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리'는 열네살에 '엄마를 대신해야' 한다며 아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그 일로 아이를 둘을 낳게 된다. 아이들은 낳자마자 다른 집으로 입양보내지는데, 그렇게 스무살이 된 셀리는 이제 자신의 아이들을 돌봐줄 다른 남자에게로 '시집보내진다'. 그 결혼은 셀리가 원한 것이 아니었지만, 아빠의 손에서 이제 남편의 손으로 셀리는 넘어가게 된거다. 결혼해서 아빠를 피하게 됐지만 아직 아빠랑 같이 살고 있는 여동생 '네티'가 너무 걱정되고, 남편은 셀리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남편의 아이들은 말을 잘 듣지도 않고 셀리는 하루종일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남편은 몇 번 자기 위에서 움직이지만 이 섹스는 섹스가 아니고 셀리는 이것이 전혀 즐겁지 않다. 그러다 마을에 '슈그'라는 가수가 찾아온다.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옷차림의 그녀는 남편 '앨버트'의 애인이었고, 남편은 여전히 슈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몸이 약해진 슈그를 돌봐줘야 한다며 집으로 데리고 오기까지 한다. 셀리는 남편의 애인을 간호하는 일까지 떠맡게 됐는데, 그런데 셀리는 슈그를 돌보는 것을 전혀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동경한다. 못생긴 자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여자이며 인기많은 여자에 대한 동경인걸까, 생각했는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셀리는 슈그를 사랑하게 된거다. 게다가 셀리가 알지 못했던 섹스의 기쁨을 알려주는 것도 슈그다. 셀리가 슈그를 사랑하는만큼 슈그도 셀리를 위하고 사랑하게 된다.



아주 오래전에 이 작품을 영화로 봤던 기억이 나고,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러고 어떻게 사냐고 엄청 억울해했던 것 같다. 언제 한번 책으로 읽어봐야지, 하고 계속 미뤄두었던 책인데, 최근에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서 함께 읽었던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수차례 '앨리스 워커'가 언급되어 이번에는 읽어보자, 하고 드디어 만났다. 나는 이 책이 '인종 차별'에 대한 걸 중점적으로 다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여성차별에 더 많이 집중해서 놀랐고, 게다가 동성애가 나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셀리와 슈그의 사랑에도 놀랐다. 시작부터 열네살 흑인 소녀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강간당하는 책의 책장을 넘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넘길때마다 힘든 얘기만 나와서 대체 이걸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했지만, 그러나 교육도 짧고 약하기만 한 셀리에게 싸워야 한다고 강해져야 한다고 너의 편이 되겠다고 말하는 여자들이 자꾸 등장하는 바람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당연히 드러나지만 성차별에 대한 것은 더 집중해 다뤄졌는데, 그래서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당시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컬러 퍼플』은 출간된 후 많은 찬사를 받는 한편으로 상당한 비난도 받았다. 작품이 출간된 1982년은 흑인민권운동이 타오른 1960년대에서 이십 년가량 지난 시기였다. 법적 평등은 이루었어도 현실의 인종차별은 엄연히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흑인 작가가 인종문제보다 남녀문제를 더욱 두드러지게 제시하고, 흑인 남자는 '미개하고 폭력적'이라는 편견을 강화한다는 비판이 주였다. 하지만 그것은 워커가 흑인 중에서도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시대 흑인 여성이 겪는 직접적인 억압은 가까이에 있는 흑인 남성에게서 비롯되는 사회적 경향을 인식한 결과였을 뿐이다. 이는 워커 자신이 경험한 것이기도 했다. -해설, 고정아, p.376



흑인 남성에 대해 나쁜 면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비난이 가해진 셈인데, 흑인 남성의 나쁜 면을 앨리스 워커가 억지로 꾸며낸 것도 아니었다. 실질적 억압 앞에서 그녀는 소리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했고, 그러나 그것이 이미 사회적 약자인 흑인에 대한 나쁜 점이라면, 입을 다물도록 강요되는 거다. 이건 '패트리샤 힐 콜린스'의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이미 지적되어졌던 바다.



