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잃어버린 10년 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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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한가? - 그리고 법리는 무엇인가, 판결비평 2005~2014 ㅣ 판결비평 1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지음 / 북콤마 / 201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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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란 문장은 매우 의심스럽다. 만인은 법에게 권한을 줌으로써 법에 구속받는 궁지를 자처했다. 법 뿐만이 아닌 게 더 문제겠지만. 이러한 강제 속에서 평등을 꾀한다니 이치가 참 괴이하다. 법(law)의 사전적 뜻에는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라는 이중삼중의 강제성이 포진해 있다. 法이라는 한자어는 어떤가. 水와 去는 둘 다 ‘흐르다’라는 성질이 있다. 去는 ‘내쫓다’라는 제거의 뜻도 있다. 우리는 무엇을 흐르게 하고, 무엇을 제거하고 있을까. 본문을 읽을수록 거기 '우리'는 없고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던 "호모사케르(예외 상태인 자, 제거되는 국민)"를 더 보게 되니, 시대는 흐르고 사람은 제거되기만 하는 것 같다.
칼 슈미트는 『정치신학』에서, 주권자란 예외 상태에 관하여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마스 홉스는 『시민론』에서, 국가의 법과 시민의 의무를 상호 연관해 고찰할 경우, 국가와 인간의 본성이 서로 어떤 식으로 결합해야 하는지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권력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해악을 가할 때만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평한가』에 실린 판결들은, 예상대로 내내 불합리하고 불공평했다. 주권(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을 대신한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이 좀처럼 공통의 주권을 반영하지 않으며 독단적이고 임의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각 판결은 5페이지 안팎으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었다. 편집이 유사 소송들끼리 배열되지 않고 시간 역순(2014년→2005년)인 것은 문제의 지속성을 독자도 똑같이 느껴보란 의도로 읽혔다. 글쓴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성격을 느끼게 되는 점이다ㅎ. 헌데 대중의 관심은 늘 중대 사안보다 생활지향적이다.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다가길 원했다면, 흥미를 끄는 다양한 판결이 제시되었어야 했다. 이건 진보 쪽에 늘 지적되는 문제점 아닌가. 강조하고픈 주안점은 이해하지만 거론되는 소송들이 너무 반복적이다. 원래 소송의 특성이 지지부진한 거 잘 알지만 그만큼 집중하고 있는 판결들이라면 어떻게 진일보 or 후퇴하고 있는지 사안별 시간 순으로 편집하든지, 책 말미에 총괄 정리하는 꼼꼼함이 있어야 했다. 좋게 생각하면 민주적으로 각자 생각해보라는 뜻이겠지만, 독자들은 일목요연한 정리를 기대했을 것이다. 나부터도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사안별로 되짚어보려니 일이 만만찮다.-_-;끙.
고심하다가 꼭 알려서 바꾸어야 할 사안에 중점해서 리뷰를 썼다.
[집회의 자유]
“법의 두 날개는 질서와 안정, 자유와 정의다. 통치자는 전자를 후자보다 중시하려는 경향”(p201)이 강하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집시법이다.
아래는 광우병 촛불 문화제가 헌법상 집회의 자유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명쾌히 밝힌 2008년 재판부 결정문이다.
“집회의 자유란, 집회를 통하여 단순히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자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의견 교환을 통하여 공동으로 인격을 발휘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기본권임과 동시에 국가권력에 의해 개인이 타인과 사회 공동체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막아드는 기본권으로서 자유 민주주의국가에 있어서 국민의 정치적‧사회적 의사 형성 과정에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수단이다. 특히 간접민주주의의 한계를 차츰 드러내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가 끝난 후 다음 선거 시까지 더 이상 정치적‧사회적 의사 표현을 할 방법이 없다는 임기제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p379)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1. 집시법 10조 :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집시법 10조는 야간 옥외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23조는 이를 위반한 자를 처벌한다. 그러나 집시법보다 더 상위법인 헌법 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시법 10조는 집회 사전 허가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21조 2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p377) 2009년 집시법 10조는 위헌판결을 받았지만, 헌법불합치(※아래 밑줄긋기 참고)이기 때문에 2014년까지도 24시를 전후해 법 적용의 위헌 여부가 달라(p361)진다.
