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플에 대한 단상
기본적으로 상대의 이웃 신청은 다 받는다. 내 무언가가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고맙다는 뜻에서다. 처음엔 그저 뉴스처럼만 보고 아무런 반응도 소통도 하지 않는 데 불만이었지만 이 또한 상대에 대한 내 욕심이려니 하고 그런 부분에선 마음을 많이 비우고 있다. 섭섭함 같은 감정은 없앨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상태라고만 말한다. 나 또한 그만큼 상대에게 보답해야 할 테니 어쩌면 다행인지도?
기존에 상주해 있는 서재 마니아들에겐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꽤 시간을 둔 뒤 이웃 신청하는 편이다. 화재의 서재 글로 꾸준히 올라오니 굳이 이웃 신청을 할 필요를 못 느끼기도 한다. 많은 시간을 여기서 보낸 사람들이라 그들의 패턴이라는 게 있는데, 그 패턴들이 나와 맞지 않는 게 많으면 방대한 리뷰와 페이퍼들을 일일이 보고 반응을 안 하기는 어려워 이웃 신청을 주저하는 점도 있다. 나는 피드백을 좀 많이 하는 편이라 에너지 소모가 많다. 안 하려고 해도 어느 순간 댓글을 쓰고 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의견 다툼과 마음 상함을 서로 겪게 되면 그냥 지나칠 걸, 시작하지 말 걸 하며.... 마음고생이다. 이 글도 쓰고 나서 지울까 말까 엄청 고민했다. 아, 성격을 고쳐야 되나....
북플 처음 왔을 때 로쟈님께 이웃 신청 안 하고 있을 때였다. 같은 책인데 여기저기서 읽고 싶어요 쇄도하는 현상이 뭣 때문인지 한참 궁금해하다가 화제의 서재 글에 로쟈님 글이 뜨면 아, 한 적이 많아서 결국 이웃 신청ㅎ 더 결정적 계기는 정확하게 잊어버렸네;
아무튼 묻혀있는 글, 마니아들을 찾는 게 더 흥미롭다.
북플 이용자에 대한 개인적으로 불만은 아주 사소한 단상을 읽고 있는 책 이미지 딸랑 첨부해 올리는 행위다. 소통이라기 보다 배설로 보인다. 북플은 트위터처럼 그런 걸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시스템이기에 내가 너무 예민하고 완벽함을 바라는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사람들이 이곳에 온 요인 중 다소 이기적인 이유 `지식과 정보`를 나 또한 바라고 있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 중요하다. 정보를 제공하는 노동자로 있고 싶은 사람은 없다. 수입이 또 된다면 모르지만. 이에 대해선 thanks to라는 것이 있어서 일부 사람들은 더 많은 노출을 꾀하고 실제 성과도 얻는 것 같다. 그것이 생활비를 버는 정도 된다면 나는 가타부타 말할 수 없겠다. 어쨌든 노력의 대가라면.
이곳에 인구 유입이 늘수록 책에 집중된 글보다 사담 같은 개인 sns가 돼가는 것 같아 어떻게 정착될지 궁금해하고 있다. 어쩌다 그런 식이 아니라 기조가 될 정도로 확산이 우려되어서 하는 말이다. sns와 포탈과 커뮤니티는 사실 이런 개인성들이 모여 활성화되고 커 온 걸 테니 오히려 핵심이기도 할 것이다.
어제 나는 `중심이 없다`라는 글을 올리고 나서 고민이 많았다. 정영문 <겨우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소설의 장점을 알리기보다 내 감상에 더 치우친 글이 아닐까 싶어 글을 내릴까 많이 망설였다. 다음부턴 그러지 말자와 더 자유롭고 싶다 속에 여전히 고심 중이다. 처음부터 놀이터로 삼았어야 했을까.
