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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노동시장의 정치 사회학
정이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지은이는 자본주의의 다양성 대한 이론적 논의의 연장으로서 지구화라는 맥락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대 노동시장 유연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찰한다. 2부에서는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했던 방식대로 북구 사민주의(4), 독일(5), 미국(6) 노동시장제도를 살펴본 , 일본, 한국, 대만 동아시아 3국의 노사관계(7) 고용안정성(8) 변화를 통계방법을 통해 비교 검토하고 있다. 3부에서는 한국의 노동시장체제의 변동을 미국과의 비교를 통해서(9), 분단노동시장의 현실과 연대의 고취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고(10), 11장에서는 한국노동시장체제 개혁의 대략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론적 논의와 이론적 논의에 바탕이 서구의 사례들에 대한 문헌 리뷰를 , 통계를 통해 한국과 일본, 대만, 미국 노동시장을 비교 검토하고, 한국 내의 단위 사업장들에서 어떻게 비정규직 투쟁이 조직되어 왔는 살펴본 , 향후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전체의 짜임새가 훌륭하다고 생각하였다. 책이 다루는 내용의 범위가 방대하면서도 상당히 전문적이므로 서평에서는 한국 노동시장이 관련되어 있는 7장부터 11장까지의 내용에 집중해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점들을 간략히 짚어보고자 한다.

지은이는 동아시아 노동시장이 구미국가와 대조되는 특징(기업내부노동시장의 발달, 상대적으로 평등한 소득과 비교적 낮은 실업률 간의 양립 )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각국이 서로 다른 변화 과정을 거침에 따라, 일부의 주장과 달리 동아시아 복지 모델이나 동아시아형 노동체제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261, 292). 지은이에 따르면, 한국, 일본, 대만의 상이한 노사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있다 (266 ff, 322).

                                   한국                         일본                                  대만

전체 노사관계            분권적 교섭형          (약한) 조율된 교섭형                시장형

기업내 노사관계        대립적 노사관계       협조적 노사관계                종속적 노사관계

전체 노사관계를 보면, 일본은 조율된 교섭형을, 대만은 시장형을 유지한 데에 반해, 한국은 1980년대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서 시장형에서 분권적 교섭형으로 이행하였다 (269). “시장형은 임금과 노동조건이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유형으로서, “노동조합이나 단체교섭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근로 조건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며 노동시장은 '제도화되지 않은' 시장이 된다. 분권적 교섭형은 단체교섭이 기업별 또는 산업별로 행해지면서 기업 또는 산업 간에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는 유형인데, “임금인상이나 임금평준화라는 목표는 교섭 단위 내에 국한되어 추구되며, 교섭 단위 밖에 있는 기업이나 부문과의 형평성은 별로 고려되지 않는다” (267). 박동(2005: 165) 분권적 교섭 유형을 “파편화되고 조정되지 않은 임금결정제도”라고 표현한 있다. 지은이는 한국의 전체적 임금불평등도가 1980년대 이후 감소하다가 1990년대 후반 이후 다시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283).

이는 1987 노동자 대투쟁과 1997-98 경제 위기가 이러한 추세의 변동에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될 있다. 지은이는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라는 측면에서 한국 노동시장은 1980년대 말에 통합노동시장에서 분절노동시장으로 변화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 그런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다”(283) 진단하면서, '1987 노동체제' 개념은 노동시장 분석에도 유용하다”고 본다 (391): “노동시장이라는 측면에서 1987 노동체제는 기업별 교섭, 기업내부노동시장, 그리고 노동시장 분절 주요 특징으로 하는 체제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까지는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실업률로 초래된 인력난 때문에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를 비롯한 전반적 임금 격차는 축소되어 왔다. 당시까지는 대기업의 임금인상은 전체 중소기업으로 파급되어 전체 임금노동자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는 한국이 임금 상승과 함께 전반적 대중시장의 비약적 성장으로 유혈적 테일러주의에서 주변부 포드주의로 이행했다고 주장했던 리피에츠의 논의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1997년의 경제위기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생활수준이 향상될 없는 상황으로의 급반전을 동반하며, 기업규모간 임금격차를 확대시킴으로써 노동시장 분절을 심화시킨다.  