2. 집시법 6조 : 48시간 전의 신고제
집시법 6조 1항은 ‘야외에서 집회나 시위를 할 경우 48시간 전까지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규정(p140)한다. 이는 긴급 집회나 우발적 집회의 규제이자, 1인 시위라도 여럿의 릴레이거나 일정한 간격이 엿보이면 집회로 간주해 처벌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로 악용되고 있다. “신고 의무는 원래 행정관청에 집회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질서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데”(p234), 집회에 나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뻑! 하면 해산명령을 받는다.
3. 집시법 5조 1항 : 가만히 있으라
집시법 5조 1항은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와 시위를 금지”(p550)하는 규정이다.
한미 FTA 협상 때는 폭력사태를 우려해 농민들이 아예 모이지도 못하게 사전 통제해 물의를 빚었다.
한국 집회의 폭력성, 야간 집회의 폭력성 우려는 과장되었다. 2007년 한국 집회의 물리적 충돌은 독일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그리고 시위가 과격해지는 것은 참가자에게 있기보다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이 동원되면서 촉발되기 일쑤다.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력이 만든 1967년의 ‘사회혼란에 관한 자문위원회’나 1968년의 ‘폭력의 원인과 방지에 관한 위원회’가 조사한 결과”(p359)에서도 확인되었다.
4. 집시법 11조 :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 설정
개별적인 경우와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집시법 11조는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가장 중요한 집회 장소를 차단한다.
“집시법이 규정한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 재판소,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무총리 공관’은 청사나 저택의 울타리에 의해 이미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업무를 수행하는 데 영향을 받을 여지가 없어 절대적 집회 금지 구역을 설정할 정당성이 없다. 오히려 국민의 다양한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할 기관과 관저임을 감안하면 현재의 경계는 너무 멀어서 문제다.”(p552)
5. 집시법 12조 : 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
“집회‧결사의 자유는 근대국가가 성립한 뒤 자본주의적‧부르주아적 지배층에 맞서는 무산대중의 항변으로서 갖는 의미가 더 크다. 노동자들의 조직인 노동조합이 합법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또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조직을 만들고 대중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자유로이 밝히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형성된 것이다.”(p459)
집시법 12조의 문제점을 본문에서 정확히 짚고 있다. “군중이 모이기 때문에 교통 불편이 우려된다는 식의 사고가 아니라 그토록 많은 군중이 모여서 주장할 정도라면 정치권은 물론 모든 국민은 당연히 교통 불편을 감내하고 경청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가 좀 더 헌법에 합치하는 태도”(p463)이며, 민주주의를 구현할 대책일 것이다. 차벽으로 둘러싸 더 큰 도로혼잡을 유발하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도로교통법 위반을 유도하는 그 실태까지 더 말할 필요 있을까.
12조 3항은 소음 발생을 제한하는 규정인데, 집회 참가자들은 침묵하라는 소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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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종합해본 [집회의 자유]에서, 우리는 국민의 기본권을 경시하는 권력 우월주의, 국가 편의주의를 살펴 볼 수 있다.
『공평한가』는 할 말이 많아서 다음엔 [인권 - 성, 표현의 자유]와 [생활 - 경제]로 두 번 더, 아니다. 나를 두 번 죽여야 겠냐. 1번에 몰아서 써보자. 휴... 내가 이 리뷰를 공들여 쓰는 것도 다 헛짓 아닌지 참여연대 고충을 조금은...
ㅡAgalma
헌법재판소가 어떤 법령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단할 때 취하는 방식에는 크게 단순위헌,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세 가지가 있다. 단순 위헌은 해당 법령의 위헌성을 확인해 결정한 뒤 바로 법령의 효력을 없애는 방식이다. 헌법불합치는 법령의 위헌성은 있다고 판단해도 바로 그 효력을 없애면 혼란이 생기리라고 여겨질 경우 새로운 입법을 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적용하라거나, 입법자의 판단을 존중해 형식적으로 법령을 존치하되 새로운 입법이 도입될 때까지 적용하지 말라는 결정이다. 마지막으로 한정위헌은 어떤 법령이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을 때 위헌적인 해석 방식을 제거하는 방식이다.(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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