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제목을 쓰니 꼭 무슨 아이돌 같습니다만, 아이돌이 아닐 것은 또 무어야 하고 우겨 봅니다. ^ㅁ^; 2006년의 한일문학심포지엄 사진이에요.

 

참 예쁘고 화려한 분인데 사진은 어째 다 팬이 안티. 흑흑 선생님 죄송해요! 애초에 저 위에서 내리쬐는 조명이란게 얼굴의 주름을 드라마틱하게 강조하는 것입니다OTL
나중에 계속 동영상으로 찍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소리가 멋졌습니다. 당시 연재중이던 작품의 1회분을 직접 낭독하시기도 했죠. 쉬는 시간이며 끝나고 난 후에 사인 받으러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아이돌적 인기를 누리셨습니다. 알라딘 분들 중에서도 그 날 같은 자리에 계셨던 분이 계시지 않으려나요? :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저장
 



-솔직히 인정합니다. 이 작가의 소설에 흥미를 가진 것은 그녀가 이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불순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제가 원래 스캔들과 가십에 약합니다. -ㅅ- 변명 하나 하자면 일부러 저걸 찾아 검색한 건 아니고, TV 시리즈 [MONK] 관련해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걸려든 거예요, '그' 앤 페리가 Monk라는 이름의 탐정이 등장하는 빅토리안 디텍티브 스토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냉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사 놓고서도 어쩐지 한동안은 읽을 기분이 안 나서...읽기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읽기 시작했을 때, 이것은 그런 흥미위주로 슬쩍 건드려 보고 말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소설임을 깨닫게 됐지요. 주인공 윌리엄 몽크의 캐릭터에는 작품이 씌어진 시대를 초월하는 독보적인 맛이 있습니다. 자기 손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오만하고 자존심 강한, 한편으로는 권력욕을 숨기지 못하고 젠틀맨처럼 옷을 입는 경찰관이라니, 대다수의 현대 작가들은 시대물을 쓴다 해도 부끄러워서라도 등장시키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감히 말하는데 작가는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윌리엄 몽크는, 사고로 기억을 잃고 자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그 기억상실은 이 책 내내 계속됩니다. 그는 자신이 경찰이라는 것도, 어떤 사건을 쫓고 있었는지도, 그 사건의 얼마만큼을 밝혀냈는지도,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도 모두 잊었어요. 그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숨깁니다. 그에게 대뜸 조셀린 그레이 소령의 살인사건을 떠맡긴 상관에게도, 부하에게도, 피해자 가족에게도. 그야말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더듬어 사건을 해결해야 합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는 상태로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 맞닥뜨리는 동안 조금씩 그의 기술(기억이 아닌)이 돌아오고, 상관이 뭐라 하든 그는 훌륭한 전략을 가지고 사건을 뒤쫓고 있었어요. 새로 배치된 부하인 존 에번의 존경심이 그것을 증명해 주지요.

사건 이전에 자신에 대한 탐색이라는 점에서 물론 발란더 시리즈와 비슷하고, 그래서 마음이 끌리기도 했지만...백지의 탐정이라니 지나치게 공평합니다. 독자와 탐정이 똑같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몽크가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 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는 꼼꼼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는 탐정일 수도 있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짚어내는 탐정일 수도 있고, 정보원들에게 찔러 주는 돈과 적당한 폭력을 통해 자신만의 열쇠를 얻어내는 탐정일 수도 있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셋 다 하기는 하지만...=_=; 시대가 시대니까요. 수수께끼의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을 때 그녀가(그녀 쪽은 명백히 몽크를 알고 있습니다) 적일지 친구일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고, 상관이 그를 신뢰하고 있을지 아니면 죽도록 미워하고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나는 기억을 잃었소' 라는 카드를 펼 지 펴지 않을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합니다.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정보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기억을 잃었다고 실토해야 하지만, 그건 곧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윌리엄 몽크는 이 기억상실을 통해 엄청난 기회를 잡은 셈입니다. 그는 군데군데서 엿보이는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출세에 눈먼)원래의 자신'에 대해 혐오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온갖 인간군상을 대할 때 그야말로 꼴리는 대로 내뱉습니다. =_=

