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오'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이 집에서는 매년 여름, 공부하는 학자들을 초대해 머물곳을 제공해준다. 이번 여름도 마찬가지. 미국에서 '올리버'라는 청년이 이 집에 와 쉬면서 공부하면서 뭐 그렇게 지내게 된다. 아직 섹스 경험이 한 번도 없던 아직 어른이 아닌 '엘리오'는 자꾸 올리버에게 마음이 간다.
일단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어른대 어른'의 사랑이 아니었다는 거다. 어른과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던 미성년의 사랑이라 나는 싫었어. 내가 딱 싫어하는 이야기다. 미성년일 때 어른에 대한 막연한 동경, 어쩌면 사랑일 수도 있는 감정이 당연히 생길 수 있고 성적인 호기심도 생길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니까.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내가 너무 고지식한건가', '내가 너무 보수적인건가' 했던게, 이 영화는 엄청 좋아하는 팬이 많은 영화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고, 영화 속에서도 엘리오의 부모님이 아들의 그런 사랑을 알면서도 오히려 등떠밀기 때문이다. 올리버가 머물던 집을 떠나 다른 지역에 혼자가게 됐을 때, '엘리오 어떡하지, 같이 보낼까?'이러면서 둘이 같이 여행을 보내버려.... 내가 열일곱 살인데 우리 집에 온 어떤 어른이 우리 집에 얼마간 머물게 되고 나는 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그와 첫섹스를 하고....그리고 그와 단둘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우리집은 발칵 뒤집힐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이것이 문화차이인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문화 차이라기엔 우리나라에도 이 영화 엄청 좋아하는 사람많은데..그러면 그냥 나 개인이 보수적인건가...라는데, 나는 이렇게 뭔가 유럽 영화를 즐겨 보다가도
??????????????????????????????????????????????????????
이렇게 될 때가 넘나 많은 것이다. 이 영화속에서 미성년 아이와 사랑을 나누는 어른을 아름답게 그린 것도 뭔가 너무 뷁스럽고... 일전에 '소피 마르소' 나오는 프랑스 영화에서(제목 기억안남) 유부남에게 사랑을 느끼는 친구에게 '그 사랑을 쟁취해, 사랑을 이뤄, 들이대, 도전해, 사랑해!'하고 조언하는 거 보면서도 '뭥믜??' 가 됐던 것. '니가 가장 중요해, 그러니까 니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 라는 취지에는 나 역시 동의하고 그렇게 살고자 하는 바지만, 아니, 그래도 아내와 자식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데 '니 사랑을 이뤄' 이러는 것은....................................................................................
음...
어쩌면 내가 청소년의 사랑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영화를 보는 내내 했다. 그들도 당연히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 사랑을 행할 수 있는 것인데, 어째서 내가 이렇게 불편한가..자꾸 물었어. 그렇지만 극중 '엘리오'가 자신의 또래 친구 '마르치아'와 섹스를 할 때는,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처음이었고, 서툴렀고, 그러면서 상대를 만지고 싶었던 것들이 뭔지 나도 잘 알겠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랑의 대상이 '올리버'가 되어버리니.. 확 스트레스........
게다가 마르치아는... 뭐지....닭쫓던 개 되어버리고 개밥에 도토리 되어버리고... 청소년기에 너무 잔인한 경험을 하게됐다. 자신이 엘리오의 여자친구인줄 알았는데, 엘리오는 동성의 다른 어른 남자에게 푹 빠져서... 마르치아와 두 번 자고나서는 마르치아의 존재를 아예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런데도 마르치아는 엘리오에게 먼저 다가가 '널 사랑해'라고 말한다. '너에게 화나지 않았어'라고... 천사냐. -_-
이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인데, 이탈리아가 공간적 배경인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이탈리아에 대해 환상을 품게 된다. 이 영화속에서 딱히 어떤 아름다운 풍경이 막 눈앞에 펼쳐지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엘리오가 사는 집, 그 집이 진짜 환상적인 거다. 숲에 있는 집 같은 느낌이랄까. 집 앞에 복숭아밭이 있어... 야, 너무 환상적인 것. 당연히 집 밖에서 식사도 할 수 있고 일광욕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가 배경인 영화를 볼 때마다 이랬다. 집 바깥으로 그렇게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지천이야.
