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파이트 클럽]과 [다이어리]의 작가 척 팔라닉Chuck Palahniuk의 열렬한 팬입니다. (오피셜 FAQ에 의하자면 바른 발음법은 Paul-AH-NIK이고, 그의 조부모들이 자신들의 퍼스트 네임인 Paula와 Nick을 합쳐, 이 성의 읽는 방법으로 하자고 정했다니까 대략 폴라닉, 아님 팔라닉? 검색의 편의를 위해 팔라닉으로 갑니다.)

 언젠가 팔라닉의 공식 팬클럽 The Cult의 포럼 중 한 군데에, 이런 글타래가 올라왔던 적이 있습니다(제 기억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

"척이 예전에 인터뷰에서 말하길, (인터뷰어가 척의 거한 팬클럽을 언급하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그들을 기쁘게 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던 것 같은데, 척은 혹시 우리 싫어해? ;ㅁ; "

그에 대한 어느 팬의 대답은 "저기, 내가 알기로 척만큼 팬을 위해 일을 이것저것 벌이는 작가는 없어..." 였습니다. 실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 발언은 작가로서의 자존심의 표명이고, 팬클럽 뿐만 아니라 누구도 기쁘게 하려고 쓰는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이해해야 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네, 척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책이 한 권 나올 때마다 기나긴 투어를 하고, 팬 메일에 대한 답례로 날아오곤 하는 '선물폭탄' 은 유명합니다.

 지난 연말 새삼 열심히 The Cult에 드나들며 포럼 글을 읽고 있었을 때,  공지가 떴습니다. 아무개 온라인 서점에서 [RANT]의 한정판을 구매하면, 사인 된 버전으로 받을 수 있고, 저 선물폭탄 카드를 받을 수 있다고.

...저는 갈등했습니다. 이 나이 먹고 팬질에 이런 금액을 쏟아부어도 좋은가? 팬클럽에서는 '해봐여 재밌어염 'ㅁ'/' 이라는 분위기로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용기를 내서, 저 아무개 서점과 이메일로 교섭에 들어갔습니다.

에피 : 나 척 팔라닉의 엄청난 팬이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 내 위치 한국인데, 부쳐줄 수 있는가?
서점 : 물론이다. 받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간다. 근데 배송료는 좀 깨지겠다. 괜찮은가? 괜찮으면 아무쪼록 빨리 주문해라. 아시다시피 한정이라 금방 떨어질 지 모른다.

......질렀습니다.

 책은 굉장히 빨리, 그리고 잘 도착했습니다. 책 안에는 안내문과 카드봉투가 있더군요. 시키는 대로 카드에 이름과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봉투에 주소를 적고, 미국으로 날려보냈습니다. 그게 거진 2월이 다 됐던 것 같은데... 책 받은지도 한달 가까이 지나서 보냈으니까요. 가끔씩 '흠, 그런 게 있었지' 하고 생각하는 외에는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생각이 떠오를 때면 좀 불안하기도 했어요. 한국까지 과연 보내 줄까. 배송비 엄청 깨질 텐데. 그러나 저는 그 때마다, 스코틀랜드에서 받았다는 사람(...)을 떠올리며 불안을 떨쳐내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_-;

그리고 지난 주에, 선물꾸러미가 도착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샵에서 주문한 것들인 줄 알았는데 보낸 사람이!


아, 눈물이 피잉.
처음에는, 포장 같은 건 비서를 시켰을 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 비서 같은 게 있을 것 같지는 않더군요. 게다가 상자 옆구리를 보니...


저 눈에 익은 글씨! ;ㅁ;
그리하여, 목욕재개하고 상자를 뜯기로 합니다. 처음에는 침대로 가져갈까 했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에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반짝이?!
그냥 책상에 앉아 뜯기로 했습니다.


들쳐봤더니,


하하하하하. 한참 웃었습니다. 쓸 날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ㅁ^;


향초와 그 케이스, 고무공 2개


...레이저포인터?!


사탕!


이걸 시작으로 타투가 정말 많이도 들어 있더군요.


