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약속도 없고 일정도 없었던 날이라 얼른 집에 가서 쉬어야지, 했다. 며칠전부터 먹고 싶었던 알리오올리오를 만들고 싶었지만, 나란 사람, 간단한 요리를 해도 부엌 초토화에 시간만 오래 걸리는 사람, 그정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날이라 패쓰하고, 그냥 간단하게 저녁을 먹자, 라고 생각했다. 떡볶이, 떡볶이를 먹자, 생각하다가 어? 며칠전에 남동생이 동네에 떡볶이집 새로 생겼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는 거다. 나는 잽싸게 검색했는데, 맛집이라 소문난 곳이었다. 즉석떡볶이 재료를 포장해 팔기도 한다더라. 그래 좋다. 오늘은 이 재료를 그대로 사가서, 나란 사람, 떡볶이도 맛없게 만드는 사람이니, 주는대로 가져다 그냥 끓여먹자, 하고는 떡볶이 집으로 향했다. 체크카드로 계산해야지, 하고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려는데, 어라? 지갑이 안보인다?!
침착하자.
나는 역순으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래, 마지막에 프린터 밑에, 거기 뒀던 것 같아. 그리고 시간을 보았다. 모두가 퇴근했을 시간이었다. 그래, 사무실 문도 다 잠겼으니 지갑은 안전할거야. 지금 당장 급한 건 떡볶이값 계산인데, 그건 스마트폰 케이스에 있는 신용카드로 계산하면 돼. 지갑은 무사할거야. 하루쯤인데 뭐. 집에 들어가는 키는, 그냥 벨 눌러서 아빠한테 열어달라고 하 면 돼. 하루쯤인데, 사무실이 가장 안전한 장소야. 그래, 오늘 하루 보내는 건 문제 없어.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사무실에 있는 거 내가 알잖아. 안전할거야.
그렇게 나는 떡볶이를 포장해서 집으로 향했다. 향하면서,
자꾸 지갑 생각이 났다.
지금 다시 회사로 가서 가져올까? 아, 그렇지만... 왕복 세시간인데... 오늘 하룻밤을 그렇게 망칠 수 없어. 지치고 피곤한 날, 에너지도 딸리는 날인데 어떻게 그래. 그래, 하룻밤인데 뭐 어때, 지갑은 괜찮을거야. 만약 잃어버린다면? 음..카드 쓰면 문자 오니까 알 수 있을거야. 여권도 아니잖아. 여권이라면 당장 큰 문제지만 지갑이야 뭐....지갑 안에 뭐가 있지? 현금...없지.(응?) 카드는..쓰면 문자 올거고.... 그리고 사진....
사진...
사진.......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ㅠㅠ 나는 조금 다급해졌다. 그리고 지갑은? 지갑 자체를 다시 사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 지갑은.... '그' 지갑이잖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는 초조해졌다.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면서 이제 나는 자책하는 모드로 바뀌었다.
어떻게 그 지갑을, 그렇게 소중하다고 하면서 까먹고 올 수가 있어? 어떻게 안 챙길 수가 있어? 말이돼? 이제 신경질이 났다.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거 잃어버리면 진짜 어떡할거냐고!!!!
하는 마음이 되어서는,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수시로 초록불이 되었는지를 확인하며,
내가 .. 지갑을 놓고 올 사람이야?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하고는 가방을 다시 뒤졌는데, 거기에,
지갑이 있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고여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쓰다가 또 눈물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결국은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이야기.
휴.....
집에 와 떡볶이에 곁들어 맥주를 조금 홀짝이다가 설거지를 하고, 주말 여행에 필요한 짐을 약간 챙기고, 방 안으로 들어가 내 앞으로 온 책 택배상자를 풀었다. 책은 네 권밖에 들지 않았는데 5만원은 넘는 한 박스였다. 와인잔을 가장 먼저 꺼내 으음, 마음에 든다 생각하고 독서대를 꺼내서는 '역시 두 개 더 받아서 조카들 줘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책들을 꺼냈는데.. 헐..하루키책, 넘나 너무하네요....
