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 학위를 받은 뒤 교직을 얻기 위해 철학교수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중이던 1929년 6월, 3살 연상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80)를 만났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해 교수자격시험에 1,2등으로 나란히 합격했으며, 당대의 스캔들이었던 2년간의 계약결혼에 들어갔다. 영혼의 정절과 관계의 투명성을 지키며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이 계약의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나 일, 앞으로의 계획, 지난 경험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고 전적으로 상대방과 공유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 이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2년 기간을 약정한 계약결혼이었지만 2년 뒤에 30세까지로 연장하고, 이후로는 종신계약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법적인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각자 애인을 사귀면서 죽을 때까지 계약결혼을 유지하였고, 지적 동반자로서 서로를 인정하였다. 보부아르는 마르세유, 루앙,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12년간 철학 강의를 하였으며,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같은 해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Les temps modernes)지를 창간했다. (p.278)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사이의 계약결혼이야 워낙 유명한 사건이지만, 위의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보부아르는 대체 왜 사르트르와 굳이 계약결혼을 한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영혼의 정절' 과 '관계의 투명성'은 다 뭐람?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이 계약내용인데, 서로 완벽하게 자유로울 거면 굳이 결혼으로 묶이지 않아도 되지 않나. 그들은 서로에게 서로를 만족시키는 가장 큰 중점을 지성에 둔 것 같다. 그들의 계약결혼, 그러니까 그걸 왜 굳이 해야했는지에 대해 궁금해서 '보부아르 결혼' 을 넣고 알라딘에 검색했더니, 이런 책이 나온다.




















교수자격시험에서 1,2위 할정도로 똑똑한 사람들이니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일일테고, 굳이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고 계약결혼을 택한 점, 그리고 서로의 자유로운 생활을 완벽히 인정했다는 점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결혼'을 보이려고 했던 게 가장 큰 것일테다. 그러나 '결혼이 꼭 여러분이 아는 결혼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라는 걸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굳이 결혼이라는 걸 그들 사이에 가져다둘 필요가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저 살림지식총서 한 번 읽어봐야지.



얼마전에 본 영화 《토이스토리4》에서 '보핍'은 한명의 주인에게 지정되어 사랑받는 장난감이 아닌, 철저하게 자유로운 장난감이다. 장난감이라고 말하려니 어딘가 이상하지만, 어쨌든 그러나 보핍은 그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고, '언젠가는 내게도 주인이 나타날거야' 라는 같은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나중에 누군가 자신을 옆에 데리고 다녀줄 어린 주인이 나타날 수도 있고 안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거랑은 전혀 별개로 보핍은 자신의 자유를 누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 보핍의 태도는 사랑과는 전혀 별개로 '나는 나!' 로 유지되는데, 그러면서 건강한 삶을 사는 게 너무 좋은 거다. 반드시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아야만 그 인생이 가치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는 캐릭터랄까.


'카붐' 캐릭터도 마찬가지. '우디' 가 자기를 소유한 아이를 위해 자기 한 몸 바쳐 충성하고 희생하고자 하고, '개비개비'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자신의 몸을 고쳐서라도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자 애쓰는 캐릭터라면, 카붐도 역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자기 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하고 친구를 도우려 하고.



나는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삶만이 가치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또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재미있지만, 그러나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도 아니며 유일한 것도 아닌 것이다.




나는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삶도 당연히,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높은 지성은 어쩌면 그 지성에 맞는 짝으로는 서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왜 굳이 '계약결혼'이라는 걸 그들 사이에 존재하게 한걸까? 그렇게 해야했던 그들의 동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다른 사람과 연애하고 돌아온 나의 파트너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점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는데, 내 경우에 계약결혼한 상대와 지적 동반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고 서로의 다른 연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은, 나의 계약결혼 상대를 졸라 사랑하지 않을 때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내 경우엔 결혼을 생각했을 때, 미안한 말이지만, 결혼을 하고자 한 상대를 뜨겁게 사랑하지 않았었다. 사실 사랑 자체와도 좀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상대와 결혼을 하면 어떨까, 라고 혼자 생각해보았던 것.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신경쓰이지 않는 누군가를 둔 채로, 나가서는 언제든 자유롭게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을 했던 거다. 지금이나 그 때나 '가장 좋은 사람과는 연애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아마 이런 사고가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도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며 지성을 존중하는 게 가능했지만, 사실, 사랑..은 딱히 크게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사람이 사는 모습도 다르고 사랑을 받아들이고 또 행하는 자세도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 만약 졸라 사랑하는 사람하고 계약결혼을 했다면, 서로의 자유로운 연애를 인정하는 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그럴거면 뭐하러 나랑 해? 걍 다른 사람이랑 해.


