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책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타입이었는데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시작한 뒤로는 두 권이나 세 권을 동시에 읽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땜시롱... 기한 내에 같이 읽기 도서를 읽어야 하는데 내가 또 내가 읽고 싶은 책을 포기를 못하다보니, 이것 읽다가 저것 읽다가 하게된 것. 11,12월 도서 푸코는 어려워서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만 읽고 퇴근길이나 집에서 잠자기 전에는 소설을 읽는다. 무슨말이냐면, 아직 '알베르 꼬엔'의 《주군의 여인》을 다 읽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책은 갈수록 더 재미있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지만 그렇다고 또 예샹과 다른게 아닌 이야기는, 그렇다, 쏠랄과 아리안의 사랑이 결실을 이루어 두 사람이 함께 도망가 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흘러가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남녀가 세상을 등지고 도망가는 것은 짐작할만한 일이고, 그러나 그 사랑이 식어가는 것도 짐작할 만한 일이지만, 그러나 아아 이들의 사랑을 이제 어쩌나, 하고 안타깝게 바라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서로가 서로밖에 없었으므로.


자, 그러니까 아리안은 남편인 됨을 버리고 쏠랄과 도망갔다. 쏠랄은 아아,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사랑으로 아리안과 도망쳤으나, 공교롭게도 국적과 직업을 잃었다. 국적과 직업은 불륜 때문에 잃게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왔고,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하면, 쏠랄과 아리안이 하루종일 서로와 붙어 있어야만 함을 뜻한다. 도망쳐서 호텔에 각자 방을 잡았지만, 그들은 일단 뜨겁게 사랑했던 만큼 하루종일 붙어있고 매일 섹스하고 사랑을 속삭인다. 사랑하고 섹스하고 밥먹고... 가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들이 서로를 사랑했기에 이걸 원했고, 그래서 얼마간은 이 생활에 크게 만족한다. 아름다운 생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곳 아게(지중해 꼬뜨다쥐르 지역에 위치한 해수욕장)의 호텔에 머무는 동안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을 생각했고, 실로 놀라울 만큼 자주 하나가 되었고, 그러지 않을 대는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자 했고, 자기 얘기를 들려주고자 했다. 매일 비슷한 밤, 달콤한 피로감, 매혹적인 휴식. 그녀는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혹은 유혹하려고 그의 벗은 어깨 위로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고, 그는 눈을 감고 희열감으로 미소 지었다. 그들은 중요한 일을 해낸 피로를 두 몸이 얽힌 채로 달랬고, 다정하게 소곤거리다가 잠이 들었고, 불현듯 눈이 떠지면 다시 두 입술이 닿았고, 혹은 두 몸이 더 밀착되었고, 혹은 비몽사몽간에 다시 하나가 되었고, 혹은 한순간 가뿐하게 깨어나 격렬하게 서로를 탐했다. 그런 다음에는 다시 더없이 달콤한 잠, 공생共生의 잠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함께 잠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새벽이면 그는 그녀를 깨우지 않기 위해 살며시 일어나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눈을 뜬 그녀가 잡을 때도 있었다. 가지 말아요,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는 주저하는 그녀의 손을 떼어내며 걱정하지 말라고, 곧 오겠다고 했다. 그가 아침마다 그렇게 자기 방으로 간 것은 완벽하지 못한, 그러니까 면도도 목욕도 안한 상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녀가 씻으러 들어갈 때 제일 처음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 변기 물이 내려가는 불길한 소리를 듣는 순간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p.304)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이상적인 공간적, 시간적 배경이 아닌가. 지중해 해수욕장의 호텔에 각자 방을 잡고(돈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만큼 두 몸이 얽혀 함께 잠들고, 그러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거나 몸단장을 하기 위해 각자의 방에 혼자 머무는 시간도 갖다니. 그야말로 돈 있고 사랑 있고 체력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마도 많은 연인들은 이런 시간을 꿈꾸어 볼것이다. 아아 이 얼마나 황홀하고 아름답고 뜨겁고 여유로운 시간들이란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당신과 지중해 해수욕장 호텔에서 세상 걱정 없이 드러누워 엎어치고 메치고 앞구르기하고 뒷구르기 할 수있다면 세상에 더 바랄게 무어란 말인가. 게다가 이들 사이에는 어떠한 가사 노동도 없다. 룸서비스 시켜 먹거나 나가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사먹거나 하면 돼. 세상 한량 아닌가. 이 얼마나 완벽하고 이상적인 환경이란 말인가.



