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 북을 주자

 

 

 

 

 

 

 

 

 

 

 

 

 

 

 

자기 전에 읽는 책에 <우리 겨레의 미학사상>도 포함시켜서 조금씩 읽고 있는데, 조금 전에 잠깐 박지원 글을 읽다가 빨려들듯이 그의 글들(228-291쪽)을 모조리 다 읽어 버리고 내처 초록 작성까지 마쳤다. 

박지원 선생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공부와 글쓰기에 대한 핵심적인 조언을 들은 기분이다. 아래에 몇 줄 옮겨 본다.

 

 

글이란 것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일 뿐이다. 제목을 놓고 붓을 잡은 다음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고 억지로 고전의 사연을 찾으려 뜻을 근엄하게 꾸미고 글자마다 장중하게 만드는 것은 마치 화가를 불러서 초상을 그릴 적에 용모를 고치고 나서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구르지 않고 옷은 주름살이 잡히지 않아서 보통 때의 모습과 달라지고 보니 아무리 훌륭한 화가라도 진실한 모습을 그려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인들 또한 무엇이 다르랴?
말은 큰 것만 해서 맛이 아니다. 한 푼, 한 리釐, 한 호毫만 한 일도 다 말할 수 있다. 기왓장이나 조약돌이라고 해서 내버릴 것이 무엇이냐? 그렇기 때문에 초나라의 역사는 도올이란 모진 짐승의 이름을 빌려서 썼고, 사마천이나 반고와 같은 역사가도 사람을 죽이고 무덤을 파헤치는 흉악한 도적놈들의 사적을 서술하였다. 글을 짓는 데는 오직 진실해야 할 뿐이다. (243)
- 공작관문고 머리말, 《연암집》

 

비록 조금난 재주라도 모든 것을 잊고 덤벼야 성공할 수 있다. 더구나 도처럼 큰 것에서랴.
최흥효는 나라에서 이름난 명필이다. 일찍이 과거를 보러 가서 글을 쓰다가 그중 한 글자가 신묘함을 얻자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앉았다가 차마 그 글을 바치지 못하고 품에 품은 채 돌아왔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일쯤은 이롭고 해로움을 전연 마음속에 두지 않는 것이다.
이징이 어려서 다락 위에 올라가 그림을 익히고 있는데 집에서는 그를 찾아 사흘 동안이나 돌아다니다가 겨우 찾아냈다. 아버지가 화가 나서 볼기를 쳤더니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지고 새를 그리고 있었다.
학산수는 나라에 이름난 명창이다. 산속에 들어가서 노래 공부
를 할 적에 한 곡조를 부르고는 나막신 속에 모래 한 알씩을 던져서 그 나막신이 모래로 가득 찬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한번은 도적을 만나서 죽게 되었는데 바람결 따라 노래를 불렀더니 도적들도 모두 심회가 울적해서 눈물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것은 바로 죽음과 삶을 마음속에 두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264-265)
- 형언도필첩에 부쳐, 《연암집》

 