구매하면서 64페이지라는 걸 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64페이지에 13,000원... 책 뒷날개를 보니 '카트 멘시크'라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삽화를 그린 모양인데 아마도 책값은 그래서 높아진 게 아닌가 싶다. 작가에게 인세도 줘야하고 카트 멘시크에게도 일러스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까. 그래, 아는데, 그래도... 야, 이건 좀....
그렇지만 무릇 책이란 무엇인가. 책이란 그 내용으로 말하는 게 아니던가. 그리고 하루키가 누구던가. 내가 애정해마지않는 작가가 아니던가. 글이 좋다면 이 모든 걸 다 커버칠 수 있다! 나는 이 가벼운 책을 들고 침대에 가 앉았다. 정말로 순식간에 책을 다 읽고서는,
음.........................................
서점 가서 훑어보고 오라고,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전국의 책 관련 업무를 하는 분들에 대한 예의는 아니..겠지.... 음...... 너무..너무하네요......... 어쨌든.
이 책 속의 여자는 스무살 자신의 생일에 겪었던 조금은 특별한 일에 대해 상대에게 얘기한다. 자신이 근무하던 레스토랑의 사장에게 저녁을 차려 갖다 주었는데, '너는 참 친절하구나 소원이 뭐니? 소원을 들어줄게' 했다는 것.
"나로서는, 아가씨, 자네에게 뭔가 생일 선물을 주고 싶어. 스무 살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기념품이 필요하지, 뭐니 뭐니 해도."
그녀는 당황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신경 쓰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윗사람이 하라고 해서 식사를 가져온 것뿐이니까요."
노인은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고 두 손을 펼쳤다. "아니, 아니, 자네야말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선물이라고 해도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야.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그는 두 손을 책상 위에 놓으며 말했다. 그리고 한 차례 천천히 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나는 자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은 것이라네, 귀여운 요정 아가씨. 자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어. 무엇이든 좋아. 어떤 소원이라도 상관없어. 물론 자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렇다는 얘기네만."
"소원?" 그녀는 메마른 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원. 아가씨, 자네가 원하는 것 말이야. 만일 그런 소원이 있다면 한 가지만 이루어지게 해주겠네.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생일 선물이야. 하지만 딱 한 가지니까 신중하게 잘 생각하는 게 좋아." 노인은 공중에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었다. "딱 한 가지야.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도 도로 물릴 수는 없다네." (p.38-41)
와- 이것은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왔던 것이 아닌가. 누가 나타나서 내 소원을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하는 것 말이다. 어릴 때 <모래요정 바람돌이>란 만화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도 떠올랐다. 하루에 한 가지 바람돌이 선물, 한가지의 소원만 들어주는 것. 나는 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기적같아서, 그리고 이 순간의 신비한 힘은 정말로 실현될 것 같아서, 신중하게 소원을 말하고 싶어졌다. 책 속의 여주인공이 무엇을 바라는지와는 별개로, 순수하게 내가 되어버린 거다.
자, 나는 무슨 소원을 빌지?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같이 있게 되는 것.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해주는 것. 이런 소원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 거다. 그러자 이내, '니콜 키드먼'주연의 영화 《그녀는 요술쟁이 Bewitched, 2005》 가 생각났다. 마녀인 니콜 키드먼이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데, 또다른 마녀인 엄마에게 그 얘기를 하자 엄마가 '그가 너를 사랑하도록 해줄게' 하고 마법을 부리는 거다. 그러자 그 남자가 정말로 니콜 키드먼에게 아주 달콤한, 사랑을 퍼부어주는 남자가 된다. 그러나 니콜 키드먼의 행복은 잠시, 이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게 된다. 그래서 엄마에게 찾아가, 마법 전으로 그를 돌려놓으라고 말한다. 그가 내게 사랑을 속삭이는 건 너무 달콤해서 이 순간을 깨고 싶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건 진짜가 아니라고, 나는 진짜가 아닌 사랑을 받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엄마는 그에게 걸었던 마법을 푼다.