'이도우'의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서 주인공 공진솔의 로망은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인적 없는 곳에 고립되는 것이었다. 서울을 벗어난 외곽에 집을 마련하고 글 쓰며 조용히 지내다가, 헤어진 이건 이 그녀를 찾아왔는데, 마침 폭설로 고립되는 상황이 그들에게 찾아온다.


"그럼 오늘 집에 가서 준비 좀 해야 할 텐데."

"글쎄. 하지만 이 지경인데 갈 수가 없잖아요."

시큰둥한 건의 표정에 진솔은 씨익 웃어 보였다.

"사실은 가고 싶지 않구나? 내가 너무 좋아서."

건이 고개를 젖히며 하하거렸다. 하지만 진솔이 짐짓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부들부들 물결치자 건은 당황해서 안색이 달라졌다.

"어, 왜 그래요? 내가 웃어서 화났어요? 그거 비웃은 거 아닌데. 당신 귀여워서."

고개를 드는 진솔의 얼굴에 웃음이 넘쳤다. 그녀는 두 팔을 치켜올려 와락 그의 목을 끌어안아 버렸다.

"드디어 고립됐다! 폭설에 좋은 사람하고!"

잠시 얼떨떨하던 건은 곧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구판, 401)





사랑하는 사람과 고립되는 것이 진솔의 로망이었고, 그것이 실현되었으니 공진솔은 너무 기쁘다. 이 어쩔 수 없는 고립으로 공진솔은 꼬박 이건과 하루를 같이 보내야한다.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단둘만 있게 된거다. 로망이었던 만큼 이렇게 닥친 '고립'이란 현실이 그녀에게 너무나 기쁘지만, 그러나 그것이 로망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기쁠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이 고립과 후에 그들이 각자 있는 시간과 또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세상과 섞여들고 서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 고립은 의미있고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이 세상에서 나와 너만 있는것이, 언제 세상으로 돌아갈 줄도 모르는채로 나와 너만 있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쏠랄과 아리안에게도 고통의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들에게는 서로밖에 없었다. 호텔에서 단둘이 지내는 동안 당연히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고 사랑이 충만했지만, 그들은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싶다. 아리안은 다른 객실에 묵던 사람과 안면을 트고 다음날 함께 테니스를 치기로 하지만,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받는다. 아리안과 테니스를 치고자 했던 부부들은 쏠랄과 아리안이 불륜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쏠랄이 예전에는 국제연맹의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지금은 프랑스의 국적을 박탈당하고 그 직업조차 잃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과는 어울릴 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이 커플을 자신들과의 관계에 끼워넣지 않는다. 이건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쏠랄과 아리안은 처음에 그들 자신의 의지로 둘만 있기를 선택했으나, 시간이 가면서는 세상에 섞이고 싶어도 그게 되질 않는다. 그들은 세상은 필요없다 우리에겐 서로면 된다, 고 말하지만 그러나 이들은 알게모르게 서로에게 지친다. 어떻게 해야 이 관계가 지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상처받지 않을까, 그들은 함께 음악도 들어보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부러 싸워보기도 하고 아픈척도 해보지만, 이 관계는 지치고 지쳐버리고 만다. 다만 쏠랄은 그걸 알고 느끼고 있었고 아리안은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었다는 차이가 그들에게 있었을 뿐.



