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 마리아노 리베라 공식 자서전
마리아노 리베라 지음, 한승훈 옮김, 웨인 코피 기고 / 브레인스토어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마리아노 리베라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19년 동안 미국 MLB 뉴욕 양키스에서만 활약했다. 처음 몇 번을 빼면 대부분 구원투수로, 그 중에서도 경기를 마무리 짓는 역할로 나와 652개의 세이브 기록을 세운 투수이다. 이는 메이저 역사상 가장 많은 세이브 수이며 앞으로 이 기록은 깨지기가 매우 힘들 거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의 별명 ‘Mo’에다가 ‘翁’이라는 존칭을 붙여 ‘모옹’이라고 많이들 부른다.


나는 김병현이 애리조나에서 활약하던 시절 2001년 월드시리즈를 보면서 처음으로 모옹을 알았지만 그 뒤에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진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2013년에 류현진이 LA다저스 선발투수로 나와 뉴욕 양키스와 경기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때 일본인 타자 이치로가 아직까지도 있다는 것(과 류현진에게 홈런을 친 것)도 놀라웠지만, 잊혀졌던 남자 모옹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정말 의외였다.

이 형은 아직까지도 양키스 마무리를 하고 있구나 하면서 참 대단한 투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모옹의 마지막 올스타 경기와 은퇴 경기를 직접 시청하면서 어떻게 저 나이에도 최고의 자리에서 저처럼 효율적인 공을 던질 수 있는지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작년인가 R.A.디키 자서전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리베라 자서전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 모옹이 메이저리그에 자리잡기까지 과정은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스토리라 부러워하면서 그럭저럭 읽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시합 이야기들이 계속 나와서 조금 지루했다. 뉴욕 양키스나 모옹의 팬이었다면 감격스러운 순간들, 안타까웠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즐겁게 읽었겠지만 나에겐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다만 모옹이 신앙심을 뿌리로 삼아 자기 삶과 직업의 중심을 잡는 모습은 매우 존경스러웠다. 누구든지 삶의 중요한 순간이 닥칠 때 행동과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칙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스스로 신이 되지 않는 한 타율적인 원리나 규범에 의존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신앙이 될 수도 있고, 도덕적 명분이 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바탕으로 훌륭한 삶을 살아온 옹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고, 그래서 언뜻 신앙 간증서처럼 보이는 내용들이 반복되는 걸 인정하면서 읽어낼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closer)로서 리베라가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경구는 “Keep it Simple”이었다. 이 문장을 책에서는 “심플하게”로 번역했는데, 그 말에는 사실 ‘단순함’ 이상이 담겨 있는 듯하다. 단순함을 유지하라, 단순해져라, 꾸미지 말고, 복잡해지지 말고, 거짓 없이, 순수하고 성실하게 임하라는, 오히려 복잡한 뜻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일화가 있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모옹은 모르긴 몰라도 학력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어느 시즌 중에 있었던 큰 아들 중학교 졸업식에는 꼭 참석하고 싶었다. 하지만 원정 시합을 위해 다른 지방으로 나가게 되면 참석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모옹은 감독에게 원정길에서 빠지고 싶다고 한다. 어느 한 선수에게만 특별한 사정을 봐주는 게 옳지 않다고 여긴 감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구단의 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가족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통보한 모옹은 이후 마음을 바꾸어 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팀의 원정길에 따라 나선다. 양키스는 그 원정 시합에서 내리 졌기 때문에 모옹은 경기에 출전할 기회조차 없었다. 마무리 투수는 지는 경기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야구고, 이것이 그의 일이었다. 늘 변함 없이 불펜에서 대기하고, 감독이 부르면 나가서 아웃을 잡는 것. 마음이 내키건 내키지 않건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마무리 투수의 소임이었다. 세이브를 따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 준비하고 승리를 위해 대기하는 일도 중요하다. 클로저에겐 결과와 과정이 모두 가치가 있다. 모옹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결과로만 판단하는 풍조에 반박의 근거를 준다.


