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이수정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에서 2020년에 이 프로그램에서 다룬 내용으로 책이 나올거란 얘기를 들었다. 그 프로그램을 몇 개 듣지는 않았지만 내용들이 다 좋아서 책 나오면 좋겠다, 읽어보고 싶다 하고 있다. 사실 그보다는 이수정 교수님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간 공부하는 과정, 그리고 일했던 것들을 써준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것. 이 나라에서 범죄심리학자로 살아간다는 것, 교수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써준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수정 교수님을 넣어 검색해 보았지만 이미 내가 읽었던 [사이코 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와 아마도.. 교재로 쓰이는 책만이 있는 것 같다.
















누가 이수정 교수님 에세이좀 내주세요...




어제부터 박완서의 책을 읽고 있다.
















이 책, [대범한 밥상]은 박완서의 단편집이다. 와, 진짜 너무 좋은게, 글이 담고 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크- 글맛이 있는 거다. 이런건 내가 국내 작가의 책을 읽을 때 자주 느끼는건데, 진짜 처음부터 한글로 쓰여진 문장을 읽는 건 그것 자체가 주는 아주 큰 기쁨이 있는 거다. 내가 번역서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읽기는 번역서를 훨씬 더 많이 읽었고 그래서 내 문장도 사실 번역문에 더 가까울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 한국어로 쓰여진 책이 주는 그 맛, 그 기쁨은 너무 최고되는 것이다. 게다가 박완서나 박경리, 이승우라면 한국어를 다루는 데 있어서 더 탁월한 것 같다. 막 문장 읽히는 데 되게 찰지다고 해야 하나. 제일 처음 단편 <부처님 근처> 읽으면서도 너무 좋았던게, 그 한국어 문장들, 그 맛깔나는 단어의 배열들로 인물의 섬세한 심리까지 드러내서 정말 크, 그래 이거야- 하고 감탄하면서 읽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는, 와, 할 말이 많아지는데, 그래서 결국 내가 이 단편집을 다 읽지도 않고 이렇게 페이퍼를 쓰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여자는 세번 결혼했다. 이 일은 동창들 사이에서도 비꼬는 화제가 되는데, 주인공은 세번이나 결혼한 여자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긋지긋해하고 그러나 위축되지 않으면서 깐깐하게 맞선다. 이런 것도 너무 좋은데, 그간 결혼한 남편들에 얘기하는 건 또 어찌나 재미있는지.



집의 입을 덜기 위해 엄마가 후딱 결혼시켜버려 맞이했던 첫번째 남편.



신랑은 무식하고 교만했다. 나는 여직껏 자기의 무식과 자기의 돈에 그렇게 자신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자기 외의 딴 사람의 삶에 대한 상상력이 철저하게 막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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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먹고 건강했는데도 나는 아기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시앗을 보았고 나는 시집을 떠났다. 남의 집에 들어와 애 하나 못 낳는 주제에 시앗 좀 봤다고 시집을 아사는 년이 그게 어디 성한 년이냐고 시집 식구들은 욕을 했지만 나는 그렇게 했다.

이혼이란 확실히 결혼보다는 경사스러운 일이 못 되지만 나는 그 일을 내가 선택했고, 내가 생전 처음 어떤 선택을 행사했다는데 기쁨마저 느꼈다. (p.59-60)




둘째 남편은 그녀 스스로 택한 남편이었다. 지방대학 강사였고 지방 신문에 칼럼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그 글들이 참 좋았던 거다. 돈이나 명예나 하는 것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닌 터라 반했던 것. 그래서 그와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곧 내가 속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그는 겁쟁이이고 비겁하고 거짓말쟁이였다. 순 엉터리였다. 그의 본심은 돈과 명예에 기갈이 들려 있었고 T 시와 T대학 강사 자리를 지긋지긋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이런 곳에서 썩긴 너무 아까운 존재라고 억울해했고, 서울의 일류 대학에서 자기의 명성을 흠모하고 모시러 오지 않는 것에 앙심을 품기도 했다. 그의 명성에 대한 자신이란 것이 또 사람을 웃겼다. 자기의 전공 공부에는 게으르고 자신도 없는 주제에 잡문 나부랭이나 써가지고 지방 신문을 통해 매명賣名을 부지런히 해쌓는 것으로 그런 엉뚱한 자만을 갖는 것이었다. 더욱 웃기는 것은 그는 그의 글을 통해 결코 도시 돈 명예에 대한 그의 절실한 연정을 눈곱만큼도 내비치는 일이 없이 늘 신랄한 매도를 일삼는다는 거였다. 도저히 구제할 수 없이 비비 꼬인 남자였다. (p.61-62)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어떤 남잔지 알겠는 건 왜때문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특히나 글쓰는 남자를 싫어라 하는 이유인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박완서님 만세입니다.


