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미엘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빠르고 간편한 안내서> 칼럼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그럴 듯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참고로 ‘그럴듯한 이야기’는 어린이 도서 <정글북>의 교훈적이지만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사람들이 믿는 현상을 표현한 것으로, 진화심리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걸 비꼬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인 에밀 뒤르켐은 인간의 본성이란 “사회적 요인에 의해 주조하고 변형될 수 있는 미결정된 재료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성적 질투심이나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같이 기본적인 감정들도 ”결코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p84)
에밀 뒤르켐의 유명세와 문장력으로 인해 쉽게 동의하기 쉬운데, 진화론과 유전자에 대해 조금만 알아봐도 이 분석은 틀렸다. 다음,
“중력이 건축 양식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심리학의 원리들이 문화적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p84)고 주장하는 미국 인류학자의 창시자의 로버트 로위의 말에서 나는 “그렇다면 프로이트나 라캉 같은 심리 분석가들의 이론은 수다입니까?”라고 묻고 싶었고,
“우리는 인간의 대물림이 가지고 있는 모든 함의에 주목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동 중 생물학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일부분인 반면 전통을 이어감에 있어서는 문화적 과정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p85)라고 말하는 미국 인류학의 대모이자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 루스 베네딕트의 주장에 대해서는 ‘역할’의 크고 작음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위 주장들에 대해서 진화심리학도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진화심리학은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기반"(p87)으로 '인간 본성의 실재'(p85)를 증명해보고자 하는 분야다.
“진화심리학이 근거하고 있는 핵심적인 공리는 신체 구조나 생리적 현상과 마찬가지로 행동 역시 많은 부분 유전되며 모든 유기체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자신의 포괄적합도(협동과 같은 사회적 행동의 진화를 설명하는 메커니즘)를 높이고자, 즉 후손 세대에 자신의 이기적 유전자의 빈도와 분포를 증가시키고자 행동”(p88) 한다는 것이다.
재러미 다이아몬드 《제 3의 침팬지》는 유인원과 인간의 성기 크기와 번식 특성을 비교 분석했다. ‘고환 크기 이론’은 진화생물학의 큰 업적이다. 그러나 완벽한 진화적 설명으로 결정된 건 아니다. 미엘은 번식과 섹스에 관한 진화심리학 연구들을 제시했는데, 진화생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진화심리학이 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 진화심리학은 사이비 과학인가
우선, 과학이 아니면 사이비 과학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보자.
허먼 홀컴은 전과학(pre-science, 과학적인 이론의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여러 경쟁 이론들이 공존하는 단계) - 초창기 과학(원형과학:아직 과학으로 인정받지 않고 있으나, 후에 과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것) - 과학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사이비과학) - 확립된 과학(과학) 을 구분하지 못하면 편파적인 견해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p115 참조).
진화심리학은 “진화생물학에 확실한 근거를 두고 있고, 이론이나 사실과의 연관성이 확립되어 있으며, 관찰 및 실험을 통한 검증을 항상 실시”(p117)하는 과학의 틀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진화심리학 연구들 중 개개의 것을 사이비 과학이나 원형과학으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부분으로 전체를 사이비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허먼 홀컴의 정의에 의하면, "진화심리학의 목표는 차등 번식 성공(진화 과정에서 변이, 유전, 생존 경쟁을 거쳐 환경에 더 적합한 자손을 생산하는 것)에 유리한 형질이 자연선택에 따라 일어나는 인지적, 동기적, 감정적, 행동적 적응이 우리 마음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이해하는 것"(p114)이며, "진화심리학은 기존과학(진화생물학)을 새로운 영역(인간의 마음)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원형과학"(p115)이다. 홀컴은 ‘진화심리학이 과학으로 자리 잡지 못한 주된 이유가 진화론을 인간의 정신과 행동에 적절히 적용하는 법을 아직 찾지 못한 탓’(p115)이라고 봤다.
● 진화심리학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
허먼 홀컴은 진화심리학이 과학적 방법론(“반증 찾기, 대립 가설 검증, 새로운 예측, 반복되는 변칙을 통제하는 능력, 증거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설득력 있는 논거”, p120)을 보강해야 한다고 보았다.
반증 가능성을 간과할 때, ‘하나의 추측을 다른 추측으로 덮는 사이비 과학의 추론 형태인 “사후 해석”에 빠지거나’ ‘반례보다 긍정적인 예만 찾으려 드는 원형과학의 특성’(p122)에 빠지기 쉽다.
● 진화심리학 패러다임에 대한 의심 - 증거가 없거나 잘못된 거 같다?
<외도하는 그 여자와 질투하는 그 남자의 마음> 칼럼에서 데이비드 J. 불러는, 진화심리학이 스티븐 핑커와 같은 학계 인사들에 힘입어 특정 학문 분야를 넘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패러다임을 만드는 현상과 그가 판단한 진화심리학 도그마들에 대해 의심스러워 한다.