1990년대의 불황에 대한 일본 사용자의 대처와 1997년의 격렬했던 경제 위기에 대한 한국 사용자의 대처 간의 차이는 양국 노사관계의 차이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해 거리를 던져준다: “일본에서는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공세적 인력 감축이 추진되지 않았고 이것은 기존의 협조적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기여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사용자들이 추진한 인력 감축은 노사간 불신을 키우고 한국의 노사관계를 더욱 대립적으로 만들었다” (322). 이것이 단순히 불황과 짧고 강력한 경제위기라는 주어진 조건의 차이일까? 아니면 단지 협조적 노사관계나 대립적 노사관계의 지속으로 설명되는 경로의존성일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할 같지는 않다. 경제 위기 이후의 노동시장 체제는 노동시장의 분절이라는 1987 노동체제의 특징의 지속, 심화 있는 한편, 기업내부노동시장의 확장과 같은 87 체제 내부 추세의 역전으로도 있다. 그리고 이는 다름아닌 계급 역관계의 역전 아닌가? (이렇게 단언하려면 다른 많은 조건들을 고려해야 하긴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1987 노동체제의 끝은 어디까지라고 보아야 할까? 다음 체제가 시작되어야 있는 문제인가

이런 의문은 특히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의 갑갑한 노동계 상황을 생각하면 그렇다. 2006 여름에 출판된 책에서 지은이는 영미식 탈규제와 유연화는 현실적이지도 않거니와 규범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려운 ”(395)이라고 말하지만, 언제 세상이 우리가 규범적으로 동의하는 방향으로 굴러왔는가? 문제는 영미식 탈규제와 유연화가 자본의 공세 속에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뻑하면 비즈니스 프렌들리 외치고, 노동부 장관이란 자가 임금교섭은 앞으로 2년에 한번씩 하자고 하고, 비정규직 고용기한은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리자고 한다. 저들만 그런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외치는 진보정치세력은 분열되었다. 2 현실적이지도 않았고 규범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던 일이 벌어지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1987 노동체제를 탄생시킨 87 여름의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계급 형성의 문제는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남자든 여자든, 대졸이든 국졸이든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슬로건으로 집약되듯,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여 단결투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이제 슬로건은 촌빨 날리는 死語가 되어버렸다. 노동계급 형성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이해 관계가 상이한 노동자 집단”(358) 사이에 연대를 형성하는 일이지만, 오늘날의 프레임은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말이 전했던 가슴벅참을 허용치 않는다. 사례 연구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비정규직 노동자가 바로 옆에서 일할수록, 그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좋을수록, 정규직은 고용불안을 느끼고 연대를 꺼려 하게 된다  

책이 좋은 책이라는 데에는 전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없는 같다. 그러나 단지 지은이 정이환 선생이 국내 박사이고 나름 좌파임에도 불구하고 통계에 빠삭하다는 지엽적 사실에서 책의 훌륭함을 찾는 칭찬들은 참으로 짜증난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과는 다를 같다. 책이 좋은 책이라는 것은 길을 제시해준다는 것보다는 (물론 지은이가 끝에서 밝히는 방향 설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날것으로 존재하는 현실의 갑갑함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준다는 아닐까 싶다. 10장에서 보여지는 작업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평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동운동들의 좌절과 제한된 성공 사례들은 이것이 우리가 규범적으로 동의할 있는 세상의 모습을 현실 속에서 이루어 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다시 알려준다. 합리적 언어로 치장된 대안도, 분노의 수사로 점철된 선동도 믿지 않는다. 패배에 대한 냉정한 기록만을 신뢰한다. 염세주의적 매저키스트인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내게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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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大노동문제연구소 한국노동운동사 6
김금수 지음 / 지식마당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책은 고려대 노동문제 연구소에서 2004년에 모두 여섯 권으로 펴낸 [한국노동운동사] 6권으로서 김금수 선생이 집필하였다. 이른바 “87 노동체제 시기인 민주화 이행기(1987-1997) 노동운동을 다루고 있다. 본문만 550페이지 가량 되는데,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만 10 이상의 시기에 걸쳐 (2000 초반의 사건 전개들도 일부 서술되고 있다) 일어난 일들이 빼곡하게 서술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의 주요서술 대상인 노동운동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므로, 건성으로 읽다가도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게 한다.

