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도쿄에 갔을 때 첫날 저녁을 롯폰기 힐스 일대에서 보냈더랬다.

모리미술관에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할머니의 회고전이 한창이었고,

롯폰기 힐스 전망대에서 저 멀리 푸른 빛을 발하는 도쿄타워를 바라보며 오카다 준이치의 센티멘탈한 표정을 떠올렸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정서가 나와 100% 맞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도쿄타워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랑하는 이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 상징을 엮어내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그녀에게 감사했다.

그렇게 롯폰기에서 시간을 보내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목에서

<콜드 스톤>이라는 아이스크림집을 발견했다.

우아하고 멋진 수트차림의 남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11월의 늦가을밤에도 아이스크림은 신나게 팔리고 있었다.

몇 가지 토핑을 고르면 차가운 돌(cold stone!) 위에 섞어서 바삭하게 구워진 와플에 담아주었다.

나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드디어 와플에 담긴 아이스크림 하나를 손에 넣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바나나와 아몬드, 초코칩 등등을 넣고(열량 최고!) 믹스해서 먹은 것 같다.

암튼 굉장히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었던 것 같다.

기다리면서 주문을 받던, 살짝 하루키를 닮았던 롯폰기 매장의 매니저가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어설픈 영어로 주문을 했으니 ㅡ.ㅡ). 한국서 왔다고 했더니 내년 여름엔 너희 나라에도 생길 예정이야, 라고 말했었다.

그 하루끼 매니저의 예언대로 곧 우리나라에도 콜드스톤이 생긴단다. 홈페이지도 벌써 생겼던데.

차가운 11월에 먹던 콜드 스톤. 뜨거운 여름에 다시 만날 수 있겠군.


롯폰기힐스 콜드 스톤 매장




메뉴판


와플콘


사진보단 훨씬 맛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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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자동차처럼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되는 것은 그저 핸들과 승객,

그리고 도로 사정 뿐이다.

(프란츠 카프카)

 

 

 

◆핸들

좁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뻑뻑한 핸들 탓을 했다.

밸런타인 레인 123 번지가 나올 때까지

급격하게 휘며 이어지는 도로를

뱅뱅 돌면서 한참 헤맸다.

 

뉴욕시 북쪽 20여㎞의 욘커스 시.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 조엘이 살았던 아파트를

마침내 찾고보니 흑인 거주지역 한 가운데 있었다.

에덴데일이란 이름의

7층 아파트 내부를 둘러보려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

울긋불긋 차려입은 할머니가

문을 잡아주며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적은 제작비로 찍은 이 영화의 뉴욕시 인근 촬영지들은

저소득층 거주지인 경우가 많았다.

 

언덕길 아래로 걷다 사거리에서

드럭 프리 존(Drug Free Zone)이란 알림판을 발견했다.

마약 범죄를 없애기 위해 우범 지대 곳곳에 세워놓고

가중처벌하는 지역임을 알리는 그 글귀는

역설적으로 그곳이 불안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곳임을

공언하는 낙인 같았다.

 

차를 처음 몰면

핸들을 거머쥐고 질주하고픈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오래 운전하면 그만 핸들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불현듯 찾아온다.

이터널 선샤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쁨보다 권태가 더 커져

이별을 맞게 된 연인들 이야기였다.

그런 영화의 주인공이 사는 거리명이 밸런타인 길이라니.

마약으로 신음하는 마을 한 가운데 아파트명이 에덴 골짜기라니.

황량한 세상은 작명을 통해서 간신히 꿈꾼다.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서

입술에 희망이 붙을 때까지.

흙길을 지나온 두 발은 먼지로 뒤범벅되더라도.

 

 

◆승객

평일 낮 몬탁행 기차엔 승객이 거의 없었다.

뉴욕 동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섬

롱 아일랜드 끝의 몬탁으로 가기 위해선

맨해튼에서 3시간여 기차를 타야 했다.

오후 2시20분, 종착역인 몬탁에 도착했을 때

내린 승객은 모두 일곱이었다.

조금 긴 듯한 여정 끝,

승객들은 저마다 머물렀던 자리에

쓰레기들을 남겨놓고 사라졌다.

 

한국의 정동진 같은 곳이랄까.

뉴요커들이 일출을 보러 찾곤 하는 동쪽 끝 마을 몬탁은

작은 플랫폼 하나를 통해

세상 끝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었다.

호감을 느끼고도 내성적 성격 탓에 속으로 삭인 조엘에게

클레멘타인은 이 플랫폼에서 장난치며 인사하는 것으로 성큼 다가선다.

 

녹슨 철로는

문을 닫아 건 역사(驛舍) 옆에서 끊겨 있었다.

연인들이 그리는 궤적은 두 줄 철길 같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며 오래오래 함께 갈 수 있는.

그러나 합쳐져 완전히 같은 길을 이룰 순 없는.

그러다 종종 막다른 지점을 만나기도 하는.