자, 그러면 세번째 남편은 어떤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세번째 남편은 돈에 환장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남자였고, 여자는 위선적인 것보다 그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징그러..징그러운 것이다. 징그러...




"거 참 잘됐구려. 오래간만에 나가 바람 좀 쐬고 와요. 사람은 그저 사람을 많이 알아놔야 되는 거야. 다 써먹을 데가 있다구. 있구말구. 줄이나 빽이 별건가. 그렇구 그런 거지. 당신 동창 중에라도 재벌이나 고관 사모님 없으란 법 없잖아. 하다못해 세리稅吏 마누라라도 있어봐. 그게 어디게."

공현히 흥분해서 눈을 번쩍이고 삿대질까지 했다. 그러곤 엄숙하게 덧붙였다.

"어떡허든 우리도 한밑천 잡아 한번 잘살아봅시다."

나는 울컥 징그러운 생각이 났다. 그러곤 아아, 아아,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남편을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건 아주 나쁜 징조였다. 더 나쁜 것은 숨가쁘게 아아,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첫 남편과 헤어질 때고 그랬었고, 두번째 남편과 헤어질 때도 그랬었다. 남들이 알기로는, 내가 첫 남편과 헤어진 것은 애를 못 낳아서 쫓겨난 것으로, 두번째 남편과 헤어진 것은 그까짓 일부종사 못한 팔자 두 번 고치나 세 번 고치나지 하는 팔자 사나운 헌 계집이면 으레 그렇게 하는 빤한 소행쯤으로 되어 있을 터였다. 내가 겪은 아아 징그럽다는 아무도 모른다. (p.48)



아아, 그러나 제가 알겠습니다, 그 징그러움. 아마 다른 많은 여자들도 그 징그러움을 알 것 같습니다, 박완서 님이여..



이 세번째 남편은 참... 꼴보기 싫은데(다른 남편들처럼) 조금 더 옮겨보겠다.




