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프라이드의 승무원들은 조종사에게 인터컴을 통해 자기들도 그만큼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하늘엔 그들뿐이었다. 그들은 전투기의 엄호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일본군에는 비행기가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이미 끝나 서류 작업만 남은 상태였다. 사실 에놀라 게이가 히로시마를 잿더미로 만들기 전에도 상황은 명백히 그랬다.
킬고어 트라우트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더 이상 전쟁이 아니었다. 나가사키 싹쓸이도 그랬다. 그것은 ‘잘했어요. 양키스 선수들’이었다. 그것은 이제 쇼 비즈니스였다.”
트라우트는 ‘웃지 못할 일’에서 쓰기를, 조종사와 폭격수가 그 전에는 임무를 수행할 때는 어딘지 신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때는 사람들이 떨어뜨릴 물건이 고작 소이탄과 재래식 고성능 폭탄뿐이었다. “그때의 신은 작은 신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복수와 파괴밖에 모르는 작은 신들로 여겼다. 그러나 하늘에 자기들만 있으면서 비행기 아래 자주색 제미럴 것을 달고 있을 때는 저 우두머리 신 하나님처럼 느꼈다. 전에는 누려 본 적이 없는 선택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낀 것이다.”
“딩동댕, 딩동댕!” 그는 자기 몸짓이나 어조나 주변 상황을 이용하여 그 말이 ‘당신에게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뜻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 말은 하와이 사람들의 알로하처럼 만날 때 인사나 헤어질 때 인사가 될 수도 있었다.
……나는 2001년에 재너듀에서 그에게 왜 그렇게 자주 ‘딩동댕’을 아포자투라, 곧 꾸밈음으로 사용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그건 전쟁 때 내가 요청한 일제 포격이 표적에 명중할 때 외치던 말이오. ‘딩동댕! 딩동댕!’ 했지.” 하고 대답했지만, 조금 뒤 그 대답은 피상적인 설명이었음이 밝혀졌다.
……“정말로 ‘딩동댕’에 대해 알고 싶소?”
나는 처음 설명으로 만족했었다. 트라우트는 내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몹시 바라고 있었다. 아까 내가 전혀 악의 없이 던진 질문이 소름끼치는 유년의 기억을 자극한 것이었다. 그는 그 이야기를 해야만 그 기억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소.” 트라우트가 말했다. “열두 살 때요.”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신실한 이슬람교도들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커트 보네거트 《타임 퀘이크》를 읽었을 때 꼭 크리스마스이브에 읽어야 더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지구 저쪽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폭탄 테러가 있었다. 과거사와 서로의 다름을 언제까지 무차별적인 미움과 폭력으로 되갚아 주려는가.
제목엔 메리 크리스마스 해 놓고 올린 소설 내용은 반전-_-.... 제가 좀 그래요; 세상도 여전히 그렇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