모옹이 보았던 다른 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제법 나온다. 같은 팀에서 활약했던 알렉스 로드리케스와 로빈슨 카노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라고 칭찬을 했지만 그들의 태도나 안일함에 대해서는 은근히 디스를 하더라.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시애틀 매리너스로 팀을 옮긴 로빈슨 카노의 플레이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주자가 2,3루에 있고 1루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볼넷이 나오자 카노가 ‘산책을 하듯’ 홈으로 느긋하게 들어오다가 아웃을 당했다. 그걸 본 해설위원이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느린 홈스틸 시도’였다고 비아냥거렸다. 카노가 양키스에서도 가끔씩 이런 얼빠진 플레이를 했었는지 모옹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천재들은 너무나 ‘느긋한’ 나머지 가끔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할 때가 있는 거 같다.


반면 양키스의 라이벌인 보스톤 레드삭스의 더스틴 페드로이아에게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모옹은 적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존경하는 여러 선수가 있지만,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그 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선수다. 그보다 더 열정적으로 뛰고, 팀에 더 많은 것을 주고, 승리를 더 간절히 원하는 선수는 없다. 27개의 아웃카운트, 매 순간 상대를 향해 쉼 없이 덤벼드는 선수다.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 작은 선수를 보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다.
나는 빅리그에서 뛰며 많은 정상급 2루수들을 봤다. 상대를 글러브로도, 빠른 발로도, 타격으로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로베르토 알로마는 야구가 쉬워보이게 만드는, 믿기 어려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로빈슨 카노는 정말 아름다운 스윙 스트로크를 가지고 있었고, 누구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좋은 수비력을 갖춘 선수다. 송구에 어려움을 겪기 전까지는 척 노블락 역시 빠른 발과 근성으로 경기를 장악할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꼭 이겨야 하는 한 경기가 있다면, 내 팀 2루수로 더스틴 페드로이아가 아닌 다른 선수를 고르긴 어려울 것이다. (299)

 

책을 읽고 나서 모옹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가 꽤 ‘똘끼’가 있으며 재미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이구아나 사냥 얘기는 모옹의 정교한 제구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려주는 일화였다.

 

나는 내가 뛰어다니고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축구나 야구를 안 할 때는 농구를 했다. 밀물이 와서 해변이 좁아지면, 우리는 진흙에 무릎까지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변에서 벗어나 엘 타마린도로 옮겨 뛰어놀았다. 어떤 종목을 하든 나는 간절히 이기고 싶었다. 이기고 있던 야구 경기가 질 것 같은 상황이 되면 파나마만에 공을 집어던지고는 ‘무승부’를 선언해버렸다. 페어플레이 상은 못 받겠지만, 완전히 지는 것은 막을 수 있으니 됐다.
밀물이 들어오면, 스포츠 다음으로 내가 좋아했던 이구아나 사냥을 했다. 녹색에 뾰족뾰족한 피부를 가진 6피트 도마뱀들은 나뭇가지에 기대 쉬고, 초목 뒤로 숨는다. 나는 도마뱀을 찾을 수 있는 장소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돌과 오른팔뿐이었다. 이구아나들은 도망가기 시작하면 무척 빠른데다 회복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40피트나 50피트 높이의 나무에서 떨어지고도, 공원 벤치에서 떨어진 것처럼 금세 일어나 달렸다. 대부분 이구아나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머무르기 때문에 쉬운 표적이 된다. 나는 대부분 한 번에 이구아나를 맞혔고, 사냥한 걸 집어들고는 어깨에 둘러 저녁 식사용으로 집에 가져갔다. 이구아나(파나마에서는 ‘나무에 있는 치킨’이라고 부른다)는 코코넛 쌀이나 타말리(tamales)처럼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고, ‘이구아나 너깃’과 같은 걸 파는 패스트푸드 음식점도 찾을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였다. (31-32)


 

나는 도마뱀을 찾을 수 있는 장소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돌과 오른팔뿐이었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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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5-0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퇴하자마지 자서전이라니 마무리가 빠르네요 ^^

돌궐 2015-05-06 12:07   좋아요 0 | URL
이때 내야 가장 잘 팔리지 않겠어요?ㅎㅎ
1K로 시작했는데 볼넷 하나, 안타 하나 맞고 땅볼 두 개에 1실점 마무리라고 말하고 싶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무리`라는 말보다 저는 이상하게 클로저`라는 용어가듣기 좋습니다. 뭔가 비장하잖아요.

