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미국에서는 여성주의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이 일어났다. 그들은 여자들이 점점 더 이기적이 되고 있음을 우려했다. 그러한 보수주의자들 중 하나인 러시 림보는 여자들이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생각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여성의 일은 "인류가 지속되는 데 꼭 필요한 가치들을 지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지 길더는 여성성이 아름다운 것은 "인간을 교화하는"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앨런 블룸도 남자가 목표를 성취하는 책임을 지고 여자가 보살피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미국인의 정신은 끝이 났다고 한탄했다. 사실 그 부담의 차원을 깨닫기 전까지는 참 황송한 말씀이다. 문명화는 전적으로 여자만의 책임은 아니니까. (p.45)




세상은 여자를 욕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경우든 끌고오고 어떠한 시대든 끌고온다. '예전에 비하면 여자들 대우가 지금 훨씬 나아졌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예 잘못된 비교를 하고 있다. '예전'의 여자들을 끌고 오려면 그 비교대상은 '예전'의 남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전의 여자들에 비해 여자들의 대우가 나아진 걸 지금 가져오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여자들이 점점 더 이기적이 되고 있다는 위의 인용문도 마찬가지. 여자들이 점점 더 이기적이 되어가는 동안, 그렇다면 남자들은 점점 더 이타적이 되어갔는가? 한 유튜버는 오늘 '여자들만 모이면 문제가 터진다'는 뉘앙스의 방송을 했던데, 그렇다면 '남자들만 모이면' 아무 이상이 없는 아름다운 공간인가? 불법촬영물을 돌려보고 성매매 공모를 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 시켜서 품평하는 게 바로 '남자들만' 모였을 때 일어나는 일이 아니던가?



선한 사회는 궁극적으로 모두가 바라는 바겠지만, 여자는 특히 더 이타적이어야 하는가? 여자가 남자들만큼 이기적이면 안되는가? 남자는 이기적이어도 되고 여자는 그러면 안되는가? 왜 남자와 사회는 여자에게 '더 선하기를', '더 이타적이기를' 기대하는가. 선한 사회로 가기 위한 책임은 여자에게만 있는건가?



문명화는 전적으로 여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전적으로 여자의 책임으로 돌리려고만 한다. 여자들은 친절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여자들은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사회가 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성추행을 당하고 있어도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서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아이를 낳으면 전적으로 책임져서 돌봐야 하고 부모님이 아프면 여자가 돌봐야한다. 그것이 사회가 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남자들을 기죽이면 안되고, 남자들 위로 올라서려고 하면 안되고, 싸가지없게 말하면 안된다. 남자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면 안되고, 섹스할 때는 언제나 만족한듯한 연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아이의 양육을 남자도 같이 해야 한다고 했더니, 싫은 걸 '싫어'라고 말했더니, 이제 여자들은 이기적이 된다. 그리고 여자들이 이기적인 세상이 되니 세상이 선할리가 없다. 세상이 망가지고 있다. 여자들이 이기적이라서. 마치 선한 사회에서 선한 남자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여자들이 이기적인 바람에 세상이 뒤집어졌다는 식이다. 그런식으로 여자를 혐오한다. 세상을 망친 게 이기적인 여자들인것처럼.


문명화는 전적으로 여자만의 책임이 아니다. 사실 강간문화는 남자들의 책임이 아니던가.



좆까라 그래, 진짜..





오늘날 가부장적 강제는 더는 인정받을 수 없다. 다른 한편 순수한 이기적 개인주의는 추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소한의 이타주의가 없이는 사회를 재생산할 수 없다. 서로를 돌보는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책임이 무엇이며 어떻게 강제되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본성이나 자비로운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보상과 처벌이 아마 필요할 것이다. 친절이라는 젖은 마르지 않는 샘에서 자연적으로 솟아 나오는 것도 아니고,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서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p.53)




그러나, 여전히,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욕을 먹어도, 여자들은 착하다. 친절이라는 젖은 마르지 않는 샘에서 자연적으로 솟아 나오는 것이 아닌데도, 여자들은 착하다. 못되게 굴려고 해도, 이기적이 되려고 해도, 남자들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주말에 영화 [버즈 오브 프레이]를 봤다. 전편을 보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시작에서 할리 퀸이 '조커'의 여자친구 였음을 말해준다. 박사학위까지 받고 정신과 의사였던 할리 퀸이 조커를 만나 기행(?)을 일삼다가 조커와 헤어지고난 후부터가 이 영화의 시작이다. 나는 이 간단 요약을 보는데 너무 하드코어라 힘들었다. 조커랑 사귄다는 게 일단 너무 싫었고, 이 여자가 박사학위까지 있는데도 이런 삶의 형태를 갖춘게 너무 속상하고 술과 약물과 제정신 아님.. 같은게 너무 힘들어서 아아, 이것은 내 타입의 영화가 아니다... ㅠㅠ 하고 괴로워하였던 것이다. 제가 이래봬도 바르고 건강하고 규칙적인 삶을 지향합니다... 하아-



그러나 영화는 중간 이후부터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술을 먹이고 납치하려던 납치범들로부터 할리 퀸을 구해내는 여자가 나오면서 부터랄까.



