거에요?] 

아, 그것의 이름이 트랜스미션이구나.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L 대리는 찾았다면서 방법을 알려줬다. 일단 이 버튼을 누른다음에 거기서 무얼 누르고 하면서. 오오, L 대리도 찾아봤구나. 그리고 찾아냈구나. 후훗. 역시 기특한 젊은이야. 트랜스미션을 출력하게 되어 신나기도 했지만 이 기특한 젊은이들 때문에 더 기뻤다. 

나는, 말만 하면 다 되는구나. 다 들어줘. 훗. 

 

 

- 오늘 출근길 버스안에서는 갑자기 보아의 everlasting 이 너무 듣고 싶어졌다. 젠장. 나는 버스안에서 부랴부랴 스맛폰으로 멜론에 들어가 660원을 내고 음원을 결제한다. 사무실로 와서 피시로 들어가면 레인보우 포인트로 결제할 수도 있고, 알라딘에서 만약 판매한다면 마일리지로 살 수도 있는데, 그걸 못참고 결제. 그러니까 나는, 안녕이란 인사가 여행을 위한거면 가장 예쁜 미소로 나는 웃어줄텐데, 라는 가사가 정말 미치도록 그 순간에 듣고 싶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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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시간 멀리서 살아가며 그대와 잡은 이 손 놓치지 않을게요, 라고 말하는 가사도 좋지만 무엇보다 영원히 잊지않죠 하는 가사도 좋다. 아니, 그것은 좋은 것과는 다르다. 나는 여자가 잊지 않죠, 라고 말하는 것을 믿는다. 여자가 잊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잊지 않는다. 여자들은 좀처럼 잊는 법이 없다. [나의 미카엘]에서의 한나도 처음 미카엘을 만나던 순간부터 결혼하고 난 이후의 순간들까지 잊지 않았다. 그리고 한나는 수시로 얘기한다. 나는 잊지 않았다, 라고.   

 

 

 

 

 

 

 

 

 

나 역시 잊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아홉시, 옷장에 기대어 주저 앉아 이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을, 봄비가 내렸던 어느 해 3월1일을, 발을 동동 구르며 택시를 잡던 날 밤의 나의 구두를 그리고 그 날 내가 뿌렸던 향수를, 혼자서 침대에 앉아 전화기 너머로 한시간 십분 이십팔초동안 이야기 했던 날 밤을. 나는 잊지 않았다. 잊지 않는다. 잊지 않을 것이다.  

한나는 집요하고 여자는 집요하다. 한나는 표독스러워지고 여자는 언제든 표독스러워질 수 있다. 에미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표독스러운 자신을 표독스러워졌다고 깨닫는것도 누가 알려주는게 아니라 스스로 안다. 그런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 역시 스스로 안다. 한나가 신경질적이 될 때, 에미가 집요해질 때, 나는 그녀들에게서 나를 본다.   

- 보아가 노래했듯이, 안녕이란 인사는 여행을 위한 것일때만 나는 웃어줄 수 있다. 그리고 보아가 노래했듯이 가슴을 펴보아도 고갤 숙여봐도 지나가는 계절을 멈출수는 없다. 좀처럼 꽃이 피지 않아 징징댔는데, 주말을 보내고 출근하려고 하니 회사 근처에는 벚꽃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술마시는 동안,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내가 꿈을 꾸는 동안, 내가 생각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수다를 떠는 동안, 벚꽃은 꽃을 피워냈다. 내가 징징대서도 아니고, 내가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고 염원해서도 아니다. 벚꽃은 내가 어디에서 무얼하든, 그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피었을 뿐. 그래서 나는, 

 

- 의리를 지키지 않을것이고 반칙할 것이고 지금보다도 훨씬 더 과격해질 것이다.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오겠지만, 내 말을 들어주진 않겠지만, 그래도 바랄 수는 있으니, 나는 여름이 좀 더 빨리 오기를 바라야겠다. 여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나는 여름이 제일 좋다. 다른 계절은 아무리 좋아하려고 해도 여름만큼 좋아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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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1-04-14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날 위한 페이퍼구만 ㅋㅋ

