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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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로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8월에 태어나기를, 우리 부모님에게서 태어나기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내 선택과는 아무 상관없이 내가 세상에 태어났고 자라는동안 여자라서, 내가 태어난 생일이 있어서, 우리 부모님의 딸이어서, 대한민국 국민이어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에 맞닥뜨렸다. 어떤 것들을 슬픔이었고 어떤 것들은 기쁨이었으며 어떤 것들은 고통이었고 어떤 것들은 행복이었다. 고통과 행복 혹은 기쁨과 슬픔앞에 놓일 때면 '내가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같은 생각들을 수도없이 해보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고 해서 잠시라도 다른 사람으로 살아볼 수는 없었다. 삶은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안줌' 역시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다 가지고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태어나보니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가 모두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장소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갖고 태어난 사람들, 그런 '히즈라'들이 머무르는 장소 '콰브가'에, 안줌 역시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가난하게 태어나기를 원한 것도 아니었고, 남성이며 동시에 여성으로 태어나길 원한 것도 아니었고, 인도에 태어나길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안줌은 지금에 와서 다른 곳에 태어날 수도, 다른 모습으로도 태어날 순 없으니까. 삶은, 정말이지, 그런 게 아니니까.



2002년,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난 사람의 이야기인 《미들섹스》를 출간했다. 책에서 남,녀의 성기 모두를 가진 주인공은 자신의 성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고, 방황하다가, 써커스단에 들어가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며 돈을 벌기도 한다.

'아룬다티 로이'가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썼다니, 나는 이 책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히즈라로 태어난 고통, 히즈라인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고통, 그리고 그 히즈라가 자라면서 받게 되는 차별당하는 삶까지. 그런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채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의 성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며 몇 번의 사랑을 할 것이고, 어느 순간에는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주인공이 그랬듯이, 자신의 저주받은 몸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최종선택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한거다. 《미들섹스》를 읽을 때는 그저 '아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구나'를 생각하며 주인공의 고통을 이해하려 했다면, 지금 이 책을 읽으려고 책을 펼치면서는, '그러나 아룬다티 로이가 히즈라가 아니면서 히즈라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 고민을 혼자 했다. 당사자성을 가지지 않은 채로 이야기를 해도 되는걸까.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괜찮은것인가, 하는 생각. 그러다가 퍼뜩, 그러나 당사자성이 없다는 것은 나의 편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히즈라'인 안줌의 이야기는 백페이지도 되지 않을 때 모두 나온다.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기 때문에 학교 가기를 포기하는 점, 변성기를 맞고, 자신이 선택하고 싶은 건 '여성'으로서의 삶이고, 콰브가에 들어가고, 그리고 마흔한 살이 되어 '엄마'가 되고 싶고, 엄마가 되고 싶을 때 마침, '자이나브'라는 아기를 입양하게 되고, 그리고 마흔 여섯에 정든 콰브가에서 떠나기까지. 이 이야기가 백페이기도 되기 전에 모두 나오는거다. 아직 뒤에 무수히 많은 페이지가 남았는데,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안줌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렇게 훅- 지나가버린 거지?




그러니까 이 짧다면 짧은 페이지안에서 안줌은 '개인'을 산다. 히즈라로 태어난 개인, 여성이 되길 선택해 성전환 수술을 받는 개인, 아이를 입양하고 엄마가 되는 개인, 그리고 상처입고 콰브가를 떠나는 개인의 이야기. 그런 안줌 개인의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자, 이제는 안줌이 살고 있는 나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안줌은 안줌 개인이되 동시에 인도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인도의 흐름 속에서 안줌의 생활 역시 그 흐름과 뒤섞일 수밖에 없다. 안줌은 생각지도 못하게 '구자라트 폭동'의 한가운데에서 친구의 죽음을 맞게된다. 그건 안줌이 생각해본 적도 없는 작별이었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 폭력의 현장이었다. 이 일은 안줌의 생각을, 생활을 바꾸게 된다. 안줌은 콰브가에서 나와 무덤가로 간다. 그곳에서 폐인처럼 살면서 자신처럼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하나씩 받아들이고,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그들과 함께 이제는 죽어서도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장례식장을 만든다. 살아서 가난한 사람들과 죽어서 가난한 사람들, 아니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과 가난하게 죽는 사람들을 위한 파라다이스, '잔나트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거다.




