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하면서 여성주의 책들을 몇 달간 읽다보니, 이 책들이 그저 책 한 권에 그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캘리번과 마녀를 읽을때는 셰익스피어의 책과 원숭이를 읽어야 했고, 성의 변증법을 읽을 때는 헤겔을 찾아 읽어야 했다. 어휴.. 진짜 고된길인데, 주말에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를 보면서는, 미리 읽었더라면 더 편했을까? 하고 목차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가진 책들도 있었고 아닌 것은 더 많았다.
가지고 있다고 다 읽은 것도 아니었고..아, 이 목차들 중에서 성의 변증법 딸랑 하나 읽었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으로 소위 '여성주의 고전'에 대해 예습을 하게 되는것일까? 복습이 더 나았으려나? 아니다, 예습이면 예습대로 좋을거야.
자, 이 책의 목차를 보자.
으음. 여성의 종속과 여권의 옹호...내가 다 사둔 책들이지, 읽지는 않았지만. 이번 기회에 한 번 챙겨볼까. 그렇게 나는 내 침실과 서재를 왔다갔다하며 여성의 종속을 찾아냈는데, 여권의 옹호가 보이질 않는다. 응? 나 이거 산 것 같은데?? 아니었나?? 사야지 생각만 하고 안샀나? 나는 이참에 얼른 사야겠다 싶어 알라딘에 들어가 주문하려고 보니 2018년에 내가 샀다고 나온다. 헐. 그래.. 샀구나. 샀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디에?
나는 그 책을 페미니즘 책장에 얌전히 꽂아두지 않은 나 자신을 원망하며 이리저리 뒤진다. 다시 침대 헤드도 찾아보고, 책상위 널브러진 책들 사이도 뒤져보고, 이쪽저쪽 다 뒤져보고 아 지쳐.. 왜 없는거야, 다시 사야 하는거야? ㅜㅠ 나는 아직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 목차밖에 못봤는데 지쳐있다. 인생... 책이란 무엇인가..게으름이란 무엇인가..정리정돈이란 무엇인가... 나여...
수박이랑 빵이랑 커피랑 막 챙겨먹고 기운을 낸 다음에 다시 뒤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찾아냈다. 만세! 그래, 그게 가긴 어딜 가겠어.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렇게 나는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에 언급된 책들중 이만큼을 가지고 있다.
완독한 건 성의 변증법 밖에 없는 건 비밀.... ( ")
토요일에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 집에서 조금 일찍 나갔다. 까페에 들러 에그타르트와 커피를 먹으면서 '마리 루티'의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아 이 세상 똑똑한 마리 루티가 라캉..을 얘기합니다. 라캉이라뇨. 하아- 저는 또 욕심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라캉. 알고 싶어지잖아요. 라캉은 만화책도 없는 것 같아 ㅠㅠ
라캉 입문서가 있니? 라는 말에 원숭이 친구는 라캉은 입문서조차 졸라 어렵다는 대답을 해줍니다...아, 라캉이여.
사실 최근에 법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져 사이버대학을 갈까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나를 아는 친구들은 방통대의 뼈아픈 실패로 '이번에도 안되지 않을까' 하는 내 고민에,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다르잖아' 하며 공부하라고 응원해주었다. 그래도 결정을 내리지 못해 어제는 커피를 마시면서 엄마와 이 얘기를 또 했는데, 엄마가 결정해서 다니기로 하면 알려달라고 했다. 등록금을 대주겠다고.
"아니 엄마가 그걸 왜 대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었더니 엄마가 너 공부하고 싶어하니까 내주겠다고 하는 거다. 내가 백만원 넘는다고 말했는데도 이 엄마가 겁도 없이... 엄마..
아무튼 그렇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어제 갑자기 라캉도 읽어야겠고, 또 어제 읽기 시작한 [여자다운 게 어딨어] 책 보니, 다른 책들도 읽어야할 것 같아서, 이렇게 여성학 공부도 할 게 많은데 내가 이러면서 언제 또 법을 공부하나, 싶어지면서 뒤로 빠지고 싶어진다. 라캉 읽다가 머리가 하얗게 샐텐데, 법은 언제 공부하지요? 하아-
따로 페이퍼나 리뷰로 작성하겠지만, [여자 다운 게 어딨어?]의 '에머 오툴'도 또 세상 똑똑한거야. 와- 세상에 똑똑한 여자들 너무 많다. 나는 공부하기 싫은 마음이 비집고 나오면 변명을 한다. '내가 아니어도 세상에 이렇게 똑똑한 여자들 많으니까 괜찮을 거야. 굳이 나까지 똑똑해지지 않아도 괜찮을거야' 라고. 그러면서 이 똑똑한 여자들 뒤로 숨고만 싶다. 아무튼, 이 책 얘기는 조만간 따로 하기로 하자.
아니, 그러니까 덧붙이자면, 나는 이제 가벼운 페미니즘 에세이는 그만 읽고 싶어서, 읽어야할 무거운 책들이 많은데 가벼운 건 좀 그만읽자, 이런 마음이 되어서, 이 [여자다운게 어딨어] 책도 사둔지 오랜데 안읽을 계획이었던 거다. 그래서 어제 방출하겠다고 페이퍼를 똭 썼단 말이야? (여러분 방출페이퍼 봤죠?) 그런데 친애하는 단발머리님이 이 책을 딱 찜하시는 거다. 오오, 친애하는 단발머리님께 이 책을 드릴 수 있다! 하면서 포장하려다가, 잠깐 그런데 어떤 책인지 훑어나 볼까, 하고 몇 장 넘겼다가, 세상 똑똑한 작가를 만나고 눈이 하트가 되어서 헐랭... 주저앉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단발머리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다 읽으면 보내드릴게요!)
책과 내가 만나는 타이밍도 타이밍이지만, 우연이 여러개 겹치고 겹치고 겹쳐서 운명이 된다.
아무튼,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에 언급된 책들을 다 사야되는건가..고민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