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을 읽으면서도 나는 [제2의 성]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여러차례 생각했다. 그 책을 반드시 완독해야 겠노라고. 시몬 베유가 자신의 연설에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에 대한 언급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언급을 많이 해서라기 보다는, 시몬 베유의 제2의성 언급이 어딘가 '흐음,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시몬 베유는 보부아르의 의견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 책은 분명 평등으로 가는데 영향을 미쳤다, 고 얘기하기 때문이었다. 그 책은 대단하지, 좋은 책이야, 그렇지만 내가 다 동의하는 건 아니야, 이런 식의 느낌. 그런데 시몬 베유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가 나로서는 좀 이해가 안됐는데, 시몬 베유는 보부아르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완전히 평등하다고 주장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같은 세대에 속한 많은 여성들처럼 저 역시 [제2의 성]을 읽고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을 위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참여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자연적인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토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여자아이들에게 아주 어린 나이부터 제공되는 교육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착된 스테레오타입에 의해 통용되는 이미지들이 양성 간의 행동 차이를 가지고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페미니스트건 아니건, 많은 여성들은 남성과의 차이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차이에 대한 권리 역시 주장합니다. 그들은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실제로는 여성의 수가 조금 더 많습니다만- 남성적 시각에 특권을 주지 않고 각자의 기대와 욕구가 고려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적합다하고 주장합니다.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p.340-341)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의 출간은 많은 것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정교하게 구상된 페미니즘의 개념을 발견했습니다. 권리의 완전한 평등을 단언하는 페미니즘일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자연적인 차이를 부정하는 페미니즘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주 어린 나이의 소녀들에게 주어지는 교육과 여성의 역할이 지닌 특수성에 대한 '진부함'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들만이 두 성별 간 차이들의 기원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우리는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성으로 만들어진다"라는 말을 인용할 때, 이 명제가 정 반대의 의미로 해성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페미니스트건 아니건, 많은 수의 여성들이 그들의 차이를 인정할 뿐 아니라 차이에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류가 절반의 남성과 절반의 여성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거나 혹은 여성이 조금 더 많이 존재하기를 바라며, 사회가 서로의 필요와 기대를 인식해주기를 원합니다. 남성중심적 시각이나 권리의 평등에의 집착을 버리고 말입니다.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p.318-319)
시몬 베유는 여성들의 권리가 남성들만큼 와있지 않다는 걸 알고 그걸 위해 연설하고 노력하고 행동한 사람이었다. 사회활동을 활발히 한 사람이기에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고용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도 누구보다 인식한 사람이었고. 그러니 당시에 유명한 보부아르의 책을 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을 텐데, 저렇게 연설때마다 응 그치만 거기엔 동의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게 왜그러는지 너무 궁금한거다. 시몬 베유가 보부아르 책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니라 잘 알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자연적으로도 차이가 없다는 건 인정할 수 없어!' 하는 건, 도대체 왜그럴까. 보부아르가 '남녀는 자연적 차이가 없다!'를 주장한걸까? 이게 계속 궁금했던 터다.
다행스럽게도 '그렇지않다'는 것을, 보부아르의 책 [제2의 성] 1권의 초반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보부아르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물학적 차이를 처음부터 인정하고 들어간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가 얼마나 다르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얼마나 다르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지를 먼저 얘기하고 들어간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그것이 남녀를 차별하는 당위가 될 수 없다'를 주장한다.