인종단결을 초점으로 보면, 힐은 증언대에 서서 학대를 일삼는 흑인남성에 대한 흑인 "가족의 비밀"을 누설한 셈이다. 많은 흑인남성과 흑인여성이 보기에, 힐은 "더러운 세탁물"을 공공연히 방송에 내보냄으로써 흑인으로서 그녀의 주장이 지닌 진정성을 떨어뜨렸다. 어떤 사람은 토마스가 성희롱을 했다고 하더라도 힐은 흑인남성에 대한 연대심을 갖고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문화비평가 리사 존스는 흑인들이 흔하게 보인 반응을 이렇게 지적한다. "텔레비젼에 나온 힐의 얼굴보다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이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말한다고 보상받는 것이 아니다. 성희롱을 당한 여성은 이중적 피해자가 되며 목소리를 내는 비판적 흑인여성은 여전히 흑인인종의 배신자로 낙인찍힌다."(Jones 1994, 120) -《흑인 페미니즘 사상》, 패트리샤 힐 콜린스, p.224


















가끔, 아니 자주, 사람들은 자신이 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 폭로가 있었다면 그 전에 폭로해야 할 사건이 있었다. 비난받아야 할 것은 사건인데, 화살은 폭로를 향한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통해 읽게된 컬러 퍼플인만큼,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언급한 모든 것들이 이 소설 한 권에 다 들어가 있다. 책 속의 슈그와 메리 애그니스는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는 흑인 여성들이 블루스를 통해 자신들이 할 말을 그 안에 녹여내 부른다고 언급했던 바다. 슈그가 노래하고 또 조용히 혼자 흥얼대던 메리 애그니스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제안하는 것 모두 그녀들이 위치한 자리에서 할 수 있었던 그녀들의 목소리 내기였다.



1992년에 애니타 힐이 클래런스 토마스의 성회롱을 공개석상에서 고발했던 기념비적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흑인여성이 오랫동안 흑인 남성에게 "변화"를 요구해 온 통로는 블루스 전통이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흑인여성은 블루스를 통해서 흑인남성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괜찮은 여자, 괜찮은 남자>라는 노래에서 아레타 프랭클린(1967)은 여성은 장난감이 아니라 남자와 똑같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인간이라는 서저너 트루스의 주장을 내세운다. "남자들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녀는 여성을 이용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남자임을 "증명"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프랭클린은 남자가 함께 있는 한, 그의 존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그녀의 입장은 분명하다. 만약 그가 "긴 밤을 함께 보낼 괜찮은 여자"를 찾는다면, 그도 역시 "긴 밤을 함께 보낼 괜찮은 남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프랭클린은 지배적인 성정치에서 말하는 "괜찮은 남자"가 되기 위해서 "남자들 세상"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라고 촉구한다. 흑인여성을 존중하고 "긴 밤을 함께 보낼 남자"라면, 관계에 충실하고 경제적으로 탄탄하고 성적으로 적극적인 남성이라면,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패트리샤 힐 콜린스, p.269





뿐만 아니다. 책 속의 소피아는 인종 차별에 맞서 시장 부부에게 대드는데, 그 일로 12년의 감옥형을 선고받았다가 결국 시장 부부의 집에서 일을 하는 벌로 대신하게 된다. 소피아는 시장 부부의 아이들을 잘 돌보는데 그렇다고 그 아이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 부모님이 오빠인 아들만 좋아해서 소피아를 유독 따랐던 시장 부부의 딸 '엘리너 제인'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소피아를 찾고 소피아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소피아는 엘리너의 아들을 결코 사랑으로 봐주지 않고, 이에 엘리너는 흑인 여자들은 아이들에게 더 잘해야 하지 않냐고 말하는거다.



이해가 안 돼요. 엘리너 제인이 말했어. 내가 아는 흑인 여자는 전부 아이들을 사랑해요. 아줌마가 그러는 건 뭔가 부자연스럽다고요.

나는 아이들을 사랑해. 소피아가 말했어. 하지만 흑인 여자들이 네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다 거짓말이야. 그들도 나만큼이나 레이놀즈 스탠리를 사랑하지 않아. 그렇지만 네가 그런 질문을 계속하면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어떤 흑인들은 백인이 너무 무서워서 면화 기계마저 사랑한다고 말하는걸.

하지만 레이놀즈는 아직 아기라고요! 그 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엘리너 제인이 말했어. -p.341-342



흑인들은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데, 왜 소피아 아줌마는 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묻자, 소피아는 답한다. 네 아이는 자라서 똑같은 백인이 될거잖아.



나도 내 나름대로 문제가 있어. 소피아가 말했어. 레이놀즈 스탠리도 자라면 똑같은 백인 중 한 명이 되겠지.

