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미오 씨, 이 편지를, 나의 이별을, 나를 이해해줘. 지금이야말로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당신은 내 청춘이었다는 것! 아무리 괴롭고 답답한 날들이었어도 당신은 내 청춘이었어. 내가 지금 당신을 떠나는 것은 오로지 당신과 만나기 위해서야. (p.190)
이 책은 온통 공허함으로 가득차있다. 이 책을 읽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떠올리는 건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상실의 시대에서 가까운 사람을 잃고 결국은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던 주인공의 이야기와, 《그래도 우리의 나날》에서 등장인물들이 젊은 시절 자신의 결정 혹은 선택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청춘의 공허함으로 말하자면 나 역시 다를 바 없다. 그 시절에는 내가 공허하다는 것을 몰랐지만, 지나고보니 내게 청춘은 공허함이었다. 무엇하나 해놓은 것도 없고 했다고 기억나는 것에 대해서라면 후회를 한다. 이 책의 끝으로 가면서 '세쓰코'가 후미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노라니, 아, 나 역시 청춘이 공허했지, 하는 아련함과 애틋함이 마음속에 가득 차올랐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청춘에 대해 얘기할 때, 나는 그 시절은 내게 '없는 시절'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 시간들을 내 인생에서 들어내버려도 크게 지금에 영향 받지 않을 것 같았던, 그런, '없던' 시절. 그리고 내가 했던 사랑(인줄 알았던)이 생각난다. 후회만 남기던 그 연애가. 내가 왜 그랬을까, 왜그랬을까, 숱하게 나에게 묻고 또 죄책감을 갖던 그 시간이. 내 평생의 비밀이 되어버린 그 연애가. 종국에는 '그가 나빴어' 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연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그 연애로 인해 허덕이고 괴로워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를 누군가 알까봐 두려웠고, 바로 그 시절 때문에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다음 연애 상대에게 언제나 '정치할 거면 나랑 사귀지마' 라고 했었다. 나, 털면 먼지 투성이야.
그런 청춘의 공허함과 후회를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다. 그래서 건드리는 것 같았는데, 또 그렇기에 위안도 받았다. 아, 청춘의 그 시절에 후회를 하고 미련을 남기고 죄책감을 갖는 것, 그 시절로 인해 그 후에 자꾸 내가 왜그랬을까 돌이켜 보는 것, 그 때 내가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고 뒤늦게 깨닫는 것이,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는 것. 덕분에 내가 가진 공허함과 후회, 자책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어, 누구나 다 그런 거였어, 그게 청춘이 한 일이었어.
내가 내 인생을 좋아하기 시작한 때에 만났던 사람에 대해서 생각했다. 세쓰코가 후미오를 청춘이라 생각했다면, 나는 그가 나의 청춘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청춘을 건너온 뒤에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 내 청춘을 건너온 뒤, 내가 나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사랑한 뒤에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생각했다.
청춘의 공허함과는 별개로,
이 책의 배경은 짐작컨대, 1960년대의 일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었지만, 여성의 '처녀성'에 집작하던 남자들이 있던 바로 그 때. 뭐, 지금 그게 싹 사라졌다고는 결코 말할 순 없겠지만(나는 장동민이 한 말을 기억한다. 쓰레기.. 장동민 너무 싫고, 장동민 좋아하는 사람들도 싫다, 그런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는 거 넘나 신기한 것.), 이 책속에도 당연히 그런 인물이 등장한다. 아니, 그 당시 사회적 흐름은 자유섹스 즐기는 여자는 경멸받을 여자 였어. 읽으면서 하아, 여자들은 정말이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온 것인가 생각했다.
후미오의 동료 '미야시타'는 소개를 받아 결혼하기로 했다면서, 후미오에게 그녀에 대해 좀 알아봐 달라고 한다. 후미오도 말하지만, 제삼자에게 결혼 상대에 대해 확인하려는 걸 보니 벌써부터 역겹기 짝이없는데 아, 글쎄.
"말하기 좀 그렇긴 하지만, 특히 교우관계를 꼼꼼히 물어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처녀성이란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설령 한 번이라도 남자와 손을 잡았다면 그건 이미 처녀를 잃은 거라고 보거든요." (p.41)
하아- 처녀란 무엇인가. 저 때에 미야시타가 저렇게 살았다면, 저렇게 살았던 사람이 미야시타 하나 뿐일까. 당당히 입밖으로 저런 말을 꺼낼 수 있었다는 건, 저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 아닌가. 결혼할 당사자인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누군가 자신이 처녀인지 아닌지를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아, 너무 ......