사건의 진상은 다소...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를 부분이 있습니다. ^_^; 하지만 우리는 이 소재를 다룬 수없이 많은 미디어를 봐 왔기도 하지요. 살해당한 조셀린 그레이가 어떤 인물인가, 윌리엄 몽크가 어떤 인물인가 더듬어가는 과정에서 둘의 자연스러운 대조가 두드러집니다. 현명한 배치였어요.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조셀린 그레이는 윌리엄 몽크에게조차 부러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이기를 선택하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최후에 증명하게 됩니다. 온갖 장식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나면 결국 닥터 그레고리 하우스 류의 고집스런 히어로입니다만, 역시 시대가 시대인만큼 그 온갖 장식적인 요소가 실은 더 재미있는 거지요. 세면대라든지 온갖 의무적인 자선 이벤트들, 살림이 쪼그라들면서 메이드 규모를 축소하는 양상, 전쟁에서 부상당한 그레이 소령의 지팡이 목록...네, 실은 저 부분이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오전용, 오후용, 시골용 이렇게 세 개를 갖고 있었다는군요. ...혹은 이름들. 주요 여자 캐릭터가 다섯 명이 나옵니다. 헤스터Hester는 그렇다 치고 나머지 이름들이...
파비아Fabia
칼란드라Callandra
로사몬드Rosamond
이모젠Imogen
...친구가 이 얘기 듣더니 "니가 썼구나? " 라고 합디다 ㄱ-
(그렇다고 남자는 다르냐 하면 조셀린의 두 형 이름은 Lovel과 Menard)

작품은 긴장감에 차 있고 400페이지가 지겹지 않았습니다. 몽크의 게임은 훌륭했어요. 그러나, 물론 더 잘 한 것은 작가입니다. 이런 소설을 바로 시리즈의 첫 번째로 내놓을 생각을 한 작가의 악마같은 솜씨입니다. 앤 페리가 실제로 시리즈를 만들 의도로 이 작품을 썼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저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어요. 이것은 최소의 설명으로 캐릭터에 더없이 강렬한 존재감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본 아이덴티티] 가 그랬듯이.

* 앤 페리의 소설 중에서 국내에 번역된 것은 제가 알기로는 엘리스 피터스 추모단편집 [독살에의 초대]에 실린 단편 [하일랜드의 마지막 왕비]가 유일합니다. 혹시 더 알고 계신 분께서는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ㅁ^;
 생각해보면 이 단편집에서 참 많은 곳으로 건너갔습니다. 마릴린 토드의 클라우디아 시리즈도 여기서 만났지요.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솔랑주 2008-04-03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케이블에서 하는 몽크 아~~~~ 아~~ 저도 급 읽고 싶어 지네요

eppie 2008-04-04 17:15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몽크] 요즘 새 방송분 시작했죠? ;_;
아, 근데...제가 좀 오해의 여지가 있도록 쓴 거 같은데, 이 소설은 그 몽크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성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이에요. 헷갈리게 써서 죄송해요. ㅠ_ㅠ
말씀하신 TV 시리즈 [몽크]도 소설판이 몇 권 나와 있던데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어요. [CSI]나 [덱스터]의 소설판도 나오곤 하니까...하지만 역시 인기에서 자리수가 달라서, 출판업계에 엄청난 팬이 있지 않고선 무리이려나요 ^^;
댓글저장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실은, 이 책의 뒷표지 및 광고문구를 보고서 '너무 낚는 것 같아서' 보지 말까 생각했던 소설입니다. 낚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 너무 저를 개인적으로 노린 것 같은 작품이라고요. 12세기라는 배경이나 작가의 Ariana Franklin이라는 농담 같은 필명이나... 읽는 동안 미친 듯이 뿜으면서 몇 구절 인용해줬더니 친구가 '니가 쓴 거 아니냐' 고 말하더군요. 내가 그렇게 중세 밝히는 사람인 줄 아나. -ㅂ-=3
 ...맞지만...

 캐드펠 시리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매 권 내용이 똑같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중세 영국이 너무 깨끗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짜로, 그럴 리가 없잖아...중세의 위생적 아수라장에 대해 잠시라도 진심으로 고찰해본 적이 있는 작가들이 쓰는 이야기가 좋습니다. 유머를 곁들인다면 래리 고닉의 만화처럼 되겠고 진지하고 담담하게 서술한다면 [도둑맞은 혀] 처럼 될 겁니다.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에서 중세 영국은 적당히 지저분하고 상당히 야만적이며 매우 광신적입니다. 한 마디로 제가 '중세적' 이라고 말하는 특징들-실은 21세기 한국에서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는-이 모두 살아 있는 땅 되겠습니다. 사라센 문명권이나, 이탈리아 반도의 국제도시들의 상대적으로 문명화된 상태와 비교하면 더더욱.

