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의 기러기들은 이제 마지막 안식을 즐기고 있다.

철새들은 곧 이 땅을 떠날 것이고, 한 해의 농사도 시작될 테지.

 

지난 초록들을 정리하다 보니 다랑이논에 대해 평한 글이 있길래 옮겨 본다. 

 

 

 

가천마을 다랑이논, 경남 남해 홍현리 (사진출처: 문화재청)

 

연곡사 언저리에서부터 강변마을 가까이까지 계곡의 양쪽 산비탈에 다랑이논들이 수십 개씩의 계단을 이루며 빈 틈이라고는 없이 촘촘하게 일구어진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피아골에 물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 산, 저 산을 옮겨다니며 고달픈 삶을 부지해가는 화전민이라는 것도 다 생겨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이유가 있듯이, 바깥세상을 등지고 피아골로 들어와 다랑이논을 일구어야 하는 사람들도 다 그들 나름으로 바깥세상과 고리지어진 쓰라리고 아픈 곡절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끈질기고 선량한 사람들인가는 그들이 일궈낸 다랑이논들이 입증하고 있었다. 돌투성이 산비탈들을 따라 일구어진 다랑이논들 - 성품이 선량하지 않고, 정신력이 끈질기지 않고, 몸이 부지런하지 않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돌투성이 산비탈에다 농사지을 땅을 만들어내는 그 일은 생존의 터전을 잃고 죽음과 맞선 인간이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면서, 인간의 인내와 의지와 성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하는 시험장이기도 했다. 그 세 가지 중에 어떤 것 하나만 모자라도 그 일은 해낼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 <태백산맥> 10권, 9-10.

 

 

 

 

 

 

 

 

 

 

 

 

 

 

 

 

#

다른 얘기지만, 인용문에 나오는 연곡사에 승탑이 여러 개 있는데 동승탑은 쌍계사 철감선사탑,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과 함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품이다.

 

 

 

연곡사 동승탑, 통일신라 9세기, 높이 3.0m, 전남 구례 내동리 (사진출처: 문화재청)

 

 

* 한 줄 요약 - 답사 가고 싶다.  

 

(2011. 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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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2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사진전 갔다가 저도 이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바퀴벌레도 살기 힘든 북극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가지 않고 그곳에 터를 잡고 대를 이어오고 있는 인간의 꿋꿋한 삶의 의지를...

돌궐 2015-02-28 09:52   좋아요 0 | URL
근데 어떤 사진전에 가셨길래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AgalmA 2015-02-2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서도 글 올린 적 있는데...르완다 난민 사진 이후 인간사에 절망해 사진찍기를 포기했다가 다시 사진작업을 시작하며 지구의 창세기를 조망해본 세바스티앙 살가도 전시요^^. 전시장 배치와 조명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의 사진은 정말 예술과 철학의 극치였죠. 오늘이 마지막 전시~

돌궐 2015-02-28 11:13   좋아요 0 | URL
아 오늘 바쁜데... ㅠㅜ

AgalmA 2015-02-28 11:21   좋아요 1 | URL
살가도 TED 강연 보시거나 도서관 가서 제네시스 사진집 보셔도^^
 

 

 

 

 

 

 

 

 

 

 

 

 

 

최준식 선생 책 <한국의 종교 불교>에서는 일반인들이 한국 불교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매우 잘 담았다.

중론과 유식학에 대해 정리가 잘 되어있는데 공부 삼아 옮겨 본다.

초록을 쓰면서 미처 페이지를 옮겨 적지 못했는데, 나중에 찾아서 적어놓아야 한다.

 

 

새롭게 발전한 대승 철학: 중론과 유식학

 

이제 우리는 인류가 만들어낸 철학 가운데 가장 어려운 철학이라고 해야 할 대승 철학, 그중에서도 중론을 볼 차례가 되었다. 이 사상은 너무 심오해서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은 그 자세한 내막을 알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사상은 대승의 정통 철학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살펴보되 극히 간단하게만 보기로 하자.

