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랑의 서》에 나오는 사랑들은 정말 미친 사랑인 것 같다. '사랑'에 방점이 찍히는 게 결코 아니라 '미친' 에 방점이 찍힌다. 나는 정말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사랑에 관대한 편이고 또 사랑이란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이 나를 무너뜨리지 않을 수 있도록, 그 사랑이 나를 파괴하지 않도록 내가 정신을 차려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 사랑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거나 아프게 만든다면, 혀를 깨무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사랑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사랑이 가져오는 게 즐거움이나 행복이 아니라 파괴와 고통이라면,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쥐고 있어야할 필요가 있는가?


나에게도 어떤 형용사를 붙여도 모자라지 않을 사랑이 있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며 게다가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나에게 그 사랑의 '끝까지' 가보라고 조언들을 한다. 할 때까지 해봐, 갈 때까지 가봐, 라고. 그렇게 하는데 있어서 나를 응원하겠다고. 끝까지 가 몸을 던져서 파괴시키고 나면 그 다음엔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인데, 아아, 나란 여자는 정말이지 고집이 세서 그런 식으로 파괴에 나를 놓고 싶지 않고, 그런 식으로 상대방에게 미련 없이 돌아서고 싶지도 않다. 사랑은 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라지만, 그 바닥은 우리가 가진 치부일 수도 있고 감추고 싶은 면일수도 있지만, 개인이 가진 고유한 바닥을 드러내는 것과 둘이 만나 바닥을 치는 것은 다르다. 나는 둘이 만나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은 하고 싶지 않고 그런 식으로 우리가 쌓았던 소중한 시간을 파괴하고 싶지도 않아. 게다가 그 과정에서 나도 상처입을 것이며 상대에게도 나는 사랑이나 추억 대신 다른 부정적 감정을 심어주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 아아, 나는 그런거 정말 너무 싫어. 나는 내 관계에 지긋지긋해지고 싶지 않고 상대로부터 작작좀 하라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다.



나는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내 옆에 있기를 원하지만, 상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더 행복하길 바라지는 않지만(나는 천사가 아니야 ㅎㅎ),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너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어!' 라는 마음으로 상대를 파괴하고 싶지 않다.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내가 상대를 소유하고 싶다는 소유욕이 크기는 어마어마하다고 나 스스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내 소유욕을 채울 수 없다고 해서 상대를 망가뜨릴 수 없단 말이야. 그래서는 안되는거지. 그것은 상대를 파괴하는 동시에 나를 파괴하는 일이야.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질 수 없다니, 니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다니, 그것은 말도 안돼!! 하면서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정말이지 상상도 할 수 없는데, 이놈의 미친 사랑꾼들은 그걸 하네.. 하아- 그것은 미친 '사랑꾼' 이 아니라 정말이지 '미친' 사랑꾼이야. 그런 사랑이라면 나는 거절이다 진짜.



미칠만큼 사랑하는 건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정말 미치지는 말아야한다. 미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침몰이다.




작가들의 사랑에 대해서 무슨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나름 현실적이고 냉정한 사람이라 작가들이 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고. 책과 책읽기를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으앗 역시 소설이 짱이야!! 라고 언제나 부르짖으면서도(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책 좋다고 울뻔했다), 그러면서도 문학하는 남자들에 대해서라면 판타지를 가진 적이 없다. 그들의 사랑이라고 더 특별할 것도 더 아름다울것도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하하하하, 이렇게 죄다 미친놈들인지는 몰랐네, 내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른 사람의 연애, 다른 사람의 사랑에 대해 함부로 말을 덧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스스로 늘 다짐하는 바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미친 사랑은 하지말자. 나를 떠나다니 너를 죽여버리겠어, 너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갈 수 없어, 라면서 차로 들이받는 짓 같은거... 하지말자.




'테네시 윌리암스'는 '프랭크'에게 반해 정사를 나누었는데, 이에 윌리암스의 애인인 '판초'는 그를 차로 들이받으려고 했다.



살아생전 다이애나가 윌리엄스의 상담사까지 한편으로 끌어들여 그를 이성애자로 개조하려고 애쓸 무렵, 그 판을 뒤집어버릴 만한 인물이 등장했다. 보는 이가 눈을 의심하리만큼 잘생긴 뉴욕 태생의 시칠리아인 프랭크 멀로Frank Merlo라는 남자였다. 판초와 프로빈스타운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윌리엄스는 해안의 모래언덕에서 프랭크와 딱 한 번 뜨거운 정사를 나누었다. 윌리엄스가 한눈판 것을 눈치챈 판초는 자동차로 그를 들이받으려 했고, 그러다 차 바퀴가 모래에 빠지자 차에서 내려 끝까지 그를 쫓아가 분풀이를 했다. (테네시 윌리엄스, p.190)



도대체 왜 '판초'와 휴가가서는 다른 사람에게 반했다고 정사를 나누었는지 원. 그건 휴가를 함께한 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그러나 반해버려가지고 예의고 뭐고 없었겠지. 판초는 이에 빡쳐서 차로 들이받으려 하는 거다. 그곳이 해안가가 아니었다면, 차 바퀴가 모래에 빠지지 않았다면...윌리엄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시인 '바이런'은 여자라면 환장한 남자였는데, 누나와 근친상관 관계에 있으면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다른 여자와 결혼한 이유는 이 근친상관 관계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기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결혼을 자신만을 위한 '수단'으로 삼은 것만으로도 괘씸한데(결혼은 자기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필요한 것이니까), 결혼하고 나서도 그가 변하지 않은 것은 더 괘씸하다.