 이 소설은 살레르노 출신의 여의사를 이런 영국에 데려와 팽개친다는 작가의 사디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이 상황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반응은 기대보다 지극히 가볍고, 좀 지독하게 소박한 기숙학교에 떨어진 응석받이 부자집 딸의 상황보다 더 심각하게 다루어지지는 않아요. 이런 타입의 전문직 여자 주인공은 까딱하면 무결한 잔 다르크가 되어버리기 쉬운데 기러기털 매트리스와 푸른 채소와 비단 속옷에 집착하는 아델리아는 명백히 소박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고 그 점이 이 캐릭터에게 아주 약간의 입체성을 부여해 줍니다.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역시 나폴리의 시몬과 헨리 왕(헨리 2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Art'가 붙어야 할 것은 아델리아보다도 나폴리의 시몬 쪽입니다. 그는 유능한 밀정이자 비밀경찰로, 밀고 당기는 심리학의 기법을 적절히 사용해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어내고 그가 원하는 정보를 얻어냅니다.


Henry II of England

 본문에 언급된 헨리 왕의 '사치스러운 마누라'는 유명한 아키텐의 엘리너이고, 제 기억이 맞다면 캐드펠 시리즈에서 스티븐 왕과 미친 듯이 싸워대던 마틸다(모드) 여왕이 헨리의 어머니입니다. 어쨌든 이 사냥꾼 왕은 토머스 베케트 대주교의 머리를 박살내버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영국 왕과 그의 교회는 대개의 경우 언제나 피터지게 싸워 왔다는 느낌이 드는데(별로 종교적이지 않은 이유로.) 헨리 왕은 이 일로 폭군 취급을 받았고 토머스 베케트 대주교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_-; 헨리가 이 책에서 말하는 정도까지 결백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기분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케임브리지의 끔찍한 연쇄살인이 그의 귀에 들어갔을 때, 그는 뭔가 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바다를 가로질러 이런 큰 일을 벌인 까닭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Schola Medica Salernitana : A miniature from
Avicenna's Al-Qanun fi al-Tibb(The Canon of Medicine).

 아델리아가 하는 수사보다도 더 매혹적인 것은 그녀가 *어떻게* 그런 지식을 체득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으로, 잠깐씩 언급되는 살레르노의 의과학교실 풍경은 흥미롭고,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뒤섞인 그 도시의 거리 모습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이 설레게 합니다. 작가는 물과 하늘과 바람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이 시절의 브리튼을 잘 살려내고 있는데, 그 점이 다소 경박한 문장이나 캐릭터를 용서할 수 있게 합니다. 하긴, 문장이 경박해 봤자 [다 빈치 코드]에 비할 바는 아니고, 라이트노벨도 읽는데 무슨 대수냐 싶을 정도이며, 여주인공이 너무 *여주스럽다*고 해 봤자 근래 한동안 접한 성격 이상한 여주인공들(이를테면 [벌집에 키스하기]의 베로니카 레이크)에 비하면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프란 색 언더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오버하는 중세 여의사 정도야 저기에 비하면 귀엽지요.

 500페이지가 넘는 책입니다만 굉장히 빨리 읽히며, 페이지수 때우기로 씌어졌다고 생각되는 지루하게 늘어지는 부분은 없습니다. 경박함과 속도감은 역시 양날의 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 대단한 추리적 요소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범인이구나 생각되는 놈이 그냥 범인입니다. -_-;) 결정적으로 에드워드 고리의 [The Loathsome Couple]을 연상케 하는 범인들의 묘사는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며, 특히 그 중 한 쪽의 최후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이 강렬한, 중세적 광기에 대한 매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 공동체여. 눈가리고 아웅인지 완벽한 해결책인지 모르겠지만...핫하더라구.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게 제일 좋았던 것은 '상스러운 수녀' 같은 표현이나(데굴데굴 굴렀습니다) '더러움과 고양된 정신과 성서를 인용할 수 있는 능력은 신성함의 증거였다' 같은 못돼처먹은 문장들이었습니다. 최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저는 [파이트 클럽]과 [다이어리]의 작가 척 팔라닉Chuck Palahniuk의 열렬한 팬입니다. (오피셜 FAQ에 의하자면 바른 발음법은 Paul-AH-NIK이고, 그의 조부모들이 자신들의 퍼스트 네임인 Paula와 Nick을 합쳐, 이 성의 읽는 방법으로 하자고 정했다니까 대략 폴라닉, 아님 팔라닉? 검색의 편의를 위해 팔라닉으로 갑니다.)