이런 복잡한 과정은 세부적으로는 아직 충분히 알 수 없지만, 유기체 전체에 큰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갑상선과 뇌하수체, 중추신경계통과 자율신경계통, 마침내는 모든 내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 분비 작용이 그 과정에 뒤따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여자들-85% 이상-은 이 기간에 어떤 증상들이 나타난다. 출혈하기 전에 혈압이 오르고 그 다음에는 내린다. 맥박수와 체온이 때때로 오르고, 열이 나는 경우도 빈번하다. 복부에 통증도 느낀다. 변비 다음에 설사가 따르는 경우도 자주 관찰할 수 있다. 또 간장비대,요폐,단백뇨의 증세도 자주 나타난다. 많은 여자들이 후점막의 출혈(인후통)을 보이고, 어떤 여자들은 청각,시각의 장애를 호소하기도 한다. 땀이 많이 나고, 월경 초에는 '특유한' 냄새를 수반하는데, 이는 아주 지독하기도 하고 월경기간 내내 지속되는 수도 있다. 신진대사는 증대하고 적혈구 수는 감소한다. 한편 혈액은 보통 조직 속에 저장되어 있는 여러 가지 물질, 특히 칼숨염을 운반한다. 이 염분은 난소와 갑상선에 작용하여 그것을 비대하게 만들고, 자궁 점막의 변화를 담당하는 뇌하수체에 작용해 그 활동력을 증가시킨다. 이와 같은 내분비선의 불안정은 신경을 몹시 약하게 만든다. 중추신경계통이 침해되어 자주 두통이 일어나고, 자율신경계통은 과도한 반응을 나타낸다. 중추신경계통의 자동 조정력이 감퇴되기 때문에 반사 운동과 경련이 일어나 아주 심한 불안정을 나타낸다. 여자는 평소보다 민감해져서, 신경질적이 되고 쉽게 흥분하여 심한 정신장애까지 일으키는 수도 있다. 이때는 여자가 자기 몸을 소외된 불투명한 이물처럼 느끼고 가장 고통을 받는 시기이다. 여자는 자기 체내애서 매달 요람을 만들었다가 부수는, 집요하고 인연 없는 생명의 희생물이다. 달마다 한 어린애를 낳을 준비를 하고 빨간 주름의 붕괴 속에서 유산을 한다.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그 육체는 자기의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육체는 그녀 자신과는 별개의 것이다. (1권, p.58-59)
이런 다양한 특징들의 대부분은 종에 대한 여자의 종속에서 유래함이 분명하다. 이제까지의 검토에서 가장 명백한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여자는 모든 포유동물의 암컷들 가운데에서 가장 심각하게 소외되고, 또 이 소외를 가장 치열하게 거부하고 있다. 다른 어떤 암컷의 경우에도 유기체의 생식기능에 대한 종속이 이 이상 절대적이고, 순순히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도 없다. 사춘기와 폐경기의 위기, 달마다 겪는 '저주', 어려움도 많은 기나긴 임신, 고통스러우면서도 위험한 출산, 질환, 신체 고장. 이것이 인간 여성의 특성이다. 여자가 개체로서 자기를 주장하여 자기 운명을 거스룰수록 운명은 더욱 무거워진다고 할 수 있다. 남자는 여자에 비하면 무한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남자의 성생활은 그가 영위하는 개인생활과 모순되지 않는다. 개인생활은 중단이나 위기도 없고, 또 일반적으로 재난도 없이 순조롭게 전개된다. 평균적으로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오래 산다.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보다 훨씬 자주 병을 앓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기간도 길다. (1권, p.62)
여자는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닌 자신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많은 것들에서 중단된다. 중단을 원치 않았으나 중단되는 경험, 원하지만 하지 못하게 되는 경험. 그러나 남자에게는 신체적인 이유로 개인사에서 중단될 위험이 없다. 제2의 성 제1편 <운명> 부분에서 보부아르는 남녀의 이런 신체적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자가 생리를 하고 출산을 하고 이 모든 과정에서 신체적으로 남자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이내 덧붙인다.
이 같은 생물학적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이 조건은 여성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며, 여자가 처한 상황의 본질적인 구성요소이다. 이후의 서술에서도 우리는 부단히 이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는 우리가 세계를 파악하는 도구이며, 세계는 그 파악 방법에 따라서 서로 다른 양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토록 오래 생물학적 조건을 검토했던 것이다. 이 조건은 여자를 이해하는 열쇠 가운데 하나이다. 다만 우리가 거부하는 것은 생물학적 조건이 여자에게 주어진 불변의 숙명이라는 생각이다. 이 조건만으로는 남녀의 상하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또 여자가 왜 타자인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만으로 여자에게 종속적인 역할을 영구히 담당하도록 운명지을 수도 없다. (1 권, p.67)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상하관계를 이루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 보부아르는 그것을 잊지 않고 말하고 있는 거다.
자, 계속 보자.
여자는 남자보다 약하다. 근육의 힘도 적고, 적혈구도 적고, 폐활량도 적다. 여자는 남자 만큼 빨리 뛰지도 못하고, 무거운 것도 들지 못한다. 어떤 스포츠에서도 남자와 경쟁할 수 없다. 싸움에서도 대전할 수 없다. 이런 약점에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불안정성과 통제의 결여, 허약점이 겹친다. 이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세계에 대한 여자의 파악은 남자보다 제한되어 있다. 여자는 온갖 계획에서 남자보다 의지력과 인내력이 약하고, 실행력도 약하다. 즉 여자의 개인적 생활은 남자만큼 풍부하지 못하다.
