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lowup > 알리오 올리오를 위한 습작- 봉골레 파스타




책장을 덮고 나서야 이 책이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어 ‘꼼꼼히 들여다볼 걸’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어요. 책을 읽을 동안에는 심드렁했는데 말이죠.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는 순애 소설이다. 많은 작가들이 쓰고자 했지만, 좀처럼 쓰지 못한 그 테마를 이토야마 아키코가 썼다.’라는 문장에 이끌려 샀는데, 읽을 때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어요.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걸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을 타다니, 저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심지어 읽는 중간에는 ‘서사건 문장이건 세계관이건 이런 일본 소설만 읽어서는 아무런 발전이 없겠다’라는 비장하고 우스운 생각까지 했어요. 아무튼 나중에서야 ‘좀더 잘근잘근 씹어 볼 걸.’ 하는 기분이 든 이 책에는 ‘알리오 올리오’라는 단편이 실려 있는데, 알리오 올리오에 대한 설명을 이 책에서 옮겨 적자면 이래요.

“올리브유와 마늘, 고추로만 만든 소스는, 양자陽子와 중성자中性子와 전자電子처럼 심플하지만 속이 깊다. 기름의 온도도 그렇고 가지 즙만으로 내는 소금 맛도 그렇고 대충이란 것은 통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이런 문장이 싫었어요. 너무 힘을 준 것 같잖아요. 내가 써도 싫고 남이 써도 싫은 문장이에요. 실제로 이 단순한 파스타를 식당에서 시켜 먹어 본 일은 없어요. 아는 요리사가 직접 만들어준 알리오 올리오를 먹은 적이 있는데, ‘기름과 소금, 면의 어울림이 기가 막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제대로 된 요리사라는 걸 마음속으로 인정하게 한 파스타였죠.

 

그런데 이 올리브유로만 볶는 파스타를 잘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소금 간에 대한 입맛이 정확해야 하고, 수분과 유분의 어울림이 균형을 이루어야 해요. 그래서 제가 만들어 먹는 올리브유 파스타는 그렇게 맛있지 않았어요.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어 본 게 열 번쯤 되는데 두서너 번 정도 괜찮았어요.

신기한 건, 만들면서 ‘괜찮겠구나’ 혹은 ‘별루겠구나’ 하는 감이 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들의 이음새가 매끄러우면 맛이 좋아요. 그런데 순서가 엉키고 허둥대기 시작하면 맛도 묘하게 헝클어져 있어요.

 




알리오 올리오는 제가 만들어서 맛을 낼 수 있는 파스타가 아니어서,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었어요. 올리브유에 저민 마늘을 넣고 타지 않게 연한 갈색이 될 때까지 볶다가 조개와 와인을 넣고 센불에서 볶아줘요. 그리고는 다시 불을 낮춰서 조개가 입을 벌릴 때까지 기다려요. 조개가 다 벌어지면 조개는 따로 건져서 놓고, 조개 육수가 빠져 나온 국물은 따로 그릇에 담아둬요. 다시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느타리 버섯과 다진 고추를 볶다가 조개 육수를 부어서 1분 정도 익혀요. 그 사이 소금 넣은 물에 파스타 면을 삶고, 면 삶은 물을 조금 남겨놓아요. 이 올리브유에 볶은 파스타는 가운데 딱딱한 심이 살짝 느껴지는 정도가 좋은데, 흔히들 알덴테라고 말하는 상태죠.

마지막에는 이것들을 한데 모아서(면수 3분의 1컵 정도를 붓고) 센 불에 휘리릭 볶아주면 돼요. 촉촉하면서도 기름진 맛이 느껴져야 하니까, 파스타 삶은 물을 꼭 부어주세요. 소금과 후추로 맛을 내면 되는데, 살짝 간간한 편이 맛이 좋아요.

