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사 78페이지 이벤트에 뒤늦게 참여해보고자 책장 앞을 서성이며 현암사 책 몇 권을 꺼내 왔다.

가지고 있는 현암사 책들 중에서 다른 사람들이 언급한 건 빼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은 책으로 빼왔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 어딘가 누군가는 이 책들로 참여했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첫 책은, '울리히 흄'이 글을 쓰고 '요르그 뮐레'가 그린 [8시에 만나!] 이다.



펭귄 세마리가 하느님의 대홍수 벌로 인해 노아의 방주에 타게 되는 이야기이다. 

갑자가 한 마리의 비둘기가 나타나 노아의 방주에 한 커플씩만 탈 수 있으며 8시까지 도착하라는 소식을 전하고 사라지는데, 그 소식을 들은 키가 큰 펭귄 두 마리는 도저히 키작은 그들의 친구 펭귄을 두고 갈 수가 없어 커다란 가방에 넣어 노아의 방주에 탑승한다. 8시까지 오라고 했지만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도착해 가장 꼴찌로 탑승하게 된 펭귄들은 혹여나 자신들이 세마리라는 사실이 들킬까 겁난다.

여차저차 위기를 잘 넘기고 비둘기는 이제 물이 가라앉고 있다며 올리브 잎을 물어왔다.

방주의 문이 열리고 모든 동물들이 육지로 내려온다. 그렇게 펭귄들은 드디어 노아를 만나게 된다. 78페이지는 늙고 눈이 나쁜 노아가 펭귄들과 인사하는 장면.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은 펭귄 하나가 노아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이다.


"잠깐! 대홍수가 실수였다는 걸 하느님이 솔직히 인정했나요?!" -p.86


아, 너무 짜릿한 펭귄의 말이다. ㅎㅎ



다음은, '찰스 킴볼'의 [종교가 사악해질 때] 이다.



저자인 '찰스 킴볼'은 침례교 목사로 안수받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이슬람 연구로 비교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아, 너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사뒀는데, 아직 안읽었다. ㅎㅎ 그래도, 78페이지!!



78페이지 사진을 찍다가 인상적인 문장은 79페이지에서 찾아냈다.


인간이 만든 제도라는 측면에서 모든 종교는 타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p.79



분면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는데, 현암사.. 도대체 어떤 출판사이지요? 세번째 책은, '이동옥'의 [묵주반지를 낀 페미니스트] 이다. 아 왜이렇게 종교적인 것인가!!


이 책은 '종교와 페미니즘의 동행'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간 여성학 책을 읽어왔던 사람들이라면, 세상 모든 종교가 여성 혐오의 역사로 시작하고 또 착실하게 성차별에 앞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비종교인은 그런 종교인 혹은 종교활동에 대해 비난하기 쉽지만, 신앙인으로서는 그런 일들을 알게 되거나 접하게 될 때마다 비종교인보다 더 복잡한 마음이 될 터.  저자인 '이동옥'은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여성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여서악 박사학위 받은 사람이 종교가 페미니즘과 어떻게 동행할 수 있는지를 얘기한다면, 귀기울여 들어볼만하지 않을까.


78페이지는 이런 내용이다.



남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A 씨가 함께 생활하던 H 신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는데 H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이었으며, 다른 신부들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도 A 씨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거다. 신앙의 힘으로 버티고자 했지만 더이상 침묵할 수 없어 자신이 당한 성폭행을 가시화했다는 것.  그러나 그 후에고 가해사제는 계속 사목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인상적인 구절은 이 책의 마지막, <닫는 글>에서 가져온다.


나는 생명을 존중하고, 폭력이나 전쟁을 싫어한다. 하지만 성과 가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생면을 논의하는 방식은 늘 거룩해 보인다. 낙태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여성주의자들은 아동, 장애, 노인 등의 복지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 비해 공감을 얻지 못한다. 말하지 못하는 고통으로 상처 받은 여성들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다면 어떤 여성이 종교를 통해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겠는가. -p.357


이 책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욤??



노아의 방주 이야기- 종교가 사악해질 때- 종교와 페미니즘의 동행 에 이어 나오는 그 다음의 책은 무얼까? 두구두구둥- 여성의 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귀신  이야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암사, 뭐죠?



