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충실하거나 충실하지 않았을 때에도, 언제나 사랑에 빠져 있는" 남자. 이 고백을 남겼을 당시 아렌트는 쉰네 살이었고 하이데거는 일흔을 넘긴 나이였다. (p.11)

















나는 이 사랑의 당사자가 아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그들의 사랑을 이렇게 간접적으로나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다. 독자이자 관찰자로서의 나는 하이데거가 너무 밉고 짜증난다. 이미 부인과 아들 둘이 있으면서 어린 제자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지점부터가 싫다. 게다가 한나 아렌트가 매우 영민한 학생이었다는 것도 싫다. 하이데거는 그렇게 어린 나이의 상대가 자신과 대화할 수 있음을 즐겼다. 자신의 가르침을 흡수하고 또 거기에서 확장되는 사유를 할 수 있는 학생.

애시당초 열일곱살이나 어린 학생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고백까지 할 수 있는 그 지점이 정말 역겹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아렌트와의 관계를 놓고 싶지 않고 자신의 아내와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랐던 것도 싫다. 그 무딘 감성이 싫고 이기적인 감성이 싫다. 아렌트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잘못된 말들을 했을 때, 그것이 그의 아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아내가 악처이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나 변질된 거라고. 그러나 그의 아내는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을 존경하고 신뢰했다. 하이데거는 그러므로 아내를 잃을 수도 없었다. 아내가 있어야 자신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서, 그러면서 동시에 아렌트를 잃고 싶지 않으니, 그 둘이 사이좋게 지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거다.

아내 엘프리데와 연인 아렌트는 그렇게 만나고 서로를 질투하는 가운데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어느 시점부터는 제자인 한나 아렌트가 스승인 하이데거를 뛰어넘었다. 아렌트의 책이 세계 각국에 번역되어가는 것에 몹시 질투한 하이데거지만, 그러나 유명한 한나 아렌트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바꿔가고자 시도한다. 나치의 편을 들었던 자신에 대한 변명을 한나 아렌트를 대신해 시켰던 셈. 독자이자 관찰자인 나로서는 '그딴말 들어주지 말고 네 앞길을 가!'라고 하고 싶지만, 몇 번이나 부르짖게 되지만, 나는 한나 아렌트가 아니고 이 사랑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가슴을 칠 뿐이다.



이렇게 관찰자이자 독자인 내가 아무리 화를 내고 억울해해봤자, 당사자인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만난 순간부터 눈감을 때까지 하이데거를 사랑했다. 그간 읽어온 한나 아렌트에 관한 책들을 통해 한나 아렌트가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엄마는 어린 한나에게 다정한 사람도 아니었고 신경써주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아버지는 한나 아렌트가 어린 시절부터 매독을 앓다 사망했다. 이 책의 저자 '엘즈비에타 에팅거'도 한나에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없었음이 하이데거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언급하는데,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고, 그래서 더 짜증난다. 하이데거가 한나 아렌트의 약점을 너무나 제대로 짚고 접근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그게 너무 화가 난다.



한나 아렌트는 자신도 다른 사랑을 해보고자 해서 결혼하지만 그 결혼은 얼마 못가 끝난다. 그렇지만 그 뒤에는 영혼의 안식처이자 동반자인 블뤼허를 만난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블뤼허는 하이데거를 세계 제일가는 철학자로 확신하기 때문에 아렌트와 하이데거가 만나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 알면서도 아렌트가 하이데거의 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깊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까지, 그러니까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블뤼허는 하이데거를 좋아했다. 블뤼허가 하이데거를 싫어했다면, 자신의 아내에게 그렇게나 믿고 의지하는 남사친이 있다는 걸 싫어했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됐든 아렌트에게 하이데거는 일생의 사랑이었다. 부재속에서도 존재했던 사람. 잘못을 했다면 기꺼이 용서받아야 할 사람.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인 사람. 얼마나 사랑했으면 부인과 함께 만나는 것도 받아들이고, 유대인을 혐오하는 것도 받아들이고, 자신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토록이나 아렌트에게 하이데거는 진실한 사랑이었고 강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의 당사자인 아렌트가 그 사랑을 오래 유지하고 또 잊지 않는데, 독자이자 관찰자인 내가 그거 안된다고 부르짖는 건 어디서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내가 한참 부족한 사람을 한껏 추어올렸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적이 있다. 아마 그때가 눈에 덮인 콩꺼풀이 벗겨진 때였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에게 하이데거에 대한 콩꺼풀은 한 번 덮인 이상 벗겨지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 시절에 '이정도는 그럴 수 있지', '그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닐거야' 라고 애써 나를 달랬던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한나 아렌트 역시 하이데거에게 있었던 약점을 굳이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인간은 무릇 모두다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여기에서 굳이 이사람의 약점을 들춰보며 미워할 것 까진 없지 않나, 라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시절에 모든걸 덮고 가려고 했던 것처럼, 한나 아렌트도 덮고 가려고 했던 걸지도. 어떤 사랑은 모든 걸 덮게도 하니까. 그게 옳든 그르든 말이다.