 언젠가 팔라닉의 공식 팬클럽 The Cult의 포럼 중 한 군데에, 이런 글타래가 올라왔던 적이 있습니다(제 기억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

"척이 예전에 인터뷰에서 말하길, (인터뷰어가 척의 거한 팬클럽을 언급하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그들을 기쁘게 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던 것 같은데, 척은 혹시 우리 싫어해? ;ㅁ; "

그에 대한 어느 팬의 대답은 "저기, 내가 알기로 척만큼 팬을 위해 일을 이것저것 벌이는 작가는 없어..." 였습니다. 실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 발언은 작가로서의 자존심의 표명이고, 팬클럽 뿐만 아니라 누구도 기쁘게 하려고 쓰는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이해해야 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네, 척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책이 한 권 나올 때마다 기나긴 투어를 하고, 팬 메일에 대한 답례로 날아오곤 하는 '선물폭탄' 은 유명합니다.

 지난 연말 새삼 열심히 The Cult에 드나들며 포럼 글을 읽고 있었을 때,  공지가 떴습니다. 아무개 온라인 서점에서 [RANT]의 한정판을 구매하면, 사인 된 버전으로 받을 수 있고, 저 선물폭탄 카드를 받을 수 있다고.

...저는 갈등했습니다. 이 나이 먹고 팬질에 이런 금액을 쏟아부어도 좋은가? 팬클럽에서는 '해봐여 재밌어염 'ㅁ'/' 이라는 분위기로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용기를 내서, 저 아무개 서점과 이메일로 교섭에 들어갔습니다.

에피 : 나 척 팔라닉의 엄청난 팬이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 내 위치 한국인데, 부쳐줄 수 있는가?
서점 : 물론이다. 받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간다. 근데 배송료는 좀 깨지겠다. 괜찮은가? 괜찮으면 아무쪼록 빨리 주문해라. 아시다시피 한정이라 금방 떨어질 지 모른다.

......질렀습니다.

 책은 굉장히 빨리, 그리고 잘 도착했습니다. 책 안에는 안내문과 카드봉투가 있더군요. 시키는 대로 카드에 이름과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봉투에 주소를 적고, 미국으로 날려보냈습니다. 그게 거진 2월이 다 됐던 것 같은데... 책 받은지도 한달 가까이 지나서 보냈으니까요. 가끔씩 '흠, 그런 게 있었지' 하고 생각하는 외에는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생각이 떠오를 때면 좀 불안하기도 했어요. 한국까지 과연 보내 줄까. 배송비 엄청 깨질 텐데. 그러나 저는 그 때마다, 스코틀랜드에서 받았다는 사람(...)을 떠올리며 불안을 떨쳐내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_-;

그리고 지난 주에, 선물꾸러미가 도착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샵에서 주문한 것들인 줄 알았는데 보낸 사람이!


아, 눈물이 피잉.
처음에는, 포장 같은 건 비서를 시켰을 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 비서 같은 게 있을 것 같지는 않더군요. 게다가 상자 옆구리를 보니...


저 눈에 익은 글씨! ;ㅁ;
그리하여, 목욕재개하고 상자를 뜯기로 합니다. 처음에는 침대로 가져갈까 했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에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반짝이?!
그냥 책상에 앉아 뜯기로 했습니다.


들쳐봤더니,


하하하하하. 한참 웃었습니다. 쓸 날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ㅁ^;


향초와 그 케이스, 고무공 2개


...레이저포인터?!


사탕!


이걸 시작으로 타투가 정말 많이도 들어 있더군요.


허브 씨앗, 물망초 씨앗, 당근 씨앗. 근데 이런 건 외국으로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
(판매용으로 소독한 물건이니 괜찮겠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 ;ㅁ; 어차피 심을 생각도 없...아니, 불가능하거니와...=_=;)


오오, 한번쯤은 써보고 싶었는데. 고마워요 척. (나 이거랑 잘 어울리는 귀걸이도 있어요 'ㅁ'/)


넵, 반짝이가...=_=


또 타투.


'엄마를 위한' 초콜렛. (무슨 소린지 소설 [파이트 클럽] 보신 분들은 아십니다. 영화판에는 이 언급 안 나왔죠? :D)


으하하하하하.



그리고 CD 2장. 뒷표지가 신나더군요.

