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18일 동안 동네 도서관이 문을 닫기 때문에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설마 했던 휴관일이라고 어김없이 문을 닫은 도서관. 그럴 거면 4월 4일까지 예약 도서 받으러 오란 문자나 보내지 말던가. 훗, 한동안 빌린 책 말고 산 책 열심히 읽으라는 세계의 지령이라고 나는 음모론적으로 생각한다.

도서관에 가며 흙의 경사와 쓰레기의 경사, 바람의 방향과 차의 방향, 나란히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닮은 것을 보며 느끼며 세상은 왜 이리 닮아있는지 의아했고, 발걸음을 돌리며 많은 어긋남과 돌이킬 수 없음과 허탈함을 생각하며 세상은 왜 이리 어지러운 투쟁 영역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원리에 다다르면 이 고뇌는 나아질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한계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결과로 우리에겐 불가능, 죽음이 마련되어 있다. 작은 구들이 모여 이뤄진 또 하나의 구로서 팽창하며 맞는 최종이 내 속에 있다.

구는 우주의 상징이며, 드러난 창조 전체를 뜻한다. 자연에서 아주 큰 것, 아주 작은 것은 대체로 구형이다. 아인슈타인은, 4차원의 시공간에서 한 점(예를 들어, 지금 여기 있는 나)은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구이며 전체 우주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상의 지평선 안쪽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정육면체는 땅을 상징한다.
미란다 룬디 《신성한 기하학》「구, 사면체, 육면체 :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중


밤하늘 아래 목련이 잭슨 폴록 그림같이 펼쳐져 있어 발길을 멈췄다. 올해 처음 본 목련 꽃. 목련들 뒤에 구심점처럼 숨어 빛나는 달. 그 뒤엔 더더 무엇이.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나는 이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결정하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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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4-03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근처에는 어제까지도 없었는데, 하루 사이에 갑자기 팝콘처럼 목련이 핀 나무가 있어요.
그것도 나무의 절반만.^^;
저 나무는 벌써 많이 피었네요.
도서관의 휴관일, 어쩌나요. 시간내서 가셨을텐데.;;
a님, 오늘도 낮은 따뜻하지만 저녁 바람이 차가워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AgalmA 2017-04-03 23:33   좋아요 2 | URL
맞아요. 팝콘같은 목련. 저도 그 생각 자주해요^^
나무의 절반만? 햇볕이 거기만 잘 들었던 걸까요? 반만 죽은 나무인 건 너무 이상하니까ㅎ;;

북다이제스터 2017-04-0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련이 사진인지 그림인지... 사진이라면 현실적이지 않은 질감입니다. ^^

AgalmA 2017-04-03 23:34   좋아요 0 | URL
실제는 사진보다 더 현실적이지 않았죠. 우리가 지금까지 본 사진이나 그림도 그런 상황을 잡아낸 걸 테고요 :)

달걀부인 2017-04-04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이유들로 비슷한 고민의 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련 사진은 정말! ...

AgalmA 2017-04-04 13:30   좋아요 1 | URL
달걀부인님께 고민이 비슷하단 얘길 자주 들어서 어쩐지 비슷한 나이대라 겹치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자연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정말 많은 듯 합니다. 말없이 가까이. 참 고마운 일이죠.

겨울호랑이 2017-04-04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께서도 우든북스를 즐겨 읽으시는군요. 매우 얇은 책이지만, 알차게 구성된 책이라 저도 즐겨보는 책입니다. ㅋ

AgalmA 2017-04-04 13:32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도 우든북스 가지고 계시는군요^^ 말씀처럼 얇고 알찬 책이죠^^ 일단 디자인이 너무 제 취향입니다ㅎㅎ 그림도 많고^^

cyrus 2017-04-0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주 가는 공공도서관은 작년에 건물 공사를 했어요. 장기 휴관은 안했고, 임시 공간을 만들어서 제한적으로 책을 빌릴 수 있었어요. ^^

AgalmA 2017-04-04 14:00   좋아요 0 | URL
DB 점검 때문에 아예 대출을 못하는 상황인 건 수긍하겠는데, 18일 동안 문 닫을 거면 예약도서 문자 보내주면서 그것도 전체 공지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홈페이지 가서 팝업으로 봤을 땐 이미 늦었죠ㅜㅜ 참 이용자 편의 생각 안하는 관공서 전형을 다시 확인했어요ㅎㅎ;;

뷰리풀말미잘 2017-04-04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른다 누르지 않는다 누른다 누르지 않는다 누른다 누르지....

AgalmA 2017-04-04 14:01   좋아요 0 | URL
👇🏻꾸욱

커피소년 2017-04-04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이 닫힌 도서관을 걸어나오면서 느끼는 허탈감에 터벅터벅 걷는 발걸음이 떠오르게 되는 글입니다.

목련 사진은 당연히 쓸쓸함이 느껴지고요.

목련 꽃 필 무렵의 우울과 쓸쓸함은 혼자 독점할 수 없고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되네요.

AgalmA 2017-04-04 15:34   좋아요 1 | URL
목련을 발견하게 되어서 전 기뻤습니다^^ 도서관에 오지 않았다면 저 풍경을 볼 수 없었겠죠. 오늘 간다고 해도 같은 풍경이진 않을 테니까요. 자연이 두려우면서도 고마운 존재라는 걸 다시 느끼며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념이 우울함을 끌어들이고 글도 이렇게 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네요...

마지막에 쓰신 문장은 무척 시적이네요. 모든 풍경 앞에 우린 그렇겠지요.

보슬비 2017-04-04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밤 하늘의 목련이 참 근사해요. 저도 도서관에서 희망도서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상태가 멜롱해서 그냥 안갔어요. 지금도 가져온거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해야하는데...^^ 열심히 읽느넋 같은데, 책이 참 안줄어요. 좋아요해야할지... 싫어해야할지...ㅋㅋ

AgalmA 2017-04-04 22:03   좋아요 1 | URL
저는 희망도서 못 가지러 갈 상태면 묵혀두기 아까워서 다른 사람들 어서 보라고 도서관에 전화 걸어 비치하시라고 설레발ㅋ;
그렇죠. 책이 안 줄어드는 게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ㅎㅎ

2017-04-05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7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7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8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쌩 2017-04-09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의 고뇌에 공감합니다.다가갈수 없는.이해할수없는. 건전한 불행입니다. ^^
꽃피는 봄이오니, 일상이 슬로우슬로우 다운다운 하네요.
부디 이 건전하고 불행한봄날을 즐기시길 ~

AgalmA 2017-04-09 02:50   좋아요 0 | URL
목련 본 지 얼마 됐다고 이젠 목련은 가고 벚꽃이라네요. 허허... 시간 가는 게 영 슬로우슬로우 다운으로 안 느껴져요. 갑자기 져버리는 꽃같기도 하고ㅎ
오쌩님도 하루하루 충만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