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지하철 4호선은 참 낯설다. 토요일, 서울역에 가기 위해 지하철 4호선을 갈아타고서는 참 낯설고 어색해서 어쩔줄을 몰랐다. 왜 4호선은 낯설까. 오히려 KTX 나 기차, 비행기가 4호선보다 편하다. 4호선에서의 나는 마치 다른 나라 사람인 것 같고, 그들과는 다른 사람인 것 같고, 동떨어진 느낌이고, 왕따가 된 느낌이다. 기이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얼른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4호선 안에서는 내내 나를 지배한다. 내리고 싶어, 내리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등등. 대체 왜 그런 느낌이 드는걸까.  

책을 읽었다. 누군가 내게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무슨 책을 읽냐고 물어봐 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책. 그 제목을 너무나 말하고 싶었던 책.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물어보면 작가의 이름도 말하지 않은채로 제목만 말하고 싶었던 그 책. 

나를 보내지 마. 

 

 

 

 

 

 

 

이 책에 별 다섯을 주게된다면 별 셋은 이미 제목에서 먹고 들어가지 않을까. 네버 렛 미 고. 나를 보내지 마. 제목의 나를 보내지 마, 는 각자에게 다른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캐시에겐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을, 마담에겐 그들이 세상에 나가기 전의 상황을.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클론이라고 해서 그들의 삶이 그리고 그들의 성격이 클론이 아닌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누군가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비웃고,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고, 실망하고, 기뻐하고, 웃고 싶게 하고.  

나는 언제나 작은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그것을 요란하지 않게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윽고 그녀는 외설스러운 자세를 취한 모형을 책상 위에 올려 둔 채 갑자기 몸을 돌리고는 우리가 성교하는 '대상'에게 얼마나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병에 걸릴까 봐서가 아니라 '성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감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 이었다. (p.122) 

 
   

나는 섹스가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좋고, 그것이 감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좋다. 아, 갑자기 새벽 세시에서 레오가 미아랑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진다. 에미는 그 상황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리고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사소한 것 까지 궁금해하는 그 모든 감정들이 소중하다. 

캐시가 잃어버린 '주디 브리짓워터'의 테이프를 토미는 찾아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낡은 상품들을 팔고 있는 가게에서 그 테이프를 발견한 것은 캐시였다. 

   
 

"토미, 내가 이걸 찾아낸 게 넌 그다지 기쁘지 않은 모양인데." 내가 장난기가 다분한 어조로 말했다. 
"너한텐 정말 잘된 일이야, 캐시. 정말 그래. 다만 내가 발견하고 싶었어."
그런 다음 그는 조그맣게 소리 내어 웃고는 말을 이었다.
"예전에 네가 그걸 잃어버렸을 때 내가 찾아내서 갖다주면 어떨까 하고 속으로 생각해 보곤 했어. 그럴 때 네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등등을 말이야."
(p.242) 

 
   

아, '네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속으로 생각해 본다는 토미의 말을 들었을 때의 캐시의 기분은 어땠을까. 캐시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는 토미의 기분은? 나도 늘 그렇다. 이 말을 하면 상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마음일까? 어떤 생각을 할까? 그 표정을 상상하고, 상상했던 표정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순간은 자꾸만 자꾸만 시간이 흘러도 떠올려지지 않을까. 내가 그를 웃게 했어. 

이 순간은 캐시에게 아주 사소하지만 '소중한 ' 순간이다. 그래서 언젠가 토미의 여자친구이며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루스가 이 일을 알게 될게 당연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까지 말하고 싶지 않다. 이 사소한 일이 결코 아무것도 아닌 일은 아닌거라는 것을 루스도 알테니까. 

   
 

나는 토미가 주디 브리짓워터 테이프를 사 주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p.256) 

 
   

나였어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잤는데 새벽 한시 사십분에 눈을 뜨자마자 이 책이 생각났다. 불을 켜고 침대에 멍하니 앉아 아주 잠시동안 가만히 앉아있었다. 나는 그 잠시동안 캐시와 토미를 생각했고, 루스를 생각했고, 네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해 보았다는 말을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이제 곧 월요일이야, 라고 생각한 뒤 나는 다시 불을 껐다. 나를 보내지 마.

 

그리고, 

분노의 질주:언리미티드 가 개봉 예정이란다! 아웅. 