결말이 그리 좋지 못했던 독실하고 부유한 애너벨라 밀뱅크Annabella Milbanke와의 결혼은, 그가 편지로 심드렁하게 청혼하고서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성사되었다. 그녀와 결혼하면 재정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 무엇보다 이복누이 오거스타의 치명적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심산으로 청혼한 것이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이 결혼하도록 부추긴 것이 바로-바이런을 향한 감정이 그 못지않게 뜨거웠던-오거스타였다고 기록으로 남겼는데, 당시 오거스타가 내세운 이유는 "결혼만이 두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니까"였다고 한다. (바이런, p.111)



나의 경우에도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을 하려고 생각했던 적이 있던 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만약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것이 결혼으로 이어졌다면 나는 물론이고 나와 결혼한 상대 역시 전혀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결혼이란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오지랖 떠는 게 듣기 싫었고, 일단 결혼하고나면 그 오지랖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을 염두에둔 상대는 나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내가 하는 모든 것을 그저 내버려둘 사람인 듯 보였고, 그래서 나는 결혼이란 제도 속으로 들어가 타인들의 오지랖으로부터 멀어지고,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계속 다른 사람을 좋아하려고 했고, 다른 관계도 가지려고 했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결국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그랬다면 아마 나는 지금쯤 그 불행한 결혼에서 이미 빠져나왔을 것이다. 그건 내 욕심으로 인해 상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었을 것이고, 상대를 불행하게 만들면서 나 역시 행복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그런데 바이런은 했다. 바이런은 했고, 바이런의 이복 누나는 그런 바이런을 부추겼다.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완전히 다른 타인을 자신들의 인생에 끌어들인 것. 결국 바이런의 아내는 행복하지 못했고, 바이런은 결혼한 후에도 누나를 불러 한참을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 일로 아내가 속을 끓이는 건 뻔한 일이지만, 그러나 이 미친 바이런은 누나의 일만으로 아내를 괴롭힌게 아니었다. 정부를 두고 애인을 사귀고.. 하아- 바이런에게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어 여자들이 그렇게 ..


바이런은 정부를 버리고 애인을 사귀는데 이 애인좀 보소, 남편을 버리고 바이런의 집으로 하녀로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나중엔 대운하에 몸을 던지기까지 한다. 물론, 대운하에 몸을 던지기 전 바이런을 죽이려 드는 걸 거쳤고!!



바이런은 그곳에서 제일 처음 사귄 정부를 버리고 이번에는 문맹 제빵사의 아내를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아예 남편을 버리고 바이런이 사는 집으로 들어가 열네 명의 하인 대열에 가정부로 합류했다. 바이런은 그녀의 불타오르는 색정과 특이한 버릇들-섹스를 하다가 교회 종소리가 들리면 성호를 긋는다든가 하는-은 좋아했지만, 레이디 캐롤라인을 떠올리게 하는 유난스러운 질투와 드라마틱한 언동에 곧 질려버렸다. 그래서 집에서 나가달라고 하자, 그녀는 바이런에게 식탁용 나이프를 휘두르더니 베니스의 대운하에 몸을 던졌다. 바이런에게 고용된 곤돌라 사공들이 그녀를 얼음장 같은 물에서 건져내 왔지만, 바이런은 꿈쩍도 안 하고 그녀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짐을 싸서 내보냈다. (바이런, p.118)



하아- 상대로붙 거절 당했다고 나이프를 휘두르다니... ㅠㅠ 상대를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면 그것은 곧 자기에게 향하기 마련이다. 그게 뜻대로 안되자 대운하에 몸을 던져.. 왜요, 왜.. 그러지마요 진짜 ㅠㅠ


파괴하지 말자, 우리.

사랑을 잃는 건 너무 괴롭지만, 상대로부터의 거절 혹은 거부는 너무 고통이지만, 우리는 어른이잖아. 거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 '노'는 노다. 아니라고 말하는 걸 두 번 세 번 말하게 하지 말자. 지긋지긋하다 진짜. 우리는 거절할 수 있고 거절 당할 수도 있어. 그렇다고 해서 나이프를 들고 상대에게 돌진하지도 말고, 차로 들이받지도 말자. 그것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길이며, 차로 들이받고 나이프를 들고 돌진한다고 해서 상대가 갑자기 나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니야. 오히려 그것은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나로부터 더, 더 멀어지게 하는 거다. 제발, 제발 파괴욕망을 그대로 바깥으로 내보이지마.