하이데거가 처음에 한나 아렌트에게 접근하고 사랑을 고백한 건 징그러웠지만, 그러나 나는 순간순간 한나 아렌트가 되어서 나라면? 나라면?을 생각했다. 이토록이나 나에게 강력한 영양을 미친 사람, 사랑이었고 친구였으며 지성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게다가 나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놓고 싶지 않다면, 나 역시도 그 사람의 아내와 굳이 친구가 되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쏟아넣을 수 있을까. 사랑은 내가 가진 자원을 쓰는 일이다. 돈이며 시간이며 에너지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쓰게 된다. 미국에 있으면서도 가끔 독일로 날아가 하이데거를 만나는 시간이, 가끔은 그의 아내의 눈을 피해야 했고, 또 알면 안되기에 어떤 편지에는 답장도 보낼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을 한나 아렌트가 견뎠다는 것은, 하이데거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세상에 자신과 토론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지혜로운 여성이었음에도, 그러나 어떤 굴욕을 견뎌가며 하이데거를 사랑했다는 것은 인간이란 이렇게나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존재란 생각을 하게 한다.



굴욕을 견디고 싶진 않은데, 그러고 싶진 않아..  내 존재를 숨기는 일에 내가 동참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나는 한나 아렌트가 이 모든 걸 감수하고 그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너무 어릴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것이 아주 큰 축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한나 아렌트가 서른에 하이데거를 만났다면 좋은 친구는 될 수 있었을지언정, 어쩌면 순간 불타오르는 열정을 나누는 연인이 될 수 있었을지언정, 자기 자신과 토론하는 한나 아렌트가 서른에 만난 하이데거에게 자신을 숨기면서 자신을 허락하는 일을 수락할 순 없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답장을 보내지 말라는 편지가 너무 빡쳐... 하아- 지 할 말은 다 해놓고 .. 하아-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든, 이 책은 좋았다.

엘즈비에타 에팅거의 어쩔 수 없는 자기 시선이 드러나지만, 나는 그 시선이 좋았다. 엘즈비에타 에팅거는 하이데거의 아내가 나쁜 여자가 아니라, 아렌트의 시선에서는 자꾸 그녀를 나쁘게 보려만 했던 것에 대해 언급해준다. 엘프리데는 엘프리데 나름의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남편을 대했다. 게다가 그녀가 아내인이상 남편의 연인을 인정한다해도(이것조차 불가하지만) 질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닌가. 오히려 그런 아내와 애인을 모두 다 갖고 싶어했던 하이데거에 대한 미운 감정이 드러나는데, 그런 시선이 좋았다.



이제 한나 아렌트에 대한 다른 책을 사서 또 읽어봐야겠다. 천천히.
























두 사람의 편지로 미루어보아 하이데거는 강의실에서 어린 제자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이데거의 정열은 차츰 사그라졌지만, 아렌트의 우상이 되고자 했던 그의 욕망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 P14

비록 아렌트가 미리 망명을 계획하고 있었고 베를린에서 경찰에 의해 잠시 억류된 적도 있었지만, 히틀러를 향한 하이데거의 공개적 충성서약은 그녀가 그대까지 간직하고 있던 하이데거에 대한 환상을 낱낱이 부수었고 망명의 결심을 재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 P15

블뤼허는 아렌트의 두 번째 남편이 되었고, 그녀의 영혼의 동반자이자 안전한 안식처가 되었다. - P18

하이데거의 반유대주의 혐의와 친 나치행적에 대해 아렌트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이것은 두 사람의 재회에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방문하여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하이데거는 모든 혐의가 단지 모략일 뿐이라고 그녀를 손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아렌트는 행복하게 모든 의혹을 극복했다. 비록 예전과는 달라졌지만, 친구이자 스승이며 자신이 여전히 사랑하는 남자에게로 돌아가려는 그녀의 결심은 옳은 것이었다. 하이데거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아렌트는 만약 두 사람의 삶의 연속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면 자신은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었을 거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하이데거로서는 아렌트의 용서가 필요했다. - P18