이야기는, 결국 잔나트 게스트하우스에 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몫이다. 그들이 겪은 삶은 살아서도 고통이었고 죽어서도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부패한 정부를 비롯하여, 탄광때문에 밀려나고, 가스누출에 희생된 사람들, 집을 잃고 쫓겨나고, 종교 때문에 박해받고, 일용노동자로 일하다 다치고, 부러지고, 맞고, 묶이고, 납치당하고, 지진의 피해를 입고, 강간당하고, 눈이 멀고, 폭탄이 터지고, 물밑으로 가라앉고, 사생아를 낳고, 시위를 하고 맞서지만 응답받지 못하는 사람들. 부모님의 죽음을, 아내의 죽음을, 아이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사람들. 울부짖어도 바뀌지 않아 절망하는 사람들. 마을 사람들에게, 경찰에게, 군인에게 희생되어 죽어가는 사람들. 헤어지려는 아내에게는 따귀 몇 대를 날려주라고 충고하는 친구, 친구의 충고대로 아내의 따귀를 때리는 친구. 그들이 사는 인도는 사람들이 죽어야 사는 곳이었고, 때로 두 번 죽어야 하는 곳이었다. 시체를 만들고, 시체를 보고, 시체를 발견하는 사람들. 그들 모두는 거기에서 개인으로 살지만, 그러나 고통받는 개인은 고통받는 나라를 만들고, 고통받는 나라는 고통받는 개인을 만든다. 엉망인 개인과 엉망인 나라. 죽음이 삶이 되는 현장.




여기에서 저기로 그리고 저기에서 거기로 가도 머무를 곳은 없었다. 반드시 누군가가 죽었고, 죽여야했고 아니면 내가 죽었다. 도망쳐야 했고 숨어야 했고 감춰야 했고 속여야 했는데 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삶의 의지를 다질까. 무엇이 이들을 살게 할까. 여기에서 폭력을 만나거나 저기에서 폭발을 만나는데, 여기에서 폭도들을 만나거나 저기에서 군인들을 만나는데, 어디로 가야 안전할까. 분쟁이 없는 곳엔 전쟁이 있었고, 전쟁이 없는 곳엔 테러가 있었고 테러가 없는 곳엔 계급이 있었다. 가난이 있었고 더 큰 가난이 있었고, 더 더 큰 가난이 있었고, 그리고 부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상처와 고통과 복수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가난해서 힘들었고, 불가촉천민이어서 힘들었고, 두개의 성을 한꺼번에 가진 몸이라서 힘들었고, 사생아로 태어나서 힘들었는데, 그렇게 나만의 상처만으로는 끝나는 게 아니라고, 살고 싶다면 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삶이 말해주고 있었다. 너가 태어나 고통이니? 사는 건 더 고통이야.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이 사랑하며 사는게 가능할 수 있을까?



안줌은 18세 생일에 꿈속에서 오르가즘을 겪었던 것이 자기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오르가즘이다. 틸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는 없없다. 가슴속에 사랑을 품었으되 그 사랑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들에게 사치였다.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삶,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삶. 그러나 그들은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랑은 포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인지도 몰랐다.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그저 바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각자의 상처와 또 복수를 끌어안고 그들은 결국 한 데 모여 버려진 아기 '미스 제빈 2세'의 엄마가 되어주고 또 엄마가 되어주고 그리고 그 아기에게 최상의 장소를 제공하고자 한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으나 모두가 사랑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 숱한 폭력과 희생, 무의미한 죽음의 기록들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낯선 용어들로 가득차 힘들었다. 처음 보는 단어는 누군가의 이름이기도 했고, 직업이기도 했고, 직함이기도 했고, 장소이기도 했다. 게다가 인도에서 그들이 겪었던 역사적 사건들 역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이었기에 수차례 컴퓨터 앞에 앉아 혹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야 했다. 카슈미르 분쟁은 도대체 뭐야, 구자라트 폭동은 또 뭐야. 이 사람들 왜이렇게 많이 싸우고 죽인거야. 이 모든 것들을 나는 기억하며 읽을 수가 없어서 결국 이면지를 반으로 접어 메모하기 시작했다.





반으로 접힌 메모지는 책을 읽어갈수록 꽉 채워졌다.




소설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자세가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연달아 등장하는 낯선 단어들 앞에 무릎 꿇었다.


