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름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여름>이라는 책을 써보면 어떨까 싶을 정도로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막연하게 내가 태어난
계절이어서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을 여름보다 더 좋아한 적이 없다.
나는 땀이 많이 나도 여름이 좋다. 낮이 긴 여름이 좋다. 아침에도 환한 여름이 좋고 퇴근 무렵에도 역시 환한 여름이 좋다. 뜨겁고 밝은 여름이 좋다.
여름이
좋아서일까, 여름에 대해 얘기하는 소설도 좋았다. '에쿠니 가오리'는 자신의 소설에서 여름에 떠난 남자를 그리워하기도 했고,
나는 그래서 그 소설을 읽으며 좋아했더랬다. 얼마전에는 사전정보가 전혀 없이 '여름'이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도서관에서 <카티야의
여름>을 빌려와 읽었다. 당연히 <그해, 여름 손님>도 사두었는데, 영화를 보고는 영화(콜 미 바이 유어 네임)가
싫어서 책을 안 읽고 있다. 종이책이면 팔아버리기라도 하겠는데 전자책이라 어쩔 수가 없네. 낭비되는 디지털.. 그렇다. 여름이
들어간다고 다 좋지는 않아서,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도 별로였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도 내가
너무 이해할 수 없는(이해하기 싫은) 남자들의 정서가 꽉꽉 눌러담긴 책이었고. '윌리엄 트레버'의 <여름의 끝>도 읽었는데, 그러고보니
사람들이 '여름'에 대해 얘기할 때면, 뜨겁게 사랑하다 떠나버리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 인생에 다시 못올 강렬한
사랑은 다들 여름에 온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 <우부메의 여름>은 강렬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이런 내가 '이디스 워튼'의 《여름》을 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디스 워튼인데, 무려, 여름이라니. 나는 입원한 병실에서 가장 먼저 여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다.
'채리티'는
아직 스무살이 채 되지 않았다. 마을의 명망있는 '로열 변호사'는 채리티가 어릴 적에 산으로부터 그녀를 데려와 같이 살았다.
후견인 정도가 될 수 있을텐데, 이 소설 속에서 '산'이라 함은 가난과 위험, 지저분함과 수치스러움의 상징이었다. 채리티가 그런
곳에서 살지 않도록 마을로 데려와 키워준 사람이니 로열 변호사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채리티에게 그렇게 말했다.
로열
변호사의 아내가 죽고, 로열 변호사는 어느날 채리티가 혼자 잠든 방의 문을 열려고 시도한다. 채리티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녀의 나이 열일곱이었고, 그녀는 로열 변호사가 술을 더 꺼내 마시려고 한다던가 아내가 있다고 착각한 것인줄로만 알았지.
그러나 며칠 후 로열 변호사가 그녀에게 청혼을 하자, 그제야 그 날 밤의 의미를 알게 되는 거다.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던 채리티이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혼자 서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는 아버지 같은 로열 변호사가, 노인의 모습을 한 그가 자신에게 청혼하자, 자신을 데려다 키워준 사람이지만, 이렇게 얘기한다.
"저하고
결혼하고 싶다고요? 저하고요?" 그녀는 경멸하는 웃음을 지으며 내뱉었다. "전날 밤 그걸 부탁하려고 찾아온 거였군요? 어떻게
되신 거 아니에요? 거울을 들여다본 지 얼마나 되었나요?" 그녀는 오만하게 자신의 젊음과 힘을 의식하며 몸을 꼿꼿이 폈다.
"가정부를 두는 것보단 저하고 결혼하는 게 돈이 덜 든다고 생각한 모양이지요. 이글 군에서 아저씨가 가장 인색한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두 번씩이나 그런 식으로 공짜 살림을 맡길 순 없을 거예요."
로열 씨는 그녀가 말하는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잿빛을 띠었고, 검은 눈썹은 마치 그녀가 내뿜는 경멸의 불길 때문에 눈이 먼 듯 떨렸다. (p.39)
나는
채리티가 그 앞에서 바로 경멸을 드러낸 것은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로열 변호사가 자신과의 결혼을 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고 생각한다. 너무 순진한거지.. 로열 변호사가 딸뻘되는 채리티에게 결혼하자고 한게 과연 공짜 살림을 맡기기
위함이었을까. 에휴.. 그만하자.