1941년, 아렌트는 미국으로 이주했고(미국은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우선시하고 기술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하이데거가 경멸하는 나라였다.) 사랑하는 남자와 새로운 삶을 꾸렸다. 그러나 아렌트의 옛 제자가 관찰한 바대로 "심지어 그의 부재의 존재 속에서도"하이데거는 그녀에게 권위자로 남아 있었다. - P47

하이게더의 품안에는 이미 또 다른 여성이 있었다. 하이데거가 "사랑하는 리시"(liebe Lisi)라고 부른 엘리자베스 스로흐만(Elisabeth Blochmann)은 양친 중 한 사람이 유대인이었고 아내의 학교 친구이기도 했다. 브로흐만은 아렌트보다 열네 살 연상이었고 학자로서의 경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1927년에 하이데거는 "베를린에서의 아름다웠던 날들"에 대해 그녀에게 애정어린 감사 편지를 보냈다. 1928년에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했고, 삼 년 전에 아렌트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volo ut sis"(나는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한다)를 인용하여 편지를 보냈다. - P54

그녀는 스스로에게 부과환 외로운 그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살아가는 유일한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은 하이데거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당신에 대한 사랑을 잃게 된다면 저는 살아갈 권리를 잃어버리게 될 거예요."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이 모든 게 극적인 드라마 같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절박한 편지였다. - P55

세월이 흐르면서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연애에 관해 충분히 되새겨볼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 연애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아렌트는 하이데거가 자신을 사랑했음에도 자신에게 굴욕감을 안겨주었고, 교묘한 술책으로 가차 없이 닫힌 상자 속으로 밀어 넣었으며,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일이란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뿐이었다고 믿게 되었다. - P67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렌트가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지난 수년 동안 아렌트는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내주었고,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불화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블뤼허는 사랑이나 우정에 있어서 이러한 타협이 양립할 수 없다는 걸 몸소 보여주었다. "마침내"하고 아렌트는 말했다. "행복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나는 알게 되었어요." 사랑은 그것이 얼마나 열정적이든 간에, 그 자체로, 삶의 현실과 유리되어 성적 충동이나 권력의 행사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면 파괴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서서히 알게 되었다. 확실히 지난날의 사랑은 그녀에게 그러했다. - P71

엘프리데 하이데거는 독립 정신과 엄청난 활력과 상당한 내적 자산을 갖춘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우상화하지도 않았고 과소평가하지도 않았다. 엘프리데는 남편을 존경했고, 마찬가지로 자신도 존경받길 원했다. 두 아들이 소련에 전쟁포로로 잡혀 있고 하이데거가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몇 년 동안에도 그녀는 정신적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엘프리데는 프랑스 군 당국에 의해(그들은 하이데거를 전형적인 나치당원으로 분류했다.) 압류된 집과 하이데거의 도서관을 되찾기 위해 맹렬히 싸웠다. 하이데거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P96

하이데거는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삶에서 결코 아내를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1950년, 하이데거는 아렌트와의 연애에서 유일한 회한이 있다면 아내에게 즉시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아내를 속였던 점이라고 아렌트에게 토로했다. 만약 자신이 그렇게 했더라면 아내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거라는 것이었다. 하이데거에게 고독이 필요하다는 것을(혹은 동반자가, 이 경우 그러했을 것처럼)엘프리데가 이해했고, 그를 홀로 내버려둔 채 일상의 모든 짐과 아이들 양육을 기꺼이 떠맡았던 점은 하이데거를 감동시켰다. - P97

하이데거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렌트는 그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 남자의 삶에서 아내와 애인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아렌트는 너무 어렸다. 하이데거가 자신은 아내를 사랑하며 또한 아내가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엘프리데에 대해 피상적으로나마 알게 되었을 때 아렌트는 그녀에 대해 점점 더 나쁜 견해를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도 두 여성은 서로를 질투하게 되었다. 하이데거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아내와 옛 정부가 서로 친한 친구가 되기를 바랐다. 실제로는 동시에 두 여성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아렌트는 자신이 하이데거의 삶에 있어서 ‘유일한‘ 여성이ㅓ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P98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하이데거는 아렌트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햇다. 그와 아렌트가 우정을 되찾도록 도와준 사람이 바로 엘프리데이며, 그와 아렌트의 사랑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도 바로 엘프리데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두 여성이 헤어질 때 서로 포옹했던 이미지는 하이데거가 미래에 보기를 원했던 모습이었다. 즉 하이데거를 향한 사랑으로 뭉친 두 여성이 서로 정서적인 유대를 맺는 것이었다. 이후 하이데거가 보낸 거의 모든 편지에는 아렌트에게 키스와 인사와 안부를 보내는 엘프리데가 등장한다. 이제 세 사람은 새로운 경험의 문턱에 서 있었고, 그 안에서 아렌트는 마틴과 엘프리데 하이데거 두 사람 모두에게 속해 있었다. - P114