위의 두 영화가 이탈리아 배경, 그리고 과일 나무를 보는 순간 생각났는데, 《다시, 뜨겁게 사랑하라》에서도 집 밖에 레몬과 오렌지였나, 그런게 완전 나무가 쫙 있고 열매도 주렁주렁한거다. 《투스카니의 태양》은 또 어떻고! 여자가 올리브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올리브 따는 장면도 나오는 것이야!! 도대체 사람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면서 무슨 생각 하는거지? 없던 사랑도 싹트겠다 이탈리아여..
내가 이렇게 영화로 보니까 너무 예쁘다, 아름답다 하는거지.. 실제로 우리집이면 ..... 열매 따기 세상힘들고 귀찮겠지? 흐음.. 아아 그렇지만 넘나 아름다웠다. 나는 특히나 그런 장면들이 너무 좋다. 이 아름다운 과일나무들을 보면서 밖에서 와인도 마시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는 거..어쩌면 나는 뼛속깊이 자연인의 피가 흐르는 건 아닐까? 지금은 차가운 도시여자이지만 마음은 자연인......인건 아닐까? 나는 지금 내 본성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차가운 도시여자에 길들여져버린 건 아닐까... 나는 뜨거운 자연인일지도 모르는데...나도 과일나무를 배경으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시고 과일도 먹고 술도 마시고 샐러드도 먹고 술도 마시고..그렇게 살고 싶다. 그러다가 집 안으로 들어가면 더워 죽겠는데 창문 활짝 활짝 열여제치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커다란 침대에서 섹스도 했다가 술도 마셨다가 잠도 잤다가 술도 마셨다가 고기도 먹었다가 섹스도 했다가 샤워도 했다가 올리브도 땄다가 술도 마셨다가 코골면서 잠도 자다가 술도 마시다가..그렇게 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지 않을까...
이탈리아에..집 한 채 사야겠어요........얼마면 되니?
그러나 내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인상깊었던 건, 사랑보다도, 공간적 배경보다도, 엘리오를 둘러싼 환경이었다.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엘리오의 집에는 여름마다 공부하는 학자들이 찾아온다.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그들 부모가 먹을 거며 잘 곳을 제공해주는 건데, 그러므로 당연히 엘리오의 부모님 역시도 엄청나게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인 거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지만 미국 청년과 자유자재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독일어와 프랑스어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엘리오의 아버지는 고고학자인건지, 역사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유물 나오는 데 찾아다니고 '살구'란 단어의 유래까지 좌르르륵 읊을 수 있는 사람이야. 이런 부모를 찾아오는 사람들 역시 대단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라 '그 유래는 잘못알고 있군요' 하면서 틀린 걸 잡아내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를 것들을... 그러니 엘리오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걸 보고 자랐을테고, 그런 엘리오 역시 틈틈이 책을 읽어서 교양을 쌓는다. 영화속에서 올리버가 '너는 도대체 모르는 게 뭐냐'고 물었을 정도로 아는 게 많은 청소년인 것이야. 게다가 아마도 그는 음악을 전공하는 것 같은데, 너무 인상깊었던 게, '악보를 읽는' 소년인 것이다. 수영장에서도 옆에 악보를 두고 보고 있어서 뭐하는 거냐 물으니 '악보 읽고있어요'라는 거다. 그러니까 악보는 단지 연주하기 위한 것인줄로만 알았던 내게 이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어. 악보도 그냥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불어를 알면 불어책을 읽을 수 있고 독어를 알면 독어책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악보를 볼 줄 알면 악보를 읽을 수도 있는 거였어! 아 이거슨 내게 너무나 신선한 충격...
부모님은 엘리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도 않고 책을 읽으라고 단 한 순간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엘리오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해.. 피아노 전공인가 .. 악보를 늘상 끼고 살고 연필도 늘상 쥐고 다닌다. 악보를 그리고 글을 쓰면서 살아. 그러니까 엘리오에게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닌,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길들여진 것인 것.