 

아 흥분돼 ㅠㅠ 

 

 

 

 

 

폴 워커를 볼 수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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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1-01-2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4호선 라인인데.. ㅠ.ㅠ

다락방 2011-01-24 09:52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도 늘 타던 라인이 아니면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이를테면 5호선이라든가 7호선이라든가 하는 것들?

무스탕 2011-01-24 10:46   좋아요 0 | URL
전 아직 9호선은 타보지도 못했다지요.
아무래도 낯선것들은 긴장시키는 바이러스를 먼저 뿜어내니까 우린 속절없이 당해야만 해요.
바로 면역이 생기는 사람도 있고 매번 당하는 사람도 있으니 쩔수 없는거죠, 뭐 :)

다락방 2011-01-24 13:10   좋아요 0 | URL
앗. 저도 아직 9호선 타본적 없어요. 그런데 9호선은 전혀 낯설지 않을것 같아요. 5,7,8 호선 라인이 낯설지 않으니 9호선도 낯설지 않을것 같아요.
저는 유독 낯선공간에 긴장하는 것 같아요. 어휴 무서워 ㅜㅡ

2011-01-24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01-24 10:01   좋아요 0 | URL
아이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11-01-2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떤 때는 7호선 타고 마을버스 타고, 어떤 날은 마을버스 타고 1호선에서 2호선 환승해서 출근하고 그래요 ㅎ 지금도 7호선을 타면 막 새로와요.
전 어제 두시까지 못잤어요.
아니 매번 일요일은 그런듯 --

다락방 2011-01-24 13:11   좋아요 0 | URL
일요일밤은 유독 잠이 안오죠. 그러면서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노력하구요. 내일은 월요일이야 그러니 자야해 하는 강박관념이 저를 사로잡아요. 흑흑 ㅠㅠ
그런데 어쨌거나 월요일의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렸네요, 벌써. 저는 해야할 일이 많이 쌓여있고 그러나 하기 싫은 기분이에요. ㅜㅡ

춘희 2011-01-24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캐시가 잡지를 혼자 넘겨보던 장면, 거기서 자신이 존재를 찾고자 했던 그 장면이 정말 너무나 슬펐어요 아 운명을 이렇게 써서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해서요. 자 이제 제가 지금 뭘 읽는지 궁금하지 않소? ㅎㅎ

다락방 2011-01-24 13:14   좋아요 0 | URL
전 캐시가 성욕을 느끼는 것에 대해 루스에게 얘기할때 루스가 정말 이상하구나, 하고 반응하잖아요. 그때 캐시가 '나는 다른사람들과 다르구나, 이건 비정상적이구나' 하고 느꼈을 상황이 몹시 안타까웠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차마 얘기도 못했을테고, 그러다보니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거구요. 그러다 결국 잡지에서 근원자를 찾으려 하고. 누군가의 사소한 거짓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고 저는 또 생각했어요.

글쎄요, 춘희님, 이제 무얼 읽고 계십니까?

치니 2011-01-2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북쇼퍼 다락방님, '나를 보내지 마'는 제가 좋아할까요?

다락방 2011-01-24 14:28   좋아요 0 | URL
네, 좋아하실겁니다!

마노아 2011-01-24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을 회사로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월요일로 보내고 싶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힘이 없네요. 흑...;;;;

다락방 2011-01-25 12:00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왜 힘이 없는거죠? 네? 왜 오늘도 날 회사로 보낸거에요, 대체!!!!! 마노아님 미워욧!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에디 2011-01-24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1,4호선을 타면 기분이 좀 이상해요.

다락방님과 반대로 전 이 책의 제목 때문에 <남아 있는 나날>을 먼저 봤어요. 그 책은 아주 좋았는데 왠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제 더 안봐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어릴적 퀸 베스트 앨범을 먼저 듣고, 다른 앨범에 손이 안가는 느낌?

다락방 2011-01-25 12:03   좋아요 0 | URL
에디님도 1,4호선을 타면 좀 어색하고 그래요? 오와- 반가워요! 주로 2호선을 타시나요?

저도 [남아 있는 나날]을 읽어봐야 겠어요. 어떤 책일지 아주 기대가 커요! :)

에디 2011-01-26 02:21   좋아요 0 | URL
거의 지하철을 안타요 요즘은. 원랜 2,5호선이 익숙했어요. 요즘은 타면 대부분 3,7호선!

다락방 2011-01-26 09:52   좋아요 0 | URL
저는 지하철 안타는 삶을 상상할 수가 없네요. 매일매일 타요, 저는. 흑.