 

보통 중론(中論, doctrine of middle path)이라고 부르는 이 사상은 2세기 전후에 살았던 사람으로 인도 최고의 사상가이자 불교 승려였던 나가르주나[龍樹]가 창안한 것으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공사상이다. 이 공사상은 간단하게 말해서, 사물의 본성은 한마디로 비어 있다는 것이다. 비어 있다는 것은 사물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본성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것은 초기 불교에서 무아론이나 연기론을 더 발전시킨 설로 보면 된다. 어떤 사물이든 실체가 없이 인연이 모이고 흩어지는 데에 따라 명멸을 거듭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좀더 근원적인 시각에서 공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근본적인 입장에서 보려면 항상 공(空)의 시각에서 조망해야 한다. 사물의 근본적인 모습은 근원적 실재라 할 수 있는데 이 절대 실재를 보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도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에서 본 『금강경』에서 "어떤 시각도 갖지 말고 생각을 내야 한다"는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딜레마는 우리가 어떤 시각을 갖지 않으면 그 사물을 보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보자. 절대적 실재는 존재하는 것 전부라 할 수 있는데 우리가 그 실재를 묘사하면서 x라고 했다고 하자. 그러면 전체였던 실재는 x에 한정되기 때문에 더 이상 절대 실재가 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 학파에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견해도 갖지 말라고 충고한다. 나가르주나도 자신의 책에서 어떤 견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견해를 모두 논파하는 방법을 취한다. 만일 그가 자신만의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면 그것 역시 절대 실재를 한정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에 기존 견해를 계속해서 부정하면 올바를 견해가 스스로 드러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을 파사현정(破邪顯正, '잘못된 것을 부수면 올바른 것이 드러난다'는 뜻)이라 부른다.

 

그런가 하면 사물 자체도 비어 있다고 주장하는 게 이 학파이다. 이 학파의 핵심 사상을 가장 잘 요약한 것 중에 우리와 제일 가까운 경전은 뭐니뭐니해도 『반야심경』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나가르주나가 『반야심경』을 저술한 것은 아니다!). 『반야심경』은 300자 미만으로 된 경전으로 대승 철학의 핵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전을 다시 네 글자로 줄이라고 한다면 '색즉시공(色卽是空)'-'공즉시색'도 가능하다-으로 축약할 수 있다(세 글자로 줄이면 색시공이라고 해도 된다!). 이 경전은 우리 주위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승려나 불교도들이 예불할 때에 반드시 이 경전을 읽기 때문이다. 승려들이 예불하는 것을 자세히 보면 맨 처음 불상을 마주 보고 여러 가지 경을 읽으면서 그에 맞추어서 불상을 향해 절을 한다. 그것이 주된 예불인데 이 순서가 끝나면 승려들은 법당 옆에 걸려 있는 불화를 향해 서서 목탁을 치면서 경전을 읽는다. 이때 읽는 경전이 바로 『반야심경』이다. 그림 속에 그려진 존재들은 불교를 수호하는 신령들인데 승려들은 그들에게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불교의 최고 진리인 『반야심경』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색즉시공 혹은 공즉시색이란 요즘 말로 하면 '있는 게 없는 것이고 없는 게 있는 것' 정도가 될 터인데 이것을 이해하는 일도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좋은 시도가 될는지 모르지만 현대 물리학에서 제시하는 이론을 가지고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책상과 같은 사물을 보면 그것을 딱딱한 고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미시적인 차원으로 내려가 보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최소 단위를 원자라고 놓고 보았을 때 원자란 가운데 아주 작은 핵이 있을 뿐이고 그 주위는 텅 비어 있다. 이것을 거시 세계로 보면 큰 야구장 한가운데에 야구공을 하나 놓은 꼴이라 하겠다. 원자핵은 그 공의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은 거의 비어 있다고 말하는 것인데 과연 불교의 현자들이 이 사물의 세세한 모습을 직접 관(觀)하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불교와 현대 물리학이 물질에 대해서 갖는 생각이 비슷해서 재미있다.

 

대승학파 가운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학파가 있다. 중국의 현장법사가 7세기 중엽 인도에 갔을 때 그는 인도에서 불교가 이미 스러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 인도에는 많은 종파들이 다 시들하고 방금 설명한 중론학파와 이제 설명하려고 하는 유식학(唯識學)을 내세웠던 유가학파(瑜伽學派, Yogacara)만 유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약 5세기경에 만들어진 유식학은 이 세상에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학파의 이름을 영어로 번역할 때 Consciousness(혹은 Mind)-only School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학파의 주장은 사실 엄청나게 과격한 것이다. 외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달이든 산이든, 책상이든 관계없이 모두 의식의 표상(representation 혹은 ideation)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서 외부의 사물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투사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학파에서는 절대적 실재, 즉 이 우주에서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뿐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런 사상은 이 학파에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많은 신비가들은 우주의 실재를 대령(大靈, The Spirit) 혹은 우주의식(cosmic consciousness)으로 보았고 비슷한 맥락에서 불교의 다른 학파에서도 일심(一心, One Mind)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힌두교에서 개인의 가장 깊은 의식을 뜻하는 아트만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가장 깊은 의식이 우주에 실재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데에는 동양의 고등종교들이 모두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다. 우리의 의식만이 실재한다는 이 학파의 주장은 깊은 명상 속으로 들어갔을 때에만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상태를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해시키기가 어렵다.

