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월 완독한 책
(리뷰를 거의 썼으므로 책에 대한 간단평은 생략)
(문학)
이장욱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 《영원이 아니어서 가능한》
이수명 《붉은 담장의 커브》(재독)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최후의 세계》
로맹 가리 《별을 먹는 사람들》
김영하 《오직 두 사람》
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인문학)
E. H. 카 《도스토예프스키 평전》
(과학)
닐 슈빈 《DNA에서 우주를 만나다》(재독)
(사회과학)
데버러 A. 해리스 / 패티 주프리 《여성셰프분투기》
진 샤프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에세이)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김영하 《오직 두 사람》 은 리뷰부터 페이퍼까지 어쩌다 보니 관련 글을 많이 썼다. 그러나 평점 ★★★을 준 관계로 북플 마니아가 아니다. 어떤 작가나 작품 마니아 타이틀을 받고 싶다면 많이 읽은 것과 상관없이 별 네 개 이상 줘야 하는 것 같다. 좋아한다는 티를 내야 마니아가 될 수 있는 거다. 타당한 듯하면서도 비판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웃기는 시스템이다. 김영하의 이 책은 알라딘 굿즈 탐이 나서 신간으로 빨리 읽게 된 경우인데 덕분에 Thanks to를 13번 받았다. 내가 알라딘에서 Thanks to를 가장 많이 받은 책이 됐다. 화제의 신간을 읽는 보람을 이런 데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본다. 폼 나는 리뷰를 쓰지 않더라도 무료로 신간 홍보를 해주니 알라딘도 글 작성자도 서로 묵과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그런 풍경을 보며 나는 이 책을 중고로 이미 팔았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기분으로 이 책과 안녕을 고한다. 지금 나는 내게 Thanks to를 더 하라는 제스처일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제스처일까. 판단은 알아서.
6월 독서에서 이수명 작가론과 도스토예프스키 평전 리뷰를 정리하지 못한 게 아쉽다. 계속 탐구할 주제이므로 다음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E. H. 카 《도스토예프스키 평전》을 읽으며 메모한 단상 하나를 옮겨둔다.
E. H. 카는 이렇게 말했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소설들에서 나타나는 성욕에 대한 분석은 이원성에 관한 보다 정교한 이론을 내포하고 있다. 성애는 그 능동적 형태로는 타격을 가하고자 하는 욕망을, 수동적인 형태로는 참고 괴로워하는 욕망을 내포한다. 전자는 남성적인 지배욕으로 드러나고 후자는 여성적인 복종욕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섹스의 역할이 도스또예프스키와 수슬로바의 관계에서처럼 실제로는 거꾸로 될 수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성 문제는 단순히 성욕으로 볼 수 없다. 나는 좀 더 나아가 성도 이원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각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이원성에 국한해 작품을 썼더라도. 근대 이후 에고가 강해지면서 우리는 감정의 이원성이 아니라 복잡성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2. 100퍼센트 작은 유리 보틀을 만나지 못해 바보스러운 A
2017년 4월도 5월도 6월도 지나갔고, 나는 작은 유리 보틀 하나 때문에 하루키의 단편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를 다시 떠올린다. 지금은 밤이고 비가 내리고 있다. (거의 늘 그렇지만) 85퍼센트 바보스러운 상태로 이 글을 쓴다.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이미 우주적인 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을 얼마 안 되는, 극히 얼마 안 되는 의구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하는...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말한다.
"이봐, 다시 한 번만 시도해 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진정한 100퍼센트 의 연인이라고 하면, 반드시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이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도 역시 서로가 서로의 100퍼센트라면, 그때 바로 결혼하자구. 알겠니?"
"응, 알았어."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쪽과 동쪽으로.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시도해 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그런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 100퍼센트의 완벽한 연인이었으니까. 그것은 기적적인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 어려서, 그런 것은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정석처럼 비정한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마구 농락하기에 이른다.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은 그해에 유행한 악성 인플루엔자에 걸려, 몇 주일이나 사경을 헤맨 끝에 옛날 기억들을 몽땅 잃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 된 일일까, 그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의 머릿속은 마치 D.H. 로렌스의 소년 시절 저금통처럼 완전히 텅 비어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참을성 있는 소년과 소녀였기 때문에,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다시금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아아 하느님, 그들은 진정 확고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확하게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우체국에서 속달을 부치거나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못해도 75퍼센트의 연애랑,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소년은 서른두 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 살이 되었다. 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소년은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라주쿠의 뒤안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소녀는 속달용 우표를 사기 위해 똑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엇갈린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 의 마음을 한순간 비춘다. 그들의 가슴은 떨린다. 그리고 그들은 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이다.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빛은 너무 연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엇갈려,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만다. 영원히.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 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ㅡ 무라카미 하루키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中
알라딘 유리 보틀은 또 100퍼센트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키는 낮았으나 다른 어느 유리 보틀보다 뚱뚱했다. 100퍼센트 여자아이에 대한 저 이야기처럼 나는 이미 놓쳤는지 모른다. 이 집착도 웃기지만 놓친 것을 모른다는 건 더 바보스럽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보스럽다.