어차피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그들은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아리안이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던 곳에 집을 사서 쏠랄과 아리안은 이제 호텔이 아닌 곳에서, 그야말로 집이라 부르는 곳에서 거주하기로 한다. 집을 자신들이 살기 좋게 수선하고 그곳에서 부부처럼 사는 거다. 그건 아리안의 꿈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꿈의 집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다정하게 사는 것. 아리안은 자신을 어릴 때부터 보아주던 하녀 마리에뜨를 부른다. 마리에뜨는 이 집에서 아리안의 살림을 돕게 된다.




그놈의 벨 소리 때문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고 아주 돌아버릴 것 같다니까. 정말이지 그 집에서 그니까 사랑의 인형들이 사는 데서 계속 살다가는 돌아버릴 것 같아, 무슨 연극 무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처럼 공들여 단장을 해야만 얼굴을 볼 수 있다니, 하물며 매번 다른 벨 소리가 나느데 하나하나 무슨 뜻인지 마담이 두꺼운 종이에 다 써줍디다 저기 저 꼴 보기 싫은 전기레인지 위에 붙여놨잖우, 짧게 세번 길게 한번, 길게 세번 짧게 한번, 길게 두번, 길게 한번, 짧게 두번, 저렇게 구분을 해놓으면 편하다고 생각하나본데 아이고 젊을 대라면 모를까 저걸 어쩌라구, 거기다 나한테 울리는 것 말고 자기들끼리 연락하는 것도 따로 있다우, 그니까 둘이 연락하는 건데 난 날 불르는 줄 알 대도 있고 그래서 무슨 일인지 달려가보면 날 찾은 게 아니고, 또 어떤 건 그놈의 왕자님이 마담더러 얘기 좀 하자고 불르는 건데 세상에나 그것도 문 앞에 서서 얘기하자고 벨을 눌러 불른다니까, 어떨 땐 마담이 방 밖에 나가고 싶은데 아직 단장을 다 안했으니까 보지 말라고 말할라고 눌르고 그 양반이 알았다고 눌르고 또 그 양반이 거실에 책 꺼내러 가야 하는데 아직 보여줄 만한 상태가 아니니까 이건 둘이 맨날 쓰는 말이라우 아직 면도를 안했다는 뜻이지 그니까 마담더러 방으로 들어가라고 눌르고 그러면 또 알았다고 방으로 들어간다고 눌르고 그런 다음엔 그 양반이 이제 방에 들어와서 어차피 볼 수 없으니까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더라도 마음 놓고 돌아다니라고 눌르고, 정말 난 매번 깜짝 놀란다우 처음엔 어찌나 겁이 나던지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니까, 세상에 그게 뭐야 전기 유령 들이 사는 집도 아니고 그래도 이젠 많이 익숙해졌다우 웃음도 나오는 걸 뭐, 둘이서야 벨을 눌러대든 말든 난 부엌에서 혼자 폴카를 춘다우, 꼭 벨 만드는 공장에 와 있는 것 같아 공장에서 만든 벨이 잘되는지 계속 눌러보는 거지, 그 양반이 산책 나갔다 들어올 때 눌르는 벨도 있다우 그래 잘생기긴 했지 정말 잘생겼다우 아무튼 그 양반이 현관문에서 네번 눌르는 건 마담더러 혹시 아직 단장을 못 끝냈으면 빨리 숨으라는 소리고, 또 어떨 땐 마담이 문 앞에서 그니까 그 양반 방문 앞에서 얘기 좀 하자고 아직 충분히 아름답지 못하니까 얼굴은 보지 말고 얘기만 하자고 눌르고 그 양반이 좋다고 그러자고 눌르고, 아이고 세상에 그럼 그 양반은 점심 먹을 때까지 사랑의 포로가 돼서 방 안에서 못 나오고 그동안 마담은 무슨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입는 것 같은 흰옷을 걸치고 나한테 이런 거 저런 거 시켜댄다우, 난 절대로 병원에서 죽을 생각이 없는데 다들 고약하고 아픈 사람한텣ㄴ 관심도 없고 자기들이 잘난 줄 알지 지들은 안 아프니까, 아이구야 좀 기달려보라지 조금 있으면 차례가 올테니까, 참 마담은 어떨 땐 마스크라고 부르는 걸 얼굴에 뒤집어쓴다우 예뻐지는 거라는데 그러고 조용히 집 안을 돌아다니니 참 (…) (P.441)