.

.

내 말은 내가 네 아들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거야. 너는 네가 사랑하고 싶은 만큼 네 아들을 사랑할 수 있어. 하지만 결과는 감당해야지. 흑인들은 그렇게 살아. -p.343



흑인에 대한 모성 신화, 흑인은 특별히 더 모성이 발달되어있다는 이 만들어진 신화, 이에 대해서도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는 얘기하고 있었다. 흑인의 모성, 그리고 대드는 여자에 대한 이미지까지. 책속에서 소피아는 남편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선다. 게다가 덩치도 커서 남편에게 맞는것보다 더 때릴 수 있다. 남편은 도대체 자신의 아내가 왜 고분고분하지 않은지, 자기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맞고 고분고분하던데, 왜 이 여자는 엄마랑 다른지 너무 고민이 많고, 그런 아내에게 맞서기 위해 엄청나게 먹어대며 덩치를 키우려고 한다. 모성이 가득한 어머니, 대들지 않는 아내.



흑인숙녀 이미지는 또한 가모장 명제의 여러 측면과 닮아있다. 즉, 흑인숙녀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직종에서 일을 하느라 남자를 만나거나 돌볼 시간이 없거나 남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린 여성이다. 그녀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남성들과 경쟁하면서 이러한 경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여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숙녀는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펼친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들과 결혼하려는 남성이 없다고들 한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패트리샤 힐 콜린스, P.149



그러나 담론이 아니라 미국 흑인의 현실을 살펴보자면, 어머니를 찬양하는 흑인남성 중 너무 많은 이가 자기 자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남성들은 점점 더 빈곤에 시달리는 흑인아이들의 양육을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떠넘긴다(Nightingale 1993, 16-22). 미국에서 흑인어머니를 위한 경제적 사회적 지원이 약화되고 있는데, 많은 흑인 청년은 흑인남성의 과잉섹슈얼리티 신화를 신봉하고, 미혼의 십대 여자 친구에게 미래를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부추긴다9Ladner 1972; Ladner and Gourdine 1984). 이들 역시 자신들이 관계를 맺어 온 여성들이 직면한 빈곤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지만, 가모장과 강인한 흑인 어머니라는 통제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셸 월리스Michelle Wallace 가 지적한 대로, 많은 흑인남성은 흑인여성이 어머니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패트리샤 힐 콜린스, p.301




흑인 여성은 백인의 아이까지 사랑하는 건 불가능했고 계속 남편한테 맞고 살 생각도 없었다. 소피아는 주인공 셀리보다 젊었고 셀리의 며느리였는데, 셀리는 이 강인한 며느리, 할 말을 하고 맞서 싸우는 이 젊은 흑인 여성을 질투하지만, 그녀로부터 싸워야한다는 것을 배운다. 아프리카에 선교활동을 하러간 똑똑한 여동생 네티도 셀리에게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노래를 부르며 돈을 많이 버는 슈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알려준다. 다름 많은 흑인 여성들의 도움으로 셀리는 남편에게 맞설 수 있었고 피할 수 있었고 결국 남편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고 이 소설을 읽게 됐으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떠올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책을 읽자마자 나는 6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에코 페미니즘》도 생각났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강간, 그리고 백인들의 흑인 땅에 대한 침략까지, 컬러 퍼플은 아직 다 읽지 못한 에코 페미니즘을 숱하게 떠올리게 만들었다.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가 쓴 《에코 페미니즘》은 시작부터 너무 재미있는 책이다. 자, 일단 서문에 실린 글을 잠깐 훑어보자.



인터넷 폭력이나 인터넷 전쟁은 '파괴의 아버지'들이 개발해낸 새로운 발명품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 유전공학과 재생산기술이다. 둘 다 우리의 세계관과 인류학을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유전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주로 우리의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남성의 폭력은 그들의 유전적 구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전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남성은 천성적으로 '전사'(戰士)인 것으로 간주된다. 전사가 아니라면 진정한 남자가 아니다. 하지만 여성과 기타 '적'들에 대한 남성의 폭력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은 천성적으로 강간범도 아니며, 모든 생명의 원천인 어머니 자연의 살해자로서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것도 아니다. 이 폭력은 약 8천년 전에 시작되었던 사회적 패러다임의 결과물이다. 그 이름은 가부장제다. -《에코페미니즘》,서문, p.34



컬러 퍼플에서 셀리는 아버지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한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러니까 이 남자들은 딸과 아내인 여성에 대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 이 폭력이 유지되어지고 다음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그리고 이 남자에게서 저 남자에게로 전달되는 것은 다름 아닌 가부장제의 탓이다. 이 가부장제는 그렇다면 여자들만 파괴하느냐, 그 안에서 남성들도 파괴한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혹은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 남자임을 뽐내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의 인격 또한 파괴하고 있고,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그 안에서 굴복하는 것. 아내를 때리는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반항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컬러 퍼플에서도 나온다.