진화심리학 첫 번째 도그마(‘인간의 마음은 목적을 가진 모듈 집합체')에 반대하며, 불러는 마음을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자 '면역 체계'라고 말한다.
진화심리학 두 번째 도그마(‘인간의 마음은 석기 시대 수렵채집인 생활방식에서 변하지 않았다’)에 대해, 불러는 인간이 홍적세의 수렵채집인의 특성을 뛰어 넘는 폭발적 심리 진화를 겪었다고 주장한다. 불러는 진화심리학의 몇몇 발견ㅡ“배우자 선호에서 나타나는 차이(남성은 성적 매력을 중시하지만 여성은 능력을 중시한다.), 외도 전략의 진화, 질투에 대한 성별의 차이, 의붓 자녀가 학대당할 위험이 높은 이유”(p144)ㅡ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불러는 ‘외도’에 대해선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연구를 논박하고, ‘의붓 자녀 학대’에 대해선 진화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의 연구를 논박한다.
● 진화심리학에 대한 의심보다 그 이상을 본다면?
처음에 진화심리학을 소개했던 프랭크 미엘이 <진화심리학은 진화한다> 칼럼으로 재등장해 불러의 비판에 회답한다.
미엘은 불러가 단정 지은 "도그마"라는 표현을 "핵심 논쟁거리"로 정정하고, 진화심리학의 대표 업적이기도 한,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 "신데렐라 효과(계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유전적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보다 학대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 p174)"와 데이비드 버스 '남성과 여성에게 나타나는 질투심의 차이에 대한 연구'에 대한 불러의 비판 속 결함을 말하고 있다.
미엘은 불러가 특정 연구의 방법론적 결점들을 나열하며 트집 잡기만 했을 뿐, 변칙을 소화하고 새로운 예측과 설명을 제시하는 진화심리학의 학문적 생산성에 대해서는 간과했다고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진화심리학의 과제를 제시했다. “영역 특이적 메커니즘과 영역 일반적 메커니즘의 역할을 밝히고(※인지에 대한 논의인데 본지 참조), 진화심리학, 행동유전학, 신경과학, 심리측정학”(p183)이 우선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미엘의 의견에 누가 이견을 달 수 있을까.
● 본성은 어디 있는가
본성의 보편성을 파악하기 위한 구분과 분류가 끊임없이 차이를 만드는 딜레마, 이건 진화심리학만의 특성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 남녀 본성의 차이에 대한 의문은 인류의 오래된 숙제였다.
해리엇 홀은 <남성과 여성은 얼마나 다른가>란 칼럼에서, 본성도 性도 보편적으로 파악하는 건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보편성도 사회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성sex'은 생식기 같은 신체 구조를 가리키는 용어로, '젠더gender'는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용어로 사용’(p53)되지만, 용어가 제시하는 특징이 생물학으로 결정되는지 문화적으로 학습되는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홀은 말한다. 또한 “성별, 젠더, 섹슈얼리티는 이분법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생물학적 · 사회적 · 심리적 기준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p57)한다고 말한다. 가령 “생물학적으로 XX와 XY가 혼합된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며 해부학적으로는 여성 생식 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남성 젠더를 가지고 여성에게 성적으로 끌릴”(p57) 수 있다면?
홀은 젠더 차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
“여성의 공감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감정 이입에 관한 젠더의 차이점은 실험 대상자의 인식에 더 많이 좌우된다.”(p58)
"남성이 수학 능력의 편차가 더 크고 상위권에 몰려 있다는 가설은 이미 논파되었다. 여성과 남성의 수학 능력은 모두 비슷한 분포도를 가진다."(p59)
“남성이 여성보다 더 강한 성충동을 가졌다는 현대의 생각은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생각과는 정반대인데,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성은 성적으로 만족할 줄 모르며 남성만이 이성적으로 성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p59) 등등.
홀은 사례가 많아질수록 고정관념이 서서히 바뀔 것이라고 낙관하고, ‘젠더의 차이는 평균일 뿐 평균이 직업적 차별이나 고정관념, 차별적인 정치적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p66)으므로 차이에 대한 단순 평가를 경계하라고 말한다.
● 요령보다 방법
내가 KOREA 《SKEPTIC》 vol. 4에서 가장 좋았던 건 "THEME 회의주의란 무엇인가”였다. 매 호 이 주제가 실리는데, 이번 호에는 ‘비판적 사고를 가로막는 29가지 사고 오류’에 대한 내용이다. 마이클 셔머가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에 실었던 내용을 보완해 수록했다.
서평이 너무 길어져서 내용 소개는 생략했다. 아쉽다면 KOREA 《SKEPTIC》 vol. 4를 사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ㅎ;
“의미 없는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라(요령36)”, “상대방이 아니라 청중을 설득하라(요령28)”, “상대에게 질 것 같으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라(요령29)” 등 인터넷 트롤(악플러)이나 어그로들과의 말싸움에나 요긴할 안내서; 같은 쇼펜하우어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보다 합리적인 방법론이라고 생각하니 꼭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