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 마리아노 리베라 공식 자서전
마리아노 리베라 지음, 한승훈 옮김, 웨인 코피 기고 / 브레인스토어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리아노 리베라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19년 동안 미국 MLB 뉴욕 양키스에서만 활약했다. 처음 몇 번을 빼면 대부분 구원투수로, 그 중에서도 경기를 마무리 짓는 역할로 나와 652개의 세이브 기록을 세운 투수이다. 이는 메이저 역사상 가장 많은 세이브 수이며 앞으로 이 기록은 깨지기가 매우 힘들 거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의 별명 ‘Mo’에다가 ‘翁’이라는 존칭을 붙여 ‘모옹’이라고 많이들 부른다.


나는 김병현이 애리조나에서 활약하던 시절 2001년 월드시리즈를 보면서 처음으로 모옹을 알았지만 그 뒤에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진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2013년에 류현진이 LA다저스 선발투수로 나와 뉴욕 양키스와 경기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때 일본인 타자 이치로가 아직까지도 있다는 것(과 류현진에게 홈런을 친 것)도 놀라웠지만, 잊혀졌던 남자 모옹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정말 의외였다.

이 형은 아직까지도 양키스 마무리를 하고 있구나 하면서 참 대단한 투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모옹의 마지막 올스타 경기와 은퇴 경기를 직접 시청하면서 어떻게 저 나이에도 최고의 자리에서 저처럼 효율적인 공을 던질 수 있는지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작년인가 R.A.디키 자서전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리베라 자서전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 모옹이 메이저리그에 자리잡기까지 과정은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스토리라 부러워하면서 그럭저럭 읽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시합 이야기들이 계속 나와서 조금 지루했다. 뉴욕 양키스나 모옹의 팬이었다면 감격스러운 순간들, 안타까웠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즐겁게 읽었겠지만 나에겐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다만 모옹이 신앙심을 뿌리로 삼아 자기 삶과 직업의 중심을 잡는 모습은 매우 존경스러웠다. 누구든지 삶의 중요한 순간이 닥칠 때 행동과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칙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스스로 신이 되지 않는 한 타율적인 원리나 규범에 의존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신앙이 될 수도 있고, 도덕적 명분이 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바탕으로 훌륭한 삶을 살아온 옹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고, 그래서 언뜻 신앙 간증서처럼 보이는 내용들이 반복되는 걸 인정하면서 읽어낼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closer)로서 리베라가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경구는 “Keep it Simple”이었다. 이 문장을 책에서는 “심플하게”로 번역했는데, 그 말에는 사실 ‘단순함’ 이상이 담겨 있는 듯하다. 단순함을 유지하라, 단순해져라, 꾸미지 말고, 복잡해지지 말고, 거짓 없이, 순수하고 성실하게 임하라는, 오히려 복잡한 뜻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일화가 있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모옹은 모르긴 몰라도 학력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어느 시즌 중에 있었던 큰 아들 중학교 졸업식에는 꼭 참석하고 싶었다. 하지만 원정 시합을 위해 다른 지방으로 나가게 되면 참석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모옹은 감독에게 원정길에서 빠지고 싶다고 한다. 어느 한 선수에게만 특별한 사정을 봐주는 게 옳지 않다고 여긴 감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구단의 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가족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통보한 모옹은 이후 마음을 바꾸어 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팀의 원정길에 따라 나선다. 양키스는 그 원정 시합에서 내리 졌기 때문에 모옹은 경기에 출전할 기회조차 없었다. 마무리 투수는 지는 경기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야구고, 이것이 그의 일이었다. 늘 변함 없이 불펜에서 대기하고, 감독이 부르면 나가서 아웃을 잡는 것. 마음이 내키건 내키지 않건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마무리 투수의 소임이었다. 세이브를 따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 준비하고 승리를 위해 대기하는 일도 중요하다. 클로저에겐 결과와 과정이 모두 가치가 있다. 모옹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결과로만 판단하는 풍조에 반박의 근거를 준다.


모옹이 보았던 다른 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제법 나온다. 같은 팀에서 활약했던 알렉스 로드리케스와 로빈슨 카노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라고 칭찬을 했지만 그들의 태도나 안일함에 대해서는 은근히 디스를 하더라.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시애틀 매리너스로 팀을 옮긴 로빈슨 카노의 플레이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주자가 2,3루에 있고 1루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볼넷이 나오자 카노가 ‘산책을 하듯’ 홈으로 느긋하게 들어오다가 아웃을 당했다. 그걸 본 해설위원이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느린 홈스틸 시도’였다고 비아냥거렸다. 카노가 양키스에서도 가끔씩 이런 얼빠진 플레이를 했었는지 모옹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천재들은 너무나 ‘느긋한’ 나머지 가끔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할 때가 있는 거 같다.


