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가 아직 군인이던 시절, 마치 군인이 아닌 것처럼 겉모습을 꾸미고 미시시피에 가서 살인사건에 대해 조사하라는 임무블 받게 된다. 너는 군인이었으나 지금은 군인이 아닌 사람인거야, 가서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봐, 거기 군부대가 있는데 그 살인사건에 혹시 군인이 개입된건지 살펴보고 와, 라고 그의 상관 가버 장군이 명령한 것이다. 그렇게 리처는 미시시피로 갔다. 살인사건으로 부대는 외출금지 중이고 그래서 마을은 조용하다. 이곳을 정찰해보고자 하는 리처에게 그런데 그 지역 주민 두 명이 트럭을 타고 슬슬 다가와 시비를 건다. 너는 누구고 여기 왜 왔냐? 그 때 리처는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There was a second man in the passenger seat. Same type of a guy. Fur, ink, hair, dirt, grease. But not identical. A cousin, maybe, not a brother. Both men looked right at me, with the kind of smug, low-wattage insolence some kinds of strangers get in some kinds of bars. I looked right back at them. I'm not that kind of stranger. -p.68
조수석에도 한 사내가 타고 있었다. 운전석의 사내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털, 문신, 쑥대머리, 먼지, 기름기. 하지만 쌍둥이는 아니었다. 친형제도 아니었고 사촌지간이라면 적당할 것 같았다. 두 사내 모두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자기 집 앞에서 50점을 먹고 들어간 똥개들의 태도였다. 낯선 마을의 술집에서 외지인에게 쏘아지는 무례한 눈길이었다. 나도 그들을 마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눈길에 주눅이 들 외지인이 아니었다. -전자책 중에서
이 문장은 잭 리처를 그간 읽어온 사람이라면 웃으며 읽을 수 있는 문장이다. '나는 그런 눈길에 주눅이 들 외지인이 아니었다' 라는 부분 말이다. 그렇지, 우리의 리처는 주눅들지 않긔!! 이런 마음으로 즐거이 읽을 수 있는 문장이다. 그런데 번역본에서 내가 참 재미있게 본 문장, '자기 집 앞에서 50점을 먹고 들어간 똥개들의 태도였다' 가, 영어책에는 없다. 저 문장이 어떻게 그런 해석이 되는건지 몰라서, 나는 Both 부터 bars 까지 복사해 채경이에게 번역해달라 했다. 아무리 봐도 자기 집앞, 50점 이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채경이는 이런 답을 내놨다.
두 남자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마치 어떤 종류의 술집에서만 볼 수 있는, 어떤 부류의 낯선 사람들이 짓는 그 느긋하고 거만한 insolence(무례함, 건방짐) 같은 표정으로. -챗지피티 번역
간혹 번역서에서 번역이 생략되는 경우는 봤어도 문장이 더해지는 경우는 보지 못했었는데, 이건 번역가가 '더한' 문장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수많은 원서 중에 저런 문장이 들어간 원서가 있었던게 아닐까. 나는 그런데 저 문장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자기 집앞에서 50점 먹고 들어간 똥개들의 태도 말이다. 원서 읽고 계신분들, 혹시 저 문장이 책에 나온다면 영어로 좀 알려주세요. 아마도 직역보다는 의역이 담겼을 확률이 크지만, 똥개.. 영어로 궁금해...
아무튼 그들은 현지인으로서 외지인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방진 사람들이었는데, 잭 리처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면서, 그런데 직접 손을 대기는 싫다고 생각한다. 냄새도 나고 더러워서...