바이런은 그런데 참 진짜 개놈이네.. 저래놓고 매춘에 빠지기 시작한다... 하아.. 안될놈은 역시 안되는거야.. 그런 놈을 사랑하지 말아요, 여자들이여... 사랑 없어도 우리는 잘 살 수 있다. 사랑만이 유일한 답이 아니야.



이 책에서는 근친상간에 대해서도 여러차례 등장하는데, 바이런이 그랬고(이복누나), '대프니 듀 모리에'가 그랬다(아버지). 그리고 '아나이스 닌'이 그러했는데, '아버지와의 근친상간'이라면 사실 그 관계를 딸이 원했다기 보다는 폭력에 의한 것이지 않았을까. 대프니 듀 모리에의 경우에는 언니와 여동생이 모두 레즈비언이었고 대프니 듀 모리에가 레즈비언 자매들을 몹시 혐오했다고 한다. 대프니 듀 모리에만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것이 아버지와의 근친상간으로부터 온 폭력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싶다. 아나이스 닌 역시 아버지와 성관계를 맺었는데, 이건 진짜 쌍욕 나오는게, 아버지와 성관계를 맺는 것이 심리 상담사가 처방한 치료방법이었다는 거다. 진짜 어휴...심리상담이란 무엇인가....



딸이 첫 픽션 작품에 '근친상간의 집'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호아킨 닌은 자신의 치부가 폭뢰될까봐 전전긍긍했다. 사정인즉슨, 거의 20년 동안 남남처럼 지내다가 상봉한 부녀는 닌의 심리상담사(그도 닌이 침대로 데려간 남자 중 하나였다)의 권고에 따라 연인사이가 된 것이었다. 상담사는 닌에게, 어릴 적 그녀를 버리고 도망간 것에 대한 보복으로 아버지를 유혹한 뒤 차버리라고 했다. 닌은 그 빗나간 조언을 받아들여, 프랑스 남부에 있는 어느 호텔에서 호아킨과 여러 차례 밀회를 가졌고,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와 연락을 끊어버렸다.

책제목에서 '근친상간'이 사전적 의미와 상관없이 은유적으로 쓰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호아킨은 부녀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날까봐 노심초사했다. (아나이스 닌, p.177)



이게 뭐야 진짜 ㅠㅠ 아니 심리 상담사 이 미친놈아 그걸 조언이라고 하냐. 그리고 그 조언을 받아들이다니. 물론 심리 상담사를 찾아가야 했을 정도로, 그 조언대로 할 정도로 당시의 아나이스 닌은 영혼이 상처입은 채였겠지만, 하아- 아니 이 아버지 미친 놈아. 그게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했다는 것은 자기도 그러면 안되는 거라는 걸 인지한거였잖아? 야이 미친새끼야.. 하아-




톨스토이가 아내를 막대한 것이야 워낙 유명하긴 하지만, 활자로 구체적으로 읽는 것은 또다른 빡침을 안겨다줬다. 자신의 작품에 있어서 아내의 조언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그 모든 작품들을 손으로 기록한 것도 아내였고, 그러면서 열셋이나 되는 아이의 출산과 육아도 아내의 몫, 가사 노동도 아내의 몫이었다. 이런 씨부럴.. 그런데 나중에는 자신의 저작권에서 오는 수입도 다 마다할 것이며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아내가 미쳐버릴 지경이 되어버리는 것이여..



소피아가 가장 못 견뎌했던 것은 남편의 위선이었다. 그렇게 공공연히 개탄하던 풍족한 삶을 톨스토이 본인도 계속해서 누리고 있는데다, 금욕주의를 설파하면서 뒤에서는 그녀를 자꾸 임신시키고 있다고 일기장에 쏟아놓았다. (한편 톨스토이는, 소피아가 자꾸 자기를 유혹해 그가 이상적 가치로 여기는 금욕을 지키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소피아는 저작권을 포기해봤자 민중에게 득이 되기는커녕 출판업자들 배만 불릴 텐데 남편이 자꾸만 저작권을 내주겠다고 하는 저의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피아가 보기에 그것은 가족에 대한 철저한 배신에 불과했다. 작품 인세가 가족의 주요 수입원인데 그걸 내놓으면 남편 사후에 자식들이 거지 신세가 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톨스토이, p.68)



가사노동과 육아로부터 떨어져있다면 돈이라도 벌어와야지, 톨스토이야. 거기다 대고 금욕주의 어쩌고 하면서 돈도 안벌려고 하고 가사노동도 안해... 그런데 왜 임신은 시켜 .....