이건 자유연애 상대가 되어도 마찬가지. 내 상대가 '나는 지적 동반자인 사람과 계약결혼해 살고 있어, 나의 연애는 자유로워' 라고 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연애상대가 되고 싶지 않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어떤 생각을 하고 그 결혼에 임한건지 너무 궁금하다. 이렇게 궁금한 건 값싼 호기심일까?



어제는 누군가의 결혼이 궁금하다는 것이 값싼 호기심은 아닐까, 자꾸 생각해보게 됐다. 호기심과 관심은 어디에서 갈리는걸까. 나는 애정어린 상대에게 관심이 많고, 많은 것들이 궁금해져서 묻고 싶다. 퇴근 후에는 무얼 하며 지내는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책의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함을 느끼는지, 전완근은 있는지.. (응?) 그런 것들이 궁금해 조잘조잘 묻고 싶은데, 만약 내가 관심있는 상대가 계약결혼을 했다면, 그걸 왜 했는지 묻는 건 실례일까 아닐까. 이것은 호기심인가 애정인가. 그것은 어디에서 어떻게 갈리는가.




상반기 결산 같은 건 하지 않고 넘어가긴 했지만, 만약 올 한 해를 정리하게 된다면, 가장 인상깊었던 비문학 도서로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모임에서 진행했던 《여자는 인질이다》가 될것이다. 그 책에서도 언급됐고,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에서도 언급됐던 것처럼, 여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여성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우리는 연애와 결혼이 결국 억압적인 것이라는 것에 닿게 되는 것 같다. 강제된 연애, 결혼의 압박. 《제2의 성》을 1권 밖에 못읽었지만, 다 읽게 되면 역시 보부아르도 그런 결론에 대해 말하는가 보다.




3부 「정당화」에서 보부아르는 이러한 억압적 상황에 대한 여성들 스스로의 자기 정당화 방식들을 다룬다. 그동안 여성의 본질적 태도인 것처럼 간주되어왔던 나르시시즘, 연애와 사랑으로의 도피 그리고 신비주의가 기실은 기존의 남성적 질서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반(反)세계'를 형성할 자신이 없는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기존 질서에 공모하여 삶을 이어가기 위해 취하는 태도일 뿐이라는 내용은 남성들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p.288)




보부아르는 자신이 도피성 결혼을 한 게 아니라는 걸 드러내고 싶었던걸까? 그래서 굳이 '계약' '결혼'을 택했던걸까? 계약결혼과 지적동반자, 그리고 자유로운 연애라니. 얼핏 보면 가장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마음적으로는 아주 복잡한 것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것 같지 않은가.


어째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할 것들이, 알아야 할것들이, 알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머리가 터질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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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7-1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기하기 어려운 특정 부위가 전완근이었군요! (응?) ㅋㅋㅋㅋ

살림에서 나온 저 작은 책은 사르트르-보부아르의 관계를 나름 잘 정리한 책 같았어요.
근데 저 책만 읽어봐도 아시겠지만 사르트르-보부아르는 계약결혼 뒤에도 내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래서 대체 이 인간들은 왜 이런 짓을 한 것인가..... 그저 한낱 소시민인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더라고요.
심지어 보부아르는 나중에 사르트르가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을 사랑한 것에 고통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고, 게다가 그는 섹스도 형편없었다고까지 말하기도 했죠. 그러니까 대체 왜 그런 결혼을.........;;

둘 다 지적으로는 매우 잘 통하니까 그 방면으로는 내내 교감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결혼(서로를 옭아매는)은 반대하고 싶었기에 ‘계약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글쎄요. 인간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너무 간과한 것 같아요. 지적동반자로서만이 아니라 육체, 정서적으로 교감이 다 잘 되는 상대여야 이상적인 파트너가 아닐까 싶은데.... 서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계약‘이라는 이름 아래 묶인 그들의 결혼도 기존의 결혼만큼이나 참 공허해 보입니다.