게다가 이야기의 흐름은 어떻고.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미스 제빈 2세를 얘기하면서 갑자기 미스 제빈 1세가 언급이 되면, 아 1세가 어디에서 나왔지? 내가 놓쳤나? 앞장을 몇 장 뒤적여야 했다. 그러나 미스 제빈 1세에 대해서는 그 뒤에 나오는 거다.

자, 이 이야기가 왜 이렇게 됐냐면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야, 로 과거를 되짚는 식. 몇 번이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그 때마다 나는 번번이 내가 뭘 놓친건 아닌지, 내가 제대로 읽은 게 아닌지, 혹시 내가 메모를 해둔 것에 있는지, 책장을 되넘기거나 메모를 살펴야 했던 거다.


책의 표지를 넘기고 책장을 한장씩 넘기면서 책장이 휙휙 넘어가고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게 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결코 한 번에 다 읽어낼 수 없는 책이 있다. 이 책을 읽기로 선택한 사람이라면 최대한 집중해야 할것이며 다른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내가 미리 알려준다. 그리고 나처럼 메모를 하는 게 도움이 된다. 읽는 순간에는 '음, 이건 기억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해서 메모해두지 않았던 단어중에 '아자디'가 있다. 이게 뒤로 갈수록 자주 나오는거다. 심지어 사람들이 아자디, 아자디 함께 외치기도 한다. 그런데 내 메모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 단어가 없어. 나는 다시 책장을 되돌린다. 그리고 한참 앞에서 발견한다. 아자디는 '자유 혹은 독립'이란 뜻을 가진 단어였다.




여러가지로 어려운 책읽기었으므로 결코 즐겁다고 말할 수는 없었는데, <10장 지복의 성자> 시작부분부터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10장에서는 모두가 만나 모두가 함께하는 삶이 펼쳐지니까.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 있었다. 똑똑한 여자,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는 여자, 재회 그리고 사랑까지. 기쁨은 슬픔 뒤에 오고 희망은 절망 뒤에 오는 거라면, 이 책은 1장부터 9장 뒤에 10장이 온다.



우리는 개인으로 살아가며 자신만의 역사를 만든다.

다른 사람과 사랑하며 그 사람과 나만의 역사를 함께 만든다.

이런 우리가 모여서 역사속의 일부가 된다.


지복의 성자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아프타브는 그 여자처럼 되고 싶었다.
그는 투르크만 게이트까지 여자를 따라가서 그녀가 안쪽으로 사라진 푸른 문 밖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보통 여자라면 그런 차림으로 샤자하나바드의 거리를 활보할 수 없었다. 샤자하나바드의 보통 여자들을 부르카를 입거나 손과 발을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과 머리를 가리고 다녔다. 아프타브가 따라간 여자가 그런 차림(밝은색 립스틱을 칠하고 금색 하이힐을 신고 반짝이는 초록색 새틴 살와르 카미즈를 입은)으로 그렇게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은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 P33

안줌은 쾌락을 주는 자로서는 노련한 기교를 발휘하여 큰 인기를 얻었지만, 붉은 디스코 사리를 입었을 때 맛보았던 것이 그녀의 생애 마지막 오르가슴이었다. - P47

안줌은 자신이 ‘학살자들의 행운‘일 뿐임을 결코 잊지 않았다. 남은 생애 동안, 심지어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조차, 그녀와 ‘남은 생애‘의 관계는 늘 불안정하고 무모했다. - P96

이런 따분한 소견을 말해도 용서가 된다면, 결국 영원히 실현되지 못할 공연을 위해 연습하는 것, 어쩌면 그게 인생이 아닐까? 혹은 인생 대부분의 결말이 그런 식이 아닐까? - P202

틸로는 건축학부 3학년 학생이었고, 세트와 조명 디자인을 맡았다. 그녀는 우리에게 자신을 틸로타마라고 소개했다. 그녀를 처음본 순간, 나의 일부가 내 몸에서 걸어나가 그녀를 감쌌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상태로 남아 있다. - P203

이제 과거를 돌아보며, 나가는 자신이 오랜 세월 잠재의식 속에 틸로가 사막을 지나는 낙타처럼 그저 자신의 삶을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언젠가는 그녀가 분명 자신을 떠날 거라는 두려움을 품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 P310

무사와 비스킷을 든 사람이 뒤에서 나타나기 전부터 금속 쟁반에 놓인 찻잔들이 희미하게 달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사와 비스킷을 가져온 사람은 즉시 서로를 알아보았으나, 그들의 표정은 수동적이고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암리크 싱은 그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방안의 공기가 동이 났다. 호흡이 불가능해졌다. 호흡을 하는 것처럼 가장해야만 했다. - P447