글을 잘 짓는 사람은 전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글자는 말하자면 군사요, 사상-감정[意]은 장수요, 제목은 적국이요, 옛일이나 옛이야기는 전장의 보루다. 글자를 묶어서 구句로 만들고 구를 합해서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열을 지어 행진하는 것과 같으며, 성운으로 소리를 내고 문채로 빛을 내는 것은 북, 종, 깃발 같은 것이다. 조응照應이라는 것은 봉화에 해당하고, 비유라는 것은 유격 부대에 해당하고, 억양 반복이라는 것은 백병전과 육박전에 해당하고, 제목을 끌어내고 결속을 짓는다는 것은 적진에 먼저 뛰어들어 적을 생포하는 데 해당하고, 함축을 귀중히 여긴다는 것은 적의 늙고 쇠한 병사를 사로잡지 않는 데 해당하고, 여운이 있게 한다는 것은 기세를 떨쳐 개선하는 데 해당한다.
대체 장평 땅의 군사가 날래고 비겁한 것이 지난번과 달라진 것이 아니요, 활이나 창도 날카롭고 무딘 것이 전날보다 변한 것이 아니건만, 염파가 거느리고 나서서는 승전하다가 조괄로 바뀌고서는 몰사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를 잘 하는 사람에게는 떼내 버릴 군사가 없고 글을 잘 짓는 사람에게는 쓰지 못할 글자가 없다. 만약에 적당한 장수만 얻는다면 호미, 곰방메 따위 농기구 빈 자루만 가지고도 무서운 무기로 쓸 수 있고, 옷자락을 찢어서 작대기 끝에 달아도 훌륭한 깃발로 된다. 또 만약에 일정한 이치에만 들어맞는다면 식구끼리 나누는 이야기도 학교의 한 과정으로 넣을 수 있고, 아이들 노래와 속담도 고전 문헌과 대등하게 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 정교하지 못한 것이 글자의 탓은 아니다.
저 자구가 우아하다 비속하다 평하고 문장이 높다거니 낮다거니 의논하는 무리는, 모두 구체적 경우에 따라 전법이 변해야 하고 그 경우에 타당한 변통성에 의해서 승리가 얻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비유해 말하자면 용감치 못한 장수가 속으로 아무런 요량도 없이 갑자기 적의 굳은 성벽에 부닥친 것이나 마찬가지로 글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 속으로 아무런 요량도 없이 갑자기 글 제목을 만난 것이다. 그러니 산 위의 풀과 나무까지 적병으로 보이는 바람에 붓과 먹이 다 결딴난다고,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던 것조차 이렇게 상하고 저렇게 패해서 남는 것이 없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글 짓는 사람의 걱정은 언제나 자기 스스로 길을 잃어버리고 요령을 잡지 못하는 데 있다. 길을 잃어버리고 나면 글
자 한 자도 어떻게 쓸 줄을 몰라서 붓방아만 찧게 되며 요령을 잡지 못하면 겹겹으로 두르고 싸고 해 놓고서도 오히려 허술치 않은가 겁을 내는 것이다. 비유해 말하자면 군대가 한번 제 길을 잃어버리는 때에는 최후의 운명을 면치 못하며, 아무리 물샐틈없이 포위한 때라도 적이 도망칠 틈은 없지 않은 것과 같다. 한마디 말을 가지고도 요점만 꽉 잡으면 마치 적의 아성으로 질풍같이 쳐들어가는 것이요, 반쪽의 말을 가지고도 요지를 능히 표시하면 그것은 마치 적의 힘이 다할 때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그 진지를 함락시키는 것이다. 글 짓는 묘리는 바로 이것이 최상이다. (275-277)
-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 《연암집》

 

 

<호질>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연암의 문장은 폐부를 찌르는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혜안과 비유가 곳곳에서 나온다. 게다가 어떤 글은 왜 이렇게 비실비실 웃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언젠가는 <연암집>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똥구리는 둥그런 제 말똥덩이를 대견히 여겨 용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고 용도 또한 자기의 구슬로 말똥구리의 말똥덩이를 비웃지는 못할 것이다. (255)
- 박지원, `낭환집에 부쳐`, 《연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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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빈틈 없이 차 있다. 퍼즐 맞추는 것처럼 책 위치를 바꾸면서 이리저리 옮겨봐도 더 이상 꽂을 데가 마땅치 않다. 조그만 개인 연구실이라도 마련하여 튼튼한 2중 슬라이드 책장을 설치하고 책들을 도서관 분류식까진 안되더라도 나름 체계를 잡아 정리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생겼다.

 

이제 더 이상 꽂을 데도 없는데, 그래도 사야하고, 사고 싶은 책들이 많다. 베스트셀러나 신간은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지만 관심사가 넓어짐에 따라 구간 도서 중에서 눈에 밟히는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이래서 책덕후들이 책 사재기에 혈안이 되는가 보다.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돈과 생활비를 빼면 남는 돈이 얼마 없어 비싼 책을 사는 것은 엄두가 안난다. 생각해 보면 식구들과 외식 한 번 하려면 보통 4-5만원 정도가 드는데, 5만원 넘는 책을 사면 그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옷 입기가 힘들어진다. 책 한권에 사오 만원이면 꽤 비싼 편이지만, 그런 책들은 대개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역작들이 많다. 그래서 이런 정도의 책들은 외식비 조금씩 아껴가며 사두려고 한다. 도서관에서 연장해 가며 읽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사전류도 비싼 것들이 많다. 얼마 전에 만병통치약 님 소개로 알게 된 <한국지명유래집>은 매우 탐나는 아이템이다. 관련 전공자들이 군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낱말의 <우리말 유의어 대사전>(전7권)은 아예 머리 속에 입력하고 싶은 사전이다. 내 글이 너무나 졸렬하고 조잡해 보일 때 단어라도 바꿔서 있어보이게 하려면 이런 사전을 뒤져서 쓸만한 낱말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88만 2천원(핡).