부모가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그 자식이 똑똑해질 확률도 매우 높겠다는 당연한 생각을 이 영화를 보면서 했다. 게다가 그 부모는 그런 쪽으로 이름도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만나는 사람들도 죄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어릴 때부터 그것은 어린 엘리오가 보는 당연한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런면에서 아주 좋은, 유리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보다 더 공부를 잘할 확률, 더 상식이 풍부해질 확률이 많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독어하는 사람 보고 불어로 말하는 것 듣고, 음악과 미술 역사 언어의 유래에 대해 얘기하는 게 늘상 주변에서 들리는 삶이라니. 와- 나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고 또 겪어보지도 못한 세계라서 너무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 거다. 엘리오는, 엘리오가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는지 알까? 집이 부자이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소년이기도 하지만, 부모 자체가 교육 수준이 무척 높고 게다가 계속 공부하는 부모들이고, 심지어 어린 아들에 대한 이해도도 굉장히 높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아니 에르노'의 책속 한 구절이 생각났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p.127)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는 교육수준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는 대학교수가 되었고. 그런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글에 이런 문장이 나왔는데, 나는 이 문장이 가진 뜻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겠는거다. 아니 에르노의 경우라면 자신의 아버지를 멸시한 세계에 자신이 속하게 된것이지만, 영화속 엘리오라면 애초부터 그 세계에 정확하게, 안정적으로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오의 아버지는 부자이며 사회적 지위가 높고 교육수준이 높은 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들이 지금 왜 힘든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그에 따른 적절한 조언도 해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들은 아직 미성년이고 동성의 어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그와 헤어졌는데, 지금 아들이 느낄 상실감이 어떤 것일지 잘 이해하면서 지금의 아픔과 고통을 그대로 느끼라고 말하는 것이다. 본인도 '다른 부모들이 다 나같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때는 1981년 이었고, 도대체 이런 아빠가 2018년에도 존재하는지 의문인데, 어쨌든 동성의 어른 남자 애인을 잃은 미성년 아들에게 '너는 나보다 낫구나, 너에게 충실했잖아' 같은 말을 해주다니..
'가장 예상치 못할 때 본성은 교활한 방식으로 우릴 찾는다. 그럴 때 아빠가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해.'
와...나는 이 아빠 넘나..... 어마어마한 아빠다..... 가장 인상적인 말은 이거.
"둘다 서로를 찾았으니 운이 좋은 거다."
아! 진짜 너무 좋은 말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살면서 몇 번이나 저런 감정을 상대에게 느끼게 될까도 생각해봤다. 내가 당신을 찾았다니, 운이 좋았네. 이런 말을 건넬 수 있는 때가 얼마나 될까.
그러다가 또 다시 빡치게 하는 장면이 나와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렇게 좋았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리버가 자기 결혼한다고 전화를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넘나 어이없는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좋다. 타닥타닥 나무가 타들어가는 불을 가만히 바라보며 엘리오가 자신의 첫사랑을 조용히 잊어가고 또 추억하면서 끝나는데, 자막이 올라가면서도 타닥타닥 나무 타들어가는 소리가 나. 이 장면은 참 좋은 장면이야. 엔딩씬은 아름다웠지. 그런데,
서로가 상대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사랑을 시작하지 않고 막 상대를 도발했다가 피하기도 했다가 하면서 어쨌든 처음으로 섹스를 한 날, 침대 위에 엉켜서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날 니 이름으로 불러, 난 널 내 이름으로 부를게."
이러면서 서로가 상대를 보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거다. 올리버는 엘리오를 보면서 '올리버' 라고 하고, 엘리오는 올리버를 보면서 '엘리오' 라고 하고... 나는 또 '이건 뭥믜???'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저것이 시방 뭐하는 것이여... 저걸 세상 낭만적인 거라고 해놓은 것인가.... 물론 사랑은 저마다의 것이고, 연애 역시 그러할진대, 그러니까 엘리오는 올리버가 시키는대로 하고 있긴 하고 그게 지들끼린 좋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그것이 남의 사랑, 남의 연애, 남의 섹스도중 일어나는 거니 내가 뭐라할 순 없고...지들이 좋다면 뭐 별 수 있나..그렇지만 나는 이것이 오글을 넘어 소름으로 가는 것인게, 아니... 그래서 나도 '얘네가 뭐하는거여?!' 하고 나를 대입해봤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섹스를 끝내고나서 내 침대위에 나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있는 남자의 눈을 바라보면서
"락방아."
이러는 거잖아요??????????????????????????????????????????????????????????
노노해... 난 이런 거 노노해.....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변태끼를 하나씩 품고 있긴 하겠지만.....이거슨...나의 것은 아닌 것이야.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섹스를 마친 상대가 나한테 '나를 네 이름으로 불러' 라고 말하면 '어머...왜? 헐.... 싫은데?' 이렇게 될 것만 같다....................난 내 이름 잘못 부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인데..
이봐,
날 부를 땐 내 이름으로 정확히 불러.
널 부를 땐 네 이름으로 부를게.
그나저나 이 영화 책도 사놨는데 영화를 먼저 봤으니 책 보기는 다 틀렸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