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동물성애자 - 종도 편견도 넘어선 사랑
하마노 지히로 지음, 최재혁 옮김, 정희진 해제, 강상중 추천 / 연립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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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내 친구는 이 책의 존재 즉, 동물과 섹스를 하는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놀라고 불쾌해했다. 동물을 인간보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동물과의 섹스는 동물에 대한 강간으로 인식되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동물과 인간의 대등함이 그들에게 있다고 말함에도, 그 대등함이 과연 정말 대등함인지, 그리고 대등하다고 해서 꼭 동물과 섹스까지 해야 하는지 재차 물어왔다. 친구의 의심과 물음은 그리고 불쾌함은,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갖는 감정과 의심도 모두 이와 같으리라.


게다가 나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가 성폭력 트라우마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나는, 동물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식의 트라우마를 가진 건 아닌지, 그러니까 인간으로부터 크게 상처 입어 동물로 돌아선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동물을 나 좋을대로 이용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게 아니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아마도 '대등성' 이리라. 

이 책의 제목 성스러운 '동물성애' 자에서 바로 느껴지듯,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동물과의 섹스를 특별히 더 좋아하는 사람들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동물과의 섹스는 안해도 좋은 것이었고 했다해도 그 횟수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뉴스에 간혹 등장하는 동물에 대한 강간과는 완전히 다른 식의 관계가 그들에게 있었다. 동물에 대한 강간은 강간 가해가의 욕망과 폭력성에서 비롯되지만, 이 책에서 '주파일'로 불리는 동물성애자들에게 동물과의 섹스는, 동물과의 관계성에서 따라오는 것이었다. 즉, 나와 대등한 나의 파트너-어떤 이에게는 개(dog)가 '아내' 였다-이기에 함께 살고 교감을 나누는 것이 주요한 삶의 형태이며 목적이고 그 과정에서 혹여라도 찾아오는 섹스에 대한 욕망이 느껴진다면, 그 때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들처럼 삽입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오랄이기도 했고 그저 자위를 도와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자인 '하마노 지히로' 가 만난 주파일 중의 많은 사람들은 동물의 섹스를 받아들이는 남자 인간이었다. 이들에게 섹스는 동물과의 관계성에서 따라오는 것이었고, 그 누구보다 '서로가 원할 때', '서로가 대등한 입장에서' 섹스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잘 갖춰져 있엇다. 이들은 동물을 단지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동물 강간 가해자들을 혐오했다.



책장을 넘기면서 '대등성'을 받아들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동물이 '원한다'고 할 때 정말 그것이 동물이 원하는 것일지, 저자처럼 나도 의심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주파일들의 인터뷰를 통해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등성 만큼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동물과의 '관계성' 이었다. 인간이 한 인간과 시간을 함께 오래 보내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처럼, 동물과 당연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었다. 나야말로 동물이 원한다는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인간중에 동물과의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물이라고 그렇지 않을거라고 확신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중심적인 게 아닐까 싶었던 거다. 


문득 도나 해러웨이의 책에서 보았던 '어질리티' 가 생각났다. 인간과 개가 함께 달리는 경기. 도나 해러웨이는 그 때의 개를 파트너라고 불렀다. 이 단어가 어울릴 지 모르겠지만, 개와 하나가 되어 달리고 또 그 개를 파트너라고 부른다면, 그보다 더 확장되고 더 깊은 개념이 주파일이 되는게 아닐까. 도나 해러웨이는 인간이 비인간과 얽혀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했는데, 주파일은 그것을 바로 몸소 실천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던 거다. 물론, 그렇다해도 나 역시 내 친구가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굳이 섹스까지 나눠야 할까' 라는 생각을 여전히 버리지는 못하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주파일들에게 섹스는 부차적인 것임에도 주파일을 대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섹스가 되어버리는 거다. 정희진의 해제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알게된 걸 간단하게 정리해준다.


