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차례 얘기했지만 나는 어릴적부터 미국에서 그것도 뉴욕에서 살고 싶었다. 평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인생의 얼마만큼은 뚝 떼어내어 뉴요커가 되어보고 싶었다. 물론 내가 그리는 뉴요커로서의 나는 좋은 집에 살고 돈이 많아야 했다. 가끔은 친구들을 불러 맛있는 음식을 차려내고 깔깔대고 웃는 삶, 아침이면 분주히 직장으로 이동하며 한껏 세련되게 차려입고 직장에서는 프로페셔날하게 일하는 나.. 를 꿈꾸었던 거다. 어릴적엔 당연히 그게 가능할거라 믿었고 나이들수록 그건 좀 더 먼 훗날로, 조금 더 나중에로 미루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뉴욕에 단지 여행객으로, 방문자로만 세차례 방문했다.


작년 2019년 여름, 나는 세번째 뉴욕을 방문했을 때에야 내가 뉴욕에서 '살고싶다'고 생각한 것이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서 설사 살 수 있다 해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형태로 살아지는 삶은 아닐 거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 내 꿈은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나는 이곳에서 거주할 순 없겠구나, 이곳에서 거주한다는 것은 나에게 빈곤을 안겨다 주겠구나, 나는 내가 그동안 꿈꾸던 모습으로도,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으로도 살 수 없겠구나, 하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거다.



쉽게 말하면 한국에서는 바깥에 적혀진 메뉴의 가격만 보고도 내가 얼마를 소비할 수 있는지가 예측 가능하다. 자, 돌솥비빔밥이 1만원이라고 써져있다면, 나는 들어가서 1만원을 내고 나올 것이다. 좋아, 내 지갑에 지금 1만5천원이 있으니, 소주도 한 병 마시자, 까지가 된다. 소주까지도 가능하겠어. 그렇게 나는 식당에 들어가 돌솥비빔밥과 소주를 시켜 맛있게 먹고는 당황하지 않고 계산을 하고 나올 수가 있다.


그러나 뉴욕에서라면 그것이 불가능하다. 돌솥비빔밥이 1만원이라고 바깥에 써져있고 내 지갑에 15,000원이 들어있다면, 나는 마음 놓고 그곳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일단 들어가서 돌솥비빔밥 하나를 시켜놓고 먹으면 나중에 계산서에 거기에 세금이 붙고 팁이 붙는다. 팁을 적힌대로 주지 않는다고 나를 잡아가지는 않겠지만, 만원 예상하고 들어갔다가 내가 얼마를 쓸 지 알 수 없다는거다. 다만 만원을 훌쩍 넘기는 돈을 쓸 거라는 것, 그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그걸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만원짜리에는 세금이 얼마 붙고 팁이 얼마 붙을 거라는 것을 계산해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함없는 것은, 만원이라고 써진 메뉴를 보고 만원 있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 만원짜리 메뉴를 보고는 만원이상을 가져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 나는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여행객으로서의 나는 친구와 함께 좋은 레스토랑에 들러 스테이크를 먹었다. 친구와 나는 스테이크를 몹시 좋아해서 스테이크를 시켰고, 사이드로 시금치와 샐러드를 시켰다. 좋은 와인도 한 병 주문했다. 우리가 그날 먹은 저녁 한끼에만 30만원 이상을 썼다. 또 어떤 하루에는 친구가 평소 가보고 싶었다던 유럽식 레스토랑엘 가서 샐러드와 스파게티와 라자냐를 먹었다. 역시 훌쩍 돈이 깨졌다. 팁까지 챙겨주고 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아침으로 먹은 프렌치 토스트는 정말 맛있었고 양이 많았다. 핫케익에 메이플 시럽은 얼마나 맛있던지! 그러나 아침을 먹고서도 역시 세금이 붙고 팁을 줘야했다.


나는 과연 여기에서 생활인으로서 살 수 있을까?