채리티는 돈을 벌어 이 마을을 떠나기 위해서
마을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에 이 마을의 청년이 아닌, 낯선 청년 '하니'가 찾아온다. 책도 많이 읽었고 공부도 많이
하고 집안도 좋은 청년. 채리티는 이 여름 이 청년과 사랑에 빠진다. 순간순간 채리티는 자신이 하니에게 부족한 상대라고
생각하지만(그와 책으로 상대할만큼 많은 책을 읽지도 않았다), 그에게 푹 빠져버린다. 그를 사랑한다. 그와의 사랑을 로열 변호사가
질투하며 바라보지만, 그녀는 그 사랑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간혹 마을 처녀들이 결혼 전의 불장난으로 임신을 하고 낙태를 하게
되면 몹쓸 여자가 되어버린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설마.... 숲 속 외진 곳, 아무도 모르는
곳이 그들의 비밀장소. 채리티와 하니는 그곳에서 늘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 열정을 불태운다. 채리티와 하니가 둘이 다른 마을에
놀러갔다가 로열 변호사에게 들켜 채리티는 '갈보'라는 욕을 들었었는데, 이 외진 곳 역시 로열 변호사에게 들키고 만다. 그러나
로열 변호사는 알고 있었다. 하니가 채리티랑 이렇게 열정을 불태운다고 해서 그녀와 끝까지 함께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여기가 자네 집인가?" 그가 물었다.
하니가 웃었다. "글쎄요 …… 누구 집도 아니죠. 어쩌다 스케치하러 이곳에 옵니다."
"미스 로열의 방문도 받고 말이지?"
"고맙게도 그녀가 제게 ……"
"이곳이 바로 결혼해서 그녀를 데리고 올 집인가?"
숨
막힐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채리티는 분노로 부르르 몸을 떨면서 갑자기 앞으로 다가갔지만 너무 풀이 죽어 말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노인이 뚫어지게 쳐다보자 하니는 두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나 곧바로 두 눈을 다시 쳐들고 로열 씨를
단호하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미스 로열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그녀가 마치 어린아이인 것처럼 말하는 건 좀 우스꽝스럽지
않습니까?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그녀 마음대로 오고 가고 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덧붙였다. "그녀가 제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뭐든지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로열 씨는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렇다면, 그가 언제 결혼해줄지 한번 물어보거라
……" 또다시 침묵이 흘렀고, 이번에는 로열 씨가 웃었다- 삐꺽거리는 소리가 나는 단속적인 웃음 말이다. "그렇게 못하잖아!"
그는 갑자기 감정을 폭발하며 소리를 질렀다. 채리티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위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처롭게 간곡히 타이르기
위해서 오른팔을 쳐들었다.
"넌 그렇게 못하잖니. 넌 그걸 잘 알고 있지 …… 그리고 왜 못하는지도 말이야." 로열
씨는 다시 젊은이를 향해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넨 왜 저애한테 결혼하자고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어. 왜
그럴 생각이 없는지 말이지. 그건 자네가 그렇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거든. 어떤 다른 남자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야."
(p.227-228)
그렇다. 채리티는 알고 있었다. 이 여름, 이 청년과
뜨겁게 사랑하지만, 이 청년이 자신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 청년은 다른 집안 좋은 여자와 약혼한 사이라는 것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어 알게되었다. 이 외진 숲속 집으로 자신을 만나기 위해 달려오는 남자지만, 자신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하지는 않는
남자다. 그녀는 그의 달콤한 속삭임을 듣고 그의 몸에 자신의 몸을 던지기는 하지만, 혹여라도 마을에 도는 얘기처럼 자기가 임신을
하고 낙태를 하고 몸을 파는 여자로 되는 건 아닐지 두렵고 무섭다.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미래는 그와 결혼하는 그녀가 아니었다.
채리티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하니에게 주었다-그러나 삶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다른 선물과 비교한다면 도대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그녀는 이런 일을 겪은 자신과 같은 다른 젊은 여자들의 경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것을 모두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것 가지고는 짧은 순간밖에 살 수 없었던 것이다 …… (p.217)
여름은
지났고 그는 돌아갔다. 자신의 약혼 문제를 정리하고 돌아오겠노라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하니도 알고 채리티도 알고 로열
변호사도 알고 나도 안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을 했다. 낙태를 하러 갔지만 낙태를 할만한 충분한 돈도 없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이나 경멸했던, 그러나 자신이 태어났던 산으로 가고자 한다. 내가 갈 곳은 거기 뿐이구나, 거기 뿐이야. 더럽고 수치스럽고
가난한 그곳. 그 곳에 가기는 싫었는데, 나는 그곳으로 가야만 하는 거구나.
