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로맨스 소설 작가중 유독 '산드라 브라운'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내가 로맨스 소설이라고 다 읽어치우는 스타일이 아니라 산드라 브라운의 로맨스 소설만 읽는 편이다. 책장 한칸은 로맨스 소설로 할애하고 있는데, 그중의 2/3가 산드라 브라운 소설이다. 그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꽤 적극적인 남자주인공이 나오기 때문이고, 그녀가 성인남녀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음, 그러니까 뭐랄까, 그녀는 '사랑은 육체로 완성된다' 의 느낌을 준달까. 그래,바꿔말하면 야하다는 뜻이다. 쿨럭. 어쨌든. 그녀의 소설중 『몬테니그로의 아침』에는 이런 대화가 있다. 

(여) "이가 참 고르네요. 교정기 했어요?"
(남) "아니."
(여) "난 했어요."
(남) "사랑스러웠겠군."

 

2월이었다. 2월의 어느 하루, 나는 한 남자를 만났다. 우리는 찻집에 들어가 앉았는데 그때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남) "이빨 교정했어요?"
(여) "아니."
(남) "이가 참 고르네요."
(여) "어릴때 엄마가 제때제때 뽑아줬어요." 

나는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나한테 이빨 교정했냐고 묻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이빨 교정했냐는 물음이 세상에,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관심이 있고 진솔한 느낌을 주었다고 하면 다 표현이 될까. "미인이시네요", 라는 말을 들으면 "고맙습니다" 라고 답은 하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뻥치시네!'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내 어깨에 얹어진 당신 머리는 깃털처럼 가벼워."라고 하면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구라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빨 교정했어요, 라니! 이건 도무지 거짓말이야, 라거나 뻥치시네, 라고 생각할 수 없는 부류의 것이 아닌가! 딱히 칭찬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를 좀 꼬셔보겠어'의 의도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남들이 다 하는 말도 아니고. 나는 그에게서 "이빨 교정했어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말이 지독하게 로맨틱하게 들리는거다. 마치 내가 로맨스 소설속의 여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가장 듣기 좋은 말, 가장 낭만적인 말, 다른 사람들도 이말을 들어봤을까? 어떻게 들어봤겠어? 난 이빨 교정했어요, 라는 말을 들었어. 꺅.  

이빨 교정했어요? 이빨 교정했어요? 이빨 교정했어요? 이빨 교정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머리가 멍했던 것도 같고 정신을 잃었던 것도 같다.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이 남자는 그동안 만나온 남자와는 달라, 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바보다, 난. 이놈이 다 그놈인데 -_-) 그 전에도 나는 그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누가 이빨 교정했냐고 물어보겠어. 참신한 놈 같으니라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니지, 지극히 당연하게도 가장 듣기 좋은 말을 했던 그는, 가장 듣기 싫은 말도 했다. 뭐, 인생은 다 그런거지. 그래도 이빨 교정했어요, 는 내내 지워지지 않는 명대사. 다 쓰고 나니 나는 대체 왜 이런 말을 좋아하는가 의문이 든다. 내 남동생이 항상 말하듯이 내게는 똘끼가 있는걸까.

 

그런데 내가 지금 왜 갑자기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페이퍼 좀 안 쓸려고 했는데..알라딘 좀 줄여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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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10-22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거 '난 남들보다 꼬리뼈가 좀 더 긴데 만져볼래?'에 버금가는 로맨틱한 말인데요?!

나 자다 깨서 잠이 안와서 잠이안와요. 큰일이에요. ㅠㅠ
그래도 컴터 켜서 여기 들어오니 다락방님 글이 있어 위안- ㅎㅎ 같이 안자는 사람이 있구나 해서, 흐흐

아무래도, 상실의 시대가 너무 우울하고 예민하고 그런가봐요. 아, 자야지.

hanalei 2009-10-22 00:26   좋아요 0 | URL
같이 안 자는 사람(2)

다락방 2009-10-22 08:54   좋아요 0 | URL
Forgettable님/ 상실의 시대 얘기는 언제 한번 페이퍼로 쓸까해요. 내가 Forgettalbe님과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혹은 이유)들에 대해서요. ㅎㅎ 그래서 다시 잠들긴 했나요? 다시 아침이에요. 굿모닝! :)


레이_시즌4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

Arch 2009-10-22 09:26   좋아요 0 | URL
꼬리뼈 그건 어디서 나온 말이더라~ 기억이 가물가물, 아, 감질나 죽겠어요!