 

그렇다고 책이 역사적 사실의 기술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니다. 간간이 사안별 쟁점이 세밀하게는 아니지만 명확하게 제시되고, 지은이 김금수 선생이 생각하는 노동운동을 둘러싼 관계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들이 제시된다. 다만 2001년에 쓰여진 원고를 2004년에 책으로 것이기 때문에, 전망들이 이미 역사가 경우가 적지 않다. 지은이는 전체에 걸쳐 자신의 목소리를 가급적 배제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데, 이는 책이 역사의 기술이라는 1차적 목적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장점일 수도 있지만, 노동운동의 역사적 사실들과 흐름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선 무언가 논쟁거리가 있거나 하지는 못하다. 이는 아마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의 [한국노동운동사] 조선후기부터 1997년까지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정사의 형태로 출판하려고 기획의 탓이기도 할테고, 지은이의 성향과 연배 (2006 현재 69)이기도 같다. 그래도 아쉽다. (따라서 서평에 말이 별로 없다..)

 

산별노조 건설과 맞물려, 이제 슬슬 (97 노동체제 이후의) 2007 노동체제 건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같다. 물론 며칠전 있었던 노사정 야합 때문에 전망 자체가 상당히 불투명해졌다. 새로운 노동체제 건설은 노동운동 주체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명심해두어야 것은 87 노동체제의 시작과 끝은 노동자의 대투쟁 플러스 알파였다는 사실이다. 87 7, 8, 9 대투쟁이나 96-97 겨울 총파업과 같은 대투쟁 없이는 새로운 노동체제를 거론조차 수도 없다는 말이다. 앞으로의 일이야 없겠지만, 머지 않은 시기에 97 노동체제를 다루는 [한국노동운동사] 7권이 출판되기를 바란다. 김금수 선생의 책에 담겨진 내용이 그렇듯, 미래의 역사책에 채워질 내용 또한 노동자들의 눈물과 헌신적 투쟁, 패배와 승리의 기록이 것이고, 그 미래의 기록은 전적으로 현재의 실천에 달려 있는 것이다.  

 

ps.

부질없는 가정이겠지만, 만약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사정위원장이셨던 지은이 김금수 선생이 지금도 자리에 있었다면, 10 동안이나 유예되어온 복수노조 설립이 3 동안이나 유예되는 일이 생겼을까? 복수노조 유예는 1996 노동법 날치기 통과 파동에 의해 사상 유례 없는 총파업을 불러일으켰던 사안 하나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국노총도 민주노총이 주도하였던 총파업에 동참함으로써, 노총 개혁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고, 현재의 이용득 노총 위원장은 당시 위원장이었던 박인상보다 개혁적이었으며, 이수호 집행부와도 협력적 관계를 맺어왔기에 이번의 9.11 야합은 충격이 매우 크다. 86 당시 위기에 몰린 전두환을 지지하며 호헌지지선언을 했다가, 분노에 노동자들로부터 화염병 공격을 받았던 노총과 별로 다를 없다. 하지만 당시와 현재의 중요한 차이 하나는 화염병을 던졌던 노동자들을 바라봤던 당시의 시각과 현재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보수언론의 시각 간의 차이이다. 이번의 노노 갈등은 민주노총 흠집내려고 낚시대 드리우고 있는 보수언론에게는 제법 살이 오른 준척 감이었다. 민주노총이 낚시질에 걸린 것이다. 민주노총이 노동정치 마음이 있다면, 그래서는 안됐다. 한국노총이 개혁을 통해 어용성을 버리고, 민주노조 진영을 벤치마킹하려고 했던 것은 민주노조 진영이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직접적으로는 조직대상인 기층 노동자 대중들이 민주노조를 선호하였기 때문이고, 간접적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민주노조 진영이 독차지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노총해체투쟁한다고 민주노총이 궁지에서 벗어날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에게는 노사정 야합에 책임있는 주체들 중에서 한국노총이 그나마 가장 만만한 상대일 것이다. 하지만 싸움을 보면서 한숨돌리고 웃고 있는 놈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 순진해서 노총이 원래 그런 놈이었다는 것을 잊은 탓일 수도 있고, 어쩌면 민주노총이 노총 보기에도 별로 미덥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지도 모른다. 이번 일로 민주노총은 여러가지로 스타일 구긴 셈이다. 지금 당장이야 노총을 죽여 없애고 싶어도, 그래서는 안된다. 죽일 수도 없고, 죽여서도 안된다. 죽일 놈들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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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9-13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읽고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그러나 이 책의 주요서술 대상인 노동운동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므로, 건성으로 읽다가도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게 한다.' 이런 마음이 참 좋아요.