따라쟁이 2011-01-24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주 토요일에 사호선을 탈 예정입니다~!

다락방 2011-01-25 12:03   좋아요 0 | URL
4호선 타고 어디 가요? 응?

따라쟁이 2011-01-27 11:33   좋아요 0 | URL
4호선을 타고 가서 남자사람을 만날 예정이였는데 일정이 바꿔서 2호선을 타야해요.

다락방 2011-01-27 13:48   좋아요 0 | URL
나도 남자를 좋아해요.

카스피 2011-01-24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호선 타고 가시다고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가는 전철고 갈아타고 가시면 바닷가를 가로 질러 가는데 상당히 경치가 좋아요.다만 가격이 3,300원이서 좀 비싼게 흠이지요^^

다락방 2011-01-25 12:04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그런데 제가 그 지하철을 탈 일이 없네요. 저는 강변역을 지나칠때도 경치에 상당히 만족해요. 한강위로 달립니다. 씽씽-

2011-01-25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5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5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01-26 09:53   좋아요 0 | URL
하트는 말입니다, 키보드에서 ㅁ 을 누르고 한자 키를 누른 뒤 나오는 특수 기호에서 선택하시면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 마음껏 이용해 주세요! ㅎㅎ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11-01-2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원문과 상관없는 질문인데요 제친구가 결혼하자마자 이번주에 신랑따라 외국으로 나가요..
제가 공항에 배웅갈건데 가는 동안 읽으라고 그저좋은사람을 선물하면 안... 되겠죠?
좀... 이상하겠죠?

다락방 2011-01-25 12:08   좋아요 0 | URL
아...음........아.........음.........그 책은 상당히 좋은 책이지만....그러니까 성인이라면 그 책을 읽는다고 해서 결혼을 후회한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만, 아, 음, 어......안 되는건 아니겠지만, 어, 음, 다른 책을 하는게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하하하하핫

무해한모리군 2011-01-25 14:25   좋아요 0 | URL
아... 왜 내 머릿속엔 그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버린걸까요 ㅠ.ㅠ
다른책을 생각해봐야겠어요...

다락방 2011-01-25 14:32   좋아요 1 | URL
선물해도 크게 상관은 없을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음, 받는 쪽에서 '준 사람의 의도'를 너무 깊게 파고 들어가다보면 어 좀 난감하려나, 음, 그렇지만 책에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는 않지 않을까요?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선물하는 건 어떨까요, 휘모리님? 남편이 럼주차 달라고 할때 럼주차 그냥 주자, 뭐 그런 의미로다가. 하핫 ;;

다락방 2011-01-25 14:37   좋아요 1 | URL
아, 그런데요 휘모리님. 그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건 저도 좀 알겠어요. 저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선물하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이 드는 그런 책이니까 말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1-25 16:56   좋아요 1 | URL
오! 곰스크로 가는 기차랑 셋트로 묶어서 줘야겠어요 으하하하하

나 악마인가봐 --;;

2011-01-25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6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6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r 2011-01-25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즈오 이시구로 책은 <남아 있는 나날>이랑 <녹턴>을 먼저 읽고, 이 책은 찜해두었어요.
(영화도 만들어졌다기에 영화를 먼저 보려고 미뤄뒀는데, 과연 국내 개봉이 이루어질지...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급으로 출연해서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나날> 참 좋아요, 다락방님.
영화가 아주아주 좋아서 뒤늦게 읽은 원작이 별로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어요.
다락방님도 좋아하실 겁니다!

+) 저는 3호선이 그래요, 낯설고 어색하고 어쩐지 불편하고...
다락방님이 4호선을 탔을 때 느끼는 기분, 딱 그대로에요.


다락방 2011-01-25 18:21   좋아요 1 | URL
앗. 방금 이 댓글 읽고 [남아 있는 나날] 검색해 봤는데 민음사 모던 클래식으로 나와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랑 나란히 꽂아 놓으면 예쁘겠네요. 읽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넣어뒀어요. 그치만 결제는 보류. 왜냐하면 저는 몇달간 알라딘 결제를 절제하자는 의욕을 다지는 중이라 ( '')

같은 '지하철'인데도 어색하고 어쩐지 불편한 호선이 있다는 건 참 신기하지 않아요?

퇴근시간이에요. 아우, 배고프네요. 저는 이제 퇴근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