다락방님, 그러니까,이빨 교정한 여자 사람이구나^^(아치는 활용을 잘해요. 크)
다락방 예쁘네 보다 은근히 돌려서, 아주 구체적이고 심심하지 않게 칭찬한게 주효한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전 '아치는 술 먹으면 팔자로 걷는다'에서 그 사람이 무척 좋았던 경험이 있는데. 히~

왜 줄여, 왜 줄여요! 다락방님~ 나도 산드라 브라운 책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좋게 해놓곤. 우리 댓글 수를 줄여보아요~ 그러니까 하나 달 때 많은 얘기를 한다거나 뭐 이런? 가지가지인데...^^

고백하자면, 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이걸 끊어야지, 끊어야지, 좀 중여야지, 나도 그랬어요. 흑

다락방 2009-10-22 09:46   좋아요 0 | URL
Arch 님. 그러니까 나는 '이빨 교정 안한' 여자사람이라는 얘기지. 하하.
산드라 브라운 책은 Arch님이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 책속의 남자 주인공들은 전혀, 전혀 Arch님 스타일이 아니에요. ㅎㅎ 막 싫다고 던져버릴 것 같아. ㅎㅎ

알라딘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내가 너무 정신을 잃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 줄여볼까 한거에요. 난 뭐든 정신을 잃을 정도로는 좋아하지 말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ㅎㅎ

Arch 2009-10-22 13:1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보다 못하지만, 저도 있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꼬리뼈는 안 알려줄거에요? 이건 뽀님에게 물어야하는건가? 앙? 이렇게~

다락방 2009-10-22 13:32   좋아요 0 | URL
앗. 그건 뽀게러블님께 질문하삼 ㅎㅎ

새초롬너구리 2009-10-2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빨교정했어요 x3 ===> 요부분 무지 사랑스러웠어요 (구차한 질문이지만, 그 참신한 분하곤 어떻게???)

(비로그인 글썼다가, 아무래도 퍼런 사람이 적응이 안되서..아마 너구리 실루엣이면 적응되었을지도...)

다락방 2009-10-22 08:55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구차한 답이지만, 웃으며 안녕, 했지요. 2월이긴 했지만, 2009년의 2월은 아니었어요.

순오기 2009-10-22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정말 이런 글을 쓰는 다락방님을 꼭 만나봐야 하는데~~ ^^
그런데 '이빨 교정했어요?'보다 '치아 교정했어요?'하면 덜 멋질까요?ㅋㅋ
어제로 장장 6개월의 독서마라톤 끝냈으니 슬슬 서재마실 좀 다녀야죠.
자주 못와봐서 두루두루 궁금했어요.^^

다락방 2009-10-22 08:59   좋아요 0 | URL
음, 저는 말이죠 순오기님. 그가 '이빨'('이'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가물)이라고 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어쩐지 거르지 않고 불쑥 튀어나온 말 같잖아요? 하하하핫.

머큐리 2009-10-22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정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실례될 것 같아서 묻지 못한 말이었는데 말이죠...
이게 로맨틱하고도 연결될 수 있군요...(꼭 써먹어야지..ㅎㅎ)

다락방 2009-10-22 09:04   좋아요 0 | URL
현재 교정중인 사람에게 묻는다면 실례가 될 수 있겠지만 이미 교정이 끝난 사람에게라면 그다지 실례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요, 머큐리님? 아, 그리고요 저만 이런거지..모든 여자들이 이 말을 로맨틱하게 여길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하핫. 나중에 '그게 뭔말이야!'라는 소릴 들어도 저 원망하시지 않기에요!!

기억의집 2009-10-2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그러면 다락방님 처음 만나 첫 인사가 이빨 교정했어요?라고 물으면 점수 딸 수 있는 거예요^^
아이, 이거 점수 따기 너무 쉬운데....

다락방 2009-10-22 10:03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음, 여기에 댓글 다신분들을 만났을때 '이빨 교정했어요?'라고 묻는 분이 계신다면 '흥! 내 페이퍼를 읽었군!' 하고 생각하게 되겠죠. 하하하하. (사실 저한테 점수 따기가 좀 쉽기는 해요! 히히)

기억의집 2009-10-22 10:0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총알같은 기동력, 덧글에 대한 답글이 빨리 달려서 좋아요^^ 다락방님, 근데 왜 알라딘하는 시간을 계속 줄여야한다고 그래요. 전 이런 일상도 삶의 활력소구나 싶어요. 다락방님 덧글 읽으면 웃음이 빙..그레..그레 나오는데, 짧지만 한순간의 웃음이 삶의 찌든 때를 말끔히 빨아줘요^^

다락방 2009-10-22 10:12   좋아요 0 | URL
이것봐요. 제가 일은 안하고 자꾸 여기에서 놀잖아요. 이래가지고 어디 일을 제대로 하겠어요? ㅠㅠ
계속 하면서도 정신을 잃지 말자 정신을 잃지 말자 이러고 있어요. 정신을 잃다가 짤리면 클난다, 이러면서요. 흐흣. 그리고 저도 기억의집님 댓글 좋아요. 자꾸 찾게되요. :)

마노아 2009-10-22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빨 얘기 인상적이에요! 역시 남다른 다락방님! 그나저나 산드라 브라운, 수첩에 적어놔야겠어요. 불끈!

다락방 2009-10-22 15:13   좋아요 0 | URL
아, 마노아님. 산드라 브라운이 다른 사람에게 적극 추천할 만하다고는 자신할 수 없는데 말이지요. 마노아님이 읽으면 얼굴 빨개질지도 몰라요. 전 밤에 잠도 잘 안오던데요..ㅎㅎ ( '')

라로 2009-10-23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빨 교정했어요,,,( ")(왜 슬픈거지???)

다락방 2009-10-23 11:43   좋아요 0 | URL
nabee님. 그게 왜 슬퍼요? 전혀 슬퍼하실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