각 권이 9만 5천원인 단국대동양학연구소 <한한대사전>(1~15)은 그저 꿈일 뿐. 내가 동양고전 연구자가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활용도 못 하면서 꽂아두는 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라고 구차한 핑계를 대본다). 서울대역사연구소 <역사용어사전>이나 큰맘 먹고 겨우 비벼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는 해도 15만원이면 4-5인 가족 워터파크 입장료에 필적하는 가격이다: 긴축정책과 맹렬한 부업이 요망된다. 아래 사전들을 검색하다가 줄기에 딸려온 왕건이 감자처럼 검색된(알라딘의 획책이 분명한) <중국사상문화사전>도 숨이 잠깐 멎을 만한 사전이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도 추가.

결국 이 페이퍼를 계속 쓰다가는 탐욕과 갈등만 생겨날 뿐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을 듯싶다. "깨지않을 꿈을 꾸도록" 눈을 감는다는 노래가 있던데, 눈 감는다고 책이 나한테 달려오지는 않는다. 책은 꿈에서는 읽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다. 정말이지 꿈에서 책을 읽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거 같다.

 

 

 

 

 

 

 

 

 

 

 

 

 

 

  

 

 

 

 

 

 

 

 

 

 

 

 

 

 

 

이제 비현실적이며 허황된 꿈들은 잊고, 그나마 실현이 가능한 꿈을 꾸도록 하자.

일단 전공 개설서류는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들춰보게 된다. 훌륭한 도판까지 있다면 급하게 자료로 스캔받기도 좋다. 전공자들은 개설서를 잘 안 읽는 경향이 있는데, 가끔씩 개설서에 적힌 내용에서 영감(과 반감)을 얻는 경우도 있으므로 무시해선 안되겠다. 한국미술사 개설서 중에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시리즈가 도판도 좋고 내용도 좋다. 근래의 연구성과들을 반영하여 작성한 내용도 (몇 개 발견한 오류를 빼면)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 1권은 중고서점에서 시력이 45라는 '낙타의 눈'으로 찾아내어 구입했는데, 2권과 3권은 아직 찾지 못하였다. 일단은 빌려서 통독하고 밑줄은 사서 치자.

서양미술사의 '넘어서야 할 아버지' 파노프스키의 핵심은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에 있다고 하던데, 반드시 소장하여 철저히 정독하고 그 논지를 검토해야겠다.

 

 

 

 

 

 

 

 

 

 

 

 

 

 

 

교양(과 허세)을 위해 철학책도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철학책은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야하므로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게 어렵다.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하면서 읽는 게 제맛이니까. 그래서 가성비가 뛰어난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 중에서 몇 권 찍어두었다. 베르그송, 마르크스, 스피노자, 베버 등 그 이름만으로도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잔구성 암산처럼 느껴진다. 가진 거라곤 달랑 등산화 한 켤레 뿐인데... 한길 그레이트북스 시리즈에도 좋은 책이 많다. 한나 아렌트, 플라톤, 헤겔, 레비-스트로스, 엘리아데 등 서양 사상가와 정약용, 리쩌허우 같은 동양 사상가 책도 꽤 있다. 다만 월드북 시리즈보다 가격이 좀 센 편이어서 구입이 망설여진다.

 

이런 시리즈들을 전질로 들여놓고 과시할 경제적 능력과 공간은 없더라도 책들을 읽어낼 수 있는 정신적 능력과 뇌용량에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독서를 버텨낼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굳건한 시력도 필요할 것이다. 운동을 해야 눈이 더 나빠지지 않을 거 같다. 좀 움직이면서 살자. 우중충하게 책상에만 붙어있지 말고.