에로이카 2006-09-13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노동자가 팔뚝에 쓴 유서 이야기가 잠깐 나와요.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는 왜 그렇게 열사들이 많은지... 처음 듣는 이름들도 많았고... 앞으로 노동열사는 더 없었으면 좋겠어요.

waits 2006-09-13 0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열사력'을 가지고 있던 적이 있었어요. 탁상 달력으로 두고 볼 엄두는 안 나서 서랍에 두고 가끔 넘겨보고는 했는데... 힘 없는 사람이 마지막에 내걸 수 있는 게 목숨뿐인 건 여전한데, 누구 하나 죽어도 꿈쩍도 않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착잡한 밤이네요.

에로이카 2006-09-1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택 마을 파괴가 진행 중이네요... 미치겠습니다.

2006-09-13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동의 힘 - 1870년 이후의 노동자운동과 세계화
비버리 실버 지음, 백승욱.안정옥.윤상우 옮김 / 그린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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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바니 아리기는 The Long Twentieth Century 서문에서 "긴 20세기"의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그 책 안에서 다루지 못했음을 말한 바 있다. 그 때 지적된 노동운동의 공백을 이 책이 메꾸고 있다고 이해해도 괜찮을 것 같다.  

 

2003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판된 이 책은 1984년에 아리기와의 공저로 출판된 논문(“Labor Movements and Capital Migration: The United States and Western Europe in World-Historical Perspective”)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곧 20년 연구의 결실이다. 존경스러우면서도 부러운 일이다. 그 논문에서 아리기와 이 책의 저자인 비벌리 실버는 1960-70년대 유럽을 휩쓴 일련의 노동소요들 (labor unrests)은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미국의 노동소요들과 닮아 있다는 것 (Déjà Vu)을, 또 이러한 유사성은 미국 자본의 초국적화에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아울러, 운동의 강도(strength)나 성공 여부는 운동 세력의 이념적 급진성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이 책은 그 논문의 연장이다. 포괄대상 국가가 미국과 유럽 뿐만 아니라, 남미 (아르헨티나,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일본, 중국) 등에까지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섬유, 서비스, 운수 산업별로 노동소요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기술된다. 또 개념적 세련화를 통해 여러가지 유형화(typology)가 시도된다 (공간 / 기술·조직 /  제품 / 금융 재정립 (fix), 연합적 힘 / 구조적 힘 (시장교섭력 / 작업장교섭력), 맑스적 유형의 운동과 폴라니적 유형의 운동, etc.). 이 개념들 중에서 연합적 / 구조적 힘의 구분을 제외하고는, 이 책에서 처음 선보이는 것들이다. 비록 재정립 (fix)의 경우는 데이빗 하비의 개념에 기반해 있고, 맑스적 유형과 폴라니적 유형의 운동 구분은 이념형적 범주이긴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 개념들이 어떻게 노동소요의 역사적 전개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공간재정립을 다루는 2장에서는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노동의 소요에 맞서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새로이 이전된 곳에서도 강력한 노동운동이 발생하게 됨을 보여준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예외로 취급되는데, 그 이유를 일본에서는 노동소요가 자동차산업이 발전하기 직전에 한번 전 사회를 휩쓸었고, 이에 따라 자본 측에서는 기술·조직 재정립의 일환으로 유효한 노동통제 전략 (산업평화와 평생고용 간의 교환, 적기생산방식, 하청 네트워크의 발달 등)을 수립하게 된 데에서 찾는다.