'주파일은 인간의 사랑 행위 중 일부일 뿐, '동물과 섹스하는 사람'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섹스가 아니라 동물의 삶을 성의 측면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p.278



이 책에는 다양한 사례의 주파일들이 등장한다. 주파일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파일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도 있다. 주파일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것이 부조리하다며 주파일로서의 자신을 커밍아웃 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 남자 애인의 주파일이라는 커밍 아웃에, 그와 대화하고 그를 이해하며 자신 역시 주파일이 되기로 선택하며 남자의 파트너를 포함한 개와 함께 섹스를 나누는 여자도 있다. 이 여자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주파일임을 커밍아웃한다면 그 후의 나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세상에는 이 책을 읽은 사람보다 읽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고, 그러니 내가 읽지 않은 사람들보다 동물 성애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알고 편견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내 남자 애인이 주파일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 여자처럼 너를 이해하며 나 역시 주파일이 되는 걸로 해볼게, 를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책의 부제는 '종도 편견도 넘어선 사랑' 이라고 되어 있는데, 나는 이 책을 읽었음에도 종도 편견도 넘어설 수는 없는 사람인 것 같다.



하마노 지히로는 이 책을 맺으며 '주파일을 통해 섹스나 사랑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는 목적이 있었음을 밝힌다. 주파일들과 만나며 대화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하마노 지히로는 그들과 새로운 관계성이 생긴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가진 상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상처란 무릇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서 온전히 지워낼 수는 없는 것. 그러나 그 상처를 가지고 우리는 다른 것들을 경험하며 그 상처를 점차 잊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늘 그 상처가 머릿 속에 먼저 떠올랐다면, 지히로가 그랬듯 다른 관계들을 맺고 다른 이야기들을 겪고 경험하면서 이제는 들여다봐야 야 여기에 내 상처가 있었지, 할 수 있게 되는 것. 

자신을 연구하기 위해 그들을 만났던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한 지히로지만, 그러나 나는 지히로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을 연구한다는 목적을 불손하게 품은 듯 말했지만, 그러나 그녀의 연구는 결국 그녀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었고 새로운 관계성을 가져다 주었으며, 나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에게 대등성과 관계성에 대해 끊임없이 묻게 해주지 않았는가. '정말 대등한가' 에 대해 아마도 가장 많이 물어가며 읽은 책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을, 진정한 사랑을 비인간으로부터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인간들과의 어떤 관계보다 대등할 수도 있다.이제 나는 그것을 안다.



뜬금없지만, 자신을 위해 연구를 하고 결국 이렇게 책으로 내보낸 저자를 위해, 나는 콜린 후버의 [어글리 러브] 에서의 문장을 리뷰의 마지막에 가져오고 싶다.


"The pain will never go away, Miles. Ever. But if you let yourself love her, you'll only feel it sometimes, instead of allowing it to consume your entire life." - <ugly love>, Colleen hoover, p.302






성폭력의 본질이 페니스 자체에 있을 리는 없다. 지극히 단순하고 맹목적으로 페니스에서 폭력성을 찾아낸 후 섹스에서 폭력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남성, 엄밀히는 페니스를 ‘악‘으로 만드는 식으로는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항 대립을 손쉽게, 끊임없이 만들어낼 뿐이다. 성폭력의 본질은 다른 지점에 있으며, 성별이나 성기의 형상과는 근본적으로 관계가 없다. - P159

인간은 동물의 종 혹은 종이 속한 집단에게 당연한 존재 양상을 바란다. 말하자면, 식용 가축은 인간의 식량이라는 목적을, 펫은 인간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같은 인간이라는 종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의 존재 양상을 다양한 금지 사항으로 규정한다. 동물과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종교 규범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한 규칙 중 하나다. 그리고 섹스라는 행위는 인간의 탄생과 종의 존속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므로 법률이나 규범, 상식이 항상 개입되게 마련이다.
인간은 동물과의 사이에 경계를 긋고 난 후 ‘사람‘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섹스는 그 경계를 교란한다. 그러므로 주파일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섹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 P188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강 같은 것이 있어요. 나에게 섹스는 관계성의 문제이지만, 많은 남성에게는 생리 현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어요." - P201

론야, 휠체어, 아누크의 관계는 이종 혼교적으로 뒤얽혀 있다. 그녀가 걸을 때 아누크도 걷는다. 아누크가 걸을 때 그녀도 걷는다. 그리고 둘을 보조하고 이어주는 도구가 휠체어다.
휠체어에 앉은 그녀의 시선은 덩치 큰 아누크의 시선과 거의 같은 위치다. 일체가 된 둘은 항상 같은 속도로 걸어간다. - P204