가부장제와 폭력의 관련성을 에코페미니즘을 통해 조금 더 살펴보자.




전통적 가부장제 구조가 자본주의 가부장제 구조와 혼종(混種)되면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새롭고 더욱 사악한 형태를 띠어가고 있다. 우리는 불공정하고 지속불가능한 경제체제의 폭력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더 잦아지고 잔인해지는 현상 사이의 연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떻게 전통적 가부장제 구조가 점점 더 커져가는 자본주의 가부장제 구조와 결합하여 어성에 대한 폭력을 심화하는지 볼 필요가 있다. -《에코페미니즘》,서문, p.15


나는 지구에 대한 강간과 여성에 대한 강간은 밀접하게 연계된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해왔다. -《에코페미니즘》,서문, p.17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는 여성에 대한 강간의 사례를 가져오면서 또한 빈민층과 자연에 대한 폭력도 가져온다. 여기의 것을 해결하기 위해 저기의 것을 망가뜨리는 일.




진작에 레이첼 카슨은 토양의 오염이 결국에는 사람들이 먹는 식품, 특히 모유에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점을 지적했는데, 이제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 북의 많은 여성들을 경악시키고 있다. 얼마 전 한 여성이 내게 전화를 해서 모유가 오염되었으므로 이제 독일에서 3개월 이상 모유를 먹이는 것은 안전하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해결책으로 그는 인도 남부에서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유아식을 생산하자는 계획을 제시했다. 그곳 건조한 데칸고원에는 '라기'(ragi)라는 특수한 기장이 자라는데, 생육에 물도 별로 필요 없고 비료도 필요 없어서 빈민층으 값싼 주식이라고 한다. 이 기장은 유아가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녀의 제안은 이 기장을 가공하여 통조림으로 만들어 독일에 유아식으로 수출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하면 모유의 오염으로 절망에 빠진 독일 여성들의 문제도 해결하고 가난한 인도 남부에서도 새로운 수입원을 얻게 된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개발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나는 빈민층의 주식인 라기를 세계시장에 내놓아 수출상품으로 만든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이상 그것을 사먹지 못하게 되리라는 점을 설명하려 했다. 가격이 급등할 것은 물론이고, 그 계획이 실현된다면 북의 시장에 라기를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해 머지않아 살충제 등의 농약이 사용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라기가 오염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사람들의 손에 생산을 맡기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환경식민주의의 한 변형이라 할 만하다. 그에게 그것보다는 독일의 농업방식을 바꾸고 살충제 사용을 금히자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자 그 방법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모유의 오염 문제는 비상사태라고 대답했다. 불안한 마음에 독일 여성들의 이익만을 생각한 나머지 그녀는 인도 남부 빈민여성들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하려 하는 것이다. -《에코페미니즘》, 마리아 미스, p.144-146




마리아 미스의 글은 1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였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와 여러차례 겹치는데, 그래서 읽기가 더 수월하다. 위의 부분에 대해서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비슷한 사례들이 나왔던 터다. 그리고 이 일이 컬러 퍼플에서도 등장한다. 네티가 아프리카로 선교활동을 하러 갔는데, 그녀가 도착한 마을에 백인들이 도로를 놓는 공사를 시작하는거다. 도로를 놓으면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 용이해지니 마을 사람들은 이를 환영했다.




그런데 올링카인들이 도로 건설이 '끝났다'고 생각한(어쨌건 그게 마을까지 이어졌으니까) 다음날 아침에도 인부들은 계속 일을 했어. 도로는 50킬로미터나 더 이어질 계획이었던 거야! 그리고 현재의 경로를 이어나가면 올링카 마을을 관통하게 되어 있었어. 우리가 잠에서 깨어 나왔을 때는 이미 도로가 캐서린이 새로 심은 양 밭으로 들어오고 있었어. 당연히 올링카인들은 들고 일어났지. 하지만 건설 인부들에게는 진짜 무기가 있었어. 그들은 총이 있었고, 발포 명령도 받았어, 언니!