나쁜 놈들의 다이아몬드를 훔친 덕에 소녀 '카산드라'는 현상금이 걸린 채로 수배된다. 할리 퀸은 자신이 살기 위해 이 소녀를 잡아오려고 했었다. 자신이 믿었던 식당 주인이 자신을 밀고한 걸 알고 역시 세상엔 믿을 놈 하나 없구나, 세상은 똥이야, 나도 나만 챙기면서 살겠어, 하면서 그 소녀를 나쁜놈들에게 넘기려고 하는거다. 친절은 마르지 않는 샘에서 그저 샘솟는 게 아니기에,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아마 바로 넘겼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할리 퀸은 이제 소녀를 보호하기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각자의 이유로 다른 여자들이 함께한다. 경찰이었고, 가수이며 운전기사였고, 석궁 킬러였던 여자들이 할리 퀸과 함께 이 소녀를 보호하는 거다. 한 명은 소녀에게 저기 숨어있으라 하고, 또 한 명은 싸움판이 벌어지는 통에 소녀에게 작은 장난감을 건네주며 '이걸 꼭 쥐고있어'라고 한다. 싸우다말고 이들은 '카산드라 어디있지?'하고 카산드라가 무사한지 살핀다.



소녀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 여자들이 힘을 합쳐 싸우는 장면은 정말 좋았다. 할리 퀸은 소녀에게 '네가 날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고 고백한다. 소녀를 보호하기 위한 이 여성들의 연대는 얼마나 근사한지!!




경찰이었던 여자는 언제나 자신의 공을 가로챘던 남자 때문에 이번에도 실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오랜시간 경찰로 일하며 버텨왔지만 역시 견고한 남성의 무리, 성취를 앗아가는 남성의 무리틈에서 이제 그만두기로 한다. 그리고 이 여자들은 모여서 자경단을 결성해버려. 세상 멋지다!!




세상이 똥같이 되는 게 여성들이 이기적이 되어서가 아니다. 이기적인 세상 가운데에 여전히 친절을 베풀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이정도 선한 세상으로 유지되는 거다. 문명화는 전적으로 여자의 책임이 아닌데, 여자들은 선한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나는 소녀를 보호하는 이 여성연대를 사랑하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소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많은 경우에 여자들이 지금보다 더 못되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2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시작했다.




경제학자 대다수는 정직과 신뢰 같은 사회 규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시장이 잘 돌아가게 하는 것이 그런 규범이기 때문이다. 규범 없이는, 족쇄를 풀고 나온 자기 이익 추구는 기만과 강탈을 일으킬 것이다. 자고로 목을 베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과는 거래가 쉬운 법이다. 보이지 않는 악수가 보이지 않는 손을 돕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정직과 신뢰를 공고히 하는 사랑, 존중, 돌봄은 어떤가? 경제학자들은 이타주의 같은 감정은 인정하나 애덤 스미스가 도덕 감정에 대해 그랬듯 그것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다룬다. 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 - P19

어느 때든 비용과 이익을 고려하기 마련이고, 선택의 결과는 누가 비용을 지불하고 누가 이득을 누리는가에 맞물려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따르는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식을 많이 낳는 것에 대해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나아가 여성이 양육 전문가가 될수록 여성은 남성에게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들은 대체로 각족을 돌보는 데 따르는 책임과 더불어 권력을 획득한다.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생기는 노동 분업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통제의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한 통제는 평등 사회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의 손을 들어준다. - P34

경제학자 대부분을 포함한 보수적인 사회 사상가들은 여성은 본래 아동 양육에 적합한 존재이며 따라서 병자나 노약자를 돌보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찌 됐건 특화는 효율성을 높인다. 그러나 특화는 또한 인간의 능력과 자질의 게발과 협상력 행사에 영향을 미친다. 단기적으로 보면 한 국가가 설탕과 바나나만 생산하고 다른 한 구가가 컴퓨터와 총만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설탕과 바나나만 생산하는 국가는 국경을 지킥나 고유의 기술을 발전시킬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같은 논리는 아이를 기르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만 하는 사람한테도 적용될 것이다. - P34

경제적 의존은 여성의 복지를 그들의 아버지와 남편의 복지에 달려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여성은 다른 사람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개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부인당한 사람들은 자신이 분리된 개인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 P35

물론 누군가를 강제로 사랑하게 할 수는 없다. 종속은 항상 양질의 돌봄을 낳는 것이 아니다. 종속은 긴장, 분노, 격노마저 일으킬 수 있다. - P35

인간은 공통의 유전 형질을 공유한다. 직계 친족에 대한 이타주의는 그보다 덜 가까운 타인에 대한 이타주의를 장려한다. 우리는 종종 자식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짝에 대해 이타적이게 된다. 자식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사촌, 조카도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들이 다시 자식을 갖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유전자와 결합될 것이다. 친족 중심의 이타주의는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강화한다.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직계 친족뿐만 아니라 미래에 살게 될 다른 사람들에 대해 걱정하게 만든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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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2-1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된 여자에 대한 생각이라는 건 사람들에게 아주 고정화된 건 같아요.
나쁜 남자,가 츤데레로 미화되는데, 나쁜 여자는, 그냥 못된 년이니까요.
여성에 대한 이타심의 강요,라고 제 책에도 메모해 두려구요.

다락방 2020-02-10 14:12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는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위에 인용한 문장들로만 봐도 맞는말만 하고 있어서 말이지요.
여성을 이기적이라 욕하기는 아주 쉽고 그리고 한 명이 이기적인 년이 되는 이상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속도가 빠르죠. 그리고 그 이기적인 년들 때문에 될 것도 안된다, 라는 생각도 그렇고요. 저는 이 모든게 여성혐오라고 생각합니다. 으 너무 끔찍해요 진짜 ㅠㅠ

2020-02-10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20-02-1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기 시작했군요! 저도 지금 매일 조금씩 읽고 있나이다. 재밌더라구요^^

다락방 2020-02-11 12:02   좋아요 0 | URL
1월의 책보다 읽기에 수월하지요? 저는 경제학자가 썼다는 게 너무 좋아요. 그냥 여성 경제학자의 존재를 아는 게 기뻐요. 으흐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