돌궐 2015-05-06 13: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불펜 문이 열리고 뛰쳐 나오는 클로저는 일기토하러 나오는 장수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마무리`란 말은 웬지 뒷정리 또는 뒤치닥거리? 느낌이 들긴 해요.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6 15:57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이거 저만 그 느낌인가 했는데 아니군요.
마무리는 왜 거 뭐냐. 설겆이 같은 느낌. 마무리는 네가 해.. 이런 느낌.
사실 마무리가 무진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블론세이브`가 단순히 1패가 아니라
제가 보게인 3패 정도의 영향을 주는 거 같습니ㅏ. 비장한 맛이 떨어지는데
클로저`는 아, 뭔가 비장해 보입니다. 미국의 야구 원조이다 보니 야구 용어 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금방 생각했는데 < 마무리 > 보다 < 수문장 > 어떻습니까.


수문장 봉중근 선수 마운드에 오릅니다 !



돌궐 2015-05-06 20:37   좋아요 0 | URL
수문장도 괜찮고, `끝판왕`, `끝판대장`, `최종보스`도 유치하긴 해도 좋을 거 같아요.
오승환한테 끝판대장이란 말 자주 썼던 거 같은데...

cyrus 2015-05-0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승환도 자서전을 출간했어요. 지금 예악주문할 수 있어요. 출간 타이밍이 기가 막히는군요. ㅎㅎㅎ

돌궐 2015-05-06 20:39   좋아요 0 | URL
아... 이거이거 잡독은 좀 `마무리`를 하고 싶은데, 이러시면 자꾸 목록만 늘어납니다.ㅋㅋㅋ
 

연휴가 시작되었다. 벌써부터 고속도로는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너도나도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안달인 이 때, 꿋꿋이 서울에 남아 있다가 도심에 있는 종묘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종묘대제가 봉행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5월 3일이다. 이 날 우리는 '공짜로'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실연되는 장면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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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돌아간 조선의 왕과 왕후들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으뜸 사당[宗廟]'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종묘는 사직과 함께 ‘국가’라는 말로 대체될 만큼 과거에는 중요한 곳이었다. 사직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국가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따라서 종묘와 사직은 모두 국가에서 주관하는 제사를 시행하던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조선시대 국가 제사 중에서도 종묘와 사직의 제사는 모두 가장 중요한 대사(大祀)로 규정되었다고 한다.

 

 

 

 

종묘와 사직에 관해 본 책 중에는 이현진·강문식 공저로 나온 『종묘와 사직』(책과함께, 2011)이 가장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종묘 건축의 기능과 역사, 종묘 제례와 제례악의 내용과 절차 등을 알기 쉽게 서술했다. 딱딱하고 읽기 힘든 글이 아니라 친절하고 재미있는 글이었다. 종묘와 사직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들도 많이 인용되었다. 예를 들면,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 중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고 한다.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이 크게 놀라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즐비했고 죽은 자도 많았다. 그래서 평수가는 할 수 없이 남별궁으로 옮겼다. 이것은 한나라 고조의 영혼이 나라를 빼앗은 왕망에게 위엄을 보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선조실록26, 선조 2553(임술)

 

왜적이 종묘를 불태웠다. 왜적이 처음 도성에 침입했을 때 궁궐은 모두 타버리고 종묘만 남아 있었다. 왜의 대장 평수가(平秀家, 다이라노 히데이에)가 그곳에 거처했는데, 밤중에 괴이한 일이 많이 일어났고 따르던 졸개 중에 갑자기 죽는 자도 생겼다. 어떤 사람이 이곳은 조선의 종묘로서 신령이 있는 곳이다라고 하자, 평수가가 두려워하여 마침내 종묘를 태워버리고 남방(南坊)으로 옮겨 거처했다. 남방은 바로 남별궁이다.