그리고 편지와 사진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저만의 것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
카드에 다른 사람들은 평소 묻고 싶은 거나, 많이들 썼을 텐데...저는 어쩌다 보니 아프다고 징징대는 소리만 써 버렸거든요. 편지에 손이 좀 괜찮으냐, 만약 아니라면 이 선물꾸러미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씌어 있었어요. 그 외에도 의외로 너무 따뜻한 이야기가 씌어 있어서 좀 글썽글썽해졌습니다. 고마워요, 척. 혹시라도 한국에 오면 내가 차 한잔 삽니다.

마지막으로...


척의 선물꾸러미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직접 꿴 구슬목걸이예요. 편지에는 목걸이의 돌들에 대한 설명이 꽤 상세하게 있습니다. 또 눈물글썽해지는 이야기와 함께. '목걸이는 내가 만든 거라, 줄은 끊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돌들은 영원히 남을 거예요' 고리 근처에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작은 블록 구슬로 CHUCKY P에게서 저에게를 나타내는 문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편지에는 받는 사람이 제 핸들네임인 euphemia로 씌어 있지만 목걸이에는 본명이 들어가 있었는데, 한 글자 틀렸더군요. 애교...^ㅁ^;

가운데 보이는 귀걸이는, 어제 말씀드린 대로 오늘 걸고 나가기 위해 맞춰놓은 귀걸입니다. 네, 정말로 걸고 나갔어요!

...그리고 약 60시간이 지난 시점까지 반짝이는 방안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행복의 안개는 아직도 방 안을 떠다니고 있고요.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부럽부럽 2008-04-0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먹고 살기란 역시 이름난 작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네요..

eppie 2008-04-04 17:07   좋아요 0 | URL
워낙에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다 보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 실은 '좋은 사람이라' 가 더 정확한 답일 것 같습니다.

thing 2008-04-0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을 참 맛깔나게 쓰셔요. (팬 예감!)
저는 질식과 서바이버를 정말 좋아했어요. 파이트클럽은 당근이구요.
한동안 척을 잊고 있었는데 에피님 글 보고 정말로 찡한 기분이 되어버렸어요.
저렇게 다정다감한 사람이었군요, 척은.
구슬목걸이, 너무나 아름답고 의미 깊은 선물이네요.
저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선물하면서 척의 말을 인용하고 싶어졌어요. :)
행복하시겠어요, 에피님.


ps. 가짜 피 캡슐.. ㄷㄷㄷ

eppie 2008-04-04 17:12   좋아요 0 | URL
앗, 어서 오세요. :]
전 [서바이버]랑 [다이어리]요! 9.11의 여파로 [서바이버]의 영화화가 주저앉은 건 정말 아쉬워요. 니콜 키드먼과 마릴린 맨슨이라는 희대의 캐스팅이기도 했는데...;_;
저도 처음엔 척이 진지하고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정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사인회나 낭독회 등에서 그랑 서슴없이 어울릴 수 있는 미국의 팬들이 부럽습니다.
구슬 목걸이...네, 사실 쬐끔 울었습니다. :D

The Cult 등지에서 척 소식이 손에 들어오는 대로 이쪽에도 가끔 올릴 테니, 종종 들러 주셔요. 당분간은 [질식]의 영화화가 제일 큰 화제겠네요. 그리고 집필에 들어간다는 새 장편이랑...

ps. 할로윈에 한번쯤은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댓글저장
 
니임의 비밀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6
로버트 오브라이언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은 '그러나 그 다음에' 일 겁니다. 작품 내부에서 일어났던 의견 충돌이나 분쟁도, 실제로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이 모든 것을 읽은 사람이 생각할 '그 다음' 으로 미루고 있습니다. 네, 이 책은 좀 가혹할 정도로 독자에게 생각할 것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 찜찜한 이야기는 피츠기븐 씨네 채소밭에서 시작됩니다. 원제의 '프리스비 부인'은 남편 없이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씩씩하고 생활력 강한 들쥐 부인입니다. 프리스비 가족은 겨울을 피츠기븐 씨네 채소밭 아래에서 보내고, 날이 충분히 따뜻해지면 냇가의 여름 집으로 옮겨갑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밭을 파헤쳐서 씨를 뿌리게 되니까요. 그런데 미처 여름 집으로 옮겨갈 만큼 날씨가 따뜻해지기 전에, 프리스비 부인의 아들 티모시가 폐렴에 걸리고 맙니다. 그 해는 봄이 빨라 피츠기븐 씨는 슬슬 트랙터를 정비하고 있고, 프리스비 부인은 애가 탑니다. 무리해서 이사를 하면 티모시를 잃겠지요. 날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다가는 온 가족이 다 죽을 지도 모릅니다!

