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매미가 울고있다.
휴가는 짧지만 그동안 무척 하고 싶었던 것들 몇가지가 있었다.
1. 아빠와 등산 - 하루쯤은 아빠랑 도봉산 등산을 하고 싶었는데, 아빠의 스케쥴에 맞출 수가 없었다. 아빠가 바빠졌다.
2. 백수같은 삶 - 그동안의 휴가는 너무 휴가스러웠다. 작년만 해도 경주에 다녀왔던 터라, 이번엔 직장인 같지 않게, 완전 백수처럼, 늦게 일어나서 늦은 아침을 먹고 빈둥빈둥 밖에 나가 쇼핑도 하고 서점도 가고 영화도 보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 못했다. 어제는 나름대로 운동하랴, 자전거타고 렌즈 맞추러 가랴, 침 맞으러 가랴 할게 많았다. 그리고 오늘은 여동생을 보러 갔다왔다.
3. 네일아트 - 노란색 메니큐어로 손톱을 예쁘게 꾸미고 싶었고, 사실은 손톱에 누군가 메니큐어를 발라주는 동안 멍때리며 시간을 빈둥빈둥 보내고 싶었는데 아직까지도 이걸 할 시간이 나질 않았다.
4. 독서 - 1일날에도 주문을 하는등, 엄청난 양의 책을 읽고자 마음먹었는데 휴가전에 읽기 시작했던 '로맹 가리'의 『그로칼랭』을 아직도 읽지 못했고, 그것도 절반도 채 못읽었다. 아, 어떻게 회사 다니면서 더 책을 읽는걸까. 휴가때는 왜 책을 안읽는걸까. 역시 나에겐 출퇴근이 적성인걸까. 흑.
그래도! 하나는 했다. 동생 보러 가는 것, 조카를 보러 가는 것.
나는 잠든 조카의 옆에 누워서는 말끄러미 바라보기도 했고,
막 잠이 들려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조카의 얼굴을 넉을 잃고 보기도 했으며
작고 말랑말랑한 조카의 발을 가만가만 만져보기도 했다.
조카의 발을 만지는 기분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어서, 누군가 삶에 지치고 힘들어있다고 한다면, 삶이 우울로 가득차 있다고 한다면, 조카의 발을 한번쯤 내어주고 싶어졌다. 이 발 한번 만져봐요. 삶이 다시 말랑말랑해지지 않아요? 하고.
뭐니뭐니해도 최고는 조카의 깨어있는 얼굴이었다. 똘망똘망하게 동그랗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무언가를 바라보는 얼굴. 그 작고 어여쁜 얼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얼굴. 자꾸만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얼굴. 떠올리면 웃음만 지어지는 얼굴. 몇번이고 사진을 꺼내어 보게 만드는 얼굴. 사랑하는 친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얼굴.
태어난 지 이제 고작 2주가 됐다. 그런데 벌써 이만큼의 미소와 이만큼의 행복을 주니 앞으로는 얼만큼을 더 해주려나 기대가 크다. 설레인다. 그리고 나는,
이 작고 동그랗고 사랑스럽고 말랑말랑하고 야들야들하고 보들보들하고 똘망똘망하고 향긋한 아이에게 더 무얼 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