다락방 2011-04-14 10:2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아니 왜 그런 생각을! ㅎㅎㅎㅎ

Forgettable. 2011-04-14 10:53   좋아요 0 | URL
제목부터가 ㅋㅋㅋㅋㅋ 날 염두해뒀어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1-04-14 11:42   좋아요 0 | URL
오해에요, 뽀.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1-04-14 11:47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 아마도 뽀로롱은 지금 만취한 상태가 아닐까요? 네, 어쩌면 한수철님 탓일지도 모르겠어요. 음, 이건 뽀만이 정답을 알겠죠. 뽀로롱은 왜이렇게 된건가... ㅎㅎㅎ 아 점심먹기 전에 완전 빵 터졌네요. ㅎㅎㅎㅎㅎ

2011-04-14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4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버벌 2011-04-14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로 잊지 못하는 날이있죠. 절대로 잊지 못하는 말도 있구요. 도무지 잊을 수가 없어요. ..... 생각나 버렸다. ㅠㅠ

다락방 2011-04-14 16:27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버벌님. 정말 그렇죠.
전 어떤 꿈도 잊지 못해요. 꿈 속에서의 상대의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어떤 저녁도 어떤 밤도 잊지 못하는게 한두가지가 아니에요, 버벌님.
아우, 가슴이 또 콱 막혀버리네요.

치니 2011-04-14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근데 보아가 권보아로 나오네요? 이제 권보아로 활동하는 건가...

다락방 2011-04-14 16:28   좋아요 0 | URL
이 노래는 아주 오래전의 노래인데 왜 권보아로 나오는건지는 모르겠어요. 영상만든이의 장난인지 아니면 보아는 원래부터 권보아였는지....

양철나무꾼 2011-04-1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름이 제일 좋아요.
전 햇볕 쨍쨍 내려쬐는 과한 여름이 좋아요.

의리를 지키지 않을것이고 반칙할 것이고 지금보다도 훨씬 더 과격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의리를 지키고 반칙하지 않고 훨씬 부드러워 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모두가 사람이 일이면 인지상정이고, 자연이면 순리라고 생각한다면...좀 수월해지지 않을까요?
전 아침저녁을 알 수 없는 조변석개형 인간이어서 everlasting을 맹세할 수는 없지만 말예요~

다락방 2011-04-14 16:31   좋아요 0 | URL
저는 여자들이 맨발에 샌들을 신고 다니는 여름이 좋아요. 부츠보다는 구두가, 구두보다는 샌들이 좋아요. 여자들은 여름에 가장 예뻐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름이 좋아요. 남자들이 반팔 입고 다니는 여름이 좋아요. 팔 근육을 보여주는 여름. 남자들은 여름에 가장 멋진 것 같아요.

의리를 지키고 반칙하지 않는 것은요, 양철댁님, 속이 썩어 나가는 일이라서 그래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일이고, 나를 죽이는 일이라서. 그래서 씩씩하게 살아가려면 의리 따위 좀 던져버리고, 반칙도 좀 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 같아요. 그러지 않으면 이 봄날에 앓아 눕겠어요.

everlasting, 은 그 누구도 어떤것에도 맹세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으니까요. 맹세는 너무 깨지기 쉬워요. everlasting 을 맹세하지 않는쪽이 조금 더 신뢰있는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인것 같아요, 양철댁님.

비로그인 2011-04-1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아의 성이 권씨였나요? 오호~ 처음 알았습니다. 권보아라... 어쩐지 보아 같지가 않아요^^

다락방 2011-04-14 16:32   좋아요 0 | URL
권보아가 도대체 왜 튀어나온건지는..저도 알 수 없어요. 배수아의 철수처럼요. (응?)

2011-04-14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4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4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5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