-선조수정실록26, 선조 2551(경신)

 

나는 정말 저 용감한 '신병'들이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종묘를 능욕한 왜군에 분개한 나머지 게릴라전을 펼친 의병이었을까, 아니면 왜군에 대한 적의로 똘똘 뭉친 하급무관이었을까. 왕실과 조정 대신들은 도성을 내팽개치고 신주 단지만 들고 북쪽으로 도망간 판국에 한양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대단하지만, 왜군들을 밤마다 기습하여 피해를 입히다니... 그 정도의 용맹과 담력이라면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참 이상한 게 이 나라는 위기를 맞으면 높으신 분들은 재빨리 백성은 내버려둔 채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가고, 이렇게 이름도 모를 이들이 온몸으로 나라에 닥친 위험들을 막아내려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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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대제에서는 제관들에 의해 제사가 엄수되고, 의식과 함께 제사 음악인 종묘제례악이 연주된다. 한두 번 종묘에 갔다가 들어본 일이 있었는데, 국악은 잘 몰라도 그 넓은 정전 앞마당에서 울려퍼지던 조화롭고 경건한 가락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종묘제례악 소개 동영상 (문화유산채널)

 

종묘제례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춤과 기악과 노래가 어우러진 일종의 공연 예술이다. 세종이 처음 만든 이후 세조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한다. 조금 길지만 종묘제례악에 관해 설명된 내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종묘 제례악은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기악[노래[[]을 갖추고 종묘 제례 의식에 맞추어 연행하는 음악이다. 악기의 연주에 맞추어 선왕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제례 의식을 위한 춤인 일무(佾舞)를 춘다.

종묘 제례악은 세종대 연향악(宴享樂, 궁중의 잔치에서 연주하는 음악)으로 제정된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에 연원을 두고 있다. 보태평은 조선 역대 국왕의 학문과 덕망을 기리고, 정대업은 외적에 맞서 군사상의 공적을 세운 선왕들을 기리는 내용이다. 1464(세조10)에 이르러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을 처음으로 종묘 제례에 연주하면서 종묘 제례악으로 채택했다.

종묘 제례악은 제례가 진행되는 동안 각각의 절차에 따라 보태평과 정대업이 연주되는데, 연주 위치와 악기 편성에 따라 악대가 등가(登歌)와 헌가(軒架)로 나뉜다. 등가는 정전 앞 계단 위 월대에서 연주하는 악대이고, 헌가는 정전 앞 계단 아래 월대에서 연주하는 악대이다. 악기 편성은 시기에 따라 변화를 보였다.

종묘 제례악이 연주되는 동안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춤인 문무(文舞)와 무무(武舞)가 곁들여진다. 문무는 역대 선왕들의 문덕을 기리는 춤으로,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에 맞추어 왼손에는 구멍이 세 개 뚫린 관악기인 약(), 오른손에는 긴 막대기에 꿩 깃털을 단 적()을 들고 추는 춤이다. 무무는 선왕들의 무공을 칭송하는 춤으로, 아헌례와 종헌례 때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에 맞추어 나무로 만든 칼과 창, 활과 화살을 손에 쥐고 춘다.

종묘 제례악은 편종과 편경, 방향과 같은 타악기의 선율과 여기에 당피리, 대금, 해금, 아쟁 등 관현악기의 장식적인 선율이 더해졌다. 또한 장구, , 태평소, 절고, 진고 등의 악기가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고 노래가 중첩되면서 어떤 음악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중후함과 화려함을 준다. 특히 중간 중간에 울리는 박() 소리는 종묘 제례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종묘 제례악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 복구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는 종묘 제례와 더불어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종묘와 사직』,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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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대제를 놓쳤다고 해서 너무 아쉬워할 것은 없다. 종묘에서 보아야 할 것이 제례와 제례악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종묘는 건축으로도 매우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많지 않는 평일에(다만 이 때는 자율관람이 아니라 해설사와 함께 다녀야 한다) 종묘 건축의 조형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종묘 정전 공중 사진(출처: 국립고궁박물관 도록)