 

이 학파와 연관해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은 이 학파가 인간의 의식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을 매우 세세하게 분석했다는 것이다. 우선 우리에게는 감각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눈·귀·코·입·몸과 관계된 다섯 가지 의식이 있고 이것을 총괄하는 여섯 번째의 의식이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가 항용하는 의식이라는 용어가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의식이라는 낱말은 불교에서 유래했고 불교 중에서도 이 유식학에서 나온 것이다. 이 6식까지가 수면에 드러난 의식이고 그 다음부터는 잠재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6식 바로 밑에는 온갖 번뇌를 일으키는 제7식인 마나식이 있다.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마나식 밑에 있으면서 가장 근본을 이루는 제8식이다.

 

이 식은 알라야식-한자 글자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아뢰야식(阿賴耶識)'으로 표기함-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store(-house) consciousness'라고 번역한다. 'store(창고)'라고 했으니 모든 것을 저장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 때문에 한자로 의역할 때는 장식(藏識)이라고 쓴다. 이 식은 사람의 의식 가운데 가장 기저에 있으면서 그 위의 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저장해 놓는다.

 

불교에 의하면 우리가 윤회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생각이나 말·행동이 그대로 8식에 저장되고 그것들이 일종의 에너지가 되어 또 삶을 살게 만드는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한 생각(혹은 욕망)을 내면 그것은 또 다른 생각(혹은 욕망)을 내게 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굴러가기 때문에 그 힘으로 또 다음 생에 태어나야 할, 혹은 태어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8식에는 우리가 말이나 행동은 고사하고 아주 가벼운 것이라도 어떤 생각을 하면 모두 저장된다고 한다. 이렇게 저장된 일정한 식(識)의 에너지는 나중에 그와 맞는 인연을 만나면 발현된다. 그러나 이때 또 어떤 생각을 하면 생각의 사슬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여기에는 나쁜 생각이나 말, 행동만 저장되는 것이다 니라 좋은 것들도 저장되고 그것도 역시 집착의 형태로 나중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랑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이다.

 

어떻든 그 학파의 교리를 따르면 우리는 이 8식에 들어 있는 모든 생각의 종자(種字, seed)를 완전히 소탕했을 때에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됐을 때에만 윤회의 바퀴를 돌게 하는 힘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이론 역시 일반 독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깊은 명상을 해서 아주 깊은 의식까지 들어가야 이런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교식의 잠재의식 이론은 서양 심리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서양에서 무의식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서양의 낭만주의 심리학자들이 유식학의 이론을 접한 이후라고 한다. 

 

 (2011. 4.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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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28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팬 할랍니다!
제가 처음 금강경을 접했을 때 `여여`를 남겨주었는데, 평생의 화두입니다. 아직도 못 배운 게 너무 많아요...

돌궐 2015-02-28 11:08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한참 더 배워야 합니다.
알라딘 서재에는 이런 뜬금없는 걸 올려도 외면하지 않고 말씀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좋네요.ㅎ

AgalmA 2015-02-2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다뇨... 어디든 철학전반이 서양철학에 너무 치중된 감이 있는데(저도 부끄러운 점이기도)...돌궐님의 이런 글이 제게 연꽃향 같기도 합니다. 감사드려요

돌궐 2015-02-28 11:11   좋아요 0 | URL
아이고 연꽃향까지야... 근기가 워낙 높으셔서 금방 알아들으실 거 같은데요.ㅎ

AgalmA 2015-02-28 11:13   좋아요 0 | URL
으흑, 근기...가 제일 문제입니다. 관심사가 너무 많으니;;
 

 

 

 

 

 

 

 

 

 

 

 

 

 

발제는 붓다의 사촌 동생이다. 자현 스님이 쓴 <붓다 순례> 239-243쪽에 이 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붓다의 아버지 정반왕의 동생인 백반왕의 차남인데, 붓다가 왕사성에서 깨달음을 얻고 성자가 되어 가비라로 귀국했을 당시 석가족 왕이었다. 

 

발제왕은 역시 붓다와 자신의 사촌인 아나율의 설득으로 출가하게 된다. 아나율의 부모(곡반왕)가 아나율이 출가한다고 하자 이를 반대하기 위해 현재 왕인 발제가 출가하면 출가를 허락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곡반왕과 왕비는 영화를 누리고 있던 발제왕이 출가를 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나율의 설득에 의해 처음에 발제는 쿨하게 "알았다, 내가 왕이 됐으니 딱 7년 만 이 생활을 누린 뒤 출가하자"고 했는데 아나율의 계속되는 설득에 결국 6년, 5년, 3년, 2년, 1년으로 줄고, 또다시 7개월에서 1개월, 마침내 7일로 줄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출가 전 마지막 7일 동안 발제와 아나율은 약간 과장하여 온갖 광란의 분탕질로 마지막 유흥을 즐겼다.

