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친애하는 알라디너님과도 대화를 나누었지만, 기존에 읽었던 책들도 지금 다시 읽으면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동화를 다시 읽을 때도 이제 페미니즘을 알기 전과 후가 다르고, 육식의 성정치를 읽고난 전과 후가 다르다. 친애하는 알라디너님은 《샬롯의 거미줄》을 예로 드셨는데, 나도 오래전에 그 책을 읽었던 바, 처음 문장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제기랄 ㅋㅋㅋ 유일하게 완독한 원서가 샬롯의 거미줄이라 원문을 가져올 수밖에 없네 ㅋㅋㅋㅋㅋ)




"You mean kill it? Just because it's smaller than the others?" (p.1)











여자 꼬마아이 '펀'은 다른 돼지들보다 더 작기 때문에 죽게될 운명에 처한 돼지 '윌버'를 구한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 2013년에는 이 부분에서 약자의 편에 서고자 하는 펀을 읽었고, 그리고 펀의 부르짖음이 윌버를 살렸다고만 이해했다. 그러나 페미니즘과 육식의 성정치를 읽는 지금의 저 문장은 그보다 더 큰것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특히나, 이런 문장들도.


"Kill you. Turn you into smoked bacon and ham." continued the old sheep. "Almost all young pigs get murdered by the farmer as soon as the real cold weather sets in. There's a regular conspiracy around here to kill you at Christmastime.(p.49)


늙은 양은 윌버에게 사람들은 너를 죽이고 너는 베이컨이 되고 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어린 돼지들의 운명이 그렇다고. 그러니까 한 존재가,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로부터 듣게 되는 것이다. '네 운명은 죽음을 당하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먹히는 것이지' 라고. 그 말을 듣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자신의 목적이나 용도에 맞게 살리고 죽이고 껍질을 벗겨내는 것은, 그러니까, 과연 정당한 일일까. 그래도 되는 일일까. 채식주의자들이, 동물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윤리적 채식을 권하는 캐럴 제이 애덤스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전부터 육식이 당연시 되어 왔는지도 우리 모두 알고 있고 캐럴 제이 애덤스도 알고 있다. 캐럴 제이 애덤스는 동물에게 생명을 주었으므로 그것을 거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기 이야기는 종교적 유형론, 곧 신의 탄생, 죽음, 부활의 형식을 따른다. 이런 신성한 이야기가 고기의 소비를 통해 성취되는 동물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세속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안내자 구실을 한다.

이야기는 동물의 탄생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육식이 동물의 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동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홀크로프트는 채식주의에 반대하면서 육식이 숱하게 많은 동물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주고 인간인 우리의 '평판'을 높여준다는 주장을 일간지에 싣는다. 홀크로프트의 이런 언급은 생명이란 동물에게 부여된다는 함의를 지닌다. 그리고 이런 생명을 부여하는 자비의 문제는 육식인들이 육식을 옹호하기 위해 가장 자주 되풀이하는 주장의 하나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두 가지 기원이 있다고 확신한다. 하나는 동물의 탄생이고, 다른 하나는 고기 이야기를 전통적인 이야기 전개 구조 속에, 그리고 호혜성이라는 문화적 기반에 가두어버리는 이야기의 발단이다. 호혜성이란 우리가 동물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추론하면서 이야기의 발단을 해걱한다. 고기 이야기가 개념화되는 방식은 그 이야기가 인간의 의지를 끊임없이 지시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우리는 동물들에게 실존을 허락하며, 우리는 동물이 우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믿기 시작한다. -p.192



내가 너에게 생명을 부여하였으므로 나는 그것을 다시 앗아갈 수도 있다는 호혜성에 대해 아침 출근길에 읽으면서 밑줄을 그었는데, 오, 나는 오늘 성경의 <출애굽기>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만난다.



출애굽기는 모세가 이스라엘인들을 데리고 애굽을 빠져나가는 이야기이다. 이때 애굽의 왕 바로는 모세가 이스라엘인을 이끌고 애굽을 나가는 것을 막았는데, 이 과정에서 여호와는 바로에게 힘을 보이고자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보이셨고, 마지막에는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실적에 히브리인(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는 집은 어린 양의 피로 문에 표시를 해두면 그 집에는 재앙 없이 지나가게 했던 거다. 이 일이 있은 뒤 모든 첫 태어나는 짐승들을 여호와에게 바치라 하고 이게 유월절의 시작이 된거다.