허브 씨앗, 물망초 씨앗, 당근 씨앗. 근데 이런 건 외국으로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
(판매용으로 소독한 물건이니 괜찮겠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 ;ㅁ; 어차피 심을 생각도 없...아니, 불가능하거니와...=_=;)


오오, 한번쯤은 써보고 싶었는데. 고마워요 척. (나 이거랑 잘 어울리는 귀걸이도 있어요 'ㅁ'/)


넵, 반짝이가...=_=


또 타투.


'엄마를 위한' 초콜렛. (무슨 소린지 소설 [파이트 클럽] 보신 분들은 아십니다. 영화판에는 이 언급 안 나왔죠? :D)


으하하하하하.



그리고 CD 2장. 뒷표지가 신나더군요.

그리고 편지와 사진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저만의 것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
카드에 다른 사람들은 평소 묻고 싶은 거나, 많이들 썼을 텐데...저는 어쩌다 보니 아프다고 징징대는 소리만 써 버렸거든요. 편지에 손이 좀 괜찮으냐, 만약 아니라면 이 선물꾸러미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씌어 있었어요. 그 외에도 의외로 너무 따뜻한 이야기가 씌어 있어서 좀 글썽글썽해졌습니다. 고마워요, 척. 혹시라도 한국에 오면 내가 차 한잔 삽니다.

마지막으로...


척의 선물꾸러미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직접 꿴 구슬목걸이예요. 편지에는 목걸이의 돌들에 대한 설명이 꽤 상세하게 있습니다. 또 눈물글썽해지는 이야기와 함께. '목걸이는 내가 만든 거라, 줄은 끊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돌들은 영원히 남을 거예요' 고리 근처에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작은 블록 구슬로 CHUCKY P에게서 저에게를 나타내는 문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편지에는 받는 사람이 제 핸들네임인 euphemia로 씌어 있지만 목걸이에는 본명이 들어가 있었는데, 한 글자 틀렸더군요. 애교...^ㅁ^;

가운데 보이는 귀걸이는, 어제 말씀드린 대로 오늘 걸고 나가기 위해 맞춰놓은 귀걸입니다. 네, 정말로 걸고 나갔어요!

...그리고 약 60시간이 지난 시점까지 반짝이는 방안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행복의 안개는 아직도 방 안을 떠다니고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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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부럽 2008-04-0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먹고 살기란 역시 이름난 작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네요..

eppie 2008-04-04 17:07   좋아요 0 | URL
워낙에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다 보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 실은 '좋은 사람이라' 가 더 정확한 답일 것 같습니다.

thing 2008-04-0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을 참 맛깔나게 쓰셔요. (팬 예감!)
저는 질식과 서바이버를 정말 좋아했어요. 파이트클럽은 당근이구요.
한동안 척을 잊고 있었는데 에피님 글 보고 정말로 찡한 기분이 되어버렸어요.
저렇게 다정다감한 사람이었군요, 척은.
구슬목걸이, 너무나 아름답고 의미 깊은 선물이네요.
저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선물하면서 척의 말을 인용하고 싶어졌어요. :)
행복하시겠어요, 에피님.


ps. 가짜 피 캡슐.. ㄷㄷㄷ

eppie 2008-04-04 17:12   좋아요 0 | URL
앗, 어서 오세요. :]
전 [서바이버]랑 [다이어리]요! 9.11의 여파로 [서바이버]의 영화화가 주저앉은 건 정말 아쉬워요. 니콜 키드먼과 마릴린 맨슨이라는 희대의 캐스팅이기도 했는데...;_;
저도 처음엔 척이 진지하고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정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사인회나 낭독회 등에서 그랑 서슴없이 어울릴 수 있는 미국의 팬들이 부럽습니다.
구슬 목걸이...네, 사실 쬐끔 울었습니다. :D

The Cult 등지에서 척 소식이 손에 들어오는 대로 이쪽에도 가끔 올릴 테니, 종종 들러 주셔요. 당분간은 [질식]의 영화화가 제일 큰 화제겠네요. 그리고 집필에 들어간다는 새 장편이랑...

ps. 할로윈에 한번쯤은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