이웃이 늘면서 이웃의 읽고 싶어요/읽었어요 별점 등이 스팸메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북플에 들어오면 그걸 계속 지우는 게 일이다. 나는 대부분 독자적으로 체크를 하고 이웃에게 날아가기 전에 얼른 지운다. 어쩌다 꼭 소개해야 될 책이다 싶으면 그냥 둘 때도 있다. 내게 매일 전달되는 상당 부분은 내 취향과 맞지 않지만 체크를 못한 이웃에게는 도움이 된다든가 읽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지도 모른다. 내가 마음을 움직이게 되는 것은 그렇게 날아오는 책이 아니었다. 일상적 감상이 주가 되는 리뷰도 아니었다. 책 분석에 심혈을 기울이고 거기서 자신이 얻은 지식을 다른 것들과 연결까지 해보는 노력과 자세가 엿보일 때다. 이것이 리뷰 쓰기, 글쓰기의 기본이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책을 왜 읽는가 하는 점과도 직결된다. 단지 좋은 문장 몇 줄, 감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 잖은가.
글쓰기에 대한 고심이 아니라 책과의 교감과 그를 통한 사유에서 리뷰는 자연스레 나온다. 고통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읽어나갈수록 리뷰는 더 풍부해지고 자기만의 글쓰기가 되어 간다. 다른 이의 평가는 이후 문제다. 그런 과정에서 누군가는 작가가 된다.
누구나 작가처럼 심혈을 기울여 쓰자는 뜻이 아니다. 흥미, 필요, 감상, 허세 등 수많은 것들이 소용돌이치는 이 공간에서(나를 제외하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든 성장하며 자유롭고 싶다. 책과 글이 우선인 건 변함없다. 서로 표현은 달라도 본질적으로 당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또한 우리는 어떤 식으로 해야 바람직한 지 계속 갈팡질팡 아닌가. 다 내 착각인가?
지금도 나는 의견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상대방이 공격이나 훈계라고 생각하면 도리가 없다.
§§ 복권과 미룸
친구랑 밥을 먹으며 복권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했다. 돼지꿈, 조상꿈이 복권당첨되는 꿈이 아니라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일이 많기 때문에 당첨확률이 더 높아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확률은 어차피 반반이지만 복권을 어쩌다 사는 사람과 꾸준히 사는 사람 중 꾸준히 사는 사람의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늘까지 뭔가 신청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나는 또 미적대다가 기한을 넘겼다. 습관을 병으로 실패로 만들어가고 있는 인생, 이런 내가 누굴 가르치겠나.
이런 시점에서 위르겐 쉐퍼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위로와 심리적 발견을 던져주는데, 이걸 핑계삼지 말아야할텐데 걱정이 살짝 된다.
내가 흔히 하는 생각이 `아포페니아Apophenia`(서로 연관성이 없는 현상이나 정보에서 규칙성이나 연관성을 끌어내려는 인식작용을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로 명명되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 외에도 일상과 연결된 심리학을 적절히 잘 가져온 쉽고 좋은 책이란 생각을 한다.
레나타 살레츨 <불안들>을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는데, 이 책이 2004년도에 첫 출간된 만큼 911테러, 이라크 전쟁, 사스 등을 언급해나가는 초입에서부터 지금과 너무 닮아 아니 더 나쁘게 변함없다는 사실을 계속 떠올리게 돼 마음이 무거웠다.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비교. 여성적으로 보이는 신경증(끝없는 의심)과 남성적으로 보이는 정신병(독단적인 자기확신). 여성에게 강요된 복종과 종교성, 내가 북플에서도 매일 보고 있는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과도한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우리들의 결여....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리뷰가 선뜻 내키진 않는데, 내 앎이 진짜인지 살펴보기 위해서라도 정리가 필요하긴 할 것이다.
<불안들>은 정신분석 학술글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에, 레나타 살레츨을 읽어보려는 사람에겐 사회적 시선이 심층화된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더 추천하고 싶다. 두 책이 맥락은 비슷하니까.
마음 어지러움과 그래도 도움되는 정보는 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쓴, 괴상한 글이 되어 버렸다.
ㅡ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