유월절은 유대의 최대 명절이다. 출애굽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신은 이집트가 히브리 노예들을 풀어주도록 하기 위해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린다. 마지막 재앙은 이집트에서 태어난 모든 첫 아이(가축도 포함된다)들의 죽음이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에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두면 밤에 신이 보낸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그냥 지나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유월절의 시작이다. 이 첫 유월절은 무교병(발효시키지 않은 빵)의 축제라고도 부르는데, 출애굽기 12장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히브리인들은 서둘러 이집트를 떠나야 했으므로 신은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발효된 빵이 아니라 발효시키지 않은 빵을 만들라고 명했다.

 

그렇게 의미가 깊고 중대한 날인데도 후대 사람들은 그 날짜를 잊었다. 모세의 수백 년 뒤에 요시야 왕은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했다(열왕기하 23:21~23). 그 뒤부터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충실히 지켰다. 유월절 축제 기간은 7~8일 정도다. 첫날밤에는 세데르라고 부르는 식사를 함께하면서 출애굽기 12장의 이야기를 읽는다. 이때 무교병을 먹는 게 전통이다.

 

예수의 시대에 독실한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신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보내고 싶어했다. 예수가 체포되고 처형된 때가 유월절 기간이었으므로 유대교의 유월절과 그리스도교의 부활절은 비슷한 시기다. 예수가 제자들과 가진 유명한 최후의 만찬은 바로 유월절 식사였다. 유월절 축제는 억압과 압제로부터 자유를 쟁취했음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을 지배하는 로마는 유월절 기간이 되면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예루살렘을 엄중히 감시했다. 그런 상황인지라 빌라도와 유대 사제들이 예수를 위험인물로 낙인찍을 수 있었다. 요한복음은 로마 총독이 매년 유월절을 맞아 유대인 죄수를 한 명씩 풀어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전한다. 다만 공교롭게도 군중은 예수가 아니라 정치 혁명가인 바라바의 이름을 외쳤다고 한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예수를 '신의 어린 양', '유월절 어린 양'이라고 불렀다(고린도전서 5:7). 그래서 유월절은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점차 중요성을 잃어갔다. 그들은 유월절보다 더 중요한 일, 즉 예수의 처형과 부활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월절 [Passover] (바이블 키워드, 2007. 12. 24., J. 스티븐 랭, 남경태)


위의 출애굽기에서 모든 처음 난것으로 여호와께 제사 드려야 한다니, 무릇 생명이란 태어나고 죽는 것이 운명이라 한들, 저때 처음난 것들의 운명은 제물로 바쳐지기 위함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애초에 그 생명을 준게 여호와가 아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육식의 성정치의 호혜성이 확 생각나버리는 거다. 생명을 주었으면 앗아가는 것 역시 마땅한것인가? 창세기에서 여호와는 이 모든 생물들을, 사람까지도 다 만들지 않았던가.



그러고보면 신이 준 생명을 다시 앗아가는 일은 창세기의 탄생과 출애굽기의 유월절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노아의 방주! 인간을 물로 심판하는 과정에서도 방주에 타지 않았던 모든 생명을 다 없애지 않았던가. 만든 것 자체가 신이었는데 심판하면서 생명을 쓸어가버린 것도 신이었다.





생명을 주었다고 해서 그것을 가져가면 안된다는 것 역시 인간이 하고 있는 생각이고 그러한 것들은 지금 캐럴 제이 애덤스가 주장하고 수많은 영화나 책에서도 다루어지지만, 애초에 천지가 창조된 시작부터의 이야기,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대체 어떤 메세지를 주는가, 를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면 그런식이 아닌가. 신이 인간을 만들고 그 인간을 돕고자 다른 인간을 만들고 인간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하고 그러나 그것을 어겼기에 벌을 주고, 그리고 그들이 악해지기에 싹 쓸어버리고,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다시 만들고 그 과정에서 그 생명들중 일부는 제물로 바치라 하고..


아아, 신이시여.. 저는 성경을 계속 읽어도 되겠습니까?

