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호텔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나랑 친한사람들이 다 안다. 게다가 내가 호텔호텔 하는 얘기를 페이퍼에도 얼마나 많이 썼던가. 더욱이 이국의 호텔이라면 말해 뭐해, 그저 거기에서 주는 낭만이라는 것이 있단 말이다. 어제도 나는 허수경의 이국의 호텔이란 시를 올리지 않았던가. 언젠가 이스마엘 카다레 소설을 읽고서도 낯선 이국으로 성인 남자와 여행하는 것에 대한 상상을 했었고, 박정대의 새들의 북호텔을 읽고서는 내가 호텔을 하고 싶은 상상을 풀어낸 적도 있었다. 그래, 나는 호텔을 갖고 싶었다. 어마어마한 큰 체인 호텔이 아니고 그저 작은 호텔. 조용하고 작은 호텔을 내 것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서 손님들을 받는거다. 대부분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이겠지만, 어떤 이들은 그러다 친해지기도 할것이고, 내가 가장 바랐던 건, 보고 싶은 사람을 어쩌면 그런 식으로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지 않았나..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내가 운영하는 작은 호텔에서,
마
주
친
다
너무 좋잖아. 다시 떠나보낼지도 모르지만, 그런 상상을 머릿속에 한가득 안은채로, 나는 언제나 이국에 작은 호텔을 하나쯤 운영하는 걸 상상하곤 했다. 물론 내가 이 꿈을 실현해 이국의 호텔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해도,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여행을 겁나 싫어한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지만... 뭐, 그러한 꿈을 꿨다, 그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 루루는 내가 그렇게나 바랐던 것처럼, 마요르카 섬에서 호텔을 운영한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50년간 마주치지도 않았던, 오해로 인해 멀어진 한 남자가 있다. 나는 이 둘이 결국 재회하고 오해를 풀고.. 뭐 그런 거라고 생각했고.... 그러니 이것은 내가 바라는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한거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이야기, 만나야 할 사람들이 어떻게든 만나는 이야기, 그런데 심지어 여자가 호텔을 해. 꺅 >.<
나는 이 책을 좋아할, 이 이야기를 사랑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거다. 나는 이 책을 읽기도 전에 그 정도의 내용만 대략적으로 짐작하면서 '어쩌면 2018년의 책은 이 책이 될지도 몰라' 기대했던 거였다. 그런데....
아, 남자작가여... 첫문장부터 나는 '이 책이 가장 좋은 책이 되기는 글렀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그녀를 찾아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탄성을 내질렀다.
"루루, 지금 거짓말하는 거죠? 진짜 80대 맞아요?"
이제는 아흔에 접어들었지만, 루루 데번포트는 젊은 여자 뺨칠 정도로 늘씬하고 탄력 있는 몸매의 소유자였다. 평소에는 등까지 길게 늘어뜨린 건강한 모발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땋거나 양 갈래로 넘겨 고리 모양으로 말아서 목덜미에 걸치고 다녔다. 30대에 접어들 대부터 희끗희끗 새어버린 머리카락은 루루 스스로 타고난 수많은 매력 중 하나로 손꼽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지금까지 건강이나 외모에 대해서 딱히 고민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살다보면 그녀처럼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는 행운을 타고나는 사람도 종종 있는 법이니까. (p.10)
아흔에 가까운 여자를 젊은 여자 뺨칠 정도로 '늘씬하고 탄력있다'고 묘사하다니.. 이 남자는 또 판타지 실현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늙은여자에게 탄성을 내지르는 이유를 늘씬하고 탄력있는 것에서 가져오다니, 이런 사람이 내가 '올해의 소설이다'라고 부를만한 내용을 써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책속 등장인물인 남자들은 하나같이 처음 보는 여자의 몸매부터 본다.. 작가가 위에 쓴것처럼 물론, 살다보면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는 행운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왜 없겠는가. 있다. 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한 여자를 칭송하는데 탄력있는 몸매..늘씬함....을 가져오는 건 그다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순 없다. 그냥 여자를 육체로 먼저 인식한다는 것에 불과할 뿐...
그러나 이야기는 끝까지 읽어야하고, 나는 루루와 제럴드 사이의 어떤 사연, 그들이 한 때는 사랑했으나 50년간 만나지 못하고, 그 후에 그들이 재회했을 때의 사연, 그것이 궁금하였으므로 읽고자 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점차 과거를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루루의 70대. 그녀의 생일파티가 그녀의 호텔에서 열리던 날, 루루는 동네의 15세 소년 찰리에게 생일파티 DJ 를 부탁한다. 루루는 70대이지만 40대라 해도 손색없을 미모로움과 탱탱함이 있엇고(--^), 아무튼 그러다가.. 파티가 끝나고 찰리에게 알바비를 주면서 자신이 너무 피곤하다며 자신의 등에 크림을 발라달라고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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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친절하고 다정한 할머니니까, 하고 찰리는 크림을 발라주려 하는데, 루루는 가슴까지 다 보이게 옷을 벗어내는 거다. 찰리는 루루의 등에 크림을 발라주며 루루의 젖꼭지도 보게 되고, 루루는 입으로 신음소리 내고... 하아. 설마 미친 이야기로 진행되는 건 아니겠지....하다가 찰리는 발기하고..... 야, 쌍욕나오게 진행하지마... 하는데, 결국 루루는 찰리를 침대에 눕힌다.