 

 

 

 

 

 

 

 

 

 

 

 

 

 

 

플라톤의 <국가>와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번역본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가격도 그나마 합당한 편이어서 올해 안에는 구입할 수 있을 것 같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도 언젠가는 사야겠다. 러셀의 명료한 문장을 원문으로 읽는 것도 평생 한 번쯤은 도전해 볼 만하다. 그러나 주제파악을 해야겠지. 호평 일색인 빨간색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상권은 역시 중고서점에서 '낙타의 눈'으로 발견했기 때문에 이제 하권만 구하면 된다. 명성이 자자한 까치글방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6권)는 언제 읽을 것이며, <논어> 마치면 읽을 <장자>, <도덕경> 같은 동양 고전은 또 언제 읽을 수 있을까.

 

 

 

 

 

 

 

 

 

 

 

 

 

 

북플과 서재를 짬날 때마다 둘러보면 갖고 싶고 읽고 싶은 책들이 불어나게 되는데 이 또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서재에서 본 이오덕 선생 신간도 탐이 나고, <직관 펌프, 생각을 열다>도 궁금하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읽다가 말았는데,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사계절에 갔다가 반값 전권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지금 사둔들 읽을 시간도 없고 꽂아둘 공간도 없다는 핑계를 들어 제자리에 조용히 놓아두고 돌아왔다.

 

 

 

 

 

 

 

 

 

 

 

 

 

#

이 모든 두꺼운 책들은 꽂아둘 책장이 없다는 것만이 문제일 뿐 죽기 전에는 꼭 사서 읽어 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집을 넓힐 수밖에 없겠는데, 그러려면 어서 빨리 이 부동산 거품이 꺼져야 한다. 책도 맘 놓고 못 사는 이 사단이 어디서 온 것인가. 책이라는 '동산' 소비를 막고 있는 '부동산' 투기꾼 님들은 영원히 나한테 저주받아 마땅하다. 백성들이 저마다 교양을 마음껏 쌓지 못하게끔 꾸준하고 지대한 공헌을 해 오신 분들이 바로 이 분들이니까. 된장, 결국 기승전부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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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살이 2015-06-0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책 책입니다~^^ 외식비 아껴서 책 사야징

돌궐 2015-06-04 07:02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야 하는데 잘먹자는 것도 평소 지론이라서 힘드네요.ㅎ

자유도비 2015-06-0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공감, 절대 공감!

˝도서관에서 연장해 가며 읽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일단은 빌려서 통독하고 밑줄은 사서 치자.
그리고 독서를 버텨낼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굳건한 시력도 필요할 것이다. ˝

위의 문장, 제가 쓴 줄 알았습니다. 돌궐님 제 글벗으로 나타나 주셔서 고맙습니다! ^^

돌궐 2015-06-06 14:22   좋아요 0 | URL
껌정드레스 님 글을 열심히 읽은 제가 껌정 님께 빙의하여 쓴 문장들입니다. 제가 언제 저런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하

yamoo 2015-07-11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책 덕후, 옷 덕후..ㅋㅋ 공감이 많이 가는 글입니다!
제가 옷 덕후로서 돌궐님께 팁하나 드립니다. 한 달에 한 번 유니클로에 들르십시오. 그러면 꽤 괜찮은 옷을 매우 싸게 데려올 수 있습니다. 여름 셔츠 같은 경우 3만원짜리가 5천원에 팝니다. 대개는 2-3만원이면 셔츠와 바지를 살 수 있지요. 잘 만 노리면 5천원 대박 세일(연중 합니다) 옷을 꽤 많이 건질 수 있습니다. 티셔츠, 셔츠, 면바지 정도...베이직한 옷을 싸게 살 수 있습니다. 다른 매장 가면 절대 이가격에 이 정도 퀄러티의 옷을 구입할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러니 정기적으로 유니클로를 방문해서 5천원짜리를 노리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유니클로 5천원 짜리 셔츠가 오마샤리프 4만원짜리 셔츠 보다 좋다면 말다했지요..ㅎ)

돌궐 2015-07-11 12:17   좋아요 0 | URL
음.. 당장 유니클로 매장 위치를 알아봐야겠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돈보 2015-07-11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경우, 중고책방이나 염가,특가도서 기회가 되면 두눈질끈감고 들고오시는게 정신건강에 좋더군요 몇번 들었다놨다 했다가 그냥 온 경우에 거진 후회막급이던군요. 다른거 아껴서라도 평소 관심목록이 싸게 눈에 띠면 무조건 낚으세요.