 

종묘 건축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 정전이다. '동양의 파르테논'이라고 부를만큼 뛰어난 건축미를 보여주는 가로 19칸짜리 건물이다. 많은 학자들의 극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종묘 건축은 정전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신향로(神香路)부터 종묘의 건축은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종묘에 마련된 길과 건물의 배치, 그리고 그 위로 나아가는 신관들의 의식 절차를 따라가보는 것이 종묘 건축을 이해하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종묘의 모든 길과 판위(版位), 그리고 정전과 영녕전 앞의 드넓은 월대(月臺)는 제례가 시작되고, 멈추었다가, 다시 진행되는 거대한 '무대'이다.

 

 

 

종묘 정전 월대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도록)

 

신향로는 돌아간 왕과 왕비의 넋과 제사를 치르기 위한 향(香)만이 지나는 길이다. 인간이 다니는 길이 아니다. 아이들이 무심코 신로를 따라 걷다가 관리인들의 약간 지나친 듯한 호통까지 듣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방문객들도 잠깐 길을 가로질러 갈 때를 제외하고 신향로를 따라 걷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승효상 선생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컬처그라퍼, 2012)에서 정전의 월대는 그 '비어있음'에 가치가 있다고 하였다. 오로지 의례만을 위해 비워낸 이 광활한 공간은 종묘 건축의 핵심 가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정전 월대의 크기는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종묘 정전의 건축적 가치에 대해 설명한 김동욱 선생의 글을 몇 줄 옮겨 본다.

 

종묘건물은 건물을 단순히 옆으로 늘리기만 한 것이 아니고 증축에 의해 생기는 건축 전체의 분위기를 적절히 조정하여 하나의 장대한 제사공간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서 종묘의 뛰어난 조형성을 찾을 수 있다. 이 건물의 한 칸 한 칸은 지극히 단순한 구성을 한다. 아무 장식을 가미하지 않은 간결 소박한 조형이다. 각 칸의 평면구성은 전면 반 칸을 기둥만 세운 개방된 공간으로 꾸며 제사 때 헌관이 제례를 치르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그 뒤에 육중한 판자로 된 문이 설치되고 실내에는 간소한 탁자가 하나 놓여 그 위에 위패를 모신 작은 상자를 둔다. 이런 간결한 조형이 옆으로 길게 반복되면서 하나의 엄숙한 경관을 만들어낸다. 특히 건물 전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독립해서 서 있는 20개의 굵은 기둥의 도열은 숨 막힐 정도의 압도적 힘을 느끼게 한다. 엄청난 크기나 요란한 장식이 아닌 가장 단순한 요소의 반복이 주는 조형의 힘이 여기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19칸의 긴 건물은 앞으로 돌출한 좌우 월랑 덕분에 공간적 짜임새를 갖춘다. 특히 동쪽의 벽이 없는 월랑은 동쪽 문으로 들어오는 참배자들에게 네모난 액자 속에 구성해 놓은 그림과 같은 정전의 장대한 경관을 보여준다. 건물 앞에 마련한 넓은 월대도 제사공간의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북돋아준다. 월대에는 박석이라고 하는 거칠게 다듬은 얇은 돌판이 넓디넓은 바닥 전면에 깔린다. 하나하나의 크기나 모양이 다른 박석을 의도적으로 불규칙하게 바닥에 깔아 화강석 석재의 친근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잘 나타낸다. 또 월대 전체는 가운데를 약간 볼록하게 곡면으로 만들어 주는 시각적인 조정도 빼 놓지 않았다. 화강석을 다루는데 있어 달관한 경지에 이른 석공의 솜씨를 발견할 수 있다. 종묘 정전은 중국의 건축형식을 한반도의 토착적인 건축미학으로 새롭게 다듬어 낸 조선시대 대표적인 건축의 하나로 평가된다.