 

겨울에 이 영화를 찍은 몬탁의 쓸쓸한 해변은

두 사람 사랑이 두차례나 시작된 곳이었다.

거기서 처음 만난 둘은 곧 연인이 된다.

시간이 흘러 지겨워진 그들은

첨단기술 도움으로 추억을 삭제한 뒤에도

밸런타인 데이가 되자 어렴풋이 몸이 이끄는대로

다시 몬탁에 가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똑같은 사랑을 재차 시작한다.

뇌는 기억 못해도 심장은 기억한다.

먼저 기억하는 것은 정신이지만,

끝까지 기억하는 것은 몸이다.

 

봄날의 늦은 오후,

몬탁 해변을 걸었다.

파도가 대지를 탐한 흔적이

가늘고 고운 모래 위

여러겹 부채살 무늬로 남아 있었다.

그곳엔 개와 새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함께 바닷가를 거닐었을 리 없지만,

각자가 같은 곳에 남기고 간 자취는

공존의 안온함을 전했다.

시간을 두고 보면 모든 삶은

존재의 그늘을 서로에게 드리우며 겹친다.

 

해변에 늘어선 숙박 시설은

제 철을 기다리며 모두 문을 닫아 걸었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쌀쌀한 듯 더없이 상큼했다.

여름을 기다리는 문명이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바다는 부지런히 봄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도로 사정

맨해튼의 도로 사정은 언제나 최악이었다.

클레멘타인이 일하는 곳으로 나왔던

컬럼비아 대학 구내 서점 앞에 겨우 도착했지만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한참 헤맸다.

 

지하에 있는 그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할리우드 야사(野史)를 다룬 책과

미국의 하류층 노동 문제를 파헤친 책을 충동적으로 샀다.

계산 줄에 서 있다가

앞에 있던 여학생이 다윈 상이라는 책을 들고 있는 것을 봤다.

그 책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러 죽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인류의 진화에 기여한 사람들의 실화를 모은 책이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아주 오래된 연인들은,

작은 일로 다툴 때조차

가장 잔인한 말로 찌르는 실수를 저지른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이 헤프다고 비난하고

클레멘타인은 조엘이 따분하다고 조롱한다.

깊숙한 자상(刺傷)을 입은 모습을 목도하고야 후회하지만

오랜 관계는 종종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종말을 맞는다.

 

비 내리는 센트럴 파크에 들어서자

때마침 시민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최종 도착 지점을 찾아갔더니

전광판 시계가 출발 후 4시간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레이스를 마치는 사람들은 최후의 질주를 하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번호를 확인해 이름을 불러가며

하나씩 구경꾼들에게 소개할 때마다

주자들은 마지막 힘을 내어

손을 흔들고 미소를 머금었다.

다섯 시간 가까이 고통스럽게 달렸을 그들이지만,

종착점에서 연이어 목격했던 것은

최후로 길어올린 위엄과 여유였다.

 

재회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각자 상대에 대한 기억을 지운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토록 상대에게 넌더리 낸 이유를 알아채고도,

라스트신에서 그 사랑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 모든 권태와 위험의 불구덩이를 뻔히 보고도

재차 뛰어드는 이 바보짓은 무엇 때문일까.

 

자동차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쯤은 안다.

그러나 조종할 핸들과 타고 갈 승객과 달릴 도로가 없다면

설사 문제가 없다 한들 그 차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부조리로 가득한 세계에서

결함투성이인 삶이 누릴 수 있는 게

실수로 점철된 사랑이라면,

그 보잘것 없는 사랑을 다시 반복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출발 후 5시간을 넘겼을 때

서로 팔짱을 낀 중년 여인 셋이 골인지점으로 달려왔다.

세 사람 이름을 아나운서가 외치자

그들은 자랑스러움과 흥겨움을 가득 담은 눈웃음으로 인사했다.

 

실수투성이 사랑에 그저 하나를 더 바란다면,

길고 긴 그 사랑의 종착점이 어디든,

마지막 순간에 미소로 답례할 수 있기를.

기쁨이었든 고통이었든,

함께 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고마웠음을 눈웃음으로 확인해줄 수 있기를.

시간을 견뎌낸 모든 것들은 갈채받을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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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탁기차역


몬탁의 등대.  뉴욕주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라고.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럿)이 일하던 서점, 실제는 콜럼비아 대학 구내서점이란다.


센트럴파크
(글과 사진은 모두 이동진 기자 카페cafe.chosun.com에서 퍼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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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영화담당 이동진 기자의 5월 11일자 시네마 기행.

<이터널 선샤인>을 따라 봄이 오는 길목에서 뉴욕과 몬탁을 다녀왔다는 이 여행기를 읽고난 뒤.

나의 자동차는...