아 미친겠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이 부분에서 너무 웃겨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그러니까 발가벗고 사랑을 나누는 사이이고, 매일 나누는 사이이지만, 그러나 서로의 꾸미지 않은 모습은 보이지도 않으려 하고 생리적 현상의 소리도 절대 들려줘서는 안되는 거다. 하물며 아리안은 화장실이 고장나서 고쳤다는 말조차도 쏠랄 앞에서는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고. 그런데 이렇게 계속 어떻게 살아. 처음에야 서로에게 나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혹여라도 초라할지도 모를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이럴 수 있다지만, 이들이 이 집에서만 같이 산 것도 일년이 되었다. 그러니 지치지 왜 안지치나. 게다가 세상과의 교류도 끊겼단 말이야. 새로운 음반을 사서 듣고, 새로운 책을 아무리 읽고 대화를 시도해도, 이 집안에 너와 나 단둘 뿐이고 이것이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면, 아아 이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더 유지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이 서로 사랑을 어쩌지 못해 함께 도망치기로 결정하기 전에, 그 때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저절로 애가 써졌다. 왜냐하면 쏠랄과 아리안이 서로 만날 시간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었고, 그 만남의 전과 후에는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쏠랄도 직장에 다녔었고 거기서 상사와 부하직원을 만나야 했다. 그외에 사교계에도 얼굴을 비춰야 했고. 아리안 역시 마찬가지. 집에 남편이 있었고 시부모가 있었다. 옷가게에 가서 옷도 맞춰야 했다. 남편이 함께 하자고 하면 이웃의 초대에도 응해야 했고, 또 그들이 이웃을 초대해 관계를 이어가고 새로 만들어 나가기도 했다. 그런 일들 자체를 아리안이 즐겼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살아가면서 그녀는 그런 일들을 겪어내야 했다. 그런 과정들 속에 찾아온 잘생긴 쏠랄과의 사랑은 한줄기 빛이었고 이 삶을 더 살아갈 이유였다. 쏠랄이 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몸단장을 하고 기대하며 설레이는 건, 삶의 동력이었다. 삶의 축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에너지가 되고 축이 되는 시간을 계속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쏠랄과 도망쳐버리는 것이다. 다른 제약 일절 없이 우리의 사랑 고고씽!!! 그러나 그 사랑이 고고씽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회적 관계가 필요했다는 것을, 그들은 그 때 미처 몰랐던 것이다. 아, 슬픔이여, 아 연인이여, 아 사랑이여.....



