I didn't want to have to hit the gut. Not with my hands. I'm mo hygiene freak, but even so, with a guy like that, I would feel the need to wash up afterwards, extensively, with good soap, especially if there was pie in my future. -p.68
나는 그 사내를 두들겨 패야할 상황을 만들기 싫었다. 정확하게는 그에게 손을 대기조차 싫었다. 결벽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지저분한 놈을 건드렸다간 나중에 좋은 비누로 양손을 빡빡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곧 파이까지 먹어야 했다. -전자책 중에서
잭 리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와 걷고 있었다. 잠깐 둘러보다가 다시 들어가서 식당 직원이 추천한 파이를 디저트로 먹을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미래에 디저트가 있는데, 그 전에 손이 더러워지는 건 곤란하지 않은가. 그런게 머릿속에 다 있는거다, 잭 리처는. 내가 잭 리처에게 좋아하는 지점들이 참 많지만, 그래서 내가 나의 패이버릿 캐릭터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거다. 나는 이 가까운 미래에 닥칠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현재에 어떤 행동을 취하는 이런 지점이 참 좋다.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굳이 먼 미래를 계획하지는 않지만, 머릿속으로 항상 가까운 미래는 생각하고 있거든.
이를테면 이런 거다.
나는 설거지가 정말 싫다. 설거지 하는게 너무너무 싫다. 그런데 그거보다 더 싫은건, 씽크대에 설거지 하지 않은 그릇이 쌓인 걸 보는 일이다. 그건 나에게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이다. 설거지가 너무 싫지만, 그걸 씽크대에 쌓아두고 '아 저거 해야하는데' 라는 생각을 갖는게 실제 설거지를 하는 것보다 훨씬 싫고, 그런 스트레스를 나에게 주기가 싫다. 그래서 정말 싫지만, 나는 식사를 끝내는 바로 그 즉시 설거지를 해치운다. 설거지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정말 아니다. 하지 않은 채 해야하는 것을 보는 그 가까운 미래가 명확하게 잘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나는 나를 그런 상황속으로 몰아넣기가 싫다. 그래서 설거지는 식사를 끝낸 바로 즉시 해치운다.
또 있다.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저녁 식사에 대한 계획이 이미 세워지고난 후다. 그래서 아직 수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하철 역에 내려서 마트에 들른 다음에 삼겹살을 사가지고 들어가자. 냉장고에 있는 소주 한 병 같이 먹고, 다 먹으면 배부르니까 설거지하자마자 마트 가서, 그 때 다른 것들을 쇼핑하자. 계란 떨어진 것도 그 때 사자, 과일도 좀 사자.' 이렇게 말이다. 가까운 미래에 대한 거라면 언제나 머릿속에 있는 편이다. 가까운 미래가 머릿속에 있어서 현재의 내가 선택을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잭 리처도 그랬다. 파이를 먹어야 해서 더러워지기 싫은데, 더러운 놈들이 시비를 건다. 그래서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So I planned on kicking him instead. -p.6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좋아 이런거 ㅋㅋㅋㅋㅋㅋㅋㅋ손 더러워지기 싫은데 저 놈들 때려야하면 어떡하지? 발을 쓰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잭 리처가 진짜 너무 좋다. 저 문장은 번역본에 이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만일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발을 사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전자책 중에서
저 부분의 유머는 원서가 훨씬, 훨씬 잘 산다.
설거지 얘기를 한 김에 하나 더 언급하자면, 나는 설거지도 정말 싫지만, 머리카락 떨어진 걸 보는게 너무너무 싫다. 진짜 미치게 싫다. 병적으로 싫다. 문제는 지금 사는 집 바닥이 하얀색이라는 거다. 그래서 머리카락 떨어진게 너무 잘보여. 흑흑. 나는 웁니다. 나는 괴롭다. 여기에서 돈 아끼면서 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정전기 청소포랑 막대 사가지고 하루에도 몇차례씩이나 바닥 청소하고 있다. 지난번 한국 갔을 때 스티커 돌돌이도 가져와서 침대도 수시로 쓱쓱 밀어주고 있다. 이거 다 내 머리카락인데, 아흑, 너무 꼴보기 싫어. 샤워한 후에 벗은 몸에 머리카락 떨어져 붙어있는 거 보는 것도 너무 싫고, 머리카락이 느껴지는 것도 너무 싫다. 나는 내 몸에 머리카락 붙으면 귀신같이 잘 아는데, 그 느낌이 정말 너무 싫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에 있어서라면 결벽증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너무 싫은데, 하필 바닥이 하얀색이라서 나는 매일 매일 정전기 막대 들고 다니면서 바닥 밀고 다닌다. 그런데 머리카락 왜이렇게 많이 떨어지나요.. 대머리가 안되고 있다는게 신기함. 하여간 견디지 못하겠는게 몇 가지가 있다. 설거지 쌓인 거 보는거, 머리카락 떨어진 거 보는 거, 사람한테서 냄새 나는거...