 

제품재정립을 주로 다루는 3장에서는 20세기 동안 전지구적 규모에서 펼쳐진 자동차산업 노동소요의 확산을 그 이전의 섬유산업의 노동소요 확산과 그 이후의 운수, 교육 산업에서 발생한 노동 소요의 전지구적 확산과 비교한다.

 

4장에서는 노동운동의 전지구적 전개가 세계정치의 제 측면(헤게모니와 세계전쟁)과 어떻게 관련되어 이루어졌는지가 살펴지고 있다. 지은이는 여기에서 세계전쟁의 동학은 전투적 노동운동의 세계적 폭발을 전쟁 이후 시기에 집중시키고 있는 데에 반해, 제품주기 동학과 결합된 일련의 공간 재정립은 소요의 진앙을 여러 시기에 걸쳐 전세계적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5장에서는 보호주의와 함께 기술재정립과 제품재정립이 일련의 기술혁신이 집중되어 있는 고소득 국가에 독점이윤을 보장하고, 저소득 국가들을 이로부터 배제함으로써 세계적인 남북분할 (North-South divide)을 재생산하는 데에 반하여, 산업재배치를 통한 공간재정립은 (산업 일반의 주변부화에도 불구하고,) 이 남북분할을 침식시킨다는 일반적인 경향을 앞서의 분석으로부터 도출한다. 그렇다면 금융재정립의 역할은 무엇인가? 저자는 현재의 금융화가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님 (19세기 후-20세기 초)을 상기시키며, 금융재정립이 노동의 상품화와 국가의 탈사회화, 노동친화적 국제체제의 붕괴, 전투적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을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cf. 레비, 뒤메닐, 자본의 반격]. 하지만 또 이는 맑스적 유형의 운동과 폴라니적 유형의 운동 모두의 출현을 야기하며, 그 규모나 속도에 있어 전례가 없는 산업화를 겪고 있는 중국이나, 전세계적으로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운수, 교육, 서비스 산업 등에서 대규모 노동소요가 터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다소 희망섞인 진단을 내놓고 있다.

 

요약하면, 지은이가 살펴보고 있는 187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자본은 언제나 전투적 노동운동에 맞서, 네 가지 재정립 기제를 통해 위기 해소를 도모하여왔으나, 결코 그 역사적 위기들에 대한 궁극적 해결을 하는 데에는 실패해왔고, 문제를 지연시키면서 더 키워 왔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노동운동의 폭발 가능성 역시 더 커져 왔다는 것이다.

 

좋은 책이다. 약간의 문제제기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좋은 분류 (typology)는 그 분류를 통해 포착하고자 하는 대상 전체를 가능한 한 넓게 포괄해야 하며, 또 가능한한 범주간 상호배타성이 관철되어야 한다. 네 가지 재정립들은 이런 측면에서 약간의 곤란함을 유발한다. 곧,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 (위기의 타개를 위한) 자본의 대 노동전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자본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이주노동자들을 어떤 재정립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자본을 수출하는 대신, 노동을 수입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공간 재정립? 아니면 조직재정립? 국가의 보호주의 무역정책은 무슨 재정립인가?