영화 《어드리프트》에는 여행과 항해를 즐기는 여자가 항해를 즐기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너랑 내가 서로를 사랑하고 또 우리가 함께 항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우리가 함께, 둘이서만, 배를 타고 저 넓은 바다로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그 일을 계획한다. 그러나 자기들의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한 미국 부부의 부탁으로, 미국 부부의 배를 집까지 가져다 주기로 한다. 그렇게 그들은 호화로운 배에 단 둘이 탄다. 그 항해는 아마도 한달 이상 계속될 예정이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바다를 사랑했고 항해를 사랑했으니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바라던 바의 시간이 그들 앞에 놓인 것일테다. 이야기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들은 큰 파도를 만나 위험에 처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니다. 그들이 단둘이서만 바다에 있는 그 오랜 시간, 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항해를, 바다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나라면 선택하지 않겠노라 장담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무리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과 단둘이서만 고립되고 싶지는 않다. 일전에 저 어드리프트 페이퍼에도 썼는데, 나는 반드시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과 단 둘이 고립되기' 보다는 '당신 없이 세상에 섞이기'를 선택할 사람이다. 나는 여기에 어떤 고민도 없다. 물론 당신과의 고립은 한정적인 얼마간이라는 단서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선택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섞이는 시간이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걸 내가 아는 한에서라면, 당신과의 고립을 기꺼이 받아들일것이다. 쏠랄과 아리안처럼 호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둘이 서로 얼굴만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몸을 뒤섞고 서로의 몸에 자국을 내는 일을 기꺼이 할 것이다. 물론, 이 며칠간도 나는 사실 24시간 붙어있기 보다는 따로 떨어져있는 시간이 확보되기를 강하게 원하지만. 실제로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나는 혼자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고 오곤 했다. 거리는 어떤지, 날씨는 어떤지, 그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내게는 반드시, 반드시 필요했다. 혼자인 시간이 그리고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있는 시간이 내게는 필요했다.




나는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하다. 당신과 함께가 아닌 시간이.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이나 당신과 함께가 아닌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당신이 필요한 만큼이나 당신이 아닌 사람이 필요하다.



요 며칠간 계속 우울했는데, 어제는 누군가의 알라딘 댓글을 보고 웃었다. 일곱번째 파도를 내 음성으로 오디오북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 이 별거 아닌,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누군가의 댓글이 어젯밤 나를 웃게 했다. 나는 이런 게 필요하다. 갑자기 만나서 보리고추장을 안겨주는 사람이, 나는 필요하다. 혼자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고 밥을 먹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배우의 신작이 개봉하니 같이 보자고 말하는 사람과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으앗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함께 기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는 필요하다. 커피를 주문하러 까페에 들르고 아무런 사적인 질문 없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건네주는 사람이 내게는 필요하다. 자주 가는 레스토랑에서 늘 마시던 와인으로 드릴까요, 라고 말하는 레스토랑 직원이 나는 필요하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뒷자리에 고양이 탈 건데 괜찮으실까요?' 라고 물어주는 직원이 나는 필요하다. 말레이시아에 갈거야, 라고 했을 때 그래 같이 가자,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혼자서 뉴욕을 걷는 시간이 필요하고 휘트니 미술관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비가 오는 뉴욕의 풍경을 보는 시간이 내게는 필요하다. 아무도 없는 까페로 훌쩍 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하고, 거기서 책을 펼쳐놓고 혼자 가만히 읽는 시간이 내게는 필요하다. 이 음악 너무 좋아 니가 좋아할 것 같아, 하고 전송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네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왔네, 라는 신간 소식을 알려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데도 네 글이 위로가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언젠가 너를 한 번 만나고 싶어, 너랑 친해지고 싶어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만든 잡채를 먹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우리집에 올래 물었을 때 응 갈게 대답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드라이한 와인은 어떤건가요 물었을 때 이거 어떨까요 묻는 직원이 나는 필요하고,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인스턴트 식품을 잔뜩 사와 안주로 차려두는 시간이 필요하고 창 밖을 열어 바람을 온전히 혼자 맞는 시간도 필요하다. 걸으면서 낙엽을 밟는 시간도 필요하고 이른 새벽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시간도 내게 필요하다. 시끌벅적하게 여러명이 만나서 수다를 떠는 시간도 필요하고 내가 구운 고기를 맛있게 먹는 내 앞의 친구도 필요하다. 기차 옆자리에 앉는 낯선 사람이 필요하고, 친하지는 않지만 익숙한 얼굴들도 필요하다. 돈을 버는 시간과 책을 읽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걸 함께 나눌 사람들도 있었으면 좋겠다. 친절함과 우정을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베풀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직장 동료가, 친구가, 지인이, 낯선 사람이 필요하고 나 역시 그런 사람으로 존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연인만큼이나 이런 시간과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런게 전혀 없이 연인만 있다고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턱 막혀오는 것이다....




