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이맘때 쯤 이 책의 상권'만' 완독했었다. 완독이라는 말은 적합한 단어는 아니다. 하권은 시도하다 말았으니까. 어제 이 책을 읽으려고 펼쳤는데 으으 그 글자들의 촘촘함과 이 책의 두께와, 이미 한 번 읽었기 때문에 결코 읽기 쉽지 않은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터라 읽기 싫다...


읽기 싫다

읽기 싫다


이 마음이 오천번쯤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갔다 했다. 하아, 이번 도서만 완독하지 말까, 이번 도서는 포기할까, 하는 약한 생각도 수없이 반복했다. 여태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를 제 때에 완독해왔었는데,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은.. 이번 한 번만은 그냥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러나 나의 동지들은(아, 동지들이여!)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북플에 올리자마자 이런 알은척을 해주는 것이었다.




아아, 여러분, 내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읽고있어요 올리니까 여러분들 이렇게... 여러분.. 흑흑 ㅠㅠ




어제 이 책을 읽어야지, 꺼내놓고 너무 읽기 싫고, 스콘은 너무 먹고 싶어서... 이 책을 싸들고 스콘 먹으러 나갔다. 스콘을 먹고나면 기운 내서 읽을지도 모르잖아. 게다가 이상하게 독서는 까페에서 잘되지 않나요, 여러분? 그렇게 동네 스타벅스로 가 스콘과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아아, 우리 동네 스타벅스는 도서관이다. 한 자리 남아 간신히 앉았는데,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책 읽는 사람, 아마도 과제를 하는 사람, 놋북을 펼쳐녹고 뭔가를 막 다다다닥 치는 사람... 아무튼 나도 그중에 한 명이 되었다.





플레인 스콘 먹고 싶었는데 남은게 초코 스콘 뿐이라서.. 힝 ㅠㅠ 어쨌든 초코 스콘 시켜서 딸기쨈도 돈 주고 사먹었는데. 으하하하하하. 초코 스콘에 딸기쨈은 비추. 여러분 초코 스콘만 먹어도 됩니다. 딸기쨈까지 쳐발쳐발하지 마삼.. 아무튼 독서대까지 가져가서 책 읽으며 스콘을 맛있게 먹는데, 저기 스벅 봉투에 머핀 있는 건 비밀..

그렇게 호텔 뒤락을 다 읽고 제2의 성을 읽어보자, 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픈 거다. (응?)


나는 갈등한다. 이렇게 싸들고 왔는데 집으로 갈것인가, 스벅의 화장실에 갔다 올것인가.. 그러나 배아픈 것은 집이 제일 편안한 것을. 아아 점점 더 배가 아파온다. 나는 모든 짐을 다시 후다닥 싸가지고 집으로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국을 만나는 것이다. 네...



아무튼지간에 그리고 다시, 힘겹게 제2의 성을 집어든다. 와, 재작년에도 내가 페이퍼 쓰면서 보부아르 천재인가요 생각한 적 있는데, 어떻게 이 많은 남자들의 말을 다 이 안에 넣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떠올린걸까 메모해둔걸까. 뭐가 됐든 자신이 쓰고자 한 책에 이 많은 것들을 다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녀가 이 많은 남자들의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 뜻한다. 대단하다. 그뿐인가, 보부아르는 신화에서도 많이 가져온다. 나는 덕분에 다시 저 안에 잠들어있던 [그리스 로마 신화사전]을 꺼내와서 펼쳐 들어야 했다. 어휴.. 보부아르를 읽는 일은 이렇게나 어려워.





프롤로그만 읽고 다운돼서 뻗으려다가, 조금만 더 읽자, 하고는 제1편의 제1장 <운명>을 조금 읽었다. 요 꼭지는 다 읽고 싶었는데 기운 딸려버림..


자, 프롤로그에 있던 숱한 남자들의 말을 가져와본다. 이 남자들이 유명한 남자들이었고 권위를 가진 남자들이었기에 이 남자들이 한 말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또 다른 남자들이 여자를 무시하는 근거가 되었을지를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어떤 질적인 '결여'때문에 여성이다. 우리는 여자들의 본성에 타고난 결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된다." 그리고 성 토마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이어받아, 여자는 '불완전한 남자'이며 '우발적인' 존재라고 단정했다. 보쉬에(프랑스 주교 ·신학자 ·설교가. 디종 태생. 1627-1704)의 말에 따르면, 이브가 아담의 '여분의 뼈' 하나로 만들어졌다고 전하는 '창세기'의 이야기는 여자의 불완전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인간은 남성이고, 남자는 여자를 여자 자체로서가 아니라 자기와의 관계를 통해서 정의한다. 그들은 여자를 자율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미슐레(19세기 프랑스 대역사가. 1798-1874)도 '여자, 상대적인 존재 ……' 라고 썼다. 방다(프랑스 철학자 ·비평가. 현대문학 경향에 대한 지적 전통의 수호자. 1867-1956)도 《유리엘의 보고》에서 '남자의 육체는 여자의 육체와의 의미를 제외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여성의 육체는 남성의 육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남자는 여자 없이도 생각할 수 있지만, 여자는 남자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확언했다. 말하자면 여자란 남자가 규정짓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프랑스에서 여자를 '섹스(性)'라고 부르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본질적으로 성적인 존재로 봄을 뜻한다. 남자에게 여자는 섹스이다. 여자는 남자와의 관계에 따라 한정되고 달라지지만, 남자는 여자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 여자는 우발적인 존재이다. 여자는 본직적인 것에 대하여 비본질적인 것이다. 남자는 '주체'이고 '절대'이다. 그러나 여자는 '타자(他者)'이다. -프롤로그, p.18-19





'방다'가 한 말은 너무 잘못됐다. 남자는 여자 없이도 생각할 수 있지만 여자는 남자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니. 남자가 무슨 여자 없이 생각할 수 있어, 여자 생각밖에 안하잖아. 그것도 인간 여자가 아닌 성적대상화된 여자. 얼마나 성적대상인 여자를 생각하냐면 화장실에 카메라 설치해 몰카도 찍어야 하고, 섹스 중에도 그걸 촬영해서 유포해야 하고, 여자 닮은 인형까지 사서 섹스를 하려고 하잖아. 너무 여자여자한 삶을 사는 거 아니냐, 진짜. 아 토나와..