그러니까 만약 내가 여기에서 '살기'를 선택한다면 나는 지금 먹었던 것을 앞으로도 계속 먹고 살 수 있을까?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병으로 시켜두고 각자 원하는 사이드를 추가로 주문해 먹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뉴욕에 여행객으로 잠깐 방문해 하루에 30만원 이상하는 호텔에 묵고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걸 먹으며 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20년을 일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호텔을 예약하고 미술관에 가고 와인을 병째 주문해 마실 수 있는 것은, 내가 여기에서 20년을 일해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며 그 경력에 맞게(사실은 그보다 적게) 돈을 받고 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내가 만약 갑자기 훌쩍 미국으로 오게된다면 내가 여기에서도 '차장'으로 대우받으며 살 순 없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게다가 언어도 통하지 않으니 아마 아주아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었다.



물론 내가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디에 살아도 굶어죽을 사람은 아니다. 나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고 꾸준한 사람이고 한결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것, 성실히 일해서 굶어죽지 않는다는 것이 '잘 산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휴가때면 비행기를, 호텔을 예약하는 삶을, 미국에서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포기해야 할 것이었고, 게다가 좋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먹고싶은 걸 주문하는 삶 역시 불가능해질 것이었다. 나는 뉴욕의 호텔에 머무르며 이곳의 숙박비가 얼마나 비싼지 체감했다. 좋은 호텔이 아닌데도 그랬다. 아마 거주비로도 많은 돈이 나가겠지. 나는 마트에서 일할 수도 있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수도 있고 청소를 하면서 돈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몸이 고단할 정도로 열심히 돈을 벌어도 오늘 하루 집값을 내고 세탁을 하고 밥을 사 먹으면 내일 또다시 돈이 없을 것이었다. 호기롭게 좋은 레스토랑에 가는 삶이 불가할 것이었다. 결국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라면, 나는 내가 살아온 곳에서 살아가야 했다. 내가 일한 시간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곳에서.



















나는 내가 만약 갑자기 미국에서 살게된다면 가난해질 거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가난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의 구체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내가 이 낯선 땅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맞이하게 될 가난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구체적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그저 여행을 못다니고 와인을 병째 주문하지 못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린다 티라도'는 《핸드 투 마우스》에서 말해준다. 빈곤은 단지 그런 게 아니라고. 원하는 걸 먹지 못하는 것,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빈곤하다는 것은 나쁜 소비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나쁜 소비라는 걸 알면서도, 그 나쁜 소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을 말한다. 린다 티라도는 토스터기로 예를 든다.




좋은 품질의 물건은 처음 살 때 돈이 든다. 장기적으로 보면 좋은 토스터기를 사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 하지만 그 좋은 토스터기라는 것이 지금 30달러고 제일 후진 토스터기가 10달러라면, 얼마나 자주 토스터기를 교체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10달러짜리가 답이다. 왜냐하면 난 10달러밖에 없으니까.

돈을 아끼기 위해서 사실은 돈이 더 드는 것이다. (p.183-184)




고백하자면 나는 저 나쁜 소비에 대해 알고 있었고 또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항상 속으로 답답해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싸구려를 계속해서 많이 소비해 결국 비싸고 좋은 걸 소비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쓴 금액에서 차이가 안나는 거다. 그런 소비는 롱패딩에서도 나타났고, 신발에서도 나타났다. 가전제품으로도 마찬가지. 싼 게 비지떡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부러 싼 걸 사고 결국 금세 낡고 고장나고 따뜻하지도 않아서 다시 하나를 또 사야 하는 것.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결국 좋은 거 하나 사는 돈을 훌쩍 넘는 돈을 쓰게 되는 거다. 왜그러지? 롱패딩 같은 거는 그냥 하나 좋은 거 사면 되잖아? 린다 티라도가 예로든것처럼 토스터기도 그렇다. 그냥 좋은 토스터기 하나 사서 잘 사용하면 되잖아? 왜 10달러 짜리 사서 나중에 또 사고 나중에 또사고 사용하다가 스트레스 받고 빡치고... 왜 돈을 써놓고도 스트레스를 받아야하지?

물론 나 역시도 그런 소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린다 티라도가 저렇게 토스터기에 대해 얘기해줄때야 비로소 내가 빈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라서가 아니었다. 몰라서 당장 눈앞의 10달러짜리 토스터기를 사는 게 아니었어. 30달러짜리가 스트레스도 없고 장기간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것도 알았지만, 지금 30달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설사 30달러를 가지고 있다 해도 토스터기 하나에서 고민하는 삶이라면 다른 생활용품에 대해서라면 어떻겠는가. 아마 토스터기에 쓸 돈을 피자 한 판 주문하는데 보태 쓸것이다, 빈곤한 삶이라면.