 

뻔한 메타포이긴 한데, 좀 잘 먹는다 싶은 사람들의 음식이 도리어 단순하더라구요. 알리오 올리오는 여러 모로 의미심장한 음식이에요. 올해의 제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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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2006-05-15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페이퍼에서 퍼온 봉골레 레서피. 아직 봉골레를 안만들어봤지만 얼마전 선물받은 올리브유와 스파게티로 도전할 예정.
 

일을 하다보면 뭐든게 내맘대로 될수는 없지만,

점심을 맛있게 먹고 돌아와 전화 한 통 받고나니

정말 기운빠지고 일할 맛이 안난다.

이렇게 작은 것에 휘둘리는 내 자신도 싫어지고,

자신의 일을 망각하고 그것을 내게 덮어씌우는 상대방도 혐오스럽고,

뭐든 말빨로 다 해결하는 드는 안이한 태도엔 두손 다 들겠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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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5-15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입니다. 기운내세요. 그런 사람때문에 한주를 망치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

플로라 2006-05-1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야클님. 맞아요 그럴순없죠... 격려해주셔서 감사해요~^^
 

<BE WITH ME> , Eric Khoo, 2005

Sadly some times even true love can be broken. Yet, it doesn't mean that the world is end











Be with me, my beloved love that my smile may not fade. 

사랑한다는 흔한 말, 고요하고 무심해서 그저 툭 하고 뱉어진 것 같은 그런 고백,

내 곁에 있어줘.....

심장을 망치로 두드려맞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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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토요일 오전.

7시 반에 어무이가 전화로 깨우셨다. 나한테가 아니라 동생에게 얘기하신다는 걸 깜빡하신거다.

으.... 간만의 휴일인데 ㅜ.ㅜ

동생이 방에 들어와 나간다고 인사하며 다시 한번 완전히 잠을 달아나게 했고,

페이퍼 하나 쓰고, 청소하고, 팀장님이 주신 토마토 소스로 파스타 만들어 아침으로 먹고(아침부터 파스타, 나쁘지 않다. 양송이만 넣고 만들었더니 담백했다) 회사 디자이너랑 통화하고 시네코아에서 하는 <보이지 않는 물결>을 보기로 결정.

 

02.  그녀가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랑 영화보고 다시 회사로 컴백해야 한단다. 다음달 있을 클래식 공연 포스터 작업 중인데, 시안을 3개나 만들었는데도 도무지 자기 맘에도 안들고 괴롭단다. 어쨌든 주말 동안 달려서 담주 초에는 최종안이 나와야 하니까...   

 <보이지 않는 물결> 상영관을 채운 사람은 대략 30여명 정도. 펙엔 감독이 욕심을 과하게 부린 걸까? 다국적 프로젝트라 부담이 컸던걸까? 지루한 동어반복. 이거 곧 내려가겠네.

 

03. 영화를 보고 청계천을 따라 을지로로 걸어가 <을지면옥>에서 냉면을 먹었다.

언제 먹어도 좋은 냉면~ I Love It!!오랜만에 을지로와 충무로, 종로의 구석구석 숨어있는 허름한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먹는재미. 을지면옥도 좋지만 살짝 달콤한 신사면옥이 내 입맛에는 더 좋은걸.^^

 

04. 일요일 오전.

대학원 친구들끼리 에릭 쿠의 <내 곁에 있어줘>를 보기로 했다. 동시에 지난주 생일이었던 친구 생일모임도...

오늘도 7시반에 일어나 9시에 집을 나섰다(출근모드냐? ㅡ.ㅡ).

시네큐브 10시 40분 영화로 예매한 L양. 으이구!

일요일 조조영환데 자리가 꽉 찼다. 상영시작된지도 꽤 되었는데...

괜찮은 영화라는 것만 듣고 아무 정보도 없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 .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저 눈에서 줄줄 눈물이 흘러내렸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랑 때문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절망하다 어둠의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는 이에게 건네진 따뜻한 손과 주름지고 무심한 얼굴을 보는 순간 심장에 와닿은 무엇때문인지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주아주 오래랜만에 (진부한 표현이지만)사랑과 삶과 그리고 나에 대해 괜찮아, 괜찮아 하고 끝없는 위로를 해주는 영화를 만났다. 그 위로가 정말 가슴벅차게, 크게 다가오는...