그렇게
산으로 찾아든 그녀에게 로열 변호사가 찾아온다. 자신보다 나이가 훌쩍 많은 아버지같은 로열 변호사는 그녀에게 다시 결혼을
청하고, 이 인자하고 책임감있고 위엄있는 변호사와 그녀는 결혼한다. 결혼한 후, 하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저는 로열 씨와 결혼했습니다. 언제나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p.316)
어차피
하니는 채리티에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채리티 역시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녀가 로열 변호사와 결혼한 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니까. 하니가 돌아올거라 확신했다면 그녀는 로열 변호사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대로 아이를 낳는다면,
자신이 산에서 버려졌던 것처럼, 산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여자가 되었을 것이고, 그녀가 낙태를 했다면, 기존에 낙태를 하고 몸을
파는 여자가 되었던 마을 다른 여자처럼 될 것이다. 그녀가 낙태 하기 위해 찾아갔던 의사(?)는 나중에 그 사실을 빌미로 그녀를
협박한다. 그 여름을 뜨겁게 보낸 건 하니와 채리티인데, 비참한 결혼을 하고 낙태로 협박을 당하고 절망에 휩싸이게 된 건 채리티
혼자다. 하니는 약혼을 정리해볼게, 라고 말하고 떠났지만, 과연 그가 그 약혼을 정리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최선을 다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말이 왜이러나 싶을만큼 막판에 채리티는 로열
변호사를 굉장히 훌륭한 어른인듯, 그러니까 기존에 자기가 잘못봤던 것처럼 그를 올려친다. 옮긴이는 그걸 채리티의 성장으로 보고
로열 변호사의 성장으로 보지만, 나는 그것을 성장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채리티의 성장이 아니라 체념이다. 체념. 자신의 젊은
육체를 한껏 뜨겁게 하고 떠나버린 청년, 신분의 차이로 그의 옆에 있을 수 없게 되자 그녀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남자. 그런 남자를 계속해서 싫은 남자로 보기 보다는, 내가 잘못 본걸거라는 자기 최면. 어떻게 자기에게 갈보라고 욕한
남자를 훌륭한 남자라고 좋은 아저씨라고 다시 생각하게 될 수 있나.
나는 이래서 여자 소설가의 번역을 여자 번역가가 해주기를 바란다. 이 옮긴이가 어처구니 없는 건, 뒤의 <작품 해설>에서도 드러나는데, 자, 우리 다같이 빡치며 읽어보자.
편지
끄트머리에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 채리티'라고 적는 것을 보면 하니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하니가
자신보다는 애너벨을 먼저 알고 있었고, 또한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면 채리티는 그를 기꺼이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다. 의무감에서
자신과 결혼하기보다는 약혼자와 결혼하는 쪽이 '옳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채리티가 이 편지에서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말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다. 임신한 아이를 볼모로 떠나간 애인을 다시 붙잡으려고 애쓰는
여성을 우리는 현실에서나 소설에서나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작품해설, p.339)
하아-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어.
지금
뭐하는 거야. 저게 말이야 방구야. 두 눈을 비비고 다시 읽어봐도 막말이다. 미쳤나.. 어떻게 '임신한 아이를 볼모로 떠나간
애인을 다시 붙잡으려고 애쓰는 여성' 이라고 여기에 써놓나. 어떻게 이디스 워튼 소설에 ..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에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임신한 아이를 볼모로? 채리티가 하니 붙잡으려고 억지로 임신했냐? 이 남자랑 결혼해서 팔자 고쳐야지 싶어서
부러 임신한거야? 임신은 혼자 하냐? 임신하고 싶다고 채리티가 울고 매달렸나? 그 숲속으로 매일 찾아온 게 하니인데? 지가 좋다고
그 여름에 와서 뜨겁게 안아놓고 떠난 남자인데, 뭐라고? 임신한 아이를 볼모로.. 어쩌고 어째? 하아- 채리티는 마지막에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썼지만, 나는 그 사랑안에 이미 하니가 어떤 남자인지 알고 있다는 채리티의 마음이 담겨있다 본다. 그리고
채리티는 알고 있다. 하니가 싸튀충인 것을. 아니, 생각을 좀 해보세요. 임신한 아이를 볼모로 남자를 협박하는 여자들이 많은지
싸튀충이 많은지. 그리고 임신한 아이를 볼모.. 라니. 임신이 여자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좀 하자. 아니 어떻게
저런 말을 쓰지? 어떻게 저런 말을 이디스 워튼의 소설에 해설이라고 떡하니 써놓을 수가 있지? 노어이... 어이가 노합니다..
어이 이즈 존재 무...
뜨거운 여름을 안겨줬지만 서늘한 소설이잖아, 결말에 대해 너무 아프다고 생각했는데, 옮긴이의 작품해설이 소설을 망쳐버렸다. 옮긴이의 작품해설이 이디스 워튼의 여름을 망쳐버렸어. 한심한 남자가 둘씩이나 나오는 소설에서 '오, 한심한 여자가 아니라니 놀랍잖아?' 하는 해설이라니...
이디스 워튼의 여름이 아쉽다. 아주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