성경을 읽기 시작한지 지금 22일이 경과되었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말인즉, 그전에는 모르고 있었다는 거다. 이를테면 신이 남자들에게 할례를 요구했다는 것(자신이 만들어둔 생명의 생살을 왜 벗겨내라 한걸까? 만들고보니 그 부분이 불필요했나?), 야곱의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이라는 것(몰랐어요..),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바다를 가르고 애굽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출애굽기 라는 것들이 그렇다. 그외에도 모르는 것들이 수두룩하게 나오는데, 그러나 내가 그렇게 성경을 읽고 아는 게 늘어날수록 이렇게 꼬치꼬치 이건 왜그랬어? 저건 왜그랬는데? 하면서 빡치기만해.. 아아, 나여.. 내가 성경을 읽지 않는 편이 성경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던건 아닐까... 그러나 22일째까지 마쳤고, 시작한 이상 끝까지 간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읽는다.


동물화된 단백질의 필연적인 산물이자 그 전조는 우유나 달걀 같은 '여성화된 단백질'이다. 또 한 번 동물은 유제품 생산자로서 우리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된다. -p.169


어쩔 수 없이 '샬럿 퍼킨스 길먼'의 《허랜드》가 떠오른다. 진짜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고기는 물론이고 우유를 얻기 위해 소를 키우거든요. 소의 우유는 식단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음식이죠. 우유를 모아서 유통하는 사업의 규모도 상당하고요."

그녀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그린 소를 가리켰다. "농부들이 소의 젖을 짭니다." 그러고는 우유 통과 의자를 그리고 몸짓으로 소 젖을 짜는 모습을 재연해 보였다. "그러고 나면 우유 배달원이 도시로 가져와 운반하지요. 모두가 아침이면 집 앞에 놓인 우유를 받아볼 수 있답니다."

소멜이 진지하게 물었다. "소는 새끼가 없나요?" -《허랜드》, p.88



아, 나는 허랜드의 저 문장들을 읽다가 자지러질 정도로 좋았다. 나 역시 우유도 먹고 달걀도 먹는 사람이지만, 길먼이 지적하는 이야기에는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소는 새끼가 없나요? 소의 젖을 대체 왜 소의 새끼가 아닌 인간이 먹는가.. 길먼 천재님.. ㅠㅠ



그나저나 주말동안 책을 한 장도 안읽어서 ㅠㅠ 육식의 성정치도 아직 반이나 남았고, 그런데 책 사기를 멈추지는 않아서 정말이지 큰일이다.






위의 책들이 연말과 연초에 걸쳐서 도착한 책들이고, 그리고 오늘 또 샀지롱! 오늘 산 책들의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다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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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1-18 1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풍성한 책들이여~♡ 구매인증 사진만으로도 즐겁네요. 제가 요즘 유일하게 사치부리는게 책이예요.
성경을 읽다보면 현실과는 맞지않는 부분이 참 많은것 같아요. 반면 다락방님이 지적하신것처럼 ‘현실의 문제들‘의 원인을 보여주는 근거도 많구요.<육식의 성정치>다 읽은 뒤 리뷰가 정말 기대됩니다!

다락방 2021-01-18 15:00   좋아요 0 | URL
미미님, 저 아직 육식의 성정치를 반정도밖에 못읽었어요. 어쩌면 좋죠 ㅋㅋㅋㅋ 반정도 읽고 페이퍼를 세 번썼나, 네 번썼나, 이래가지고서는 다 읽어도 리뷰는 못쓰지 않을까 싶어요. 그나저나 책을 언제 다 읽나요. 요즘 책 왜이렇게 안읽히죠. 맨날 액션 영화만 보고 있어요. 우엉 ㅠㅠ
성경 읽고 이렇게 막 화내고 따지기만 하지만 그래도 성경 읽는거 재미있고 매일매일 뭔가 알게되는 것 같아서 씐나요! 계속 읽을겁니다. 훗.