저자 '전혜진'은 소설가인데 창작을 위한 이야기들을 수집하다가 이야기 너머 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여성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해 여성 귀신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78페이지 역시, 여성 귀신 이야기다. 어떤 귀신이냐, 콩쥐 귀신이다.



78페이지에 앞서 콩쥐팥쥐전 이야기가 소개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 아버지가 콩쥐 혼자 키우다가 재혼했는데 새엄마는 그 후에 팥쥐를 낳았고, 자기가 낳은 팥쥐는 예뻐하고 콩쥐는 구박하다가 나중에 계모와 팥쥐가 콩쥐를 죽이기까지 하는 거다. 이에 콩쥐는 연꽃으로 피어나고 혼령으로 나타나 복수한다는 내용. 


왜 옛날 이야기에서 계모는 항상 나쁜 사람일까. 왜 항상 아이들을 구박할까. 나도 어릴적에는 계모는 다 나쁜 사람인줄로만 알았지 뭐야. 계모=나쁜 사람 공식이라도 있는 건줄 알았다.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아주 그릇된 방식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 같다. 그리고 봐라, 콩지 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냐. 콩쥐가 구박 받는 것도 모르다가 나중에 콩쥐가 죽고 부활하고 행복해지면 또 재혼한다. 어처구니. 게다가 콩쥐 남편 김 감사는 팥쥐가 '내가 콩쥐요'라고 콩쥐행세 하는데 지 아내도 몰라봐. 하여간 찐따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여성들이 살아 남느라 아주 고생이 많다. 얼마나 고생이 많냐면, 죽었다 다시 살아나기까지 해야해. 에휴...


인상적인 구절은 78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계모는 결혼을 통해 어머니의 지위를 획득하지만 자식을 낳기 전까지 온전한 가족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 특히 전처소생 자식들이 장성했거나, 똑똑하고 영리하거나, 아들이라면, 남편의 자식을 낳고도 온전히 가족에 편입되지 못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족의 일원이지만 외부인처럼 취급받는 계모는 종종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양이 된다. 집에 사소한 가정불화만 있어도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p.78~79



자, 마지막으로 한 권만 더 소개하자면, 오래전에 친구의 서재에서 보고 잽싸게 사둔 책. '도코 고지 외' 지음으로 되어있는 세계 8대 문학상에 대한 지적인 수다,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이다.



노벨문학상, 공쿠르상, 퓰리처상, 아쿠타가와상, 나오키상, 예루살렘상, 부커상, 카프카상 등 8가지 문학상 수상작을 읽어보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라고 한다. 이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욤?


이 책의 78페이지는 이것.



이 페이지에 언급된 '메도르마 슌'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페이지는 '메도루마 슌'의 <물방울> 을 읽고 도코 고지와 다키이 아사요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물방울은 나도 문학동네 책으로 읽었었는데, 이 페이지를 읽고나니 그 이야기가 엄청난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구나 싶어지기는 한다. 그러니까 '전후 세대에 태어난 메도루마 슌이 전쟁 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 전쟁을 어떤 식으로 말하는가' 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는 그런 의미까지 생각하지 못한 채로 읽었던 것 같다.

아무튼 <물방울>은 대단한 작품이라고, 이어지는 페이지에서 이들은 이야기한다.


인상적인 구절은 206 페이지. 퓰리처상에 대한 대담에서 줌파 라히리를 이야기한다. 이때 '도코 고지'(번역가이며 와세다대학 문학학술원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거다.


(줌파) 라히리는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는데, 저는 알아냈습니다. 그건 '연애결혼에 미래는 없다' 입니다(웃음). -p.206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실 줌파 라히리 소설 읽으면서 '연애 결혼에 미래는 없다'고 탁 꼬집어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이 말 듣고나니 맞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줌파 라히리가 쓴 이야기들이 다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섹시>에서도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가 나오고, 그 남자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예쁜 속옷을 준비하지만, 잠깐 짬을 낸 남자는 속옷 입은 여자 감상할 새도 없이 섹스만 하고 떠나 버리거든. 게다가 <뭍으로>는 어떻고. 헤마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하려고 하잖아. [저지대] 에서는 사랑하는 남자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목소리를 내지만 집에서는 꼼짝 안하고 차려주는 밥이나 먹는 걸 보는 여주인공이 나온다. 하하. 줌파 라히리, 연애 결혼에 미래는 없다' 고 말하고 있었네요? ㅋㅋㅋㅋ



이만 마친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1등 상품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바라고 2등 오웰 전집도 바란다. 나는 언제나 1등을 바란다. 이번 이벤트는 2등도 매우 좋다. 사실.. 2등이 더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암사 관계자 여러분.