정말 안타까웠어, 언니. 사람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어! 하지만 자기들 밭과 집이 무참히 파괴되는데도 아무런 대책 없이 서 있기만 했어-옛날에는 부족전쟁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을 거의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싸우는 법을 몰라. 그래, 건설 인부들은 작업반장의 지시를 한 치도 어기지 않았어. 도로가 지나가는 경로에 있는 오두막은 모두 철거됐어. 그리고 언니, 우리 교회, 우리 학교, 내 오두막도 몇 시간 사이에 더 철거됐어. 다행히 우리 살림은 챙겼지만, 아스팔트 도로가 마을 한복판을 관통하니 마을 자체가 내장이 뚫린 느낌이야. -p.226



하지만 최악은 그다음 이야기였어. 올링카가 이제 마을의 소유권을 잃었으니 땅에 대한 임대료를 내고 살아야 하고, 물에 대한 소유권도 없으니 물도 물세를 내고 써야 한다는 거였어.

처음에 사람들은 웃었어. 너무 말이 안 되잖아. 이곳은 그들이 까마득한 옛날부터 살았던 땅인데. 하지만 족장은 웃지 않았어. 우리는 그 백인과 싸워야 해. 그들이 말했어. -p.227



소설속에서 발생한 저 일들에 대해 반다나 시바는 에코페미니즘에서 실제 사례를 숱하게 가져오며 이렇게 얘기한다.



자국의 환경과 경제와 사치스런 생활양식을 유지하려는 부유한 나라들 때문에 간드마르단에 사는 부족들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것이다. - 《에코페미니즘》, 반다나 시바, p.192



앨리스 워커는 컬러 퍼플을 통해 빈민국에 폭력을 가하는 부유한 국가를 얘기하고(총을 들어!), 흑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백인을 얘기하고(나한테 대들었으니 감옥에 가!),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얘기한다(고분고분하게 내 말을 들어!). 이렇게 답답하고 가슴 아픈 와중에도 셀리는 기다리고, 기대를 하고, 사랑을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런 셀리의 사랑에 대한 성숙한 태도였다.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셀리는 가슴 아파하면서고 '그 사람에겐 그 사람이 원하는대로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편지로만 구성된 소설이라 고통스럽지만 책장은 빠르게 넘어간다.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많아서 휘둘리다보면 정신없이 마지막이 되어있고, 그렇게 결말을 만나고나면 훌쩍훌쩍 울게된다. 그렇다. 나는 오늘 아침부터 울어버리고 말았다. 사실은 할 말이 더 있는데, 너무 길어지니까 다른 얘기는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이 소설 뭐 이래, 나는 최은영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그건 다음에 다시...






어쨌건 내가 기도하고 편지를 썼던 신은 남자야. 내가 아는 다른 남자들하고 똑같이 행동해. 찌질하고 게으르고 비열하지.
그녀가 말했어. 셀리, 조용히 해. 하느님이 듣겠어.
들으라고 해. 내가 말했어. 그 남자가 불쌍한 흑인 여자의 말에 한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는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거야. - P255

슈그! 내가 말했어. 성경은 하느님이 쓴 거고, 백인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
그런데 왜 하느님이 그 사람들처럼 생긴 거지? 그녀가 말했어. 덩치만 더 클 뿐이잖아? 털이 좀더 많고. 왜 성경도 백인들이 만드는 다른 것들하고 똑같은 거지? 어째서 자기들은 온갖 짓을 다 하는데 흑인이 하는 일은 저주만 받는 거야? - P257

작아. 귀여워. 엉덩이가 예뻐. 진짜 반투족이야. 슈그는 나한테 모든 걸 다 말하는 데 버릇이 들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갈수록 더 들뜨고 사랑에 빠진 사람 같아 보였어. 그녀가 그의 앙증맞고 작은 발이 춤을 출 때에 대해 이야기를 마친 뒤 다시 금갈색 곱슬머리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기분은 진창에 처박혔지.
그만해, 슈그. 나 죽을 것 같아. 내가 말했어.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어. 슈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얼굴이 일그러졌지. 아, 셀리. 슈그가 말했어. 미안해. 그냥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데, 나는 늘 너한테 이야기하니까.
말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면, 나는 이미 앰뷸런스를 탔을 거야. 내가 말했어. - P321