실제로 이런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육체를 실존에 의거하여 규정한다면, 생물학은 추상적인 학문이 된다. 생리학적 조건(근육의 열등함)이 의미를 가질 때, 그 의미는 곧 전체적 배경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 '약함'은 인간이 스스로 정한 목표나 사용하는 기구,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법칙에 비추어서만 비로소 약함으로써 나타난다. 만약 사람이 세계를 파악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사물에 대한 '파악' 의 개념 자체가 의미를 갖지 못하 것이다. 세계의 파악을 위해 체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필요가 없다면, 즉 자신이 갖고 있는 체력만 활용해도 충분하다면, 체력의 차이는 해소된다. 폭력을 금하는 풍습이 있는 곳에서는 완력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다. (1권, p.65)
신체적이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보부아르가 이 책을 썼을 당시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지금의 여자들은 근육의 열등함의 차이를 이전보다 덜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만큼 근육을 훈련시키는 여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근육을 훈련시키는 여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여자들은 안그래' 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분명 보부아르가 이 책을 썼을 당시보다는 그 차이가 적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보다 의지력과 인내력, 실행력이 약한 것은 지금과 아주 많이 다르다. 이건 시기적 차이이고 그 때보다 여자의 사회적 역할이 좀 더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테지만, 정신에 관한 부분 그리고 의지에 관한 부분에서라면 나는 오히려 여자가 남자보다 지금은 훨씬 높은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러나 보부아르가 이 책을 쓸 당시만 해도 여자들의 활동이 많이 제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정신력과 의지력을 보여줄 기회가 적었으리라 생각한다. 보부아르 말에 따르면 '개인적 생활은 남자만큼 풍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약 같은 사회활동이 주어졌다면 이 의지력이나 인내력 부분에서만큼은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리라.
어쨌든 보부아르는 그렇다한들 이런 차이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폭력을 금하는 풍습이 있는 곳에서는 완력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니까.
보부아르가 주장하는 것은 이런 생물학적 차이가 여자를 타자로 규정하는 것의 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 이런 차이 있지. 그런데 왜? 뭐? 이게 남녀가 평등하지 않는 일의 답이 된다고 생각해? 아니잖아?
생물학은 "왜 여자가 타자(他者)인가?" 하는 우리의 질문에 답변을 줄 수 없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자의 자연적인 본질이 어떻게 파악되어 왔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인류가 여자를 어떤 존재로 만들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1권, p.67)
나는 제1편 운명을 읽으면서 보부아르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해 인정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여성을 타자화 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보부아르는 여자와 남자가 신체적으로도 똑같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몬 베유는 왜 저렇게 생각하고 언급을 하는걸까? 내가 아직 1편 밖에 안읽었기 때문에 전체 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걸까? 1편은 이 책에서 아주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
아니 그러니까, 1권만 해도 1부와 2부가 있고(ㅠㅠ) 1부에도 제1편, 제2편, 제3 편... 이 있다니까 ㅠㅠ 나는 이제야 이 1권의 532페이지에서 100 페이지까지만을 읽었을 뿐이다. 이십프로 읽었네요.. 많이 읽은건가.. 아니 어제 그렇게 읽으려고 애를 썼는데 참 여러가지가 나를 도와주지 않았지. 1,2권을 놓고 보면 10프로...
남은 부분들을 읽어보면 시몬 베유가 왜 보부아르에 대해 저렇게 언급했는지 알게될까? 아니면 시몬 베유가 잘못 파악한걸까? 나는 어제 보부아르의 글을 읽으면서 연신 갸웃했던 거다. 시몬 베유가 왜그랬지? 하고. 그러니 계속 읽어볼 참이다. 읽다 보면 또 무언가 답이 나오겠지.
그나저나 보부아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만큼의 책을 읽고 얼만큼의 공부를 한걸까.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과 제2의 성이 있는 풍경)
오후에 침대에 앉아서 책 읽다가 졸면서 헤드에 뒤통수를 박아버렸고... 그래서 잠을 자버렸는데... 잠이 너무 달콤하고 깊이 들어서 몇 시간 뒤에 잠에서 깼어도 일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어제 페이퍼에다 '내일 페이퍼 쓸거다' 라고 말한 게 생각나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페이퍼를 썼다. 이제 다시 자러 가야지..라지만, 낮잠을 그렇게 자고 잘 수 있을까? ( ")
나 이제 추리소설 읽을거야.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