저는 1개월 책 구매액이 45만원 에 이르는 사람이지만, 책 전집 주신다고 해서 제 구매액이 줄어들 리는 없으니, 걱정 말고 전집 주셔도 됩니다. 쏘세키 전집, 오웰 전집 대환영이고요, 저한테 1,2등 다 주시고 두 전집 다 주셔도 1개월 45만원 책 구매는 문제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알라디너들이 보증할 것입니다.



이만 뿅~


아이고 트위터에는 이걸 또 어떻게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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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11-19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어쩜…. 종교와 페미니즘이 만나는 책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현암사 진짜 어떤 출판사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1등 기원합니다! 2등도 괜찮고요 ㅎㅎ
얼른 올리세요! 어디에 올려야한다면서요!

다락방 2023-11-20 07:40   좋아요 0 | URL
저한테 저런 책들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저 책들이 죄다 현암사인줄은 저도 이번에 알게 됐네요? 모아놓고나니 종교적 책들이 많았어요.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ㅎㅎ
트윗에 올렸습니다. 이제 1등할 일만 남았습니다. 우하하핫.

미미 2023-11-1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파 라히리의 책은 한 권 정도 읽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것참ㅋㅋㅋㅋㅋㅋ 좀 더 읽어보고 싶네요?
다락방님 당첨되셔도 구매액이 상당하실 것을 제가 보증합니다.(한 때 0.1%였던 미미)

다락방 2023-11-20 07:41   좋아요 1 | URL
오 미미 님! 줌파 라히리는 제가 정말 애정하는 작가이고요, 미미 님이 읽으셔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책을 읽어보셨을까요? 이왕이면 이탈리아어 신작 말고 예전 영어로 쓰여진 책들을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단편 <지옥 천국>과 <섹시>를 정말 애정합니다!! >.<

새파랑 2023-11-19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이작가님 2등 하실듯~!!

혹시 당첨 안되신다면

현암사는 이작가님의 세번째 작품을 출판해주시길 요청합니다~!!

다락방 2023-11-20 07:42   좋아요 2 | URL
아우 저의 세번째 책을 저보다 더 기다리는 새파랑 님을 위해서라도 현암사는 내 책을 내달라!! ㅋㅋㅋㅋㅋ
1등이든 2등이든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오늘 남극에 가는 꿈을 꾸었거든요? 이게 뭔일이래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19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신기(?)한 책이 많아서 1등할 거 같다!!! 트위터에 올렸는가?!….. (올렸네!)
현암사여…..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다락방에….게

다락방 2023-11-20 07:43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벤트 참여하면서 오오 이 책들이 죄다 현암사? 하고 알았답니다. 사실 책 구매할 때 출판사 크게 신경쓰는 편이 아니어서 말이지요.
나쓰메 소세키 전집이든 오웰 전집이든, 달라 현암사여!!

앗, 오늘 월요일이네? 책구매 페이퍼 쓰러가야겠다요. 슝 =3

책읽는나무 2023-11-20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다락방 님은 레전드!!!!!^^
현암사는 좀 특별한 출판사라는 생각 종종 했었는데 다락방 님이 가지고 계신 책들을 보니 와, 이런 책도 있었어? 시선을 확 사로잡네요.
역시 레전드는 달라요.
1,2등 선물 받아도 매달 책 많이 사는(살?) 다락방 맞나요? 확인할 때 저도 보증한다는 줄에 서겠습니다.ㅋㅋㅋ
파이팅입니다. 왠지 상 타실 듯!!^^

다락방 2023-11-20 07:44   좋아요 1 | URL
사실 저는 이 이벤트 전까지 현암사라는 출판사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오오 이런 책이 다 현암사구나? 했지요. 그렇다면 현암사의 이 이벤트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뭔가 저한테 인상을 남겨버렸으니.. ㅎㅎ

저 문학동네 전집 100권 받아도 책 계속 사는 사람인데 소세키 전집이 대수겟습니까. 계속 삽니다. ㅋㅋㅋㅋㅋ계속 살거지만, 달라, 달라!!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