여자들이 임신과 출산을 하게된 것은 당연히 상대로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그렇게 뻔질나게 아내를 임신시켜놓고 집안일은 나몰라라 했고, 아아, 출산과 육아로 달라진 자신의 아내를 지긋지긋해 하기도 한 작가들이 또 있었으니.. 오스카 와일드여....... 내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써글놈아..




그렇게 끈끈한 파트너십을 자랑했건만, 와일드는 콘스턴스가 임신을 하면서 맞닥뜨린 여체의 변화에 자신이 강한 혐오감을 느끼게 되리란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형태가 망가지고 뒤틀리고 흉측한 것에 욕정을 느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아내의 임신한 몸을 보고 이렇게 토로했다. "출산이 욕정을 죽였고, 열정은 임신에 묻혔다." 자신의 감정이 그렇게 극적으로 변한 것을 애석해하며 와일드는 이렇게 썼다. "결혼했을 때 나의 아내는 춤추듯 반짝이는 눈동자에 웃음소리 마저 노래하듯 듣기 좋은, 백합처럼 뽀얗고 늘씬한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런데 1년여 만에 꽃 같은 우아함은 자취를 감추었다 …… 그녀를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억지로 만지고 키스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늘 몸이 안 좋았고, 그것도 모자라- 아! 떠올리기도 싫다. 구역질 나서." (오스카 와일드, p.269-270)




니가 사람새끼냐... 그 여자가 왜 임신을 하게 된건데, 왜 출산을 하게 된건데, 왜 몸이 안좋아진건데!!




디킨스는 어떻고! 그는 45세에 18살의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다. 하아- 디킨스에 대해서라면 여러가지 말을 듣곤 했는데, 일단 나는 그가 《두 도시 이야기》에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 보여준 태도를, 그 재미있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사두고 아직 안읽고있긴한데, 디킨스가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내놓고는 나중에 유명한 작가가 되고나서는 그들을 멸시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유명해진 뒤에도 태도가 변하지 않은 사람은 같은 이름을 가진 작가가 '찰스 램'이라는 것까지. 이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팟캐에서 들은것 같은데, 여하튼 이 디킨스가... 내가 울면서 읽은《위대한 유산》을 쓴 디킨스가 열세 차례나 임신한 아내를 두고 27세 연하의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다니.. 아니, 이런 것에 대해서도 굳이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줘야 하는걸까? 싫어라..



똑똑하고 생기 넘치는 넬리는, 열세 차례의 임신(그중 몇 번은 유산했다) 이후 몸매도 육중해지고 움직임도 둔해진 아내와 살고 있던 디킨스에게 분명 신선한 자극이었을 것이다. 아내 캐서린은 원래도 활력이나 지성 면에서는 디킨스에게 대등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산후우울증으로 남편과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말았다. (디킨스, p.243)




사람들이 결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헤어지기 싫어서, 항상 같이 있고 싶어서가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외에도 다른 이유들이 충분히 있을 터. 그러나 자기에게만 좋은 이유만으로 결혼을 선택하면 상대를 파괴하고만다. 디킨스 역시 아내와 결혼을 했을 때, 그 아내를 '가장'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캐서린을 향한 디킨스의 애정은, 그가 배고픈 무명작가였던 시절 그를 거부했던 첫사랑 마리아 버드넬maria Badnell에게 품었던 감정에 비하면 뜨뜻미지근한 수준이었다. 그러다 풋풋한 넬리가 등장하자 마흔다섯 살의 문호는 청년 시절 불태웠던 뜨거운 감정이 되살아남을 느꼈다. 빅토리아 시대의 남자들도 중년의 위기는 당해낼 수 없었나보다. 디킨스는 영국 어느 구석이든 마다않고 쫓아다니며 새로운 열정의 대상에게 구애했고, 그를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로 만들어준 동력인 그 지독한 집념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그는 캐서린과의 결혼은 처음부터 안 될 운명이었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불쌍한 캐서린과 나는 애초에 서로에게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었고, 이제 와서 나아질 희망도 없어. 지금 무너지고 있는 모습은 내가 오래전부터 예상했던 거야." (디킨스, p.243)



자기야 새로운 사랑에 빠졌으니, 사실 우리 결혼은 그러면 안되는 거였지, 라고 세뇌시킬 수 있다지만, 그렇다면 아내는 뭐가 되는가? 아내가 선택한 결혼은 남편의 바람 앞에, 남편의 세뇌 앞에 한낱 쓰잘데기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아내는 타인에 의해 자신의 삶이 망가지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중년의 위기' 어쩌고 운운하는 문장은 뭐여... 쓰벌. 여자는 중년 안오냐. 내가 중년이다.




이 책에 실린 게 다 이렇게 '미친' 내용만은 아니다. 궁극적인 사랑과 함께살기의 모습도 당연히 있다. 가장 인상적인건 '애거사 크리스티'인데, 그녀도 첫번째 결혼에서 실패하고 상심했지만, 자신의 글쓰기를 지원해주는 좋은 남자를 만나 오래 함께 산다. 