돌궐 2015-07-11 12:20   좋아요 1 | URL
근데 사실 저는 책 욕심이 별로 없어요. 안(못) 샀다고 후회 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사고 싶은 마음도 막상 그때 뿐이더라구요.^^ 다만 필요한 책은 꼭 사려고 합니다.
 

 

 

 

 

 

 

 

 

 

 

 

 

 

 

<논어> 위영공 편에서 공자는 말했다.

 

더불어 말할 만해도 더불어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인재를 잃게 되고, 더불어 말을 하지 못할 만한데도 더불어 말을 한다면 말을 잃게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재를 잃지 않고, 또 말을 잃지도 않는다.

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不失人, 亦不失言. (김, 283)

 

더불어 이야기할 만한데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다. 더불어 이야기할 만하지 않은데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않고 또한 말도 잃지 않는다.

(해설)… 바른 사람을 만났다면 바른 말을 적극적으로 전달하여 널리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바른 말임에도 불구하고 타자와 소통하지 않고 자신만이 간직한다면, 말은 그대로 간직할 수 있으나 바른 말이 전파될 수 없고 사람마저 잃은 꼴이 된다. 그릇된 사람이라면 아예 말을 꺼내지 않아야 한다. 그릇된 사람에게 바른 말을 던져 봐야 왜곡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말을 던질 수 있는지, 의사소통의 맥락은 어느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신, 376)

 

 

살다 보면 같이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런 경우 가장 올바른 처신은 아예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고, 또 실천하려고 노력도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말을 잃지는 않았지만 사람까지 얻지는 못했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으로 사람들 만나는 게 쉽지가 않다. 

말을 잃지 않는 것은 어찌어찌 나 혼자 해 볼 수 있겠지만, 사람을 잃지 않는 것은 나 혼자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 더 어렵다. 사람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으려면 좋은 벗을 만나서 이야기해야겠다.

 

좋은 벗이 알아서 나에게 찾아와 주지 않는다. 내가 찾아 나서야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사람을 찾아 나설 처지가 아니라면 책이라도 찾아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책 속에는 사람이 있고, 말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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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쌩 2015-05-28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한권 읽을 때 마다 새로운 벗을 사귀고 대화하게 되니,그만남이 현실에서 만나는 군상들보다 못할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많이 좋은 책과 만나고 연애하시길 바랍니다 ^^

돌궐 2015-05-28 23:54   좋아요 0 | URL
덕담 감사합니다. 제가 쓴 이 글이 위선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cyrus 2015-05-28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좋은 사람인줄 알고 만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그 사람의 면모를 잘못 알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허무하죠.

돌궐 2015-05-28 23:57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러면 힘들겠죠. 가장 가까웠던 사람한테서 실망을 느낄 때도 있더라구요.ㅜㅜ
 

 

 

 

 

 

 

 

 

 

 

 

 

 

 

변지의 군이 천 리 길을 걸어서 나를 찾아왔기에 그 뜻을 물어보니 문장 공부를 해 보겠다고 하였다.

마침 이날 우리 집 아이가 나무를 심기에 나는 그 나무를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사람에게 문장이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을 때 우선 뿌리에 북을 주고 줄거리를 바로 세워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면 거기에서 꽃이 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를 잘 가꾸지도 않고 꽃만 보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나무뿌리를 북돋우듯 자기 마음을 바로잡고, 줄거리를 바로 세우듯 자기 몸을 수양하고, 진액이 통하듯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듯 학식을 넓히고 기교를 연마하여 마음속에 든든하게 쌓은 다음에 마음에 품은 것을 표현하면 곧 글이 되는 것이며, 사람들이 보고 훌륭한 문장이라고 말할 것이니, 이것이 진정한 문장이다. 문장의 길만을 따로 떼어서 성급하게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대 돌아가서 탐구해 보면 자신에게도 훌륭한 스승이 있을 것이다."