 

또, 모든 공간재정립은 자본의 이동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자본이동이 다 공간재정립은 아닌 것이다. (물론 지은이는 모든 자본이동이 공간재정립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곧 자본이 이동하는 데에는 노동의 저항에서만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얼마전 현대자동차가 미국 앨러배마에 현지 공장을 세운 바 있는데, 이것을 자본의 공간 재정립으로 볼 수는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이는 무역장벽 회피와 (한미 FTA 찬성 논자들이 좋아하는) 미국의 내수 시장선점 때문이었다. 물론 한국 자본의 중국 진출은 공간재정립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의 저항은 그것의 결정에 있어 여러 개 중 하나의 원인일 수는 있어도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또 다른 아쉬움 하나는 설명 변수로서 국가에 대한 경시이다. 물론 한 책이 모든 것을 다룰 수도 없고, 강조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존에 나온 노동운동이나 노동체제 관련 분석에서 국가는 언제나 중심범주에 속하였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기존의 국가중심 분석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다른 점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가지 분석이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국내에서 이루어진 기존의 노동운동 / 노동체제에 대한 (일국중심적) 연구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일국중심적 연구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보완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그 양자의 결합 방식은 내부와 외부의 병치가 아니라, 전체와 부분의 동시적 조망이어야 한다. 21세기 초반 한국 노동운동이 전세계적 흐름인 신자유주의에 의해 어떻게 규정되는가를 넘어서, 또 다른 나라 노동운동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넘어서, 지금 남한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와 싸우고, 다른 외국의 노동운동과 연대하며, 또 이 투쟁들이 향후 노동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반격에 영향을 끼치는지가 보여져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의 힘은 온전히 보여질 수 있을 것이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데이빗 하비. [신제국주의]

도미니크 레비 / 제라르 뒤메닐. [자본의 반격]

비벌리 실버 / 지오바니 아리기. "남과 북의 노동자".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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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9-0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얼핏 보니 재밌고 어려워요. 일단 추천 먼저^^ 저녁때 집에 가서 찬찬히 읽어봐야지.

에로이카 2006-09-0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제가 다시 읽어봐도 이 리뷰는 참 재미없네요. 산만하고... 불친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해주신 나어릴때님 외 세 분께 감사드립니다... 꾸벅^^

2006-09-05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05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동의 저항
이종래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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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종래 선생이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여러 곳에 발표했던 논문들을 수정 보완하여 모아 책이다. 원래 발표 시점에서 다소 시간이 흘러서 출판되었고 (2005 11), 출판을 전후하여 노동운동진영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일들(일부 민주노총 간부들의 수뢰 사건, 민주노총 위원장의 사임, 한미 FTA 반대투쟁, 금속연맹의 산별전환 투표 가결 ) 책에 반영될 없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책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이는 무엇보다 97 노동체제라 칭해지는 경제위기 이후의 노동 현실이 이러저러한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임과 동시에, 언론의 일회성 보도를 뛰어넘는 지은이의 학문적 통찰, 그리고 거기에 담겨진 현장의 치열한 문제 의식 때문인 같다.

 

얼마전 “87 체제 “97 체제 비교하는 담론이 유행하였는데, 저자는 2장에서 이러한 식의 용법을 처음 사용했던노동체제논의들을 살펴본다. 여기에서 지은이는 송호근의이념형적 접근 노중기의역사주의적 맥락 추적 동시에 고려한 결과로서 장홍근의 연구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47-50). 장홍근은 1987 노동체제 형성 이전의배제적 국가권위주의 1988-96년을 거치면서배제적 시장권위주의 이행하였으며, 앞으로는 국가의 노동통제전략이 배제전략에서 제한적인 포섭전략으로 바뀔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지은이는 장홍근의 이러한 주장을 임영일의 전망과 대비시키는데, 임영일에 따르면 1987 노동체제가 온존 강화할 가능성이나 의사코포라티즘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사회조합주의로의 전환이나 노조운동의 재급진화 가능성보다 높다고 전망한다. (임영일의 논의가 장홍근의 논의와 전적으로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노동체제의 전환가능성 논의들의 초점은 노동운동이 체제내화 되면서 제도화될 가능성에 맞춰져 있다.    