책을 읽노라면 남자 주인공 후미오는 약혼녀와도 결혼전에 당연히 섹스를 했고, 그 전에 다른 여자들하고도 섹스를 했다. 그러니까 남자가 섹스를 하는데에 당연히 상대 여자가 있을텐데, 남자1이 여자1, 여자2, 여자3 과 섹스를 했을 것이고, 남자2가 여자4, 여자5, 여자6, 여자7하고 섹스를 했을 것인데, 그런데 '결혼할 때는 처녀여야 해, 처녀성 중요중요' 이러고 있으면, 도대체가 말이 되나? 그러면 지들이 섹스를 안해야 상대도 섹스를 안할것 아닌가. 나는 섹스하고 다니지만 상대는 섹스 안해본 사람이어야 해. 섹스에 상대가 필요한데 어떻게 나는 하지만 여자들은 처녀성 처녀성.. 너무 이상한 거 아닌가. 여자들의 처녀성이 중요하고, 그 처녀성 지킨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면, 자기들이 여자랑 섹스를 안했어야 되는거잖아? 노이해..
"나는 옛날부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내로는 얌전한 사람이 좋다고. 남자에게는 아무래도 평생 해야 할 일이 있잖습니까. 특히 우리 같은 학자에게는. 그래서 고지식해 보이겠지만, 여자는 남자를 잘 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나는 내 아내를 배신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 나중에 내가 박사 논문을 낼 때는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건 속표지에 '묵묵히 내조해준 아내에게'라는 헌사를 반드시 넣을 겁니다."
"그렇지만 요즘 여성들은 직접 박사 논문을 쓰고 싶어할지도 몰라요." (p.42)
아마도 저 때는 저런 남자들과, 이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후미오 같은 남자들이 공존하는 때였나보다. 뭐, 지금도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미오가 그렇다면 완벽한 남자냐? 네버, 네버, 네버, 네버... 이건 잠시후에 얘기하기로 하고, 자, 미야시타의 계속되는 아내론 혹은 여성론 들어보자.
"소네 군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대학원 시험에 합격한다는 것과 학문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지요. 단지 시험에 합격하는 것 외에 필요한 무언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설명하면 없어질 것 같은 무언가가 학문에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이 여자에게는 선천적으로 부족해요. 여자의 행복은 학문을 하는 데 있지 않아요. 나는 우리 연구실 여자들을 보고 있으면 그녀들이 애쓰는 것이 딱해서, 아니 , 아니 비참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눈을 돌리고 싶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후쿠하라 같은 여자를 보면 마음이 놓이지요." (p.43)
자기 스스로를 학자라 칭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공부를 많이 했고 앞으로도 많이 할 사람이, 아무리 그 시대가 그런 시대였다고 해도, 시대의 흐름 그대로만 따라가는 걸 보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공부를 한다면 우리는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걸 바탕으로 해서, 그것이 어떤 학문이든, 앞으로 나아가고 지금보다 더 넓게 볼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미야시타는 학자이면서, 그리고 앞으로도 학자로 살 거면서, 그러나 그 학자로서의 정체성이 그에게 어떤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그저 박사라는 타이틀을 따기만 하면 남자는 눈누난나 앞으로 잘 뻗어나갈 수 있으니 사고의 확장 따위 필요없고 일단 내조잘하는 여자여야 한다 라고만 생각하는 것인가. 이런 학자라면 도대체 학자란 무엇인가.
"나는 학자입니다. 나는 중매결혼 외에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샐러리맨처럼 조직에 들어가 외면적인 속박에 몸을 맡기고, 그걸로 자신을 지탱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도 되는 거라면 연애도 좋겠지요. 그러나 학자는 자신을 다스려야 하잖습니까. 그리고 자신을 다스리려면 객관적인 질서, 요컨대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질서를 인정해야 해요. 그러므로 이미 그 질서 속에 있는 사람이 그 질서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추천해주는 중매결혼이라는 형식, 이른바 질서의 재생산으로서 중매결혼이라는 형식을 우리가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연애는 그것이 아무리 주위의 축복을 받는 것처럼 보여도 본질적으로 반질서적인 것입니다. 아니, 나는 성적 욕망에 관해서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상대가 자신에게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플라토닉한 애정 자체에 이미 반질서적 경향, 자신이 속한 질서에서 탈출하여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아니, 반대일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자유가 뭡니까? 세상에 잠깐 스쳐가는 존재인 우리에게 자유가 뭘까요? 만약 학자이면서 연애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학문이나 연애, 적어도 둘 중 한쪽이 가짜일 겁니다. 오하시 군, 만약 우리가 연애를 한다면 무엇에 의지하여 학문이라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p.45)
미야시타는 학자이고, 학자인 스스로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에게 아내는, 그를 내조할 사람이자 또 결혼을 하는 게 보통 사람들이 하는 거니까 선택하는 그런 것인 것 같다. 공부를 계속하고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섹스할 사람이 필요한거야. 인생을 좀 더 즐겁게 살자 라든가 행복하게 살자 같은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학자로서 질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만 머릿속에 가득한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굳이 결혼을 선택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미야시타가 여자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여자들 역시 여자라는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럽다. 후미오가 약혼녀와 호텔에 갔다가 여자동료를 호텔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호텔에 간 건 후미오도 갔는데, 여자는 그 일에 대해 몹시 신경을 쓴다. '호텔에서' 자신을 만난 것. 자신이 남자와 호텔에 가는 여자라는 것.