이 말로 다할 수 없는 표현의 한계 ㅠ.ㅠ 

에릭 쿠라는 감독, 오 정말 대단하다. 값진 발견이다.

 

05. 영화를 보고 눈물을 훔치며 극장을 나왔다. 나처럼 코를 팽팽 풀며 울진 않았지만 친구들 역시 감동의 코멘트.

<아지오>에서 점심을 먹었다. 두달 만에 보는 친구들. 서른살, 싱글. 모니카같은 깔끔쟁이 L양과 샬럿같은 우아한 레이디 C양, 그리고 나.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결혼에 대한 혹은 선에 대한 전면전을 펼치면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를 다독이며 연대를 모색한다(전투력 향상이냐? ㅡ.ㅡ). 짜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곤하는 회사생활에 대해서도.

 

06.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식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카레라이스를 오랜만에 만들었다. 새우와 양송이, 감자와 양파, S&B 고형카레.  음식만들기의 희열과 놀라움은 그것이 갖고 있는 놀라운 창조력과 그것으로 전해질 수 있는 온기때문인 것 같다. 알수 없는 뿌듯함을 동반하는... <내 곁에 있어줘>에서 보여준 음식으로 아픔을 치유한다는 메타포 때문인 것 같다. 어설프게 나도 따라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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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5-14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서울에서의 각종 먹거리가 너무 그리워요. ㅜㅜ
더 찾아봐야겠지만, 여긴 왠 그릴들이 그렇게 많은지, 그런데서 파는건.. 말안해도 아시겠죠? 스테이크랑 버거때가리들. 그리고 차이니스 레스토랑들. 아,,, 맛있는거 고파요.

플로라 2006-05-14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거때가리...ㅋㅋ 암튼 하이드님의 표현력은 알아줘야해요.^^ 뉴욕에 가믄 한식당이 무지 많을텐데...우래옥도 있다잖아요. 조금만 인내하고 기대려보아요~^^;;;;

하이드 2006-05-14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여기도 한식당 있긴 있는데요, 딱히 한국음식이먹고 싶은게 아니라, 아니라, 알잖아요. 흑. 여기는 음식들이 다 과한것 같아요. 한국식 파스타, 한국식 냉면, 카레, 그런게 마구 그립네요. 그래도 신라면은 있어요. 불끈

플로라 2006-05-1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 오면 라멘과 냉면과 카레와 뭐 다 먹읍시다...ㅋㅋ
 

<라스트 라이프 라스프 러브>의 감도를 이어갈 줄 알았다.

홍콩, 마카오의 센티멘털하고 혹은 서늘한 공기를 담아낸 화면과(왕가위와 주로 작업해 온 크리스토퍼 도일이 촬영을 맡았다)

정교한 편집, 무표정 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감춰둔 아사노 타다노부만 빛이 났다.

갈피를 못잡고 막판에는 다소 힘이 빠진 느낌.

강혜정은, 흠.... 물음표다.

스틸 사진들은 너무 좋지만...













p.s. 전작의 여주인공 자매들의 이름(노이와 니드)가

이번 영화에선 강혜정과 그녀의 아들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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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5-14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스트 라이프 라스프 러브>를 극장에서 놓쳤어요. 아무래도 어둠의 경로를 통해 봐야겠지요. <카페 뤼미에르>의 아사노 타다노부도 좋았어요.(뭘 해도^-^)

플로라 2006-05-1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사노 타다노부의 필모그래피가 너무 매혹적이에요. 저도 <카페 뤼미에르>에서의 그런 헐렁하고 진지하고 또 세심한(결국 다 멋지단 얘긴데..^^) 그런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