 

- '변지의에게 주는 말[爲陽德人邊知意贈言]'에서, 『여유당전서』

 

 

<우리 겨레의 미학 사상> 330-331쪽에 나오는 정약용 선생의 이야기다.

가만히 따져 보니 나는 아직 진액도 제대로 안 통하는 수준이다. 그러므로 '뿌리에 북을 줘야' 하겠는데, 여기서 말하는 북을 준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라 사전을 찾아보니 '흙으로 뿌리를 덮어준다'는 뜻이었다. 

과연, 뿌리가 흙 속에 있지 못하고 허공에 드러나 있으면 양분을 제대로 흡수할 수가 없겠지.

땅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야 진액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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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암의 글쓰기 특강
    from 突厥閣 2015-06-07 01:32 
    자기 전에 읽는 책에 <우리 겨레의 미학사상>도 포함시켜서 조금씩 읽고 있는데, 조금 전에 잠깐 박지원 글을 읽다가 빨려들듯이 그의 글들(228-291쪽)을 모조리 다 읽다. 내처 초록 작성까지 마쳤다. 박지원 선생에게 공부와 글쓰기에 대한 핵심적인 조언을 들은 기분이다. 몇 줄 옮겨 본다. 글이란 것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일 뿐이다. 제목을 놓고 붓을 잡은 다음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고 억지로 고전의 사연을 찾으려 뜻을 근엄하게 꾸미고 글자
 
 
 

역사 소설에 관심이 조금 있어서 오다가다 눈에 띄면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담징>, <솔거>, <소년이 온다>, <지워지지 않는 나라>를 읽었는데, 혼자 매긴 별점에 편차가 좀 있었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쓴 것도 있지만 임시저장만 하고 마지막 전송 버튼까지 누르지는 못했다.

 

 

 

 

 

 

 

 

 

 

 

 

 

 

 

 

소설로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역사적 사실이나 해석을 서술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소설 형식을 빌릴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나는 소설에서 중요한 건 표현이고 양식이라고 본다. 역사의 상황 속으로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들 수 없다면 차라리 치밀한 논증을 갖춘 논픽션이나 논문을 쓰는 것이 낫다. 상황에 공감되지 않거나 대사에 집중할 수 없는 소설은 읽어내기가 매우 힘들다.

 

이번에 읽었던 소설 중 한 권이 그랬다. 역사적 사실이나 해석과 같은 '내용'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책을 몇 장 읽자마자 드는 느낌은 '뭐지 이건?'이었다. 등장인물의 대사들은 학회 발표문 같았으며, 플롯은 엉성하였고, 상황 묘사가 거의 없이 사건만 나열되었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불분명하며, 행동과 대사가 어설펐다. 그리고 문장에는 스타일이 없었다.
서사 구조는 마치 소설로 된 <디워>를 보는 듯했다. 맥락 없이 전개되는 사건과 사건들……. 미모의 여성과 주인공이 술 마시면서 내내 학술적인 얘기만 나누다가 난데없이 동침하는 전개라니……. 정신이 혼미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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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하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는 인물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눈물짓게 만드는 문장이 있었다. 이런 것을 읽으려고 소설책을 찾는 게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렇다.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192쪽)

참 아름답고 상징적인 문장이다. 그러고 보니 한강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고 썼던 시인 아닌가. 돌아간 그들의 영혼을 이만큼 성실하게 만져질 듯이 되살리려 했던 글이 또 어디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사실이었다. 너의 일은 힘들지 않았다. 선주 누나와 은숙 누나는 베니어합판이나 스티로폼 판에 미리 비닐을 깔아놓고 그 위에 죽은 몸들을 눕혔다. 얼굴과 목을 물수건으로 씻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가는 빗으로 정돈한 뒤, 냄새를 막기 위해 몸에 비닐을 둘렀다. 그사이 너는 그들의 성별과 어림잡은 나이, 입은 옷과 신발의 종류를 장부에 기록하고 번호를 매겼다. 갱지 쪽지에다 같은 번호를 적어서 가슴께에 핀으로 꽂아놓은 뒤, 얼굴 아래로 흰 무명 천을 덮고는 누나들과 힘을 합해 벽 쪽으로 밀어놓았다. 도청에서 가장 바쁜 사람처럼 보이는 진수 형은 하루에도 몇번씩 다급한 걸음걸이로 너를 찾아왔는데, 네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을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이기 위해서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너는 흰 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신원이 확인되면 멀찍이 물러서서 오열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너무 험하지 않게만 대충 수습해놓은 시신을, 유족들은 목화솜으로 코와 귀를 막아주고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렇게 간단한 염과 입관을 마친 사람들이 상무관으로 옮겨지는 걸 장부에 기록하는 것까지가 너의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전혀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것처럼 너는 혼란스러웠다. 그날 오후엔 유난히 신원 확인이 많이 돼, 복도 여기저기서 동시에 입관이 치러졌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려지는 동안, 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너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나라란 게 무엇인지 이해해낼 수 있을 것처럼. (16-18)  