"연말에요, 그런 데서 만났잖아요."
교코는 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역시 너였구나. 어두운데다 얼핏 봐서 잘 몰랐어."
"그랬군요."
교코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알아도 괜찮아요. 그게 나니까 …… 그런데, 나 경멸했어요?"
"나도 같은 곳에 있었잖아." (p.154)
그 곳에 간 남자는 마주친 여자에게 나를 경멸했냐고 묻지 않는데, 그런 건 생각지도 않는데, 왜 여자는 남자에게 호텔에 간 나를 경멸하냐 물어야 했을까. 아, 여자들이여, 도대체 그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온겁니까...
유코는 후미오와 섹스를 하고 임신을 한다. 이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그녀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녀가 남긴 편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아, 가엾은 엄마. 당신 딸의 결혼식을 보지 못하다니. 딸의 결혼식 대신 장례식을 봐야 하다니. 엄마, 당신은 울고 있겠죠. 또 언제나처럼 투덜거리며 하소연하겠죠. 유코, 빨리 돌아와. 유코, 여자가 날이 어두워졌는데 돌아오지 않다니. 유코, 세상은 무서워. 유코, 남자하고 편지를 주고받다니. 유코, 너는 결혼도 안 한 몸이야. 유코,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유코, 남자란 건 말이야…… 유코, 만약 네 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는 더는 살아갈 수가 …… 유코, 혹시 네가 ……유코, 혹시 너는 ……유코, 유코 ……
그런데 엄마. 이제 모든 걸 용서해줄게요. 나도 모두 용서해주세요. (p.128)
남자와 여자가 섹스를 했는데 어째서 임신도 여자몫, 낙태도 여자몫, 비난도 여자몫이 되는걸까. 남자와 여자가 섹스를 했는데, 그 뒤로 남자는 다른 여자를 만나 약혼도 하고 삶에 지장 1도 없이 살아가는데, 여자는 세상의 비난이 무섭고 낙태 수술대 위도 무섭고 엄마가 자신에게 할 말들이 무섭고, 그래서 수면제를 사놓고 죽음을 결심해야 한다. 아, 여자들.. 어떤 세상을 살아온겁니까. 대체 다들 어떻게 견뎌냈던 거에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처녀여야 한다는 구속, 그러나 섹스하자고 요구하는 남자, 그러나 섹스 하고나면 비난이 무서워지는 현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얼마나 오래 견뎌왔나요. 우리, 이제 더는 견디며 살지 맙시다. 남자들이 요구하는대로 살아가지 맙시다. 세상이 시키는대로 살지 맙시다.
《캡틴 마블》에서 '캐롤'이 얘기하지요.
"나는 지금껏 너희들의 통제하에 싸워왔어. 내가 자유로워지면 어떻게 될까?"
캐롤은 자유로워지자 한껏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더 큰 능력을 드러낼 수 있었다. 더 큰 능력이 두려워 그토록 통제하려 했던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초반부터 이상한 것,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이건 뭐지? 계속 물었지만 답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예전에 내 친구였던 한 여학생이 자살했을 때, 그녀의 친구들이 그 죽음을 슬퍼하면서 무의식중에 보였던 쾌활함, 혹은 기쁨이라고 해도 좋을 어떤 것과 비슷했다. (p.12)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친구가 자살했는데 그 죽음을 슬퍼하면서 무의식중에 쾌활함을 보였다니, 기쁨을 보였다니.... 대체 누가 그럴까? 그게 뭘까? 나는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떠올렸다.
다음날 저녁은 우리가 마닐라에서 보내는 마지막이어야 했어요. 나는 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어요. 텔레비전을 켰을 때 처음에는 영화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 보니까, 영화가 아니고 뉴스더라고요.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하나둘 무너지더군요.