아무튼 잭 리처는 25 챕터까지 읽었다.
다음엔 호텔에서 살고 있는 데버로 얘기도 해보고 싶다. 언니,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삼시 세끼 사먹는게..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난 못함.
친구로부터 지원품이 도착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읽고싶은 책 얘기하라고 해서 책이 올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저렇게 생각지도 못한 식품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죽을 보자마자 흥분을 했다. 죽이라니, 죽이라니!
나는 죽을 좋아한다. 가끔 식사로 죽을 사먹기도 한다. 본죽에 가서 낙지김치죽이나 삼계죽을 사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실 가장 좋아하는 죽은 호텔 조식으로 나오는 가장 심플한 콩지이다. 그저 심플한 하얀 죽. 호텔 조식에 콩지가 있다면, 나는 반드시, 그걸 먹는다. 꼭, 먹는다. 그것만 먹는건 아니지만. 그런데 이렇게 죽이 온거다! 나는 너무 흥분하고 좋아서 저 자리에서 바로 누룽지 닭죽을 데워먹었다. 팔팔 끓는 물에 넣어서 데워먹었다. 생각보다 약이 적어서 서운했지만, 나는 죽을 먹었다. 으하하하하. 아니, 그러게, 내가 죽 사올 생각을 왜 못했지? 그런데 무게가 제법 무거워서 수트케이스에 넣었다면 금세 무게를 초과했을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그렇게 헤죽헤죽 웃으면서 친구가 저 물건들과 함께 보낸 편지를 읽어보기 위해 봉투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런데 얼라리여~~

거기에는 돈이 들어있었다!
친구는 플라스틱 병의 소주는 역시 그 맛이 아니라며, 싱가폴에서 이 돈으로 병에 든 소주 사마시라고 했다.
사람이 인생을 잘 살면 소주 사먹으라고 돈 주는 친구가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가 보낸 책들-내가 읽고 싶다고 한 것-은 이것이다.


으하하하. [예수의 아들]에 대한 기대가 정말 너무나 크다.
[제임스]는 이걸 원서로 오래전에 읽었던 친구가 이 책이 한국에 번역되어 나오길 바랐는데 드디어 번역되어 나왔다고 좋아하길래, 왜왜 뭔데그래 왜왜 이러면서 읽고싶어졌다. [사탄탱고]는 노벨문학상 작품 탄 거 한 번 읽어볼라고..
그리고 얘들아, 나 김치 담근거 알고 있니?

처음으로 배추김치 담가봤다. ㅋㅋ 좀 짜지만 겁나 맛있어서 비비고와 종가집 김치에 안녕을 고했다.
이 뒤에도 찍어서 영상 편집을 했는데, 편집 프로그램이 한 달만 무료였대 ㅋㅋ 돈 내래 ㅋㅋ 나는 그런데 낼 돈이 없지. ㅋㅋ
그래서 이 다음은 어떻게 됐냐면,
엄마가 무우를 사서 넣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 하셨지만, 무우는 하나 사면 수습할 자신이 없었고, 엄마의 조언대로 양파를 더 넣고 설탕을 넣기로 했다. 그리고 엄마가 사진 보시더니 아직 덜 절여진 것 같으니 익으면 짠 맛이 조금 덜할거다, 익은 후에 먹어봐라, 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어제 냉장고에 넣지 않고 익혔는데 오늘 먹어보니 맛있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좀 짠건 변함없지만 또 밥하고 먹으니까 좋은데? 맛있게 먹었다. 다음엔 젓갈을 조금만 넣어야지.
잭 리처로 시작해서 김치로 끝내버리는 페이퍼.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