하이데거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자신에게는 홍보대사가 필요하며, 아렌트가 그 역할에 꼭 들어맞는다고 즉시 그녀를 이해시킬 수 있었다. 아렌트는 자신의 임무를 순순히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렌트가 저명한 유대인이고, 그러므로 아렌트의 지지는 하이데거를 향한 지속적인 반유대주의 혐의를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 P115

하이데거에 대해 아렌트가 느끼는 감정은 성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의 정의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블뤼허는 아렌트의 또 다른 자아였다. 아렌트는 하이데거 없이 살아갈 수는 있었겠지만 블뤼허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었다. 아렌트는 블뤼허를 신뢰했던 것만큼이나 하이데거를 불신했고, 그녀에게 있어서 신뢰란, 진정한 결합의 토대였다. 하이게러를 향한 비논리적인 감정과는 별도로 아렌트는 자신이 존경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아렌트가 하이데거의 무죄를 선언한 것은 충성심이나 공감, 혹은 정의감에서라기보다는 그녀 자신의 자부심과 존엄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 P123

아렌트의 내부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하이데거는 그녀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었고, 그녀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었다. 아렌트는 변함없이 하이데거와의 우정에 매달렸고, 하이데거의 개입이 없는 상황을 견디고 있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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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9-1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날이 무르익는 다락방님의 아렌트에 대한 애정💕 아침부터 촉촉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2020-09-14 10:15   좋아요 1 | URL
저는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하루 잘 보내요, 쟝쟝님. 아프지말고!!

잠자냥 2020-09-1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씩씩거리면서 페이퍼 쓰신 겁니까! 첫줄 인용부분에 오타요. ‘싸랑‘

다락방 2020-09-14 10:36   좋아요 0 | URL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차분하고 우아하게 썼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싸랑이 뭡니까, 싸랑이... 하아- 나란 인간은 대체.... ㅠㅠ

수정했습니다. 우아하게 ‘사랑‘으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9-14 10:37   좋아요 0 | URL
근데 왠지 ˝싸랑˝이 다락방 님에게 어울립니다. 뜨겁고 열정적이고 싸랑 많으신 다락방 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9-14 10:39   좋아요 0 | URL
글이란 것은 어쩔 수 없이 글쓴이를 드러내는가 봅니다....... ㅎㅎㅎㅎㅎ

잠자냥 2020-09-1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한나 아렌트는 대체 왜... ㅠㅠ 휴 저는 사실 하이데거 생긴 것도 싫거든요;;; 아무리 똑똑해도 얼굴 내 취향이어야 함...;;;;

다락방 2020-09-14 10:38   좋아요 0 | URL
저는 왜 나중에라도 하이데거를 내치지 못했는지 너무 속상해요. 하이데거는 한나 아렌트에게 각인된 사람인것 같아요. 한나 아렌트 본인이 좋다는데 저는 막 가슴을 칩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0-09-1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생긴것도 아니라면 그 사랑의 비밀은 지성이 아닐까요. 보통 사람들, 일테면 교수들조차 이해할수 없는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수 있을 정도의 지성. 말이 통하는 사람. 그래서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평생 사랑한 거겠죠. 전 그런 생각이 드네요.

다락방 2020-09-14 12:05   좋아요 0 | URL
한나 아렌트는 매우 지적인 학생이었고, 그런 한나 아렌트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지적인 사람이 하이데거였던거라고 저도 생각해요. 그러니 그 때부터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있었던 거겠지요. 그리고 그 때의 가르침이 계속해서 한나를 이끌어주었던 것 같아요. 분명 어느 시점부터 한나가 스승을 뛰어넘었지만, 한나는 그조차도 하이데거 때문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걸 보면 그 어린 시절에 만난 지성인이 지적으로도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사이었기 때문에 평생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적으로 보여요. 그래,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으면서도 저는 제삼자이니 또 속상하기도 하고...

사랑한다면 사랑해야겠죠.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