그때, 나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요,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
(중략)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 공격의 희생자들을 생각한 게 아니에요. 텔레비전에서는 어떤 허구 인물이 죽으면 마음이 많이 움직이죠.
여러 일화를 통해 내게 친숙해진 인물이 죽으니까 그런 거죠. 그런데그 순간은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그 모든 것의 상징성에
빠져들었던 거죠.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pp.66-67)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즐거움을 느꼈다는 건, 책 속 주인공이 말한것처럼 혐오스럽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파키스탄인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그 상징성'에 즐거움을 느낀 것. 나는 그것에 대해 이해했다. 빌딩이 무너짐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것은 당연히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자신의 입장에서 상징성을 보았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겠는 거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의 저 문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자살했는데, 거기서 어떤 쾌활함을 느꼈다는 걸까? 뒤에 이 일에 대해 자세히 나오는데, 그 때 주인공의 말을 빌자면 아마도 그는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에서 오는 '큰 사건'에 대한 쾌활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젊음, 청춘, 큰 사건. 그렇지만 나는 아무리아무리아무리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는 푹푹 찌는 병원 뜰의 그늘에서 유코의 부모가 상경하기를 기다렸다. 다들 잘도 떠들었다. 쾌활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들을 증오했다.
나는 그들이 유코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지 않는 것을 증오한 게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슬퍼했다. 어쩌면 친구인 유코의 죽음을 순수하게 슬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지금 인생의 중대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여 무의식중에 쾌활해지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그런 쾌활함을 증오했다. (p.130)
나는 정말이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친구의 죽음앞에 '아아, 나의 인생에 중대사가 생겼어!' 하면서 쾌활해하기도 한다는 말인가, 사람이? 나랑 알고 지낸 것도 아닌 연예인의 자살소식만 접해도 우울한데, 내 친구, 나랑 이야기나누고 한 공간에 있기도 했던 친구가 죽었는데, '아아 중대사 중대사 내 인생의 중대사' 이러면서 쾌활할 수 있나? 어떻게 이렇게 보지? 이런 사람들을 자기가 직접 본건가? 누군가는 친구가 죽었을 때 중대사다~ 이러면서 다니고 있는걸까? 정말?
그런데, 주인공이 그랬다.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보기 마련이다.
유코의 죽음을 알고 그 속달을 다 읽었을 때 내 가슴은 기대로 떨렸다. 나는 내 마음이 격렬한 회환과 자기혐오와 죄의식으로 가득차, 그것과 싸우는 일에 내 온 힘을 소모함으로써 빛나는 영광의 날들이 부활하리란 걸 예감했다. 나는 싸울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충실함을 느꼈다. (p.131)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충격적이고 그러므로 아픈 일에 대해서 빛나는 영광의 날들이 부활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후미오였다.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런 사람이니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중대사다~ 하면서 쾌활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나는 후미오가 변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미오같은 사람은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선을 긋지 못하고 넘어버리는 사람. 후미오가 그런 경우의 사람이고, 모든 비극을 자기가 끌어안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다. 비극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슬픈 나', '이렇게 힘든 나'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 '내 인생은 특별해, 나는 이렇게나 불행하니까' 라며 불행을 끌어안는 사람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으면 역겨워 하다니. 게다가 유코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녀는 왜 힘들어했고 왜 비참해 했는가. 어떻게 후미오가 다른 여자친구들을 보며 괘씸해할 수 있을까. 정작 나쁜 새끼는 후미오인데. 하아-
야, 너나 잘해... 콘돔 없이 섹스해서 여자를 비극으로 몰지 말고 쌍놈아.
처녀여야 돼, 남자랑 섹스한 여자는 안돼, 그런데 나랑은 섹스해야 돼, 임신이라니 안돼, 그렇지만 콘돔은 안써, 낙태하면 안돼, 으악 여자가 혼자 애를 낳다니 미혼모 안돼... 도대체 뭘 어쩌라는건지? 슈퍼파워가 있다면 다 날려버리고 싶다.
간절하다, 슈퍼 파워...
당신과 약혼한 지 벌써 이 년이나 됐네. 그런데 그동안 당신은 한 번도 내 옛날이야기를, 학생 시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어보지 않았지. - P159
세쓰코를 필요로 한 순간 세쓰코를 잃었다. 그런데 지금 내 마음의 이 여유로움은 무엇일까. 고마바 캠퍼스의 날들 이후, 한 번도 나를 찾은 적 없는 여유로움이다. 나는 세쓰코가 한 일이 옳았다고 느꼈다. 슬픔마저 덜해진 듯하다. - P194
그러나 그걸로 됐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 P1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