나도 슈그하고 같이 다니고 싶기도 하지만 슈그라도 그럴 수 있는 게 다행이야. 때로는 슈그에게 화가 나기도 해. 슈그의 머리카락을 홀랑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러고나서 생각하지. 슈그는 자기 인생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이야. 내가 슈그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런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지. - P346

유일하게 괴로운 건 슈그가 돌아온다는 말을 안 한다는 거야. 나는 슈그가 보고 싶어. 슈그와의 우정이 어찌나 그리운지 슈그가 저메인을 데리고 오겠다고 해도 두 사람 모두를 환영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려고 애쓰다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뭐라고 슈그에게 누구를 사랑하라 마라 할 수 있겠어? 내가 할일은 그저 스스로 진실되게 그녀를 사랑하는 것뿐이야. - P346

그만둬도 괜찮아. 소피아가 말했어. 그애가 안 도와준다고 나한테 큰일이 나는 것도 아냐. 하지만 비난에 맞서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엘리너는 자기 인생을 살 수 없어.
어쨌건 난 널 응원해. 하포가 말했어. 그리고 네가 내린 모든 결정을 존중해. 그는 다가가서 그녀의 코에 있는 꿰맨 상처에 입을 맞추었어.
소피아가 고개를 들었어. 누구나 살면서 무언가 깨닫기 마련이지. 소피아가 말했어. 그리고 그들은 웃었어. - P362

슈그가 돌아오겠다는 편지를 보냈어.
이런 게 인생일까?
나는 하나도 들뜨지 않아.
슈그가 온다면 나는 기쁠 거야. 하지만 오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
이게 내가 깨달아야 하는 교훈인 것 같아. -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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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6-16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권의 책이 이렇게 얽히는군요! 이렇게 다른 두 권이 주장하는 바가 골고루 담긴, 그것도 문학으로 탁월하게 엮어낸 <컬러 퍼플> 정말 위대한 작품입니다.

아니 그런데 최은영이 떠오르기도 했다니, 다음 이야기도 기대할게요. ㅎㅎ

다락방 2020-06-16 10:38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 이 책 읽고 안울었나요, 혹시?
어휴 저는 막 조마조마하다가 ㅠㅠ 그리고 다 읽고나서는 ‘읽기를 잘했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요. 역시 끝까지 읽어야하는 책이었어요.

최은영이 떠오르는 건, 최은영이 자신의 단편에서 사랑과 우정에 대해 말했기 때문이었는데요. 저는 셀리와 슈그의 사랑에서 그걸 느꼈어요!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한거요.

2020-06-16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6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6-16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인 여성이 이중으로 겪는 고통에 대해선 머리속에서 상상하는건 쉬운 일이지만 <컬러 퍼플>의 저자는 그걸 입체적으로 보여준 듯 해요. 흑인 여성의 위대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며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떠올리는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인데, 다락방님 페이퍼 읽다보니 <에코 페미니즘>과도 정확하게 닿아있네요. 본질을 꿰뚫는 다락방님의 혜안에 박수를 치게 됩니다. 잘 읽고 가요, 다락방님! 이제 <컬러 퍼플>을 읽게 될 모든 사람들은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 더해 <에코 페미니즘>도 떠올리게 될거 같아요^^

다락방 2020-06-16 10:50   좋아요 0 | URL
에코페미니즘과도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닿아있어서, 저는 에코페미니즘 읽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 페미니즘과 환경운동은 같이갈 수 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에코페미니즘은 저도 아직 200쪽 가량밖에 읽질 못했지만, 환경운동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여성운동에 관심있는 사람들 모두가 읽으면 좋을 책인것 같아요.

그런한편, 이렇게 주장하는 글이 실린 책들도 제 역할을 다하지만, 소설은 소설대로 자신의 일을 다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컬러 퍼플을 읽으면서 했어요. 소설 한 권안에 흑인 페미니즘 사상도 에코페미니즘도 다 들어있잖아요. 좋은 글은 소설로 쓰이든 인문서로 쓰이든 자신이 할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책 읽는 거 너무 좋지 않나요, 단발머리님?

그리고 제 혜안에 저도 감탄합니다. 전 정말 짱인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6-16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컬러 퍼플>을 읽어야겠어요!

다락방 2020-06-16 19:19   좋아요 0 | URL
비연님도 재밌게 읽으실겁니다. 그간 여성주의 책 읽었던 것들이 마구 떠오를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