크리스티의 이 부분이 좋아서 좀 길지만 인용한다.



크리스티는 영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중간에 그와 좋게 헤어질 작정이었다. 그런데 중간 체류지에서 딸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그녀가 어쩔 줄 몰라하자, 맬로언은 자기 일정을 변경해가면서 그녀를 집까제 에스코트해주었다. 몇 달 후 맬로언이 그녀의 집에 초대받아 일주일간 머물던 중 청혼하자, 두 사람의 우정은 그녀가 예상치 못한 단계를 맞았다. 그는 빌려간 책을 돌려준다는 핑계로 그녀의 침실 문을 두드렸고, 그 방에서 프로포즈했다.

나이 차 때문에 우정 이상은 불가능할 거라고 선을 그었던 크리스티는 뜻밖의 전개에 너무 놀랐고, 꼬박 두 시간 동안 맬로언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다시는, 아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남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고 살아온 그녀였다. "여자에게 진정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맬로언의 프러포즈를 받고 몇 주를 고심한 끝에 크리스티는 다시 한번 위험을 무릅쓰고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나이 차 때문에 고민한 일은 부질없는 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훗날 그녀는 이런 농담도 했다. "고고학자야말로 최고의 남편감이지요. 아내가 나이들수록 더 흥미를 보이거든요."

바다처럼 관대한 새 남편 맬로언은, 정작 본인은 남편의 유적 발굴 현장을 마음껏 돌아다니면서도 그에게 절대 골프만은 치지 말아달라고 강경하게 당부하는 아내의 한 맺힌 요구도 순순히 들어주었다. 유물 발굴 현장에서 그녀는 종종 조수 역할을 자처해 유물들을 손질하거나 복구하고, 도자기 조각을 끼워맞추고, 발굴된 물품의 목록을 정리했다. (애거사 크리스티, p.346)




내가 당신한테 준 책, 그거 준 거 아니야, 빌려준거야. 그러니 돌려줘야 해... (킁킁)







로버트 브라우닝도 아내의 글에 반해서 팬레터를 보냈다가 결혼하게 됐는데,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인지, 여자의 글쓰기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너무 좋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삶인 것 같다. 여자는 글을 쓰고, 남자는 그 글의 독자가 되어주고 응원해주고 지원해주는 삶. 크리스티는 그런 삶을 자신의 남편과 살았던 것 같다. 게다가 크리스티가 그저 남편의 응원만 받고 끝낸 게 아니라, 고고학자인 남편의 조수노릇도 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얼마전에 읽은 '샬럿 퍼킨스 길먼'의 일화와는 매우 다른 경우가 아닌가. 지적인 활동을 하지 말라는 처방 때문에 더 아플 수 밖에 없었던 샬럿은 결국 남편과 이혼을 하고 소설을 써낸다. 내가 하는 행위가 '옳다'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인데, 이것을 응원해주는 게 아닌 '그만두라'는 사람과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책읽기를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나는 이 일을 함에 있어서 전혀 부끄러움이 없으니까. 사랑하는 이의 응원을 받는다면 앞으로 더 쭉쭉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서 얻게 되는 것들로 나는 또 더 자랑스러워질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삶은 얼마나 이상적인가.

크리스티는 관대하고 젊은 남자와 함께 살면서 또 유물 발굴 현장을 함께 다니면서 그 장소를 소재로 새로운 소설을 써내기도 한다. 정말이지, 너무 좋은 삶이다..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을 읽다보면 남자가 여자를 소개받고 사랑에 빠지면서 '내가 다른 사람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지 몰랐어' 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그녀가 부모도 없고 가난하기 때문에 남자의 부모가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하자 남자는 그녀와 헤어진다. 그리고서는 이내 얘기한다. '사랑이 식을 수 있을줄은 몰랐어' 라고.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이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헤어지면서 이렇게나 설레발을 치는 가벼운 남자였는데,


톨스토이 역시 자신의 아내 소피아를 처음 만나 결혼할 때 "서른네 해를 살도록 이토록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토록 행복해질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톨스토이,p.64) 라고 말했더랬다.

그러나 소피아는 평생 고생만했지..



한편, 앨리스 토클라스도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났을 때 종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앨리스가 프랑스의 수도에 도착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스타인가에서 열린 파티였다. 거기서 앨리스는 파티 호스트 부부에게, 아니 다른 참석자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녀의 신경은 온통 거트루드에게 쏠려 있었다. "그녀는 온통 황갈색으로 빛났다. 토스카나의 태양에 그을린 따스한 갈색 머리칼은 군데군데 금빛으로 반짞이고." 앨리스가 『기억되는 것What Is Remembered』에서 그때를 회상한 구절이다. 앨리스는 처음 거트루드를 소개받는 순간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천재를 만났음을 알려주는 소리였다(어쨌거나, 거트루드의 주장은 그랬다). (거트루드 스타인과 앨리스 B.토클라스 p.352)



이 부분을 읽는데, 아, 혹시... 내 상대도 그 때, 2007년에.. 그러니까 그 해의 8월에 설마 종소리 들린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천재를 만나서 종소리 들렸니, 당신? 솔직히 말해봐, 들렸지. 그리고 속으로 그랬지. '천재다, 천재가 나타났다!' 후훗. 첫눈에 반한 것은 나의 지적인 미 때문이었니? 후훗.