‘병‘이나 ‘변태‘라는 말이 만들어내는 배타성은 위험하다. 저들은 나와는 다르다며 선을 그으면, 사고는 거기서 멈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나름대로 파악해가는 것뿐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상을 보고 싶었다. - P243

래디컬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드워킨은 삽입 섹스 자체가 강간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이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딜도를 이용한 자위를 포함하여 인간의 성애에서 삽입섹스(inter/course), 즉 무엇인가를 몸에 넣는다는 행위는 몸을 공간화한다는 의미에서 폭력성을 함의하고 있다.
주파일을 상대방(동물)의 동의 없는 수간으로만 인식하는 편견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해제 중 - P274

이 책은 우리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선사한다. 에로틱의 의미는 언제나 재정의되어야 한다. 사랑이나 성애의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동등함과 관계성, 인격적 관계가 에로틱한 것이며 이러한 상태(사랑)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파일은 인간이 사랑 행위 중 일부일 뿐, ‘동물과 섹스하는 사람‘과 동의어가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섹스가 아니라 동물의 삶을 성의 측면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레즈비언이 되기로 ‘선택‘한 여성들, 아니, 모든 인간들처럼 주파일을 선택한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선택한다는 것은 성적 지향에 머무는 일이 아니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인생의 중요한 일부다. -해제 중 - P278

현재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지 않다. 특히 남성과 여성은 그렇다. 그런데도, 인간 간의 성애는 생물학적 본질로 오식되어 관계성과 동등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파일처럼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관계와 보살핌, 평등에 대해 훨씬 많은 고민을 하고 실천할 수밖에 없다. 젠더 관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남성보다 가부장제 사회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는 사회적 약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기 사회를 더 폭넓게, 더 깊이, 더 많이 공부하는 이유와 같다.
주류의 언어와 삶의 경험은 일치하지만, 주변인의 삶과 기존 언어는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성애자와 주파일 중 누가 더 성과 사회에 고민이 많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여성 노동의 성애화, 여성 섹슈얼리티의 상품화, 만연한 젠더 폭력, 구조적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남성 문화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자 새로운 목소리가 될 것이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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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0-01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다락방님도 이 책을 읽으셨군요! 왠지 저도 읽으면 딱 다락방님처럼 느낄 것 같습니다. 설득된다.. 그러나 진짜 섹스까지? 하는.. 종도 편견도 넘어서진 못할 것 같아요^^;;

다락방 2023-10-01 22:35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었어도 제 애인이 주파일이라고 제게 커밍아웃 하지 않아주기를 바랍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3-10-0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저도 독서괭님과 비슷한 생각이요. 저도 이 책 읽으면 조금 설득될 거 같기도 해요.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이 지금은 동물에게로 향하지만 곧 AI가 우리에게 묻겠죠.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일까요… 인간중심성에 매달리는 저는 궁금합니다. 뭘까요, 당최… 🤔

다락방 2023-10-04 07:51   좋아요 0 | URL
네, 무엇보다 그들에게 섹스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관계성에서 따라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매우 좋았습니다만, 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뭔가 확 달라진 건 아니고요. 단지 앎에 있어서만 달라졌다고 해야할까요. 좀 그렇습니다. 흠흠.

잠자냥 2023-10-02 0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은…(이른) 시간에 잘 읽었습니다. 별 다섯이라니 일단 뿌듯…(내가 왜?!)

다락방 2023-10-04 07:51   좋아요 0 | URL
넷을 주고 싶었는데 넷을 줄 이유도 딱히 없었어요. ㅎㅎ

은오 2023-10-0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읽으섰군요!! 고생하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진짜..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설득돼 있는 마법.. 진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게 되죠 ㅋㅋㅋㅋ
읽은지 반년 지나니까 저도 아니 그래도 굳이 섹스까진.. 하는 생각이 다시 올라와요 ㅋㅋㅋㅋㅋ 그래도 진정 동등한 수평적 관계란 무엇일까 생각해볼 수 있었던 충격적이면서도 좋은 책이었습니다..

다락방 2023-10-05 20:36   좋아요 0 | URL
어휴 읽을 때 장면이 생각되어서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자꾸 읽다보니 대등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긴 했고, 그래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음.. 네, 좀 그렇습니다. 하하하하하. 아무튼,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