이쯤 되면 처해 있는 위기상황의 무게가 다릅니다. 프리스비 부인은 어떻게든 아이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방법을 생각하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젊은 까마귀와의 우연한 만남이 프리스비 부인을 현명한 올빼미에게로, 그리고 한 동네에 살면서도 교류가 없었던 시궁쥐들에게로 이끕니다. 프리스비 부인은 그들이 *특별한* 쥐라는 것을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들의 비밀은 평범한 들쥐 프리스비 부인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그들은 NIMH라는 기관의 실험실에서 도망쳐나온 쥐들로,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익숙한 이야기지요. 이제 (실험)쥐와 인간은 개와 인간만큼이나 친숙한 관계입니다. [니임의 비밀] 이야기는 대략 [앨저넌에게 꽃을Flowers for Algernon][핑키와 브레인Pinky and the Brain]의 사이 정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마 한쪽에 좀 더 가깝기는 할 겁니다.) 이 관계의 가장 극단적인 버전은 물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고요.

이분들 기억하시죠?

 이 책에서는 상당히 많은 쟁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검색에서 눈에 띄는 이 책 리뷰들하고는 의견이 좀 달라서요...^^; 저는, 이 책에서 얼핏 보아 가장 눈에 띄는 동물실험 이야기는 그냥 맥거핀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실험의 당위에 매달리게 되면 다른 많은 것들을 놓칩니다. 스무 마리 시궁쥐와 두 마리 들쥐가 얻게 된 '지성'을 다루는 방식이나, 이 쥐들의 탈주에 대한 NIMH의 대응에서는 어느 정도 분명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니코데무스와 제너 일행의 대립도 마찬가지고요. 이 책은 윤리와 억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정도 여성학적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프리스비 부인도 니코데무스나 저스틴도 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사실을 잠시 잊어버리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마음 아픈 정치성을 접어두더라도 이 책은 훌륭한 작품입니다. 까마귀의 등에서나 처음 장미덤불 아래로 내려갔을 때 프리스비 부인이 겪는 모험담은 환상적이며, 올빼미와 마주했을 때의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훌륭한 판타지와 적절한 캐릭터 구현입니다. 프리스비 부인은 정말로 사랑스런 여성이며 니코데무스의 세부 설정도 그렇습니다. 다만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저스틴인데 이놈도 역시 정의롭기 짝이 없어서요. 쥐인데도 정신이 번쩍 드는 푸른 눈일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의 두 마리가 누구였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은 작가의 행동은 재치가 있습니다. 이것도 NIMH라는 이름만큼이나 눈가리고 아웅인 것 같지만요.

 NIMH의 스물두 마리 중에서 절반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쏜 밸리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을 것이고, 프리스비 부인의 아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또 그 길을 이어갈 겁니다. 어릴 때 이걸 읽지 못한 것은 분합니다. 이 이야기를 마음 한구석에 담아 두고 있었다면 자라면서 마주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훌륭한 생각의 실마리가 되었을 테지요. 참고로 그 때 이 책의 번역본이 존재하지 않아서 읽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이 1972년작이고, 저보다 5년 이상 연상인 사람이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다고 했으니 찾아서 읽으려면 읽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연이 닿지 않았을 뿐이죠.

Trivia
1. 이 작품은 [니임의 비밀The Secret of NIMH]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설정은 좀 다른 것 같은데, 프리스비 부인이(그림체를 감안하면) 아주 귀엽습니다. 열성적인 팬페이지 Thorn Valley에서 스크린샷을 보실 수 있습니다.

2. 근래 본 책 중 이 정도로 더스트 재킷 까버리고 싶었던 책은...



3. 수수께끼의 기관 NIMH는 작자의 의도나 뭐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가 맞겠지만, 그래도 이걸 확정된 듯이 본문에 써버리는 데는 문제가 좀 있다고 생각합니다. =_=;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08-0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작년 여름, 우리 아이들과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라 반갑네요~ 이런 심도 있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만요~ ^^ 고베여행후기에 낫토라고 알려주셔서 감사 인사 드리러 들렀어요. ^^

eppie 2008-09-11 16:50   좋아요 0 | URL
한동안 바빠서 서재에 들리지 못했었습니다. 뒤늦게라도 댓글을 남겨놔요. ㅠ_ㅠ 댓글 보고 여기까지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