그때, 나도 몰랐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토록 행복할 수 있을 줄은. 지금은 다 끝나버렸지만. It must have been love. But it's over now.



윌리엄스는 단 한 번의 밀회로 끝날 줄 알았던 프랭크와 지속된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프로빈스타운에서 단 한 번의 밀회로 끝날 줄 알았던 프랭크와의 인연은 결국 윌리엄스의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이듬해 뉴욕의 어느 델리카트슨delicatessen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때, 윌리엄스는 프랭크에게 왜 그동안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프랭크는 윌리엄스의 성공에 편승하려는 놈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대꾸했다. 우연찮게도 두 사람이 모래언덕에서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직후 윌리엄스의 작품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미국 남부 출신의 미녀 블랑시 뒤부아의 비극적 몰락을 그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윌리엄스는 미국의 위대한 극작가 반열에 오른 터였다.

재회한 지 몇 주 안 돼서 프랭크는 맨해튼에 있는 윌리엄스의 아파트에 들어가 동거를 시작했다. 트럭 운전사이자 해군 참전용사인 프랭크는 소식적 거리의 부랑아였다가 자기 인생을 백팔십도 변모시켜 독학으로 문학광, 연극광이 된 비범한 인물이었다. 윌리엄스는 그의 그 팔팔한 열정에 준수한 외모만큼이나 매력을 느꼈다. "그는 정말 생명력 넘치는 사람이었어!" 윌리엄스는 프랭크를 떠올리며 감탄을 내뱉었다. "그는 내게 낮이고 밤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지. 현실과의 가교가 되어주었다고 할까. 세상을 제대로 알게 해주었어. 덕분에 나는 그런 삶을, 프랭크가 죽는 날까지, 14년간 누릴 수 있었고. 그 14년은 내가 어른이 된 이래 최고로 행복한 시기였어." (윌리엄스, p.191)



나도 우리가 그 날 단 한번의 만남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아무튼 지금 연락 없는 거, 설마... 설마.....

나의 성공에 편승하려는 놈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런거야? 그래? 내가 너무 위대해지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운거야?

괜찮아, 그 자존심은 넣어둬, 넣어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 책에는 미친 사랑이 가득하다. 미친 '사랑'이 아니라 '미친' 사랑. 사랑을 하되 미치지는 말자. 파괴로 나를 이끌지도 말것이며 파괴로 상대를 이끌지도 말자. 우리는 파괴하지 않고 또 파괴 당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삶을 풍요롭게 잘 살아낼 수 있다. 사랑은 많은 부분에서 답이 될 수도 있고 또 구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사랑만이 유일한 답은 아니며 최선의 답도 아니다. 우리는 사랑 없이도,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받지 않고서도 잘 살아낼 수 있다. 《토이 스토리4》에서 그걸 잘 보여주지 않던가. 이제 나이들어버린 등장인물들은 나를 사랑해주는 주인 없이도 자신들의 삶을 잘 개척해나간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다. 미쳐서 파괴로 빠져들어가는 대신, 미치지 않고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잘 개척할 수 있어. 나를 지원해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최선의 상대가 될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굳이 그 관계속으로 뚜벅뚜벅 들어갈 필요가 없다.






올그런은 보부아르와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돌로레스와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삼각관계에 발을 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더군다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에 굴러들어온 돌 취급당하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가졌다. 올그런을 향한 절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보부아르는 결혼에 반대하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사트르트와 자신의 자유 둘 다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끝내주는 잠자리도 아주 오래전 맺은 계약을 깨뜨리게 만들지는 못했고, 그래서 때를 잘못 만난 두 연인은 결국 이별의 수순을 밟았다. 올그런은 이후 두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했지만 끝까지 보부아르를 용서하지 않았고, 죽기 직전에 어느 기자에게 그녀를 심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보부아르) - P163

