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퇴근하면서 미스터피자 도미노피자에 들러 피자 한 판을 포장했다. 오전에 이미 예약 주문을 걸어뒀었다. 엊그제 치킨 먹으면서 백종원이 뉴욕간 걸 봤는데, 피자를 세상 맛있게 먹는거다. 그거 보면서 엄마랑 '내일은 피자먹자!' 했던 터다. 엄마 내가 퇴근하면서 사올게, 해서 약속대로 사가지고 갔다. 커다란 피자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자 엄마는 피자는 정말 오랜만이라며 설레어하셨다. ㅋㅋ 뉴욕의 백종원이 피자를 먹을 때 핫소스 대신 (간)페페론치노를 뿌려 먹어보라며, 피자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매콤한 게 맛있다고 한 게 기억나, 식탁에 피자를 차려둔 뒤 나는 '기다려 엄마!' 하고는 페페론치노를 꺼내왔다. 아니, 우리집에 이게 왜있니, 엄마가 물으셨고, 이거 내가 일전에 사뒀지, 했다. 감바스 만들 때 쓰려고 페페론치노를 사러 갔는데 갈아둔 것 밖에 없어서 아쉬운대로 갈아둔 걸 사왔던 것. 그런데 이럴 때 써먹네? ㅋㅋㅋ 엄마랑 나는 백종원처럼 먹어보자, 하고는 피자 위에 페페론치노를 뿌렸다. 그렇게 먹어본 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백종원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네. 피자의 맛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맵네."
요란하게 매운 것도 아니라서 뭐랄까..계속 뿌려먹었는데, 피자를 다먹을 즈음엔 입술이 아파서 미치는 줄 알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피자를 먹고나니 뭔가.. 어떤 써운한(?)마음에, 엄마가 엊그제 담근 김치를 꺼내서 밥을 한 술 먹었다. 그제야 좀 편안해졌어... 그리고는 폼롤러를 가지고 거실로 가 엄마가 티비 보는 앞에서 맛사지를 좀 하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요즘 케이블에서 재방송 해주는 <전원일기>를 즐겨보시더라. 옆에서 나도 같이 봤는데,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기의 클라스가 다르다. 전원일기는 조연들마저도 진짜 완벽한 연기여서, 저건 진짜 연기가 아니다, 삶이다, 계속 감탄하며 봤다. 와, 진짜 연기.. 그리고 옷차림.... 화장까지. 정말 완벽하다, 완벽해!! 아아..사랑의 불시착 현빈 생각납니다. 현빈 잘생겼지만 연기 볼 때마다 안타까움 금할 수 없어라...
각설하고,
엄마가 즐겨 보시는 프로그램중에는 실제 일어난 범죄를 재연해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프로그램의 정확한 이름은 생각 안나는데 엄마가 볼 때 옆에서 봤다가 너무 자극적이라서 이런걸 왜보냐고 물었었는데, 엄마는 그런 프로그램을 너무 좋아하셔.. 아무튼 어제도 그런 프로그램을 틀어두셔서 아빠랑 엄마랑 나랑 셋이 보게됐다. 나는 중간부터 봐서 처음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해서 결혼을 했고, 결혼하고나서도 그 사랑을 지켜가며 다정하게 잘 지내고 있던 터였다. 그런참에 남자가 사업이 잘 안됐던가..해서 무속인을 찾아간다. 무속인은 굿을 해야 한다 잘 풀린다 했고, 남자는 사채를 써서 굿을 하겠다 하고 아내는 돈을 마련해주고, 뭐 그런거였다.
남편은 이 무속인을 절대신뢰하고 절대의지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모든 것에 선생님, 선생님 해가며 무속인에게 전화해 의견을 물었고, 무속인이 하라는 걸 하고 하지말라는 걸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내는 그렇게 무속인에게 의지하는 남편이 못마땅했지만, 그러지 말라고 말했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그걸 절대 신뢰한다는데에야 어쩔 수 없이 따라가 같이 굿하는 옆에서 기도도 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은 남편이 아쉬운 표정과 말투로 '당분간 여보랑 동침하지 말래' 라고 하는 거다. 동침하면 큰일난다고. 아내는 그게 말이 되냐, 같이 자자고 하고 남편은 '당신을 사랑하지만 안돼'라고 하는 거다. 이에 아내는, 무슨 큰일이 나겠어, 하고는 남편을 침대로 끌어들여 그들은 동침한다. 무속인이 하지 말라고 한 걸 한 것.