 

계속해서 내 몸은 썩어갔어. 벌어진 상처 속에 점점 더 많은 날파리들이 엉겼어. 눈꺼풀과 입술에 내려앉은 쉬파리들이 검고 가느다란 발을 비비며 천천히 움직였어. 참나무 숲 우듬지 사이로 오렌지색 광선을 내쏘며 해가 저물어갈 무렵, 누나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는 데 지친 나는 이제 그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어. 나를 죽인 사람과 누나를 죽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을까. 아직 죽지 않았다 해도 그들에게도 혼이 있을 테니, 생각하고 생각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내 몸을 버리고 싶었어. 죽은 그 몸뚱이로부터 얇고 팽팽한 거미줄같이 뻗어나와 끌어당기는 힘을 잘라내고 싶었어.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51-52)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

 

네가 여섯살, 일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먼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192)

 

그 사진집을 아버지가 집으로 가져온 것은 이년 뒤 여름이었다. 누군가를 조문하러 그 도시에 내려갔다가 터미널에서 구했다고 했다. 나의 어린 상상과 달리 이마에 총을 맞지도,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은 희영이 고모가 잠깐 다니러 올라와 있었다. 어른들끼리 사진집을 돌려본 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는 그 책을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안방의 책장 안쪽에, 책등이 안 보이게 뒤집어 꽂아놓았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 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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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설에서 사실과 해석을 어느 정도 담아 낼 것인가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그럴듯한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가가 더 중요하다. 소설은 드라마지 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흥미를 끌 수 있는 플롯과 (인물의) 성격이 있어야 하며,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급전과 반전’이 이루어져야 독자들은 군침을 삼키며 책장을 넘길 수가 있을 것이다.

역사 인식이나 학설들을 개연성 없는 사건들 속에다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의 그 책은 학술적이고 이념적 대사들만 가득 나열되어 있어서 읽는 내내 아주 거북스러웠다. 학자들이라고 해서 술 마시면서 그렇게 '세미나'만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소설에 학술적인 대사가 나오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는 민중들의 천박하고 말초적인 대사뿐만 아니라 엘리트들의 이념적이고 현학적인 대사들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 대사들은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 속에서 적절하고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통해 새로운 역사적 관점을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역사소설에서 그런 글을 보고 싶었다. 역사 지식과 서사가 따로 놀아 설익은 밥을 씹는 것 같은 글 말고 잡곡과 백미가 같이 찰지게 익어서 부드럽게 씹히고, 빛깔과 냄새도 좋은 그런 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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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석(曜夕), 빛나는 저녁
    from 突厥閣 2015-07-12 23:37 
    #역사 소설을 가끔 챙겨보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에서 사실과 정보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사실과 정보는 역사책이나 논문을 보면 되니까. 하지만 소설은 인물 사이의 갈등이나 구체적 상황들을 재현해내어 특정한 장소와 시간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과 정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흡입력 있는 줄거리와 현실성 있는 인물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연성 있는 사건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야만 생겨나는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일반
 
 
비로그인 2015-06-03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년이 온다`는 거의 증언문학수준의 소설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작가님도 90%이상은 사실이라고 말씀하셨어요~
(^-^;; 제가 한강작가님 팬이라서..;;)
저는 개인적으로 4장 `쇠와 피`가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프리모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도 많이 생각이 났어요.....ㅜㅜ

돌궐 2015-06-03 22:00   좋아요 0 | URL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증언`이라고 할 만한 구절들이 떠오릅니다.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그런 구절들인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