반면 양키스의 라이벌인 보스톤 레드삭스의 더스틴 페드로이아에게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모옹은 적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존경하는 여러 선수가 있지만,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그 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선수다. 그보다 더 열정적으로 뛰고, 팀에 더 많은 것을 주고, 승리를 더 간절히 원하는 선수는 없다. 27개의 아웃카운트, 매 순간 상대를 향해 쉼 없이 덤벼드는 선수다.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 작은 선수를 보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다.
나는 빅리그에서 뛰며 많은 정상급 2루수들을 봤다. 상대를 글러브로도, 빠른 발로도, 타격으로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로베르토 알로마는 야구가 쉬워보이게 만드는, 믿기 어려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로빈슨 카노는 정말 아름다운 스윙 스트로크를 가지고 있었고, 누구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좋은 수비력을 갖춘 선수다. 송구에 어려움을 겪기 전까지는 척 노블락 역시 빠른 발과 근성으로 경기를 장악할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꼭 이겨야 하는 한 경기가 있다면, 내 팀 2루수로 더스틴 페드로이아가 아닌 다른 선수를 고르긴 어려울 것이다. (299)

 

책을 읽고 나서 모옹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가 꽤 ‘똘끼’가 있으며 재미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이구아나 사냥 얘기는 모옹의 정교한 제구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려주는 일화였다.

 

나는 내가 뛰어다니고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축구나 야구를 안 할 때는 농구를 했다. 밀물이 와서 해변이 좁아지면, 우리는 진흙에 무릎까지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변에서 벗어나 엘 타마린도로 옮겨 뛰어놀았다. 어떤 종목을 하든 나는 간절히 이기고 싶었다. 이기고 있던 야구 경기가 질 것 같은 상황이 되면 파나마만에 공을 집어던지고는 ‘무승부’를 선언해버렸다. 페어플레이 상은 못 받겠지만, 완전히 지는 것은 막을 수 있으니 됐다.
밀물이 들어오면, 스포츠 다음으로 내가 좋아했던 이구아나 사냥을 했다. 녹색에 뾰족뾰족한 피부를 가진 6피트 도마뱀들은 나뭇가지에 기대 쉬고, 초목 뒤로 숨는다. 나는 도마뱀을 찾을 수 있는 장소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돌과 오른팔뿐이었다. 이구아나들은 도망가기 시작하면 무척 빠른데다 회복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40피트나 50피트 높이의 나무에서 떨어지고도, 공원 벤치에서 떨어진 것처럼 금세 일어나 달렸다. 대부분 이구아나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머무르기 때문에 쉬운 표적이 된다. 나는 대부분 한 번에 이구아나를 맞혔고, 사냥한 걸 집어들고는 어깨에 둘러 저녁 식사용으로 집에 가져갔다. 이구아나(파나마에서는 ‘나무에 있는 치킨’이라고 부른다)는 코코넛 쌀이나 타말리(tamales)처럼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고, ‘이구아나 너깃’과 같은 걸 파는 패스트푸드 음식점도 찾을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였다. (31-32)


 

나는 도마뱀을 찾을 수 있는 장소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돌과 오른팔뿐이었다. (31)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병통치약 2015-05-0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퇴하자마지 자서전이라니 마무리가 빠르네요 ^^

돌궐 2015-05-06 12:07   좋아요 0 | URL
이때 내야 가장 잘 팔리지 않겠어요?ㅎㅎ
1K로 시작했는데 볼넷 하나, 안타 하나 맞고 땅볼 두 개에 1실점 마무리라고 말하고 싶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무리`라는 말보다 저는 이상하게 클로저`라는 용어가듣기 좋습니다. 뭔가 비장하잖아요.

돌궐 2015-05-06 13: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불펜 문이 열리고 뛰쳐 나오는 클로저는 일기토하러 나오는 장수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마무리`란 말은 웬지 뒷정리 또는 뒤치닥거리? 느낌이 들긴 해요.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6 15:57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이거 저만 그 느낌인가 했는데 아니군요.
마무리는 왜 거 뭐냐. 설겆이 같은 느낌. 마무리는 네가 해.. 이런 느낌.
사실 마무리가 무진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블론세이브`가 단순히 1패가 아니라
제가 보게인 3패 정도의 영향을 주는 거 같습니ㅏ. 비장한 맛이 떨어지는데
클로저`는 아, 뭔가 비장해 보입니다. 미국의 야구 원조이다 보니 야구 용어 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금방 생각했는데 < 마무리 > 보다 < 수문장 > 어떻습니까.


수문장 봉중근 선수 마운드에 오릅니다 !



돌궐 2015-05-06 20:37   좋아요 0 | URL
수문장도 괜찮고, `끝판왕`, `끝판대장`, `최종보스`도 유치하긴 해도 좋을 거 같아요.
오승환한테 끝판대장이란 말 자주 썼던 거 같은데...

cyrus 2015-05-0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승환도 자서전을 출간했어요. 지금 예악주문할 수 있어요. 출간 타이밍이 기가 막히는군요. ㅎㅎㅎ

돌궐 2015-05-06 20:39   좋아요 0 | URL
아... 이거이거 잡독은 좀 `마무리`를 하고 싶은데, 이러시면 자꾸 목록만 늘어납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