이번에 하루키 새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나왔던데 ‘아내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이란 소재는 여전하시다ㅎ 이야기가 두 권 짜리니 또 어디쯤에서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겠지-_- 하루키에 대한 옛정보다 굿즈 탐욕 때문에 지르게 될까 봐 몹시 두렵다. 《1Q84》나왔을 때 전체 도서관에서 몇 달째 예약 대기로 난리도 아니었던 걸 생각하면....
3. 100퍼센트 전자책 리더기를 만나지 못해서 바보스러운 A
오늘도 전자책을 기웃거린다. 아이패드를 처음 살 때처럼 전자책 리더기를 사야 이 씨름이 잦아들 거다. 딱한 중생 같으니.
긴 여행을 생각하자니 전자책 리더기 생각을 놓을 수 없다. 인도에서 두꺼운 론리플래닛과 다른 여행서를 바리바리 들고 다녔던 경험과 그중 하나를 오물투성이 기찻길에 떨어뜨려 망연히 봤던 기억이 난다. 낑낑대며 들고 갔던 책을 버리지도 다 읽지도 못한 채 가져온 경험을 다신 하고 싶지 않다.
이 와중에 리디북스 전자책 세트 할인 특가는 매우 매력적이다.
리디북스는 리디북스 페이퍼라는 단독 ebook 리더기 체제다. 알라딘과 yes가 크레마로 연동되는 반면 리디북스 페이퍼는 루팅을 거치지 않는 한 리디북스에서 산 전자책만 읽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크레마 사운드의 페이지 넘김 물리 버튼은 리디북스 페이퍼를 벤치마킹한 거 같더군. 크레마도 리디북스 페이퍼도 현재로선 여전히 미덥잖다. 자연스러운 오디오로 외부 스피커로 편하게 들을 수 없다는다는 게 제일 불만이다. 조만간 크레마 라운지로 가 실물을 보고 결정하게 되겠지. 전자책도 쌓아 놓고 읽지 않게 될까.
내가 여기서 밉살맞게 다른 서점 행사 얘길 꺼내는 건 알라딘이 좀 더 고민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상품 구성을!
4. 박준…여전히 알라딘 굿즈 타령
박준 글을 보며 나는 자꾸 누군가 떠올랐다. 정작 그게 누구인지 몰랐다. 애늙은이 같고 술 좋아하는 보헤미안 기질은 시인의 공통분모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굳이 박정대를 떠올린다. 두 사람 다 로맨티시스트이지만 공간에서 명백히 갈린다. 두 시인 다 강원도를 좋아한다. 박준은 이 땅과 삶에 더 천착하는 반면 박정대는 워터멜론 슈가 같은 미지로 한 발 더 떠 있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은 삶을 많이 겪어본 사람들에겐 이미 지나온 다리이지만 지금 세대의 경험담을 듣는 순간이다. 박준 특유의 담담한 고백체가 매력이기 때문에 읽는 맛이 있다. 그가 선배 세대에게 듣는 조언들에도 공감하면서.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게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중략)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p19)
떠난 이를 기억하는 일은, 아직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과 꼭 닮아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p25)
그렇게 며칠 동안 고립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제야 내가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고 무겁게만 여겨졌던 내 인연들의 귀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맑은 눈빛을 다시 보고 싶어 한다.
몇 해 전 좋아하는 선배 시인과 차를 마시면서 이런 나의 괴팍한 습관을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 선배는 자신도 나와 비슷한 버릇이 있다고 반가워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p50~51)
나는 휴지로 입을 닦으며 아이들의 낙서로 가득한 벽면에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작게 적어두고 그곳을 나왔다.(p107)
사은품 노트도 마일리지 500원 값보다 더 가치 있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6월의 추천 도서 사은품으로 받은 카렐 차펙 마스킹테이프 버찌 더 비. 어휴, 예쁘고 아까워서 이거 어디 쓰겠나;;;
알라딘 티셔츠가 생각보다 질이 좋았다. M 사이즈인데 왜 이렇게 크고 팔 길이는 왜 이렇게 긴가 투덜대고 있긴 하지만...
앨리스 파란 우산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내일도 비가 온다면 앨리스 우산 쓰고 다녀야징~ 이히히
5. 내가 뽑은 7월 주목 도서
희귀 중고 도서로 여러 사람 애태우던 에드가 앨런 포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이 재출간되어 기쁘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소장해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나는 허만 멜빌 《모비딕》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도 필히 읽어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파스칼 키냐르 책은 이유 달지 않고 홀린 듯이 산다. 책을 사면서 얻는 기쁨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