틸로와 무사는 연인인 동시에 前 연인, 애인인 동시에 전 애인, 남매인 동시에 전 남매, 급우인 동시에 전 급우였기에 제 3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런 기묘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너무도 특이한 방식으로 서로를 신뢰했기에, 설령 그것 때문에 자신이 상처를 받는다 하더라도, 상대가 사랑한 사람은 그 누구라도 사랑할 가치가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마음의 문제에서는 사실상 숲처럼 빽빽한 안전망을 갖고 있었다. - P483

여전히 무사는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몇 년동안 품고 다니던 끊임없는 두려움-갑작스레 무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될 것에 대한-의 무게가 얼마간 가벼워졌다. 그건 그를 덜 사랑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묘지의 천사들이 만신창이가 된 피수호자들을 보살피며, 두 세계 사이의 문을 (불법적으로, 아주 조금만)열어두어 이승의 영혼들과 이승을 떠난 영혼들이 같은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처럼 어울릴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삶은 덜 확정적인 것이 되고 죽음 또한 덜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왠지 모든 게 조금은 견디기가 쉬워졌다. - P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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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9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19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3-1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룬다티의 책을 읽고 싶지만 저 역시 부제가 주는 느낌 때문에 아직까지 미루고만 있었어요.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진 사람의 이야기... 로만 예상했거든요. 다락방님 글 읽으니 읽고 싶은데 마지막에 공부 메모 사진 보고 나니... 맘이 복잡해지네요@@

다락방 2020-03-19 17:0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이 미루신 이유가 제가 갈등했던 이유와 아마도 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또 거기에 있어서 좀 복잡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등장인물이 중심인물 ‘안줌‘이기는 하지만, 안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책에서는 다양한 개인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인용문을 옮겨 놓긴 했지만, 단발머리님, 단발머리님이 다크룸 읽다가 저에게 일러주었던 부분이 이 책에서도 나온답니다.


아프타브는 그 여자처럼 되고 싶었다.
그는 투르크만 게이트까지 여자를 따라가서 그녀가 안쪽으로 사라진 푸른 문 밖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보통 여자라면 그런 차림으로 샤자하나바드의 거리를 활보할 수 없었다. 샤자하나바드의 보통 여자들을 부르카를 입거나 손과 발을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과 머리를 가리고 다녔다. 아프타브가 따라간 여자가 그런 차림(밝은색 립스틱을 칠하고 금색 하이힐을 신고 반짝이는 초록색 새틴 살와르 카미즈를 입은)으로 그렇게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은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P33

잠자냥 2020-03-1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아프타브, 그러니까 안줌에 대해서 다락방 님은 좀 더 다른 할 말이 있을 것 같았어요. ㅎㅎ

다락방 2020-03-20 08:25   좋아요 1 | URL
저도 어쩐지 그럴 것 같아서 이 책을 읽는데 엄청 망설인 거였거든요. 그런데 아룬다티 로이는 아주 영리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로 하여금 그런 글을 안쓸 수 있도록(?) 중심인물이긴 하되 어쨌든 ‘이런 개인‘에 대해 쓰는 것에서 멈추더라고요. 저에겐 다행한 일이었어요. 하하.

얼음장수 2020-03-1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정말이지 그런 게 아니니까!
드라마에 나온 유치한 대사였지만,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데 다른 사람의 인정은 필요하지 않다‘도 떠오르고.
메모를 보니까 와우, 꼭 문학 전공하는 대학원생 같아요.

다락방 2020-03-20 08:28   좋아요 0 | URL
어휴.. 소설 읽는게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 소설은 그럴 일이 별로 없지만 이게 외국소설 읽다보면 이름 헷갈릴 때도 엄청 많잖아요. 일본 소설도 엄청 헷갈려서 ‘어, 얘 아까 죽지 않았나? 왜 살아있지?‘ 라고 해서 뒤로 넘겨보면 한글자 다르고.. 러시아 소설은 애칭이 겁나 많고... 그런데 인도 소설은 이름 뿐만이 아니라 직업도 그렇고 호칭도 그렇고 뭐가 그렇게 낯선 단어가 많은지 따라가기가 벅차더라고요. 휴... 이젠 메모해가며 읽어야 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