그의 눈은 의욕 과잉으로 핏발이 서 있었고, 몸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마디로 눈부셨다. 그는 나도 자기의 손발처럼 덩달아 바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잘 되지를 않았다. 나는 그의 분망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아홉시에 중요한 용건으로 만날 사람이 있으니 서둘러야겠다고 시계를 골백번도 더 보면서도, 별로 급한 것 같지도 않은 전화를 몇 통화씩 거는가 하면, 통화중인 곳에는 욕지거리를 해가면서도 끈질기게 돌리다가 아홉시를 삼십 분도 못 남겨놓고서야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를 질러대면서 옷을 주워입고, 내가 골라주는 넥타이를 마땅찮아하고, 다시 고른 것도 또 신통찮아하고, 거듭거듭 그 짓을 하면서 그는 교묘하게 자기가 이렇게 늦고 만 것이 마치 내 탓인 것처럼 뒤집어씌웠다. 그리고 겨우 고른다는 게 내가 처음 골랐던 것을 다시 고른 것도 모르고 만족해하다가, 다시 시계를 보고는 불난 집을 뛰쳐나가듯 곤두박질을 치면서 뛰어나갔다간 오 분도 안 돼서 숨이 턱에 닿아서 되돌아와서 중요한 서류를 잊고 나갔다고 찾아내라고 고함을 쳐댔다. 그럴 때 만약 내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보관했던 서류를 단박에 첫째 서랍에서 꺼내주면 도리어 남편은 나를 핀잔주려 들었다. 답답하다느니 안차고 다라지다느니 하면서. 그런 핀잔을 듣지 않으려면 나도 덩달아 "어머머, 큰일났네. 이 일을 어쩌누. 글쎄 그 서류를 어디 뒀드라. 에구구 …… 내 정신이야"하며 하던 일을 내던지고 뱅뱅 맴을 돌며, 발을 구르며 이 서랍 저 서랍 날쌔게 빼보고, 말을 안 듣는 서랍을 냅다 빼동댕이치며, 콩 볶듯이 날뛴 끝에 서류를 찾아내야만 했다. (p.45-4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서류를 어디 뒀드라. 에구구 …… 내 정신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소설이 쓰여진 게 1974년이다. 남편이 아니라면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가 힘들었을 것. 소설 속 여자는 행복해지고 싶고, 돈을 부족함없이 쓰고 싶어서 다시 결혼을 선택해 여기까지 온거다. 그러나 지금 남편도 너무 징그럽다. 그래서 거울을 보지만, 이제 다시 결혼하기엔 너무 늙어버렸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은 이렇게 남편 얘기만 하다가 끝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 내용이 이렇게 진행되어 이렇게 끝나지, 하게 되는데, 박완서가 그려내는 남편들의 모습이 전혀 낯선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재미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은 바로 전에 실린 단편속 주인공과 달리 나이들어서까지 혼자 사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녀에게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녀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 그러나 전문의가 아니라서 동네 어디쯤 자리를 잡고 주로 소파수술과 성병치료를 하는 산부인과를 개업했다. 이 소설은 1980년의 소설이고, 주인공 역시 강간을 당해 낙태한 경험을 갖고 있는 걸로 되어 있다.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소파수술을 하게한 것. 한 자리에서 30년간 산부인과 의사로 일해오고 있지만, 그녀가 출산된 아이를 받은 건 처음 딱 한 번 뿐이고 지금까지 계속 소파수술과 성병치료만 해왔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치를 떨고 억울해 하면서 세상에 대해 보복하고 싶어한다. 친절하거나 다정한 것과 거리가 먼 성격의 여자인데, 그녀 스스로 그것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달까. 이제 병원 폐업을 앞두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아이를 한 번 받아볼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전히, 소파 수술과 성병을 치료하기 위한 여성과 포주들만 방문한다.

그리고 태반을 먹기 위한 동네 여자들과.




그런 여자들을 구경하노라면 진찰대에 치부를 얼굴처럼 쳐드는 자세로 누워 있을 때하곤 또 다르게 여자의 추악함이 그 극한까지 다다른 것을 보는 것 같은 잔혹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니까 여자들에게 남의 미숙한 태반을 먹이고, 그 비릿한 입으로 음담을 지껄이게 하는 것도 내 나름의 여자들에 대한 박해의 한 방법이었다. 증오로써 할 수 있는 일 중 박해처럼 자연스러운 일도 없다. 이렇게 끊임없이 나는 내가 여자이기에 받은 치가 떨리는 박해의 기억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남에게 분배함으로써 나만의 억울함을 덜어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덜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남을 비참하고 추악하게 만들어놓고 비교해도 역시 내가 더 비참하고 추악했다. (p.143)




나는 자신에 대한 어떤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왜 나는 내가 이렇게 이해할 수 없어지나? 자기로부터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해할 수 없는 거동이나 기색을 보일 때 기분이 더 나빠진다. 하물며 자기 자신에 있어서랴. 하긴 그 우스꽝스러운 날림 결혼식 구경을 하면서 느닷없이 살아 있는 완전한 아기를 받아보고 싶단 생각을 품기 시작하고부터 나는 나로부터 떨어져나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따지지 말고 내버려두자고 벼른다.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분리되는 수은처럼 자신이 산산조각날 것 같아 나는 두렵다. (p.140-141)




이 책에 실린 열편의 단편중 나는 아직 네 편의 단편밖에 읽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이 너무 인상적이다. 뒤에 실린 이야기들은 또 어떤 이야기들일까.

