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는 그냥 올려봄. 읽은 거 아님. 오해 노노.)




'르네 나이트'의 《누군가는 알고 있다》를 알게된 건 트윗에서였다. 국내 배우 '정호연'이 애플 티비 에서 방송하게 될 《Disclaimer》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이게 르네 나이트의 원작이라는 거다. 나는 그 유명한 오징어 게임을 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지만 국내 배우가 나오게 된다는 이 드라마의 줄거리가 흥미로워서 이 책을 잽싸게 사뒀다. 현재 이 책은 절판이지롱. 껄껄.


이사를 하고 얼마후, 캐서린은 집의 탁자에서 책 한 권을 보게 된다. 누군가 사둔거겠거니 하고 우연히 집어든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20년간 꽁꽁 숨겨왔던, 자기 혼자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이야기가 그 책 안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누군가 알고 있었던 거다. 그녀는 그 책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읽고 자신의 이야기인줄 알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도 두렵고 게다가 그것이 그녀의 손에 들어오게 됐다면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도 알고 있다는 것도 두렵다. 스물다섯의 독립한 아들도 자신이 일하는 곳에 손님으로 온 분이 선물로 준 책이라며 이 책을 읽었다고 하는걸 보니, 그녀의 가족에 대해서도 이미 파악이 끝난 것일테다. 게다가 아들은 이미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한다. 흥미롭게 다 읽었다고. 게다가 아들은 책 속 여자주인공에게 동정심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보기에도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책 속 등장인물인 여성에 대해, 그 여성이 끝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에 대해 동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도 생각한다. 


직업적으로도 아주 크게 성공하고 다정한 남편과 좋은 집에서 살고 있던 그녀는 이제 매일밤 잠을 이루지 못한다. 도대체 이 책을 누가 쓴걸까, 그녀는 이 책을 쓴 사람에 대해 찾고 싶다. 이 책에 대한 후기를 검색해보는데 책의 홈페이지에도 아직 어떤 글도 없다. 그녀는 자신이 읽었음을, 자신이 이 책의 저자와 대화하고 싶어함을 책의 홈페이지에 적어둔다. 책을 읽는 두려움 그리고 숨겨왔던 그녀의 과거에 대한 부분적인 회상 들로 책은 진행된다. 그리고 짐작하다시피 책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책을 적은 저자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일 것이었다. 아니, 이것이 사실이라고 사람들에게 밝히기 위해 쓴 것일테다. 저자가 알고 있는 진실 혹은 진실이 아닌걸 안다 해도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캐서린에게 복수하고 싶었고 복수의 방식으로 책을 택했다. 그 복수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서서히 캐서린에게 더 가까이 접근한다. 책을 판매하는 서점을 늘리고 캐서린의 아들에게 접근하고 캐서린의 남편에게 접근한다. 그 책의 여주인공이 당신의 엄마라고 그리고 당신의 아내라고 말한다. 그 책의 장면을 부연할 수 있는 사진까지도 보여준다. 그녀가 빨간 비키니를 입고 찍은 사진, 그녀가 속옷만 입고 찍은 사진.



사실 처음부터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진실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숨기고자 햇던 비밀 그 안에 추악한 과거가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책에서 보여지는 그것이 사실은 아닐 것이라고. 그런데 그것이 책으로 나왔다. 아직은 캐서린만 완독했고 주변 몇 명만 읽은 책이지만,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이 책의 주인공에 대한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이미 마쳤을 것이다. 그녀에게 벌어진 일은 그녀가 한 일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그 여자를 손가락질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을 내팽개친 엄마, 젊은 남성과의 성적 욕망에 눈이 멀어버린 여자, 젊고 아깝고 미래가 창창한 잘생긴 젊은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여자. 책은 캐서린에 대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이미 '그런 여자'가 되어 있는 캐서린은 어떻게 자기를 변명할 수 있을까?



일방적으로 실존 인물에 대해 쓰여진 책이 어떻게 폭력적인지 이 책이 보여주고 있었다. 한 권의 책에서 만들어진 여자주인공, 그런데 그녀가 실제 주인공이었을 때, 책에서 부여한 성격은 이미 독자들이 읽고 이미 그녀의 성격으로 파악되었을 것이다. 이미 읽고 그녀에 대한 파악을 끝냈는데, 그런데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녀는 어디서 어떻게 자기 방어를 할 수 있을까. 그 방어는 얼마나 효과적일까? 그녀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받게된 책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고, 다른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라고, 그녀의 입장에서 그녀도 책을 써야 하는걸까? 아니면 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해야 할까? 여러분 아니에요, 그 이야기 속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라는 말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까. 이미 처음 들은 이야기에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판단을 한 사람들을 향해 어떤 얘기를 더한다한들 그것이 바뀔까? 그 책에서 그녀를 묘사한 그대로 사람들이 파악한다면, 그렇다면 이미 그녀가 그 후에 어떤 식으로 어떤 말을 한다 해도 이미 늦은건 아닐까? 설사 저자를 고소해서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며 그녀의 명예를 훼손했다 밝힌다 한들, 그녀의 명예가 다시 이전처럼 회복될까? 약자가 있는 곳에 발벗고 뛰어들어 현실 고발하는 다큐를 만들고 그 다큐로 상까지 받았던, 그 능력있는 여자로 그녀가 돌아갈 수 있을까? 한쪽의 일방적인 이야기는, 게다가 그 이야기가 이미 퍼져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되돌리기 힘들 것인가. 그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게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게 여성이라면, 그 여성에 대한 판단은 얼마나 쉽게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가.