아아, 서로밖에 없는 쏠랄과 아리안은 이제 어떻게 될것인가...........그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고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 수도 없고, 매일 몸을 뒤섞는 것도 힘겹다.....................아 쏠랄과 아리안이여.......................세상이 필요한거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계속 그렇게 둘만 있는 세상에서 둘만으로 살 순 없어!!!



휴우-




오늘은 오랜만에 출근길에 음악을 들었다. 갑자기 듣고 싶어서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계속 틀어두고 사무실 환기를 시키고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내렸다. 혼자였다. 매우 좋았고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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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1-24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아름다운 소설에서의 돈, 사랑, 체력의 삼각형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네요. 콩깍지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얇고, 저도 고립에는 반대인 편이라서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부산 바다 말고는 바다도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해요^^

다락방 2020-11-24 13:54   좋아요 0 | URL
한집에 계속 자기들 둘만 사는데 그러면서도 또 행동에 제약이 있어요. 발가벗고 끌어안는 사이지만 면도 안하면 볼 수 없고 화장 안하면 볼 수 없는 사이라니.... 아, 너무 답답해서 그런데 정말 행복한 거 맞냐고 물어보고 싶어져요. 물론 행복은 저마다의 것이지만 말입니다... 답답한 것... 저도 이 이야기가 결국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해요. 쏠랄이 국적도 직업도 잃고 이 사랑에도 너무 힘이 들어가니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 걱정됩니다 ㅠㅠ

잠자냥 2020-11-2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 클스마스 선물로 보리고추장 한다발?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1-24 13:55   좋아요 0 | URL
선물 중의 최고는 먹을 거 선물이 아닙니까? 물론 먹을거라고 다 좋은 건 아니고 와인이나 고추장이나 초콜렛 같은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취향이 확실한 사람입니다.

단발머리 2020-11-24 13:58   좋아요 0 | URL
와인이랑 초콜렛 사이에 고추장 들어가기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보리고추장이라니요. (물론 저도 보리고추장 마니아이긴 하지만요) 취향이 역시 확실하십니다!!

다락방 2020-11-24 14:06   좋아요 0 | URL
완벽한 선물 삼종셋트 아닙니까? 와인, 고추장, 초콜렛... 샤라라랑 ♡
이렇게 선물셋트 구상해서 한 번 팔아봐야겠어요. 일명 다락방 기획 크리스마스 선물 삼종셋트!!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11-24 14:15   좋아요 0 | URL
그거 추진해보시지요. 다락방님 손글씨 카드도 넣고요 앗! 다락방 추천 도서도 넣고요?!?! 어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고추장은 꼭 보리고추장이어야 하구요!!

다락방 2020-11-24 14:24   좋아요 0 | URL
그러면... 너무 고가의 선물셋트가 되겠는데요? 저는 서민프렌들리 기프트셋트를 만들어야 할텐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인을 저려미로 넣을까요? 9,900원... 그러면 4만원대로 셋트가 완성될듯 한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11-24 15:10   좋아요 0 | URL
알라딘 셀럽의 대명사 다락방의 특별한정판 선물
<다락방 기획 크리스마스 선물 삼종셋트>
와인, 보리고추장, 초콜렛과 다락방의 손글씨 카드 그리고 추천도서제목을 받아볼수 있는 절호의 찰스!
코로나로 지친 당신에게 찾아온 차가운 도시 여자의 따뜻한 위로! 놓치지 마세요!!

