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단발머리 님께서 작성하신 이 책에 대한 페이퍼를 보았고, 내친김에 나도 좀 읽다 자야지 하고 지난번 읽던 곳의 다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놀라운(!)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데, 아니 글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의 권리옹호》에서 '루소' 에게 반박한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루소를 까는거다! 그러면 왜 까는가? 깔만하니까 깐다..루소, 남자여... 루소도 걍 남자로구나.



루소는 선언하기를 여자는 결코, 단 한번도,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라고 느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천부적 교활함을 발휘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을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고, 남자가 쉬고 싶어할 때면 언제든지 더 매혹적인 욕망의 대상, 더 달콤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애교덩어리 노예로 변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이 주장들을 자연의 섭리에서 이끌어냈다고 내세우면서, 한 술 더 떠서 여성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복종이라는 큰 가르침을 철두철미하게 주입시켜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 미덕의 주춧돌인 진실과 강인함의 함양에도 어느 정도는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넌지시 말하기까지 한다. (p.59)



나는 그동안 세상에서 똑똑하다고 여겨져온 남자들이, 지혜롭다고 혹은 선견지명이 있다고 여겨져온 모든 남자들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이 서로 오구오구 우쭈쭈 해주고 천재 학자인 듯 떠받을어준 모든 남자들이, 그러나 '남자들의 세계에서만'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것, 세상을 보는 눈이나 좀 더 깊이 사유할만한 능력은 안되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남자들은 그동안, 세상이 남자들의 세상이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었다. 편협한 시선을 갖고 있어도 당대의 지식인으로 여겨졌었지.



나는 어디, 루소를 얼마나 가열차게 까대는가 보자, 까대는 것에 연대하리라!(응?) 하며 책장에서 오랜동안 잠자고 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옹호》를 꺼내가지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올랐다.
















아니, 그런데 대실망인 것이, 쩝... 옮긴이가 쓴 <들어가는 말>에 보면 내가 읽기로 선택한 이 책이 전문을 번역한 건 아니라는 거다.



《여성의 권리옹호》는 전체 13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문고본인 이 책의 성격상 다 싣지 못하고 중요도를 고려해 1,2,5,6,9,12,13 장을 선별해 번역했다. 2장과 유사한 주제를 논하는 3장과 4장,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노함으로써 전체 주제와 비교적 거리를 두고 있는 10장과 11장을 배제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정숙함에 대해서 논하는 7장과 좋은 평판을 유지하느라 소홀히 취급되는 도덕성의 문제를 지적한 8장을 빼는 것은 아쉬운 결정이었다. 아울러 여성을 폄하하는 여러 작가들을 비판하는 5장과 여성들이 쉽게 범하는 여러 오류를 지적하는 13장의 경우, 각각 한 명의 작가와 한 가지 오류만 선택했고, 13장에서는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6절을 포함시켰다. (- 여성의 권리옹호, 들어가는 말, 옮긴이 문수현, p.12)



음, 이게 전체를 다 번역한 게 아니라 일부라니, 음, 난 그것도 모르고 덜컥 사버렸는데. 제대로 읽으려면 다 읽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다시 살까..를 고민하다가 그냥 일단 읽기로 했다. 나한테 필요한 건 조금 더 과격한 책들일테니, 이건 이것대로 읽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여성폄하 작가들을 비판하는 5장을.. 읽고 싶다... 누구를 가열차게 까댔는지 궁금해. 자고로 사람이 친해지려면 뒷담화를 같이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제1장 인류의 권리와 연관된 의무들을 고찰함>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남자들을 깐다. 루소를 언제 까려나 했더니, 걍 1장부터 까버려. 루소만 까는 게 아니라 남자는 그냥 다 깐다. 루소를 비롯해서 모든 직업군의 남자들을 그냥 죄다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하는 일이라고는 여성을 유혹하는 것뿐이고, 세련된 태도 덕분에 화사하고 장식적인 의복 밑에 추악한 부도덕성을 감춤으로써 사악함을 더욱 위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게으르고 천박한 일군의 젊은 남성들이 간혹 시골에 체류하는 것보다 더 시골 마을 주민의 도덕성을 침해하는 것은 없다. (여성의 권리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p.27)