나는 언제나 믿는 것에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니까 그것이 종교이든, 나 자신이든, 자연이든,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이든. 사실 나는 나 자신 말고는 딱히 믿는 게 없긴한데, 그건 타인이나 혹은 종교,자연,사랑..이라는 감정 같은 것일 경우 배신할 확률이 나자신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믿는다고 하면, 그건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 뭐라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누군가가 무엇을 간절하게 믿는다면, 거기에는 힘이 실리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믿고 싶어하니까. 나는 '절대적으로' 혹은 '지나치게' 믿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지나침'은 누구의 어떤 기준일까.
믿는 것에는 힘이 생긴다. 우리는 자신이 믿는 것에 지나치게 힘을 줘버리는 경향이 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고 말도 안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믿는 사람'은 그 힘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종교단체 내에서 폭력과 학대, 착취가 일어나는 경우가 바로 지나치게 힘을 줘버린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내가 믿는 이 사람이, 이 지도자가 나에게 잘못할 리 없지, 내가 잘못했겠지, 이것이 내가 믿는 이 신의 뜻이겠지. 믿지 않는 사람이 '그건 허구다', '너는 지금 휘둘리고 있다'고 말해도, 내부의 사람 귀에는 잘 닿지 않는다. 그것이 믿는 것이 주는 지나치게 강한 힘이다. 종교를 믿는다면 종교가 내게 힘이 있는 거고, 유령을 믿는다면 유령이 내게 힘이 있는 거다. 뱀파이어를 믿는다면 뱀파이어를 실제로 볼 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가 믿는대로 보고싶어하기 때문에, 자기만의 안경으로 세상을 본다. 믿지 않는 사람이 '저거 뱀파이어 아니야' 라고 말해도 '내 눈엔 보여'가 될 수밖에 없다.
살다보면 좋은일이 생기기도 하고 나쁜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강하게 믿는다면, 좋은일과 나쁜일은 모두 내가 믿는 것이 내게 주는 메세지가 된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이게 다 신의 뜻이거나, 자연의 뜻이될 수 있고, 나쁜 일이 일어나도 마찬가지.
남편은 무속인을 믿었고 그래서 무속인이 동침하지 말라는 말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는 무속인을 믿지 않았고 동침하지 말라는 말을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동침했다. 이 후에 이들 부부에게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이제 남편과 아내는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아내에게는 누가 뭐라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 라는 생각이 찾아오겠지만 남편에게는 '거봐, 동침하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했잖아' 가 될것이다. 남편은 굿을 하는데도 몇천만원을 들일 정도로 정성이었는데,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거봐, 굿을 하고나니까 이렇게 좋아지잖아'가 될 것이고, 나쁜일이 일어난다면, '아이코 정성이 부족했구나 굿을 또 해야겠어'가 될것이다.
남편이 강하게 믿는이상 무속신앙은 아주 큰 힘을 가진다. 누가 뭐라할 수 없을 만큼.
그리고 이제 남편은 이혼서류를 가지고 왔다. '우리가 같이 살면 누군가 한명이 단명한대, 서류상 만이라도 이혼을 해야한대' 라면서. 아내는 이혼하기 싫고 그 말을 믿지도 않지만, 이미 한 쪽이 그걸 믿어버린 다음에야 벌 수 없다. 아내는 이혼하기 싫다고 아무리 말을해도 이미 그걸 믿고 따르려는 자에게 더이상 대응할 수 없다.
"엄마, 엄마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남편이 저렇게 무속신앙을 믿어서 이혼하자고 하면?"
"이혼해야지. 저렇게 정신이 나가버렸는데 같이 살기도 싫다."
그러자 아빠가 옆에서 말했다.
"주님께 기도해서 나를 고쳐달라고 해야지! 고쳐달라 해서 같이 살아야지!"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아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랑 나는 빵터졌다. 엄마는 아빠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하고 이혼하겠다는 게 아니라, 저 상황에서 저런 남편이라면 이혼하겠다는 거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서류상 이혼을 마치고 남편과 아내는 그래도 여전히 사랑해하고 꽁냥꽁냥 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느날 남편이 사라졌다.