다락방 2019-07-19 09:47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생각한 게 바로 그거였어요, 잠자냥 님. 어느 하나만으로 결정되면 안될 것 같은데 지적동반자..라는 것이 계약결혼을 유지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함께 가져가기에 다 괜찮은가.. 가 안될것 같거든요. 결혼이란 제도 자체에 대해 반대하기 때문에 계약결혼을 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한데, 내 파트너는 지적 동반자 그리고 자유로운 연애..라고 하면 ‘왜 굳이??‘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죠.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지성이라고 하면 당연히 그걸 잘 맞는 파트너를 찾게 되겠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그걸로만 만족하게 두지는 않으니까요.

저도 잠자냥 님처럼, 육체, 정서적 교감이 다 잘되어야 이상적인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파트너라면 굳이 ‘계약‘ 결혼을 했을 것 같진 않고요. 그래서 되게 복잡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계속 ‘굳이 왜?‘ 라고 묻게 되더라고요, 보부아르에게. 그러나 당시에는 분명히 혁명적이었을 것 같고요.

오늘은 안그래도 전자책 맘껏 지르는 날이라고 제가 혼자 정했으니, 마침 저 살림지식총서도 이북으로 있겠다, 질러버리겠어요. 꺅 >.<

단발머리 2019-07-19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수자격시험 원래 1등은 보부아르이나 보부아르에게 1등을 줄 수 없었던 심사위원들이 오랜기간 공부했고 여러번 떨어졌던 샤르트르에게 1등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샤르트르는 천재죠. 그런 사람을 천재라 하지만 보부아르가 그에 못지 않았음에도 아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계약 결혼으로 인해 더 큰 자유를 누렸던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전, 아직 잘 모르겠더라구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거다,라는 로맨스 소설 법칙 같은게 이런 천재들의 사랑에도 해당되는지도 모르겠구요.

다락방 2019-07-19 11:36   좋아요 1 | URL
아니, 1등이 보부아르인데... 아또 그럴법도 하네요. 그 때엔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 같아요.

저는 제2의 성도 읽으면서 ‘보부아르 천재인가, 아는게 어쩜 이렇게 많지!‘ 했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되게 자극이 되고 좋아요. 파이퍼스톤도 그렇고 실비아 페데리치도 그렇고 엄청 똑똑하잖아요. 마리 루티, 레베카 솔닛 모두 다요! 너무 좋아요!


계약 결혼으로 인해 자유를 누가 더 누렸다, 라는 건 사실 제 관심 밖이고요, 저는 그저 애정이란 걸 놓고 봤을 때, 두 명 혹은 여러명과의 관계를 가져가고 있는 거라면, 그 중 어느 하나도 완전히 충족된 건 없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적동반자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연애를 했다는 건, 그것 자체만으로는 좀 빈 구석, 공허함을 느꼇던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저 관계를 유지했어도 그것은 얼마만큼의 만족을 가져왔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물론, 한 명으로부터 육체적 정서적 교감을 모두 이루었다 하더라도, 인간 본연의 공허함은 있겠지만요.


저 계약결혼이라는 시도는 당시에 굉장히 대단했을 것 같아요. 음 그치만 분명히 마음 찢어지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고요. 저 살림총서 계약결혼 샀으니까 읽어보겠습니다!!

요즘 너무 이것저것 읽어보려고 시도하고 완독을 못하네요 ㅠㅠ

공쟝쟝 2019-07-2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앙 꽤많이 읽으셨네요. 저는 자유주의 패미니즘까지 읽다 말았는데 ㅠㅠ 비록 주말에도 할일이 많지만 반나절은 비워봐야겄어요~ 오랜만에 페이퍼 써야지 ㅋㅋㅋ!

다락방 2019-07-20 07:26   좋아요 0 | URL
아 저 순서대로 읽는 게 아니어서 저도 조금 읽었어요. 보부아르가 세 꼭지째입니다. 으하하하. 저 많이 남았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