신분 혹은 재산을 가진 남성은 이해관계에 의지해 출세하게 되리라 확신하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변덕을 추구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반면에, 흔히 말하듯이 자신의 재능으로 출세해야 하는 궁핍한 신사는 비굴한 식객 혹은 비열하게 남의 약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된다. (여성의 권리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p.274)



선원들과 해군 장교들도 같은 범주에 해당되지만, 그들의 사악함은 경우만 다르지 더 심한 양상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신분에 해당하는 의식 절차들ceremonials을 이행하지 않아도 될 때는 더욱 철저하게 게으르다. 이에 비하면 육군 병사들의 하찮은 배회는 적극적인 게으름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다. 남성들끼리의 사회에 보다 국한되어 있는 해군은 유머와 심한 장난을 선호하게 된다. 반면에 행실이 얌전한 여성들과 빈번히 어울리는 육군 병사들의 경우 감상적인 위선적 말투가 몸에 밴다. 그러나 그들이 너털웃음을 짓건 예의 바른 억지웃음을 짓건, 지성이 의심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여성의 권리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p.27-28)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울스턴크래프트는 한마디로 남성들의 지성을 의심했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처한 상황에서 처한 환경에 따라 지성이 의심스러워. 1장의 마지막에서 다시 한번 루소를 까주고 마치는데, 자, 까는 걸 또 얼마나 문학적으로 까댔는지!



루소가 그의 탐구에서 한층 높이 올라섰거나, 혹은 그의 눈이 그가 거의 언제나 호흡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안개 낀 대기를 궤뚫어 보았다면, 그의 활동적인 정신은 참된 문명을 확립하고 인간의 완성을 숙고하는 데로 돌진했을 것이다. 맹렬하게 날아서 감각적인 무지의 밤으로 되돌아가는 대신에 말이다. (p.30)



정말이지,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맹렬하게 날아서 감각적인 무지의 밤으로 되돌아간다니!! 무식하다는 표현을 이렇게나 아름답게 하다니. 울스턴크래프트 진짜 반할만한 사람인 것이야. 너무 좋은 표현이다. 어떻게 이렇게 무식하다는 걸 세련되게 표현했을까.


맹렬하게 날아서 감각적인 무지의 밤으로 되돌아가는 오, 루소여!!



그래도 루소 궁금해져서 루소도 읽고싶어졌다.




















최근에 SNS를 통해서 윤김지영 선생님의 논문을 다운받았다. 논문의 제목은 <페미니즘의 지각변동: 새로운 사유의 터, 페미니즘 대립각들> 이었다. A4 영지로 70장이 출력되던데, 앞에 몇 장만 잠깐 읽어봤다. 아니, 근데, 선생님은 초반부터 하이데거..를 데려오는 것이다. 하이데거요??



페미니즘은 섣부른 화해와 평화의 수사, 고고한 윤리적 우월성의 현시가 아니라 존재론적 폭력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터를 열어젖히는 각축의 장인 것이다. 여기서 "존재론적 폭력"(Zizek, 2008: 68) 이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Introduction to Metaphysics(형이상학 입문)(2000)에서 도입하는 개념으로 "지금까지 들어보지도, 말해지지도, 생각되지도 않았던 것들을 드러내고 전개해나가는 쟁투"이자 "창조자들과 시인들, 사유하는 자들, 위대한 정치가들에 의해 지속되는 것"(Heidegeer, 2000: 65) 이다.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존재론적 폭력을 구사하는 이들은 사유(思惟)의 시작점을 여는 이이며, 페미니스트들도 이에 속한다고 필자는 해석한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들은 새로운 세계의 문법을 발명하고자 하는 이들이자 기존의 남성 중심적 문법을 뒤틀어버리는 시인들이자 사유의 대전제와 공리들의 임계점을 드러내며 끝 간 데 없는 질문의 역량을 퍼 올려 철저히 사유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지각변동: 새로운 사유의 터, 페미니즘 대립각들, 윤김지영, p.9)



아, 또 하이데거 궁금하잖아요, 여러분? 다행히도 나에겐 하이데거 입문서에 대한 정보가 있다. 한 달전이었나, 만화로 빌려왔다가 안읽고 반납했었지. 아하하하하. 하이데거는 이 만화로 존재한다! 꺄울 >.<
















음... 그렇지만.....음....이거 한 권 읽는다고 존재론적 폭력...에 대해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것 같은데. 그런데 사실 용어상으로 그리고 윤김지영 선생님이 페미니스트들을 존재론적 폭력에 비유함으로써 그 의미가 뭔지 잘 알겠다.