청아 2021-01-18 15:06   좋아요 1 | URL
그래도 멋지심!ㅋㅋ
저도 요즘 읽기 느리고 이책저책 슬쩍슬쩍,새책또구매, 미드, 영화에 빠져살아요ㅋㅋㅋ

syo 2021-01-18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나라 출판계가 다락방님 덕분에 먹고 산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다락방 2021-01-18 15:00   좋아요 1 | URL
제가 책 사고 싶어서 사는 줄 알았죠? 다 출판계 분들 먹고 사시라고 사는거에요. 자비의 마음, 하해와 같은 마음인것입니다. 제가 하는 행동에 의미가 없는 건 없답니다. 샤라라랑~

blanca 2021-01-18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어제 책 주문하려다 몇 번이나 결제 직전에 안 했다 오늘 또 다시 고심하다 결국 결제 버튼 누른 나로서는 너무 부러운 상황인데요.^^ 그런데 <만들어진 신> 저 두께 충격적이젠요. <니클의 소년들>도 궁금하고요. 그런데. 저 컵과 트레이는 헉 사은품인가요? 오, 다락방님 성경 읽기 꾸준히 진행되고 있군요! 역사서 같아요.

다락방 2021-01-18 15:02   좋아요 1 | URL
만들어진 신처럼 두꺼운 책들을 잔뜩 사서 쟁여두고 있는데 대체 언제 읽을까요, 저는? 그만 사야되는데..

네, 컵과 트레이 알라딘 굿즈였고요, 초록색 하얀색 검정색 있었거든요. 검정색도 마저 받아야지 했는데 그 사이에 없어져버렸어요. 아놔... 결국 갖춘건 두가지 뿐이네요. 저거 예쁘고 좋아요. 좀 무겁지만...

성경 읽기는 재미있어요, 블랑카님. 새로 알게되는게 생겨서 너무 좋아요. 나의 신앙과 상관없이 성경은 읽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후훗.

han22598 2021-01-22 0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밌게 성경 읽으시네요. ^^ 저는 크리스챤이지만 다락방이 던지신 여러가지 질문들과 비슷한 질문들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의심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ㅎㅎ

[육식의 성정치] 아직 손톱 두께만큼도 안 읽어서 열심을 내야 하지만, 리뷰만으로 재밌어요 ^^

다락방 2021-01-21 07:55   좋아요 1 | URL
오늘도 오늘치의 성경을 읽었습니다, 한님. 성경 읽기는 재미있어요. 불완전한 인간들이 성경 안에 그대로 녹아있달까요. 성경을 읽으면서 저는 신도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완전한 존재란 세상에 없는거구나, 하고요.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을 읽으며 질문을 던지는게 당연하고 자연스럽지만, 한님은 크리스챤이라 하시면 그 의문들이 조금 더 힘드시진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일전에 윤김지영 선생님 강의를 들을 때, 본인은 천주교이신데 왜 여자만 미사보를 써야 하냐는 질문에 ‘원래 그런거다‘란 답을 듣고 철학을 공부하기로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그렇다는 답이 답이 아니라고, 왜 그런지 찾아보고 싶어서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이왕 철학을 공부할거라면 프랑스로 가자, 해서 프랑스에서 철학을 공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무엇이 됐든 의문을 던지는 건 저 역시 옳다고 생각합니다. 복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계속 의문을 던져야만 결국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육식의 성정치 열심히 읽고 있는데 요즘 너무 일이 많아 집에 가면 피곤해서 몇 장 읽지 못해요. 덕분에 아직도 다 못읽고 있네요. 시작한지가 언젠데 ㅠㅠ

han22598 2021-01-22 05:12   좋아요 0 | URL
의심없는 신앙생활은 좀더 신과 가까워질 수 있는 나이인 어릴때 빼고는 ...현재까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의심이란 다른 말로 이야기 하면 ˝질문하기˝˝신과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히려 의심이 들기 시작한 사춘기 시절부터, 의심이 오히려 불신앙과 믿음없음과 관련짓는 소위 ˝믿음의 꼰대˝들 때문에 저는 오히려 힘들었답니다. 관계와 세상이 열리기 전까지는 그런 믿음의 꼰대들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저와 비슷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수많은 영성가(철학자)들의 수련은 결국 질문에서터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죠. 이세상에는 신이외에는 ˝원래 그런거다˝라도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끈임없이 ˝원래 그런거다˝를 거스르는 질문을 통해서 신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증법?)

아무튼, 다락방님의 성경읽기는 제가 아주 쭈욱 즐겨 읽을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