스물한 살 때 보부아르는 역대 최연소로 철학과 교수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후보에 올랐는데, 프랑스의 대학 체제에서 교수 자리를 따내려면 반드시 그 시험에 응시해야 했다. 판정단은 보부아르가 철학과 최고의 학생이라는 점에 만장일치로 동의했지만(해당 학위를 받은 여학생으로서는 아홉번째였다), 그녀는 2등으로 만족해야 했다. 최고의 영예는, 아마도 남자라는 이유로, 사르트르에게 돌아갔다. (보부아르) - P155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건만 엘리엇은 그녀와의 관계를 극구 감추었고, 그래서 엘리엇의 지인들 중에도 극소수만이 그녀의 존재를 알았다.
에밀리는 자신의 희생적인 침묵이 웨딩마치로 보상받을 줄로 믿고 군소리 없이 그림자 연인 역할을 계속했다. 그러나 비비안이 죽고 나서도 엘리엇이 둘의 관계에 도장을 찍을 생각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에밀리는 크게 낙담했다. 오히려 엘리엇은 앞으로 다시는 다른 여자와 생을 함께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이나 지껄이는 것이었다. 이런 가슴 아픈 거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우정은 유지되었다. 아마도 에밀리 쪽에서, 비비안이 그랬듯, 언젠가 그가 마음을 바꿀지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T. S. 엘리엇) - P40

두 사람의 불같았던 8년의 연애는 그렇게 갑자기 끝이 났다. 마지막 만남은 파리에 있는 루이즈의 아파트에서 이루어졌는데, 그녀는 울면서 플로베르의 다리를 때려가며 그동한 맺힌 한을 다 토해냈다. 플로베르는 속으로는 활활 타는 장작으로 그녀를 후려치는 상상을 했지만, 충동을 꾹 누르고 조용히 일어나 그곳에서 나갔다. 그 일을 계기로 플로베르는 루이즈에 대한 애정이 차갑게 식었다. 루이즈 쪽에서는 계속해서 애간장을 태우며 나중에 그가 파리에 다시 왔을 때 최소 한 번 이상 그를 만나려고 애썼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플로베르) - P131

톨스토이의 뮤즈이자 개인 비서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것도 대단한데, 소피아는 집안일에서도 흠잡을 데 없는 주부였다. 그 시대의 보통 여자들처럼 소피아도 모든 기운을 가족들을 돌보는 데 쏟았는데, 톨스토이가 글쓰는 데 집중하는 동안 거의 혼자서 열셋이나 되는 자식들(그중 아홉이 건강히 살아남아 성인이 되었다)을 키우고 교육시켰다. 지칠줄 모르고 밥을 짓고, 바느질하고, 병든 소작농들을 돌보고, 남편 대신 출판사 사장들과 협상을 했으며, 남편의 작품이 금서로 지정됐을 때는 그를 대신해 러시아 황제에게 읍소하기도 했다.
그런 수많은 역할에 따르는 체력적인 한계만 해도 힘겨운데, 성녀聖女라 불려도 좋을 만큼 참을성 많은 소피아는 엄청난 감정적 고통까지 견뎌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그렇게 잘 이해하고 동정했던 톨스토이가 현실에서는 더없이 매정하고 자기중심적이었으며, 특히 아내를 그렇게 못마땅해했다. (톨스토이) - P66

그뿐 아니라 작품 속에서 레빈이 약혼녀에게 자신의 총각 시절 일기를 읽게 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톨스토이도 열여닯 살 먹은 소피아에게 자신이 계집질하고 술독에 빠져 도박이나 하고 다닌 젊은 날의 기록, 그리고 자기네 저택 하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에 얽힌 사정까지 굳이 읽어보게 하는 우를 범했다.
"그의 과거가 어땠는지 다 읽고 나자 눈물이 쏘ㄸ아졌다." 소피아는 그때의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톨스토이) - P65

자진해서 폭로한 과거에 예비신구가 그렇게 충격을 받았음에도, 두 사람은 3일 뒤 혼인 ㅅ약을 주고받았고 톨스토이 가의 저택이 있는 러시아의 시골 야스나야 폴랴나로 함께 떠났다. 밤새 마차를 타고 가면서 톨스토이는 아내의 순결을 빼앗았고, 훗날 소피아는 그때의 경험을 일기장에 이렇게 묘사했다. "어찌나 고통스럽고 참기 힘들 만큼 수치스러웠는지!" (톨스토이)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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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9-18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읽다가 몇몇 사람 얼굴 찾아보고 그랬는데요. 바이런은 정말 실물이 너무 궁금해서(그토록 꽃미남이라니 어디 한번 보자! 싶은 마음) 구글 이미지 검색 불티나게 했어요. 근데 이상한 초상화만 나와서 에잉.... 이 따위 얼굴에 그렇게 여자들이 반했단 말인가. 아직도 의아합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두 번째 결혼 정말 잘했지요. ˝고고학자야말로 최고의 남편감이지요. 아내가 나이들수록 더 흥미를 보이거든요.˝ 이 농담도 정말 로맨틱-

저는 테네시 윌리엄스를 좋아해서 그런지 그가 프랭크를 만나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니까 그냥 그걸로 용서했어요. 애인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반하고 결국 그 사람과 하룻밤이 아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진정한 연인이 되는 시나리오 넘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ㅋㅋㅋㅋㅋ 그 전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쿨럭;;;(제 경험담이라서 윌리엄스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