그에 비해 지금의 여자들이라면 남자 없이 살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고 있는가. 게다가 최전방에 있는 여자들은 비혼과 비섹스 비연애까지 주장하고 있다. 코르셋을 벗어던지고자 하는 여자들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험한 욕을 하는 남자들을 보노라면, 남자는 여자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 생각을 안할까봐 쪼그라든 가엾은 존재로밖에 안보인다.



프롤로그에서 보부아르는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남자들의 말을 이렇게나 쏟아내고 있는데 앞으로 나올 것들은 어떨까. 생물학적 조건과 정신분석적 견해에 이르면 우수수 이것보다 더 쏟아지겠지. 와, 남자들 진짜 말 많다.. 너무 많은 남자들이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산다. 그리고 그 쓸데없는 말들에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가 있다. 그 말들이 힘을 가진다. 이삭 토스트 신메뉴와 함께 씹어먹어버려야 할 말들. 이토록 많은 남자들의 말이 이토록 오래 남아있었다면 이제는 그 말들에 실린 힘을 빼버려야 한다. 이제 힘을 가진 말들은 다른 말들이 되어야 할것이다. 이 말들이 예전에는 힘을 가졌지, 소위 권위있는 남자들이 이런 말을 했어 부끄럽게도, 라는 말들을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어야 할것이다.



어제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여동생이 단톡방을 통해 일요일 오후를 어떻게 보내느냐 물어왔다. 나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고있다고 했는데 여동생은 보부아르를 알지 못했다. 여동생은 학창시절 나보다 훨씬 공부를 잘하는 아이었는데 여동생이 모르는 보부아르를 내가 어떻게 알지? 보부아르는 교과서에 나온 게 아니었나? 나는 그냥 책을 통해 알고 있나? 역시나 학창시절 나보다 내신이 좋았던 남동생도 시몬은 진시몬밖에 알지 못한다고 답해왔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언젠가 돌아올거라 믿었는데~ 그대여 제말 내게 돌아와줘요~ ♪♩



아... 나도 모르게 저절로 흥얼거리면서 뿜었잖아...남동생이여.....





아직도 모르겠어 난 정말 꿈이라 생각해야하는지 너 떠난그 길목에서 널 기다리는데 세월 모두 흘러간나 잊혀진 건 아닌데 되돌아 보는 그 길은 너무나도 멀었어 **널 매일 생각했어 보이지 않는 환상을 쫓고있어 그리워 목이메여 눈물 흘려도 눈물 닦아도 언제간 돌아 올꺼라 믿었는데 그대여 제발 내게로 돌아와줘요 내 맘은 오직 그대 뿐인걸 꿈속에서도 눈을 떠봐도 온통 너의 모습 그 뿐인걸




자, 제2의 성 시작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9-10-1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으면서 찬찬히 내리는데 스콘 사진 보고서... 앗! 이거 초코 스콘인데.... 다락방님 플레인 좋아하는데...
플레인에 딸기쨈 아니면 플레인에 버터...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밑에 설명이 있네요. 남은 게 초코 스콘 뿐이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겁나 웃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 번째 사진 오른쪽에 사전 맞나요? 무슨 용어 사전인가요? 궁금궁금^^

다락방 2019-10-14 10:41   좋아요 0 | URL
네, 그러합니다. 저는 플레인 스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플레인 스콘이 없다고 해서 다른 스벅갈까 고민했는데 걸어가기가 너무 싫더라고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걍 초코스콘 먹은건데 스콘은 역시 플레인이 짱이에요 ㅠㅠ 따뜻한 플레인에 버터와 딸기쨈이 천국이건만 쵸코스콘이라니 ㅠㅠ

펼쳐둔 사전은 <그리스 로마 신화사전> 입니다. 보부아르가 신화도 너무 많이 알아가지고 말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는 거 너무 많으셔서 책이 어려워요 흑흑 ㅠㅠ

감은빛 2019-10-16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콘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보니 ˝퀵 브레드˝라는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나오네요.
다락방님이 올리신 사진을 봐도 뭔지 모르겠어서 그냥 포기하겠습니다.

저도 대학 시절 이 책을 시도했다가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다시 시도하면 과연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다락방 2019-10-16 08:13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도 이 기회에 한 번 읽어보세요, 제2의 성! 확실히 누군가 같이 읽으면 더 의욕 생기고 읽게 되기는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지난 일요일에 읽고 여즉 멈춰 있습니다. ㅎㅎ 아오 어려워..

스콘을 모르신다니.. 아, 너무 슬프네요.
걍 가까운 스벅 가서 사서 드셔도 되고요 제과점에 가도 스콘은 팝니다. 감은빛님 커피는 잘 드시던가요? 이게 또 커피랑 먹으면 진짜 존맛탱인데... 하아. 이 기쁨을 모르시다니 ㅠㅠ 속상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