믿는 것은 힘이 있고, 믿는 이상 힘이 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믿는대로 보이는것이다, 는 얘기를 하면서 보다가, 남편이 사라져서, 아아, 이것은 또 무엇인가... 하게 되었는데, 이 무속신앙을 강하게 '믿는' 남자는.. 아아, 예상외의 전개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믿음... 이 문제가 아니었어. 졸라 철학적으로 접근했던 나여... 이렇게 훌륭한 생각 뿜어냈던 나여... 나따위.. 난, 어느 면에서는 결코 남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남편의 핸드폰으로 수차례 연락해보지만 핸드폰은 꺼져있다. 찾아 헤매기도 하고 또 집에서 기다리기도 하지만 그렇게 3개월이 흘렀고, 그제야 아내는 무속인을 찾아간다. 무속인을 찾아가서 멱살을 쥐고 흔들며 '내 남편 내놔!'라고 말한다. 무속인도 여자였고 아내는 무속인이 아내를 뒤로 빼돌렸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 무속인은 니 남편을 왜 내게서 찾냐고 하는데, 그때 무속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하하하하ㅎ하하하하하하하하. 다음장면은, 무속인과 아내가 동시에 경찰서에 뛰어가는건데, 하하하하하하하하. 거기에는 3개월간 연락도 없고 사라졌던 남편이 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속인은 아내보다 먼저 달려들어 남편의 멱살을 쥐고 '내 돈 내놔!' 라고 하는데 하하하하하. 그렇다. 이 남편은 결혼사기범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벌써 여덟번째 이혼을 한참이었던 거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주로 재력있는 여자를 찾아내어 사랑고백을 하고 결혼한 뒤 크게 한 탕 하고 이혼하고 다른 여자를 찾아 또 반복하는 것. 아아, 나는 정말이지 어떤 면에서는 결코 남자를 이길 수가 없어. 이미 재력가였던 아내와 이혼하고 무속인과 결혼을 약속하며 돈을 뜯어냈다. 이 남자는 그 무속인의 신고로 경찰에 잡힌 거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삶의 아이러니... 무속 신앙에 빠진 게 아니라 결혼 사기범이었다니.... 하하하하하... 삶의 아이러니. 다른 사람의 나쁜 앞날 점치며 굿을 하지만 결혼사기범앞에 돈뜯기는 무속인이라니. 삶의 아이러니... 결혼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 무엇이길래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그렇게 큰 돈을 주는가...... 여자들이여, 남자들한테 돈 주고 싶다면 푼돈만 주자.....이게 뭐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아 종교란 무엇인가.... 신앙이란 무엇인가....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우리는 누굴 믿어야 하나. 나를 믿어도 나를 내가 배신할 때가 있는데 우리가 다른 것을 믿는 것은 과연 계속해도 좋을 것인가..... 남편은 무속신앙을 믿었고(물론 믿는 척한거지만), 아내는 남편을 믿었고, 무속인은 사랑을 믿었어.....
몇개월전에 개봉했던 영화 [토이스토리 4] 에서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사랑받고 싶었던 캐릭터가 나온다. 그런데 사랑받을 수 없게 되니 절망하고. 사랑을 간절히 원했으니 그게 오지 않으면 절망하는 거다. 반면, 혼자 자유로운 캐릭터도 있었다. 주인을 찾고 싶다는 욕망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삶을 살던 캐릭터. 그렇기에 자유로운 캐릭터.
사랑은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 힘이 세지만, 그러나 결코 사랑이 유일한 답이 될 수는 없다. 사랑 너무 믿지마요...
믿는다는 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하다가 결혼사기범에게 뒷통수 맞은 얘기였다.
마침, 정희진의 신간을 읽다가 종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어 옮겨오겠다.
개신교, 불교, 천주교에서 발표한 신자 숫자를 합치면 총인구보다 많다. (p.37)
남편이 새로운 사기대상인 무속인을 찾았고 그렇게 양다리(?)를 걸치다가 아내와 이혼하고, 그 후에 또 새로운 사기대상을 찾는 걸 본 아빠는 말했다.
"한 명 사랑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저렇게 여러명을 사랑하냐."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아빠는 사랑을 하니까 한 명만 해도 힘든거야. 저남자는 사랑을 안하니까 두명이든 세명이든 여러명이든 가능한거고. 사랑을 안하면 쉬워. 사랑을 하니까 어려운거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응 알지."
나는 역시 나를 믿어야겠어... 내가 믿을 건 나뿐.....
언젠가부터 노래를 잘 듣지 않지만 최근엔 테일러 스위프트를 종종 듣는다. 음악을 잘 듣지 않게된 순간부터 그러나, 그 해의 중심 혹은 사인이 되는 노래는 간혹 있어왔다. 어느 해에는 '에피톤프로젝트'의 <회전목마>였고, 어느 해에는 'Frances'의 <Don't worry about me>였다. 요즘은, 그러니까 2020년의 노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Me>다. 내가 어떤 기분에 처해있어도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아아, 갑자기 둠칫 두둠칫 몸이 반응해버려. 리듬을 타고 흥에 나를 맡긴다.. 둠칫 두둠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