10달러짜리보다 30달러짜리를 사는게 더 효율적이고 정신건강에도 좋을 거라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10달러짜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 그게 빈곤이었다.


나는 내가 만약 지금 거주지를 뉴욕으로 옮긴다면, 바로 이런 빈곤속으로 빠져들겠구나, 생각했다. 단순히 먹고 싶은 걸 못먹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명하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런 빈곤속으로 빠져들게 될거야.



린다 티라도가 이렇게 빈곤한 것이 그녀가 성실하지 않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그녀는 일자리를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투잡을 하는데도 병원도 가지 못하고 하나의 일자리를 혹여라도 잃을까 전전긍긍 해야한다. 최저임금만 받아서는 생활이 불가했다. 당장 방값내고 밥한끼 먹는 것으로 가진 돈을 전부 써야 했다. 빈곤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복지도 제대로 써먹을 수가 없었다. 복지를 적용해주는 보건소는 멀리 있었고 그나마도 찾아가면 심각한 증세에 있어서는 '전문의'를 찾아가라 한다. 푸드스탬프는 이중발급이라며 벌급을 물라하고(그건 린다 티라도의 잘못이 아니었다) 은행에서는 일정 잔고를 유지하지 못하면 수수료만 나갔다.


결국 그녀는 병원에 가는 것도, 완벽하게 나쁜 치아를 관리하러 가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빈곤하기 때문에 그녀는 견인된 차를 찾을 수가 없어 일자리에 걸어가야 했고, 일자리에 걸어가느라 체력이 딸리고 기진맥진해서 결국 일자리를 놓치기도 하고, 일자리를 놓치면 집에서 쫓겨나야 하고... 그러니까 빈곤이란 단순히 나쁜 소비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더 좋은 직업을 구하고 싶어도 면접을 준비할 시간과 돈이 없었다. 빈곤은 그저 빈곤에 머무르게 했다. 나쁜 근로조건이, 최저임금이, 나쁜 소비가 계속 빈곤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최근에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10억을 정기예금 들어둔 사람이 2프로의 낮은 이자율을 적용해도 1년이면 2천만원의 이자가 생기는 거였다. 그 사람이 10억만 정기해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고. 2천만원이 아무리 세전금액이라 해도, 사회초년생의 연봉에 맞먹는 돈이었다. 누군가는 아침일찍 일어나 만원지하철에 시달려 출근을 하고 퇴근때까지 직장에 묶여있다가 퇴근후엔 기진맥진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가며 벌 수 있는 돈이, 누군가에겐 그저 있는 돈을 묶어 두는 것만으로도 생겨나는 것이었다.




어제는 잠들기 전에 잠깐, 1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펼쳐 들었다. '케이시 윅스는 이 책에서 '다른 계급'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노동윤리는 헌신적인 생산과 절제된 부의 획들을 주문함으로써, 불충분한 보상을 받고도 열심히 일하는 한 계급과 저축으로 부를 축적하는 다른 한 계급을 낳았고, 이것이 초기 자본주의 발달의 기초가 되었다. (p.85)



모든 빈곤계층은 불충분한 보상을 받고도 열심히 일하는 계급에 다름 아니다. 부를 축적하는 계급과는 다른 계급.



케이시 윅스는 6시간 노동을 주장할 거라고 했다.






기본소득 요구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나면, 4장에서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분석하기 위한 길잡이를 얻게 된다. 4장에서는 임금 감축 없는 하루 6시간 근무 요구를 살펴볼 것이다. (서문, p.60)









바로 전에 읽은 《핸드 투 마우스》생각이 났다. 임금 감축 없이 그게 가능할까. 그게 가능해진다면 린다 티라도와 그의 수많은 동료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될까?


이제,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읽어야겠다.