책을 펼치고 나서 중간에 이르기까지는 몇 번이나 책을 덮을까 생각했다. 너무 심장이 쫄려가지고. 아 쫄려 아 쫄려.. 이러면서 그만 읽을까 햇지만, 그러나 나는 그녀의 이야기, 그녀의 진실이 궁금했다. 어느 순간 내가 짐작한 그녀의 진실이 맞아들어가는 걸 보게 되었는데, 사실 그 진실이 드러나는 것보다 다른 작은 메세지들이 더 좋았다. 나에게 이토록 다정하고 자상한 남편은 정말 나를 사랑하는걸까? 책상 서랍에서 포르노 잡지가 나온 어린 남자아이는 자라서 어떤 청년이 될까? 아들을 너무 사랑해서 아들의 허물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들을 위한 일일까? 책 한 권이 말하는 것이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면, 사진 역시 찍는 사람의 일방적 주장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진 리스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서 버사 부인의 입을 통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모든 일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는 거예요. 항상." -진 리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p.183, 펭귄클래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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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0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단이 끝나고 나면 그 판단을 바꾸려고하지 않는게 대부분인 것 같아요.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는데 그걸 인정하고싶지 않아서 자신의 오류를 들키기 싫어서 거부해버리는거죠. 그래야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일 수 있을테니까.
정호연이 애플tv 드라마에 나오는군요. <오징어 게임> 그 때 보았지만 역시 썩 유쾌한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 드라마였습니다.

다락방 2022-11-09 17:09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일단 저질러 버리는 신문 기사들도 진짜 문제가 큰 것 같아요. 잘못된 기사를 읽고나서 설사 정정보도를 해도 정정보도까지 읽는 사람은 그 수가 현저히 적어지니까요. 그렇게 잘못된 소문이 퍼지는구나 싶어요.
게다가 여성에 대한 평판이라면 금세 나쁘게 돌아설 수는 있어도 되돌리기는 쉽지 않죠.
저는 오징어게임이 이상하게 보고싶지가 않더라고요? 하핫;;

단발머리 2022-11-09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읽으시면서 내내 쫄려, 쫄려... 하셨다고 하니 전 읽을 수 없겠지만 내용 자체는 흥미롭네요. 그리고 결말도 좀 알고 싶고요.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으니까요. 바꾸는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드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고 있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누구든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오징어게임 안 본 사람, 여기 한 명 더 있습니다. 하하하.

다락방 2022-11-10 07:34   좋아요 1 | URL
캐서린은 책 속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로부터 가치판단을 받는 피해자라 볼 수 있을텐데요, 사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되는 거잖아요. 한쪽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구나, 하는 거요. 책이란 물건은 그렇게 하기 되게 좋은 수단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더라고요. 사진도 마찬가지고요. 여성이 속옷만 입고 찍은 사진이 존재한다면 사람들이 보는 건 ‘속옷입고 사진 찍히길 원한 여성‘이잖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 여성은 기대되는 역할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부정적인 평가를 너무 쉽게 받게 된다는 거였어요. 사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건 이런 지점이었을텐데, 저는 아무래도 책을 읽는 사람이다보니까 또 글을 쓰다 보니까 책이란 물건, 내 입밖으로 나간 말들의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글 조심해서 써야겠다, 쓰면서 생각에 생각을 해야겠다 다시 다짐했어요.

바람돌이 2022-11-0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동네 도서관에는 이 책이 있고요. ^^
저런 폭력성으로 입은 상처는 도대체 어떻게 치유가 가능하긴 할까요? 전 작년에도 불행하게 일어난 진짜 사고를 어떻게 이상한 방향으로 왜곡하면서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과정을 봤어요. 마지막까진 안가고 수습이 되긴 햇지만 아 이럴게 말도 안되는 희생양이 생기는구나싶더라구요.
그리고 오징어게임은 보면 볼수록 우울해집니다. 안보셔도 되어요. ㅎㅎ

다락방 2022-11-10 07:38   좋아요 0 | URL
저는 최근에 회사에서 누군가 말도 안되는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걸 보았거든요. 저는 사실 대부분의 어떤 사람들에 대한 소문에 대해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라는 생각이긴 햇었는데, 회사에서 억울한 일에 맞닥뜨린 동료 직원을 보니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세상에 이런 식으로 일어난 일들, 억울한 피해자가 얼마나 많을까 싶고요. 저는 그 직원을 알기 때문에 이것이 모함임을 알지만, 만약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봤다면 그 직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면 끔찍하더라고요.

<누군가는 알고 있다>는 책을 펼친 후 한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궁금해서 읽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흐흐..

프레이야 2022-11-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게는 안 보고 싶어 안 봤어요. 지금 파친코 보고 있는데 어여 끝내야겠네요 정호연 나오는 거 바로 보려면. 원작을 재빨리 읽으신 다락방님 ^^ 누구에게나 다른 면이 있는데 너무 쉽게 한 면만 보고 믿어버리는 ㅠ 사진도 글도 자기주장이고 일방적이라 경계가 필요한 것 같아요. 요즘 나오는 포털기사들은 그냥 다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싶고요.

다락방 2022-11-13 12:37   좋아요 1 | URL
정호연 나오는 드라마의 주연은 케이트 블란쳇 이라고 합니다.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에 원작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원작이 궁금해지고 그래서 일단 원작을 먼저 읽자, 하게 되지만 원작을 읽고 나면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흥미가 저는 뚝 떨어져 버리더라고요. 책으로 읽느니 다 되었다, 충분하다, 하는 느낌이 되어버려요.
이 책에서 글과 사진의 일방적임을 보여주는게 목적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제가 등장인물의 상황에 이입하다 보니 억울해지더라고요 그렇다면 이 억울함을 어떻게 해소하지? 라고 생각해봤을 때, 책으로 먼저 주인공을 공격한 행위에 맞설만큼의 반격은 생각나지 않고 말이지요.

저는 이제부터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좀 읽어볼까 합니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