 승객, 핸들, 도로사정.... 무엇이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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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05-17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동차, 가 문제 아니었을까요? ^^;;
승객, 핸들, 도로사정은 그때그때 달라요...ㅎ
몬탁, 이라는 어감이 참 좋아요.
주심이 스트라이크! 하는 경쾌함과 완벽함,
타자를 허탈하게 하는 느낌이 몽땅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말 되나? ㅎㅎ

플로라 2006-05-17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플레져님 의견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언제나 변수들은 넘쳐나니까요...^^;;
몬탁, 참 쓸쓸해뵈는 곳인데, <이터널 선샤인>과 <통역사>를 읽고 선 좀 특별한 곳이 되었죠. 몬탁에 대한 느낌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하셨는지...ㅎㅎ 추천도 감사합니다.^^
 

이번주 금요일 회사에서 충남 서천으로 워크숍을 간다.

타이틀은 워크숍이지만 별로 기대는 안하는 편이 좋을 듯. 그냥 뭐 MT정도로 생각하고 가야지.

회사에서 서천군과 파트너로 진행하는 일이 있어서  워크숍이 그쪽으로 정해졌다는 후문.

금요일 오전 7시에 출발(으헉, 집에서 6시엔 나와야하는...ㅜ.ㅜ)해서 토요일 오전에 올라오는 스케줄.

찾아보니 서천은 동백꽃, 주꾸미, 마량포 해돋이, 모시(한산모시) 등이 유명한 곳이다. 정동진 못지않은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는 마량포가 기대된다. 서해에서 일출이라...

인구 7만의 소도시. 청정자연을 자랑하는 서천. 그래서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바다를 보는 것도 괜찮고...

다녀와선 서천을 주제로 뭔가를 뚝딱 만들어내야하니 그게 좀 부담이 되는 일.

서천으로 가는 길에 사찰이나 유적지에 한번 들르면 좋을텐데... 공주나 부여에 들렀다 가자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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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5-1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도 워크샵은 낮엔 물놀이나 게임하고 밤엔 노래방가서 술 마신 기억밖에 없네요. 잘 쉬고 오세요. ^^

플로라 2006-05-17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해바다에 던져졌다 나올것 같기도...-_-;; 암튼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니 재미나게 다녀와야죠~ 감사합니다~^^

플레져 2006-05-1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로라님, 즐거운 여행겸 바닷 바람 쐬고 오시길...앙~ 부럽다~ ^^
부여에 들르면 정말 좋지요!

플로라 2006-05-17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워크숍을 즐거운 여행길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해봐야죠...^^ 부여는 가고싶지만 뭐 제 의사가 얼마나 반영될지요...암튼 잘 다녀오겠슴다~^^
 

드디어 출시되는 <메종 드 히미코> 스페셜 피처 DVD.

1000개 한정수량이라는 미끼를 던졌군. ㅡ.ㅡ

<조제>랑 같이 끼워서 팔아야 진정한 SE가 아닌가? 흠...

암튼, 일단 보관함으로.

오다기리 죠를 두고두고 볼 수 있게 됐다, 유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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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5-16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간혹 한정판 후에 더 예쁜판이 나오기도 한다죠 -_-a

플로라 2006-05-17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그럼 기다려야 하나? 귀 얇고 금세 혹하는 플로라 -_-;;;
 

1년에 휴가가 15일이나 되지만 그걸 다 쓸수는 없다. 것두 연이어 쓰는 일은 거의 불가능.

암튼 그래도 주말을 낀 휴가를 내서 보통 4일 정도 짧게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당장 결혼을 할 것도 아니고(적금을 들긴했지만 당장 큰 돈이 나가는 건 아니니),

앤이 있는 것도 아니고(며칠 안봐도 그리워할 이가 없으니),

세상을 넓고 갈 곳은 많고(뱅기만 타면 안가는 데 없이 다 가니),

그래서 틈만 나면 할인항공권을 조회하고,

여행동호회를 내집처럼 들낙거리고

결국 나만의 원더랜드를 향해 길을 나섰다.

마감때문에 입술이 부르트고 눈주위가 팬더처럼 되고 뺨이 핼쓱해져도 나는 언제나 즐거울 수 있었다(정말 단순하단 얘기 ㅡ.ㅡ).

많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1년이 두번 이상 외유를 했으니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정말 잘 벌고 여유가 있어서 나가는 줄 안다.

그치만 나는 언제나 여행 예산은 내 연봉의 10% 선을 지켜야 한다는 룰을 엄수한다. 

사실 일하다가 너무 괴롭고 질려버려서 여행을 질러본 적도 있다.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자위하면서.

갈 땐 좋았는데 다녀오니 힘들어서 그런 바보짓은 다신 안한다.

여행의 맛을 알게되고부턴 

자꾸자꾸 나도 모르게 다음 행선지로 떠날 궁리를 한다.

 

오늘 후배 S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수요일까지 홍콩출장 중이라고 답이 왔다.

 H. K.

 

다시 또 마음이 들뜨는군...침사추이와 야우마테이의 강렬한 간판들, 소호의 이국적인 거리, 셩완의 딤섬집... 

 그치만 이제 딱총은 그만 쏴야해. 좀 더 넓은 세상을 봐야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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