아직 내가 읽지 않은 박완서의 작품이 많다는 게 너무 좋다. 제대로된 한국어로 쓰여진 짜릿한 맛을 느낄 생각을 하니 너무 좋은 거다.




지난 설연휴에 친구와 만나 닭도가니탕을 먹으러 갔었다. 삶아진 닭과 죽이 함께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데, 그릇 가득 녹두가 담겨있었다. 노란빛이라고 하기에도 적절하지 않고 연둣빛도 아닌, 그 색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녹두를 모르는 사람에게 녹두를 설명하자면 노란 것보다는 빛이 바랬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흐린 노랑? 그러나 녹두를 아는 사람에게는 녹두색, 이라고 하면 금세 떠올릴 수 있을테다.

내가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좋아하는 데는 바로 그 이유가 있다. 녹두색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그걸 알아들을 수 있는 바로 그 지점.





대기실과 상담실을 겸해서 넓고 쾌적하게 꾸며진 방의 남으로 난 창가에 아직도 우단의자는 놓여 있다. 그 의자는 허구한 날, 내 눈에 거슬렸던 것처럼 오늘도 눈에 거슬린다. 손으로 우단천을 결과 반대방향으로 쓸면 다 바랜 잿빛 속에서 밝은 녹두색이 살아난다. 그 녹두색은 삼십 년 전의 쑥색의 잔재다. 그 의자는 쑥색이었을 적에도 녹두색이었을 적에도 잿빛이 된 후에도 나의 병원과는 안 어울렸다. (p.138)



위의 문장을 읽는데 너무 좋은 거다. 쑥색이라니, 녹두색이라니. 그리고 잿빛. 역시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문장이 다 쑥쑥 들어와.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정말이지, 아 이맛이야~ 이러면서 읽을 수 있다니까?


좋다. 좋아.



아 할일이 많은데, 그래서 어제도 요가하면서 내내 '내일 뭣도 해야 하고 이것도 해야하고' 하면서 일 생각했는데, 왜 회사 나오니까 책에 대한 얘기만 하고 있는가. 어쨌든 책에 대한 얘기를 이렇게 하였으니, 이제 페이퍼쓰기를 마치면 점심식사에 대한 생각을 하는 걸로 하겠다. 뭐먹나..








창녀의 사타구니와 정숙한 여자의 그것과를 감히 비교하는 것은 정숙한 여자에겐 모독이 되겠지만 나는 다만 외관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상식적으론 창녀의 것은 더럽고 정숙한 여자의 것은 깨끗한 걸로 돼 있지만 육안을 통한 관찰에 의하면 그와 정반대다. 어떤 창녀의 그곳은 거의 백치의 얼굴처럼 청결하다. 그러나 자기의 그곳이 가장 정숙하다고 믿는 여자일수록 그곳의 불결에 파렴치하다. 그것은 마치 뉘 집에서나 응접실이 가장 깨끗한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그 가을의 사흘 동안>-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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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박완서 작가님 소설책을 일곱 권이나 모아놓고 한 권도 안 봤네요. 스스로도 깜짝 놀람ㅎㅎㅎ.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니 읽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0-02-05 08:41   좋아요 1 | URL
우와 대박. 일곱 권이나 모아놓으셨다뇨!! 이제 읽는 일만 남았네요.
저도 사놓고 안읽은 책이 너무나 많지만, 나중에 읽을 책 많아지니 좋다..라는 긍정적 마인드를 자꾸 끼워넣으며 살고 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님은 아무때고 내킬 때 읽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ㅎㅎ

slobe00 2020-02-04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완서님은 드물게도 남편과 제가 공통적으로 애정하는 작가님이셔요^^
저도 역시나 번역서 비중이 높다보니 외국어 좀 잘했음 하는 마음도 불쑥불쑥~

다락방 2020-02-05 08:41   좋아요 0 | URL
저도 번역서를 많이 읽고 그래서 원서로 읽고 싶은 욕심에 방통대 영어영문학과에 편입했다가..한학기 다니고 자퇴했지요. 공부는 내 길이 아닌것임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2-04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박완서 작가님 글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다락방 2020-02-05 08:42   좋아요 1 | URL
쟝쟝님도 읽어봐요!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