다락방 2020-11-24 15:12   좋아요 0 | URL
대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단발머리님 천잰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님 이참에 우리 진짜 둘이 머리 맞대고 뭔가 팔아볼까요? 어쩐지 재벌될것 같으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11-24 15:35   좋아요 0 | URL
재벌되면 나 한 몫 줘야돼요ㅋㅋㅋㅋㅋㅋㅋ 플리즈! 거기에 스페인 엽서도 한 장 넣을까요? 참! 그 레시피도 넣자구요! 다락방 카레레시피랑 치아바타 레시피!
어떻게 해요? 우리 할 일 너무 많으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11-24 15:38   좋아요 1 | URL
아 뭐야 증말 재벌되는 거 아니에요? 다락방 님 우리 친하게 지내요.
얼마전에 조지 클루니가 친구 14명한테 10억씩 줬다던데 ㅋㅋㅋㅋㅋ
친하게 지내요. 다락방 님~~~~~

단발머리 2020-11-24 15:39   좋아요 0 | URL
저두요 저두요! 저 원래 다락방님이랑 친해요! 잠자냥님도 재벌되실 분이시니까요! 잠자냥님! 저하고 친하게 지내요~~~~~~~!!!

다락방 2020-11-24 15:40   좋아요 0 | URL
아니 여러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재벌되기 전에 이미 지분 확보하시는 겁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역시 돈은 있어야 되는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11-24 15:41   좋아요 1 | URL
14명 안에만 들면 된대요! 저랑 잠자냥님이랑 일단 2명 찼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11-24 15:52   좋아요 0 | URL
아 나 언제 14억 받는 거예요? 아.... 너무 행복하다 흐흫

다락방 2020-11-24 16:06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 14억이 아니라 10억 입니다.
그리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곧 올겁니다, 그날이.. 제가 재벌로 재탄생 하는 날이. 곧 옵니다. 기다리면 옵니다!!

단발머리 2020-11-24 16:17   좋아요 0 | URL
나는 10억으로 뭐할까요? 아... 생각만해도 너무 설레네요 ㅎㅎㅎㅎㅎ 계좌번호는 비댓으로 달아야되는 거죠?

다락방 2020-11-24 16:27   좋아요 0 | URL
계좌번호는 제가 재벌된 후에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그때까진 잠시 넣어두시면 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0-11-24 23:55   좋아요 0 | URL
글이 제일 재밌는줄 알고 크게 웃었는데 댓글이 더 재밌어서 더 크게 웃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는 좀 작게 윳어두는건데....

다락방 2020-11-25 07:59   좋아요 0 | URL
책 인용중에 벨 눌르는 거 너무 웃기지 않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어젯밤에 읽은 부분은 쏠랄의 유대인 정체성에 대한 고통 나와서 슬펐다........ 아 소설이란 너무 좋은 것이야 ♡

2020-11-24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4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4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4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4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0-11-24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다락방님 저 오늘 점심메뉴가 대추 고추장 넣은 비빔밥 ㅋㅋㅋㅋ
내일 점심은 보리 고추장넣은 비빔밥 먹으러 가야겠어요. ㅎㅎ
학생때 그렇게 자주 갔던 카페는 아닌데 일단 그곳에 가면 제가 시키는 메뉴가 있었어요.
비엔나 커피+티라미수

어느날 친구들 여럿이서 우르르 몰려 갔는데 직원이 제얼굴을 보자마자 비엔나+ 티라미수 살포시 놓고 갔어요.

다락방님 한테는 보리고추장 건네줘야쥥 ㅋㅋㅋ^*^

다락방 2020-11-25 07:51   좋아요 1 | URL
저는 보리고추장이 있다는 것도 얼마전에 알았는데 뭐라고요? 대추 고추장이라고요? 맙소사.. 세상은 다양한 고추장으로 가득하군요!! >.<
그나저나 고추장 넣은 비빔밥 정말 맛있지 않습니까? 고추장도 넣고 나물도 넣고 슥슥 비벼서 한입 가득 넣고 먹으면 지상낙원이죠. 만세!!

스콧님 말씀하신 비엔나 티라미수 조합은 올리브가 말한 그거 잖아요, 작은 기쁨! 내 취향을 알아주는 도넛 가게 직원!!!!!

보리고추장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