암튼 이 책은 이렇게 작가들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사랑, 자기의 미치광이 모습을 소환하는 재미도 있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욕막이라는 이름의 전차』오타 수정하셨네요. 이 제목도 왠지 재밌었는데.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09-18 10:47   좋아요 1 | URL
제가 걍 알라딘 창 열고 다다다닥 쓰기 때문에 오타를 바로바로 못잡아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읭? 이러면서 오타가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욕막이 보였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저는 윌리엄스에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결국 그가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할만한 상대를 찾은 건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그 상대가 좋은 상대였잖아요. 인생은 결국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궁극의 상대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공교롭게도 그렇게 찾아가는 중에 내 옆에 다른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지만 말예요. 누군가의 옆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찾았다면, 옆에 있는 사람이 화나는 건 너무나 당연한거겠죠. 나는 너인줄 알았는데 너는 다른 사람이란 말이야? 라면서 고통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러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났다니... (눈물이 그렁그렁)


저는 같은 경험담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품고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한 적이 있어요. 저에겐 너무 자연스러운거였고, 그래서 아마도 연애상대에게 온전히 사랑을 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거 나빠요. 이제 안그러려고요.. (뜻밖의 자기고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에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뭔가 사랑이야기를 가득 읽고나니 재미있더라고요. 이 놈이나 저 놈이나.. 싶으면서. 크리스티 사랑 이야기도 정말 좋았어요! 저 이 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오늘 주문했어요. 뭐랄까, 제 사랑이 안되고 우울할 때 들춰보면 좋을것 같아요 ㅋㅋ 그리고 누군가에게 얘기해주기도 좋을것 같고요.

들어봐, 윌리엄스는 애인이 있는데 다른 사람한테 반했거든. 그랬더니 그 애인이 빡쳐서 차로 들이받으려고 했대 글쎄, 이러면서 말이지요. 후훗.

감은빛 2019-09-20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이 글을 읽었는데, 밤에 택시를 탔다가 라디오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걸 들었어요.
톨스토이 부분이었는데, 기사님이 소리를 줄여놔서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위기가 너무 톨스토이를 비판하고 소피아 편으로 흐르자, 남성 진행자가 막 수습하려고 들었던 게 기억나요.

다락방 2019-09-20 13:44   좋아요 0 | URL
라디오에서 이 책 얘기가 나왔군요!!
이 책 읽다보면 글 좀 쓴다는 남자 작가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밉고 짜증나는지 몰라요. 바이런, 디킨스, 핏츠제럴드(ㅠㅠ), 톨스토이.. 으으... 남성 진행자가 왜 수습하려 들었을까요? 그건 본인도 톨스토이랑 다를 바가 없어서일까요? 톨스토이만큼 능력이 있진 않지만 여자를 대함에 있어서는 톨스토이와 같은 태도를 가진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하하하하.

심술 2019-09-22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이 독후감만 읽어도 정말 흥미진진하고 스펙타큘라하고 뭐 막장드라마 뺨치네요!

안녕하셨죠? 오랜만입니다.
보내 주신 책 <뉴욕 미스터리>는 고맙게 잘 읽었어요.

전 가난한 이들을 향한 두 찰스의 아주 다른 태도를 첨 안 게 윤흥길 단편소설에서였죠.
아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였을 겁니다.
이 단편이 꽤 유명했기에 제 추측으론 락방님이 들은 그 방송 출연자도 이 단편을 읽고
‘램과 디킨즈의 가난한 이를 향한 다른 태도‘를 안 거라고 생각되는데 물론 제가 틀렸을 수도 있죠.

그나저나 윤흥길의 그 단편 읽던 때도 벌써 22~23년 전이군요. 세월이 너무 빠릅니다.

요즘 일교차 큰데 건강 조심하세요.

다락방 2019-09-22 13:20   좋아요 0 | URL
심술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도대체 뭐하시느라 그동안 안오셨던 겁니까! 자주 자주 좀 오세요. 제 서재가 썰렁하지 않습니까! ㅎㅎ

아, 댓글 읽으니, 그 팟캐스트 진행자들이 윤홍길 단편소설을 읽고 얘기한건가 봅니다. 맞을 것 같아요.

하아, 일교차 건강... 적절한 댓글입니다, 심술님. 제가 안그래도 요즘 비염이 심하게 와서 어제는 병원가 수액도 맞았어요. 예전엔 비염와도 괴롭지만 견뎌냈는데 이제는 수액 없이 지나갈 수가 없게 되어버렸네요. 이것이 바로 늙어가는 것..인가 봅니다. 슬픔 ㅠ

심술님도 건강 유지하세요!!

심술 2019-09-23 12:28   좋아요 0 | URL
건강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락방님 곁에는 책도 서재벗도 조카도 있으니까요.

다락방 2019-09-23 13:02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책도 서재벗도 조카도 있으니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야지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