- 김동욱, 『한국건축의 역사』, 기문당, 189쪽 

 

 

 

 

모든 제례는 왕과 왕후의 신주를 봉안한 정전으로 귀결되었다. 기둥과 그 위 지붕 밑으로 보이는 서까래 끝부분들은 서월랑 쪽을 향해 이어지면서 그림에서나 볼 듯한 소실점을 이루고 있다. 하늘로 치솟은 빌딩들과 그 마천루가 만들어내는 허공 속의 소실점에만 익숙하던 우리들에게 종묘 정전은 가로로 길게 뻗은 목조건물이 만들어내는 낯선 소실점을 보여준다. 이런 긴 건물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희귀하고 색다른 경험인가. 옛 건물이 주는 고풍스러움과 그 특유의 향취 같은 걸 느끼지도 못할 만큼 정전은 이미 우리의 눈을 압도한다. 

 

 

 

종묘 정전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정전 회랑은 어둡고 단순하다. 기둥은 끝없이 반복된다. 장식이나 꾸밈이 없이 오로지 기둥과 벽면과 서까래로 되풀이되는 선과 면이 시야에 가득 찬다. 이것을 한 눈에 담기 위해서 정전이 한꺼번에 보일 것 같은 위치로 발길을 옮긴다. 공신당 앞으로 지나 남신문 앞에 서면 정전은 이제 겨우 그 검은 지붕과 붉은 기둥들을 눈앞에 온전히 드러낸다. 하늘은 변화무쌍하나 정전은 변하지 않고 고요하다. 가운데로 곧게 뻗은 신로(神路)와 검푸른 지붕, 붉은 기둥들이 지어내는 색과 인공의 선들은 하늘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선들과 대조를 이룬다. 그래서 정전은 신과 인간이 만나고,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고궁박물관 도록에 실린 <종묘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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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왼쪽의 재궁은 왕과 세자가 목욕제계하며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이다. 종묘에서 치뤄지는 모든 의례에는 남성들만 참여했으며 제사 음식의 준비도 모두 남자들이 했다고 한다. 

제사 음식에 바칠 희생을 잡을 때도 격식을 갖추었다. '난도(鑾刀)'라고 부르는 칼은 희생의 목숨을 끊기 전에 아름다운 방울 소리를 듣게 하려는 뜻을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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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 건축과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임진왜란 때 왜군을 내쫓았던 神兵의 화신 너구리라도 찾아 보자. 몇 년 전 영녕전에서 만났던 너구리가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궁금하다.

그 때 내가 가까이 가서 사진에 크게 담으려고 하자 그 너구리는 정말 너구리처럼 스리슬쩍 도망가더라.

그 어떤 조급함도 보이지 않고. 

한 밤에 야음을 틈타 왜병 막사에 침투한 뒤

병사 몇을 베고 유유히 사라졌던 

그 때 그 신출귀몰했던 병사처럼.

 

 

 

 

이상교 글, 김동성 그림 <종묘 너구리네>라는 책이 있던데, 한 번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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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2015-07-12 0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세대에게 잊기 쉬운 우리 역사를 새롭게 보게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자료도 풍부하고 그림들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돌궐 2015-07-12 06:46   좋아요 0 | URL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 책을 쓰는 사람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
임승수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일기조차도 먼 훗날의 내가 읽기 위해 쓰는 글이라고 하였다. 글이란 기본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다는 얘기가 울림이 있었다. 뚜렷한 집필 계획과 목차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도 유용하다. 이건 대중서 뿐만 아니라 논문에도 해당되는 원칙일 것이다.
그밖에도 출판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조언들은 저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돈에 시간을 팔지 않게 됐을 때 글이 나오기 시작한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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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 옷과 장신구 - 한국전통복식, 그 원형의 미학과 실제
이경자.홍나영.장숙환 지음, 이미량 그림 / 열화당 / 200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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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복식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빚을 내서라도 소장해야할 책. 세부사진, 도면, 해설 모두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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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좋아하는 <별똥별>

그리고 작년에 나온 앨범 중에서 <술래잡기>

 

난 아무래도 이들의 무표정과 찌질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

 

 

 

 

 

너의 두 눈만 한없이 바라보았어
너의 두 눈 속에 내가 비친 10초 동안의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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