이 영화 생각이 나면서 나는 그 때의 니콜 키드먼을 백프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가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고, 그 신비한 힘으로 '그가 나를 사랑하게 해준다'면, 내가 마냥 그 사랑에 기뻐할 수 있을까? 내가 행복할까? 나는 몇 번을 되물어도 '아니'라는 답을 하게 되는 거다. 그것은 리얼 럽, 트루 럽이 아니잖아. 그가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라, 단순히 그는 누군가의 힘에 좌우되는 것 뿐이잖아. 노. 싫어. 나는 그런식으로, 휘둘리는 사랑속에 나를 놓고 싶지 않아. 차라리 혼자인 나를 택하겠어. 억지로 그렇게 되어서 나를 사랑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네. 아니, 나는 차라리 혼자를 택하겠다. 그래, 이럴 때 누군가 들어주겠다는 소원에 '그가 나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같은 건 바라지 말자.
그러자 다음에는 '돈' 생각이 났다.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는 어때? 이건 좋을까?
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돈이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할 것 같은 거다. 내가 노동을 해서 벌게된 돈이라면 '이 돈은 내돈이다' 라고 할 수 있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이라면, 나는 신나서 쓸 수 있을까? 나는 내게 물었는데, 아니라고 답했다. 그런 식으로 부자가 되고 싶진 않다. 물론 내가 로또를 사서 당첨이 된다면, 그건 다른 문제다. 갑자기 눈앞의 노인이 내게 돈을 준다? 나는 너무 찝찝할 것 같아. 라고 쓰지만 막상 돈 주면 덥썩- 받아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래, 돈도 안되겠다. 돈도 바라지 말자. 들어주겠다는 소원에 돈을 얘기하진 말자.
그렇다면 뭐가 좋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바랄 게 없다'는 답이 나왔다. 원하는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뭔가를 바라고 이루어지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것 같아서. 그러니까 만약 내 앞의 노인이 '좋아 그걸 들어줄게' 해서 내 소원을 들어줘버리면, 우주의 어떤 룰, 어떤 흐름이 깨져버릴 것 같은 거다. 사랑이든 돈이든 또 그게 뭐든, 지금의 내 상황을 지금과 달라져버리게 만든다면, 내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이상,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 혹은 먼 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그렇다면 거기엔 누군가가 덩달아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가 맞닥뜨리지 않아도 좋을 나쁜 일을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은거지.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일도 또 나쁜 일도 만날 수 있지만, 그것은 우주의 흐름에서 생길 수 있는 어떤 일들이라면, 거기에 내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은 거다. 사랑을 쟁취하고 싶다면 내가 그에게 다정해지고, 돈을 벌고 싶다면 내가 노동을 하면 된다, 이런식으로 누군가의 마법이 인생에 등장하지는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나의 친절함에 당신이 보답하고 싶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 것이라면, 내게 받은 친절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세요.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일 운명에 내가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거지. 운명을 피할 수 없다면 그대여 그 운명에 당당하게 맞서라! 내가 사랑하고 내가 노동을 하겠어!
어제 집에 가는 길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우리 놀러갈 때 와인을 여기서 사가는 게 낫지 않겠니?, 어 그럴거야) 옆에서 조카들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아무나 좀 바꿔줘봐, 했더니 아홉살 조카가 전화를 받았어.
"이모"
"악 타미야~~~~~~~~~"
"이모, 나 어제 할머니랑 받아쓰기 연습했거든."
"응!"
"네 번 했는데 세 번은 구십점 받고 한 번은 백점 받았어."
"우와 잘했네!"
"오늘도 받아쓰기 연습 했거든."
"응!"
"백 점 받았어."
"우와 우리 타미 너무 잘한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 얘기, 받아쓰기 연습 했다는 얘긴데, 나는 뭐가 이렇게 얘가 귀엽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귀여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완전 사랑해 귀여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냥 말만 해도 귀엽고, 말을 안해도 귀엽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존재 자체가 그냥 귀염귀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존재 자체만으로 귀여워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무한애정,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애정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리고 얼마나 큰 복인가! 살면서 그런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가족이라고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닌데, 내게는 이런 대상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노인의 '너의 소원은 뭐니?'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