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길에 급연락으로 급만남이 성사되었고 급메뉴로 삼겹살을 정했다. 검색해 찾아간 삼겹살이 아아 정말 맛집이었고 삼겹살 너무 맛있어서 지금도 자꾸 생각난다. 사장님이 미나리도 주셔서 미나리랑 같이 먹어본 거 처음인데 미나리 먹은 것도 좋았고 삼겹살 맛있었어. 오랜만에 먹었나, 나? 어제 컨디션 너무 삼겹살 컨디션이었다... (응?) 아무튼 삼겹살 너무 맛있었다. 지금도 자꾸만 생각나. 1인분 더 먹을걸 그랬나. 둘이서 3인분 먹었는데, 뭐 후식은 안시켜 먹었으니까... 괜찮아..그런데 삼겹살 너무 맛있었다. 너무 먹고싶을 때 먹어서 맛있었던건지, 사장님 말씀대로 1등급 고기여서 그런건지, 정말 맛있었어..그렇지만 화장실은 넘나 엔지였다 ㅠㅠ 화장실 너무해요 ㅠㅠㅠ 그렇지만 삼겹살 맛있었어..
삼겹살 왜이렇게 맛있었지?
나는 살면서 그리고 나이 먹으면서 선택과 결정에 더 신중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혹여라도 후회하지 않을까, 를 선택에 앞서 생각하고 이것이 정말 최선인가에 대해서도 고심한다. 혹여 내가 이렇게 말한 게 나중에 나의 발목을 잡진 않을까, 이것은 내 태도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 나름 가열차게 고민하는데, 그래서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선택과 결정에 대해 후회할 일이 많이 줄었다. 아마 이것이 그간 살아온 내 삶이 내게준 가르침일 것이다.
그렇다해도 아예 후회로부터 멀어질 순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나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서,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래 지금 이 선택이 아무리 생각해도 최선이야, 라고 최종 결정을 내렸어도, 주변의 사람들과 여건들 때문에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구나' 같은 걸 느끼게 될 때가 오는 거다.
삼겹살은 맛있었지만 후회를 수십번 한 저녁이었다.
혼자 하는 생각은 혼자만큼의 최대치를 가진다. 생각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잠가 매고 살거야.
집에 돌아오니 남동생으로부터 톡이 와있었다. 오늘 슈퍼문이래. 마침 택배 보내러 나갔다 와야 했기에(중고 주문 들어옴)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 하늘을 보고 달을 찾았다. 달이 아주 똥그랬다. 나는 멈춰서서 달을 보고는 언제나 그렇듯이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어제는 우울해서, 소원을 빌면서도, 제기랄, 빈다고 이루어지긴 하는거야? 하는 마음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다 됐어, 세상은 똥이야, 인생은 다 구라야, 술이나 더 마시고 흠씬 취해버리겠어! 했는데, 와인냉장고가 있는 내 서재방에서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셨고, 그래서 꺼내러 가자니 좀 거시기한거다. 그래, 그렇다면 부엌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꺼내 마시자, 해서 냉장고문을 열고 맥주를 꺼냈지만, 다시 넣어두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어제 삼겹살을 생각하면서(응?), 무슨 책을 읽느냐고 친구가 물었던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가방을 열고 내가 읽던 책을 꺼내 보여주었다. '게일 다인스'의 [포르노랜드]였다. 나랑 함께 삼겹살을 먹었던 친구는 하필 남자사람 이었고, 그런 참에 이 책을 꺼내 보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묻는 거 너무 좋고, 그럴 때 가방에서 읽던 책 꺼내 보일 수 있다는 거 좋고, 그런데 그 책이 포르노랜드여서 진짜 좋았어. 완전 짜릿한 순간이었지. 남자들은 포르노를 볼 때, 나는 반포르노 책을 읽는다. 멋져... ♡(내가 나에게 보내는 하트) 내 자신이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들은 찰칵찰칵 사진 찍어서 보관하고 싶다.
아침에 회사에 와서는 커피를 내렸다. 어제, 알라딘에서 주문한 새로운 커피가 도착해있었고, 그래서 내리는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원두의 향은 늘 그렇듯 좋았고, 다 내려진뒤에 마시기 위해 컵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커피에서 버터 냄새가 났다. 응? 버터 냄새? 커피에서 버터 냄새가 나?? 그렇게 두어모금쯤 마시다가 다시 맡아보는데, 버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코가... 맡고 싶은 냄새 상상하고 마신걸까.....
여동생은 많이 시다고 했었는데 나는 조금 시더라.
그렇게 오늘 아침.
(커피 너무 진하게 내렸나??)
집에 사둔 훈제연어 언제 먹을까, 같은거 생각하면서 오늘 알라딘에 들어와 신간을 살펴보았는데, 아니, 기다리던 책이 나왔다. 꺄울 >.<
며칠 후면 월급날. 이 책 사야지. 드리퍼도 사고 여과지도 사고 그래야지. 후훗.
사실 나는 이수정 교수님의 에세이를 읽고 싶다. 프로파일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라든가, 공부했던 과정 같은 것. 일을 하면서 느꼈던 갈등과 고민 그리고 성취까지. 그런 것들을 녹여낸 이수정 교수님 혼자만의 에세이가 너무 읽어보고 싶다.
대한민국의 모든 출판사들이여... 부디 이수정 교수님께 에세이 쓰자고 좀 해주세요.. 제가 살게요...........
얼마전에 해리포터와 ..뭐더라..비밀의 방? 읽었는데, 나는 확실히 해리 포터 보다 포르노랜드가 더 재미있다. 더 짜릿하고, 더 흥분된다.
이만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