 

실업 (3), 노동정책 (4), 노사관계(5) 전개와 변화를 살펴보는 2부는 지은이 나름대로 경제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이루어진 노동체제 변화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5장을 통해 지은이 이종래 선생이 펼치는 주장은 무척 인상적이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버는 대기업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한다는 자본과 정권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 저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 차이의 원인을 대기업/정규직의 강성노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다. 일단 대기업과 정규직의 노조가 역할을 제대로 하여 임금이 높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먼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는 중소기업이 하청을 통해 대기업에 위계적으로 편입되어 있는 기업 지배 의존 구조로 인하여 야기된 기업지불능력의 차이에서 찾아져야 한다: “경제위기 이후 임노동관계는 기업의 지불능력과 생산연관성에 강한 영향을 받으면서 기업의 수직적 위계구조에 따라 재편되는 양상을 보인다” (134).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 또한 1987 이전의 노동체제의 특징인저임금, 장시간 노동 임금비용의 부담증가를 장시간 노동으로 상쇄하는 자본합리화 방식에 따라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대상을 분리 - (중소기업 / 비정규직의) 저임금 노동과 (대기업 / 정규직의) 장시간 노동으로 분리  시킨 현실에서 찾고 있다 (146). 원청 대기업의 눈치를 봐야하는 중소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을 잔업특근을 통해 만회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대기업 노동자들 만큼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표행태를 다룬 6장과, 2003 1 9 손배 가압류에 저항하며 이른 새벽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가 촉발했던 투쟁에 대한 사례 연구인 7장도 인상적이었다. 분석적 통찰 와중에도 현장의 문제의식이 살아 있는훌륭한 책이다.

 

Ps.

마지막 장을 읽다 보니, 너무나 당연히 얼마전 경찰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하중근 열사와, 부당 노동행위를 일삼다가, 지금쯤은 머리속으로 주판알 굴리면서 손배 가압류를 때려야 , 때리면 얼마나 때려야 할지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을 포스코 사측이 생각났다. 이 일보다 얼마전, 추악한 집안 싸움을 법정까지 끌고가서 죄보다 가벼운 벌을 받은 두산 그룹 오너 일가 박씨 형제들도 생각났다. 경제 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 의해 추진된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숱한 의혹과 더불어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 블랙리스트 만들어 가며 노동자들 차등 관리하고, 정리해고와 손배 가압류를 통해 노조 무력화 정책에 나섰던 두산 중공업에서 힘들게 투쟁하던 노동자들은 패배했다. 몇달이 지난 겨울 추운 새벽 배달호 열사는 혼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극한적 행위를 수밖에 없었다. 배달호 열사는 포스코 건설 노동자들 , 명의 미래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투쟁에 나섰다 경찰을 피해 포스코 건물 안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대량 구속되었고, 이에 항의하는 집회에 나갔던 노동자 명이 경찰에게 그대로 맞아죽었다. 이상 이들을 토끼 몰지 말라. 귀막고 눈가리고 있는 청와대와 보수언론은 이들의 정당한, 절박한 요구를 이상 외면하지 말라! 그리고 이상 죽이지 말라!!!!

 

 

 

오자:

55: 가지진다고 -> 가진다고

102: 자져왔다는 -> 가져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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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1 1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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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8-2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리뷰에 댓글 한 줄이라도 달라믄 공부해야할 것 같아요. 그래도, 마지막에 덧붙인 말들이 너무 감동적인 관계로 뻔뻔히. 투쟁하는 노동자만큼 열사를 가슴에 담은 학자도 아름답네요.

에로이카 2006-08-22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아휴.. 뻔뻔하긴요... 사실 뻔뻔함은, 나어릴때님 페이퍼 보면서, 제가 늘 하는 생각인걸요.. 님 페이퍼 보면서 제가 얼마나 반성 많이 하는데요.. 나도 나어릴때님처럼 열심히 살아야지 ^^, 하고 지금으로서는 기약없는 다짐도 해보고... 여름 막바지, 지치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세요.

님... 아.. 그러시군요... 이 책이 하종강 선생님 책처럼 독자들에게 친절한 책은 아니예요. 마구 재미있지는 않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전 이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하고 글을 쓰려면, 이런 마음 가짐과 진정성을 늘 간직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아.. 그리고.. 무지무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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