바닥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빈곤 상태와 빈곤을 아주 살짝 벗어난 상태를 주기적으로 오간다. 때때로는 괜찮지만 때때로는 물 밑에 잠기는 것이다. 연도에 따라, 직장에 따라, 또는 건강에 따라 변한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계층 하락은 모래 늪과 같아서 한 번 빠지면 완전히 휩쓸릴 때까지 당신의 선택권을 계속 제한한다는 것이다. - P27

솔직히 말하면, 나는 힘센 특권층들이 솔직해지면 일을 하며 겪는 굴욕이나 비하는 마다치 않을 것 같다. 노동환경이 끔직하다는 것을 그들이 그저 인정해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들은 그러기는커녕 우리가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하며 일자리와 먹을 것과 머리 위에 얹힌 지붕에 감사하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참으로 비참한 일이지만 우린 진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그 모든 일과 비참한 노동환경에 대한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는 인정받지 못한다. 성취감이나 윗선에서의 존중 또는 고용안정 같은 것 말이다. - P61

일반적으로 건강과 가난은 양립할 수 없다. 신체적인 문제점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부자는 그러한 문제점이 걷잡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손을 쓸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은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다. 예방진료를 받을 수 있고 비타민과 헬스장 회원권을 살 수 있는 부자들이 가난한 우리를 그들 아래로 보는 것, 마치 우리가 자기 몸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 양 생각하는 것은 우리 가난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분노가 치미는 일이다. 우리는 안다. 다 알고 있다. 그저 돈이 없을 뿐이다. - P70

과한 관련한 주제에 대해선 내가 신뢰하는 잡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연구 논문에 의하면, 가난할 때 사람의 뇌는 그 능력이 실질적으로 저하된다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뇌의 너무나 큰 부분이 빈곤과 관련된 문제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일, 예를 들면 인생 같은 것에 쓸 수 있는 용량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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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21 1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임금 축소 없이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확대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충분한 근거를 찾지는 못 했지만요. 우리 돈, 우리 세금은 쓸데없는 곳에 너무 많이 쓰이고 있다고 믿거든요.
책표지는 무척이나 감각적인데 내용은 생각할 거리를 전해주는 책이네요.
<우리는...> 이 책과도 잘 어울리고요.
읽기 진도가 지지부진한테 다락방님 페이퍼 읽고 나니 전투력 만랩!!!!
잘 읽고 또 배우고 갑니다^^

다락방 2020-01-21 11:16   좋아요 3 | URL
저도 1월 도서가 안읽히던 참에 [핸드 투 마우스] 읽으니까 뭔가 자연스레 연결이 되면서 읽을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딱히 그거 읽으려고 고른 책은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핸드 투 마우스는 평이 좋은만큼 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는데요(전 막 좋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빈곤에 대해 무지했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과 환경을 잘 모르면서 답답해하기는 쉬운것 같아요. 반성반성.
아울러 케이시 윅스의 책도(제목이 너무 길어 자꾸 다른식으로 부르게 되네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의욕 뿜뿜합니다. 자, 갑시다. 고고씽!!

공쟝쟝 2020-01-24 11:37   좋아요 0 | URL
우왜오열 로 줄여 읽기 제안드립니다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1-24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핸드투마우스.. 소개해주신 글만 봐도 눈물이...(저에겐 서울이 뉴욕입니다..)

단발머리 2020-01-24 11:58   좋아요 1 | URL
핸드투마우스 같이 읽어도 좋을거 같아요. 전에 나눴던 이야기 생각나서, 저에겐 서울이 뉴욕입니다,가 너무 실감나네요~~~~

공쟝쟝 2020-01-24 12: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러게 말이죠 ㅋㅋㅋ 왜 서울와가지구 ㅠㅠㅠㅠ 토스터기... 좋은 후라이팬 하나 갖고 싶네요 ㅋㅋㅋ

다락방 2020-01-25 12:27   좋아요 1 | URL
쟝쟝님, 어제는 잘 쉬셨습니까. 저는 책 싸들고 까페로 나왔습니다. 집이 북적거릴 것 같아 나왔는데요. 오늘 다 읽고 들어갈 수 있을지..

핸드투마우스는... 읽다보면 또 가슴이 답답해져서... 어휴... ㅠㅠ
핸드 투 마우스는 우리 1월의 도서와 같이 읽기에 매우 좋은책임은 분명합니다.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