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 시인의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라는 시집을 읽었다. 이 시집은 오늘 배송받았는데 2002년도에 발행된 시집이다. 그래서인지, 대니쉬쿠키와 [백조의 호수] CD와 같이 주문했는데도 이 시집 혼자서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오늘에서야 받아보게 되었다. 나는 이 시집을 얼마나 읽고 싶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일전에 친구가 이 시집속에 있는 시 한편을 내게 댓글로 남겨주었는데, 그 시가 못견디게 좋았던 까닭이다. 그 시는 [4월]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고, 마침 그 시를 읽게 됐을때는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던 봄이었던지라, 절절하게 와 닿았다.
4월
내가 기차같이 별자리같이
느껴질 때
슬며시 잡은 빈손을 놓았다.
누군가 속삭였다. 어쩔 수 없을
거라고. 귀를 막은 나는
녹슨 피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너의
여러 얼굴들을 되뇌었다.
벚꽃 움트는 밤 아래
무릎 꿇었다.
어쩔 수 없었다.
시집의 첫장부터 넘겨 시들을 읽기 시작하는데, 내가 이 [4월]이란 시를 처음 읽게 됐을 때만큼의 감정을 주는 시가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초조했다. 이 시 뿐인가? 이 시집에는 이 시 한편만이 내게 와 닿을 수 있는걸까? 그렇게 읽어가다가 79페이지에서 [4월]을 발견했을 때, 그러니까 이 시를 다시 읽게 되었을때, 아 역시 이 시는 좋아, 그러니까 뭐 그런대로 이 시집은 괜찮은 시집인거야, 하고 스스로 위로했다. 사실, 나는 한 다섯편의쯤의 시들이 좋다면 최소한 일곱권쯤은 더 살 의향이 있었는데, 아쉽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4월]을 읽고 넘기다가 나는 또다시 아이쿠야, 하는 시를 읽게된다. 당신은 몰랐겠지요, 그때 내가, 하얗게 눈뜨고 있었다는 것을, 이라고 말하는 시.
사해문서
내가 어둠의 두루마리에 핏방울로 적혀
사막의 모래벽을 향해
모로 누워 잠들어 있던 밤
단 한 마리뿐이던 낙타의 등에 죽음처럼 조용히 올라타고는
나를 유기한 채
달아난 사랑
당신은 몰랐겠지요
그때 내가
하얗게 눈뜨고 있었다는 것을
당신은 몰랐겠지요, 흘끔흘끔 내가 당신을 바라보던 걸. 당신의 귀를, 당신의 눈썹을, 당신의 손을, 당신의 다리를. 당신은 몰랐겠지요, 당신 앞에서 평소보다 빨리 뛰던 내 심장 박동을, 자꾸만 떨리던 손을, 자꾸만 입술을 깨물게 되던 나를. 당신은 몰랐겠지요.
나는 늘 근심과 염려로 지낸다. 쓸데없이. 이런 내가 발견한 이런 너, 라는 시가 이 시집 안에 있더라.
이런 너
나는 늘 근심과 염려로 지낸다
내일의 고통까지 오늘 짊어지고 산다
고통과 염려는 다른 것이다
고통은
인간을 강하게 하고
슬픔을 알게 하고
사랑하는 법을 숙고하게 하고
겸손을 가르치고
스스로 있게 하지만
염려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다
염려는 오늘을
쑥대밭으로 버려두고
내일에 불을 지른다
염려는
고통을 괴물로 둔갑시키고
나를 겁먹게 한다
왜소하게 만든다
너는 내게 고통인가
아니면 염려인가
나는 오늘 그것을 염려한다
네가 염려일까 봐
염려한다
너는 내게 염려이다. 그리고 고통이다. 그러나 결코 내다 버릴 수 없는 찬란한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