대체, 70세 할머니가 15세 미성년자를 눕히고 뭐하는 짓인가. 찰리가 괜찮다고 해도, 찰리가 원한다고 해도 당신이 하는 건 미성년자 성폭행이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야. 찰리는 오늘이 처음이라 말하고 루루는 그렇다면 '오늘 일이 서로에게 아주 아름다운 선물이 되겠구나' 라고 말한다. 이 무슨 개소리 막말이야...어디 이렇게 아무말 하고 자빠진거지... 아..... 물론 찰리는 발기했다. 그러나 찰리가 가슴 보고 발기했다고 해서, 여자랑 해보고 싶었다고 해서, 이것이, 이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이 '섹스'라고 할 수 있을까?
찰리는 루루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만두는 것도 원치 않았다. "네, 괜찮아요. 생신 축하드려요." (p.109)
15세 소년, 미성년자가 성인인 상대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해서 그 관계에 응하는 건, 성폭행이다. '그만두는 걸 원치 않았다'고 해도 상대가 미성년자이면 성폭행이다. 어디 거기에다 대고 아름다운 선물 운운하는가. 아 진짜 토할 것 같아. 대체 왜 어른이, 성인이, 미성년자와 섹스를 시도하는가. 안된다. 안돼. 그거 안되는거야. 그거 섹스 아니야. 미성년자가 하고 싶다고 아무리 말해도 '미성년자'인 이상 강간이고 폭행이다.
'토니 콜렛'이 조연으로 나왔던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는 십대 소녀가 옆집 아저씨에게 성적 호기심을 갖게 되고 끌리는데, 그 옆집 아저씨는 그 소녀와 섹스를 시도한다. 결국 그 아저씨는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경찰에 잡혀가는데, 이에 그 소녀는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그런데 저도 원했어요."
라고 말한다. 그 때 그 아주머니가 소녀에게 말한다.
"니가 원했어도 미성년자한테 성관계를 시도하는 건 강간이야." 라고 하는 거다.
나는 미성년자랑 하는 걸 미성년자의 당연한 욕망 같은 걸로 그려내는 게 너무 싫다. 미성년자의 욕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나이 차이 나는 성인과 벌어진다? 그게 과연 동등한 관계의 섹스인가? 내가 은교를 졸라 싫어하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엿같다고 생각하는게, 한쪽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도 소년이 소녀와 서로 호기심을 가지고 사귀고 섹스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이 없다. 그들은 동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 남자? 훗. 말같지도 않은 소리.
실제로 70세 할머니가 15세 소년을 성폭행 하는 일은 얼마나 일어날까. 그런 일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피터 니콜스'라는 남자 작가는 이 일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툭, 그려냈는데, 뭐랄까, 여자에 대한 판타지... 너무 차고 넘치는 사람같다. 게다가 소설 속에는 '머리가 빈' 여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지가 사귀는 여자면서도 머리가 비었다고 해... 참.......
70세 할머니가 15세 소년을.. 아무리 70세 할머니가 겉으로는 40대로 보인다 해도, 40대 역시 15세 소년에게 그러면 안되는거다. 말같지도 않은 소릴 하지를 말어.... 하아......
그런데 루루가 여자주인공이다. 나는 루루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내가 고작 100페이지 조금 넘게 읽어냈을 뿐이고, 잠깐 책장을 덮고 나는 이 책을 읽어야하나 고민했다. 나는 루루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젊은 시절 사랑한 남자와 왜 오래 헤어지게 됐는지, 오해는 어떤 것이었는지, 과거에 어떤 사랑을 그들이 했는지 궁금했는데, 그걸 알고 싶은데... 게다가 나는 이렇게 오랜 기간 헤어졌다 만난 사이라면, 그들 사이에 어떤 각자의 성장이 있었을 거라고, 또 살아오는 동안의 각자만의 역사가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15세 소년을 성폭행하는 이 부분을 읽고나니, 이 여자가 '망가졌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혹여 오랜 시간 후에 만나게 됐을 때, 나는 나의 과거에 이런 일을 넣고 싶지 않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국의 호텔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어 늙어가고 있을 때, 우연히 그 호텔에 그가 찾아들었을 때, 내가 예순이든 일흔이든, 나는 그 사이에 나쁜 짓을 했던 사람이고 싶지 않다.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일을 해서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나는 후회없는 삶을 살고 그에게 떳떳하고 싶어. '당신을 그리워하는 동안 기쁜일도 슬픈 일도 있었고 아프기도 했고 그리워도 했고, 의도치 않은 잘못들도 했었지만, 그러나 수치스러운 짓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저런 과거를 내 삶에 불쑥 끼워넣은 상태로 만나고 싶지 않아. 무너지고 싶지 않고 망가지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저런 범죄를 저지르고 싶지 않아. 저게 뭐야...
나는 이 이야기가 근사할 거라고, 우아할 거라고 생각했다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이 책을 알라딘에 넣고 검색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보고 싶어서. 만약 좋다는 평이 있다면, 결국은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쓰여져 있다면 꾹 참고 계속 읽어야지, 계속 읽어야할 어떤 이유가 이 책에는 있을지도 몰라, 생각했다. 그렇게 리뷰를 검색하는데, 친애하는 ㅁ님의 리뷰가 있다. 그리고 그 리뷰에는 이 책이 '막장'이라고 써있었다. 앗!! 그렇구나!! 막장이었어!!
아아, 내가 막장에 클래식을 기대하고 있었구나..그러니까 지금 내가 너무 실망한거야. 맙소사... 그래, 그러면 나는 우아함을 기대하지 않은 채로 이 책을 읽어나가자. 호텔을 운영하는 이 여자와 제럴드 사이의 사연이 어떤건지, 우아함을 배제한체로 읽어보자. 어쩌면 뜻밖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15세 소년 건드린 루루임에는 변함이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