이 논문은 <문화와 사회 2019 27권 1호>에 실린것 같은데, 이 책은 어디서 구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논문은 파일로 제가 가지고 있으니 원하시는 분은 말씀하시면 이메일로 쏴드리겠습니다. 푸슝-



실비아 페데리치 덕에 마르크스 읽어야 됐고 파이어스톤 덕에 헤겔 읽어야 됐는데, 하하하하, 마리 루티 덕에 라캉 읽고 싶어졌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덕에 루소 읽고 싶어졌고, 윤김지영 선생님 덕에 하이데거 읽고 싶어졌다. 헤겔과 하이데거 라캉이라니.. 아니, 나는 살면서 내가 이들을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뜻밖의 장소에서 이렇게 툭툭 마주치게 되네.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하는 거 진짜 너무 좋다. 지금 고정 멤버는 사실 몇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정 멤버가 있다는 건 완전 큰 힘이 된다. 꼬박꼬박 같이 읽고 글 써주는 분이 있는가 하면, 밀려서 시간도 못지키고 글도 못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 시간을 넘겨서라도 읽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들을 보면 정말 큰 힘이 된다. 나로 하여금 계속 이걸 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달까. 내가 '하자'고 제안한 사람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퍽 다행이었다. '하자'고 한 이상, 해야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야말로 그 덕분에 꼬박꼬박 매달 해당도서를 완독하고 있다. 몇 권은 정말이지, 혼자 읽었다면 결코 다 읽을 수 없는 책들이었던 거다. 게다가 이렇게 읽다보니 되게 재미있고 즐겁다. 책 내용이 웃을 수 있는 내용인 건 아니지만, 고달픈 역사를 알게되는 것, 그것들을 표현해내는 글을 읽는게 새로운 깨달음인거다. 그 과정에서 작가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써줘서, 그리고 철학자들을 언급하고 그들의 책들을 인용해서 자꾸자꾸 더 재미있어진다. 어렵지만 재미있는 거. 내 능력이 딸리는 것 같아 몹시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렇게 여성주의 책 같이 읽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 작년에 내가 한 일중 가장 잘한 게 이 일이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윤김지영 샘과 윤지선 샘이 함께 저술한 책이 나왔다. 만세!! 이름하여, 《탈코르셋 선언》!! 아니, 엊그제가 월급날이었는데 어제 통장이 초토화 되었고..나는 7월 한 달 책 안사기..운동을 혼자 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윤김쌤 책이 나와버리면 내적 갈등이 오져버리는 것이여..



















이제 단팥빵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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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1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하이데거? 하아......

다락방 2019-07-12 09:02   좋아요 0 | URL
나 어떡해요? 😔

syo 2019-07-12 09:21   좋아요 0 | URL
🐒 : 체감상 하이데거가 제일 빡센 자식은 아니었어요(당연히 원전 아니라입문서 기준)

박찬국 선생님의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일단 권하구요, 무난히 읽히면 역시 박찬국 선생님의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로 복습 및 심화학습 해 주세요.

다락방 2019-07-12 09:22   좋아요 0 | URL
입문서 추천 겁나 받고 있는데 언제 다읽죠? 저 제 의욕대로 다 읽었으면 이미 대학교수... 🤪

syo 2019-07-12 09:26   좋아요 0 | URL
🙉 : 드릴 말씀이 없다. 그저 화이팅....

다락방 2019-07-12 09:31   좋아요 0 | URL
화이팅 접수합니다... (그러나 한숨)

단발머리 2019-07-1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방에서 나 혼자 혼잣말)
하이데거, 반사!!!

다락방 2019-07-12 10:15   좋아요 0 | URL
자, 우리 하이데거도 같이 파봅시다. 루소도, 라캉도....(끌어들이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9-07-1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소의 말년작은
에...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징징댐이 지나칩니다
정신승리(?)같은 그 글을 읽으면
화가 나가는 커녕 쯧, 측은해 지... 아니죠, 너그러워 질 필욘 없죠! 까대야합니다. 말년작은 후져요.

다락방 2019-07-12 14:08   좋아요 0 | URL
제가 뭐 말년작까지 읽게 될것 같진 않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라캉도 못 건드리고 있기 땜시롱 언제가 될진 모르고 이렇게 읽을 책은 쌓여만 갑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