뭐랄까, 매우 화끈하고 호방하며, 집착이 없고 매사에 긍정적인 분이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젊은 왕과 그 동갑내기 사촌이 화끈하게 놀았으니 얼마나 대단했겠나! 약간 부럽다.

자현 스님은 이 두 사람의 일탈에 대해 이렇게 해설한다.

 

 

출가는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걸림 없는 삶으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삶의 변화는 마치 코미디 프로를 보다가 장엄한 연극을 보는 것과 같은 변화이다. 연극의 장엄함을 위해서 코미디의 재미를 희생할 필요는 없다. 코미디는 어디까지나 코미디로서 즐기는 것이고, 연극은 연극으로서 또 다른 즐거움을 내포하는 것이다. 인도인들의 생각은 이렇게 양자를 분절한다. 이것이 출가 전의 유희라는 다소 이질적인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240-242)

 

맞다. 바짝 조이기 전에 좀 풀어줘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발제왕이 출가하고 난 뒤의 사연도 감동적이고 재미있었다.

 

경전에서는 석가 귀족들이 스스로의 교만을 제어하기 위해서 신분이 낮은 (이발사였던) 우바리를 먼저 출가하도록 해 자발적으로 밑에 위치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우바리가 석가 귀족들에 비해서 선배가 된다. 그런데 선배에 대해 차례로 예를 올리는 과정에서 왕이었던 발제는 우바리 앞에 와서 주저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석가족의 왕이었던 발제에게 있어서 하인이었던 우바리의 발에 예배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발제는 스스로를 제어하여 결국 우바리의 발에 예를 갖춘다. 이때 경전에는 신들의 찬탄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는 종교적으로 미화된 것이지만, 분명 보통 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임에 분명하다. 붓다에게 출가하는 사촌들 중 발제는 가장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발제야말로 진정한 인격자임에 틀림없는 분이다.
발제는 출가 후에 나무 밑에서 명상하다가 가끔 “참으로 즐겁구나, 참으로 즐겁구나.”라는 독백을 하곤 한다. 이를 들은 승려들 중 일부가 붓다에게, 발제가 과거 왕이었을 때의 쾌락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준다. 아마도 왕이었던 사람이니, 발제로 인하여 소외되거나 심적인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이들이 붓다에게 발제를 고자질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는 발제를 불러서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그러자 발제는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고 했고, 붓다는 다시금 왜 그렇게 했는지를 묻는다. 이때 발제는 “왕일 때에는 모든 것을 갖추고 무사들의 보호 속에서도 혹은 지위를 잃을까, 혹은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하여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출가하고 나니 나무 밑에서 홀로 밤을 지내도 두려움이 없으니, 이것을 즐겁다고 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정 모든 것을 떨쳐 버린 자의 참다운 행복의 외침이었던 것이다. (244-245)

 

한편 석가족에서 가장 먼저 출가했던 난타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난타는 자의에 의해 출가한 게 아니라 강제로 출가한 거였다.

여자가 그리워 고민하는 난타에게 붓다는 그에게 맞는 방편으로 꼬드겨서(?)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난타의 출가
붓다의 귀향 후 석가족 중 가장 먼저 출가하는 사람은 난타이다. 그런데 난타의 경우는 붓다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출가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출가는 강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붓다가 이복동생인 난타에게 이렇게 강압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당시 난타가 순다리와의 결혼 직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붓다는 난타와 공양을 마친 후 일부러 발우를 놔두고 간다. 난타는 발우를 가져다 드리기 위해 절을 찾아가게 되는데, 이때 강제로 출가시키고 삭발을 단행한다. 난타는 순다리가 보고 싶어 탈출을 감행하지만, 귀족으로 성장한 난타에게 아무도 모르게 탈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울적해하며 붓다를 원망하고 있는데, 붓다는 난타의 성욕이 강한 것을 알고 신통으로 천상의 선녀들을 보게 해 준다.
그러자 선녀에 꽂힌 난타는 선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붓다에게 묻고, 붓다는 수행법을 지도하게 된다. 후일 난타가 깨달음을 얻자, 난타는 스스로 이 약속을 취소하는 아름다움을 보인다. 난타의 강제 출가는 위태로운 가비라국의 멸망으로부터 이복동생을 구하려는 붓다의 손길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가비라국이 멸망할 때 붓다의 지친들은 모두 출가한 상태여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이는 결코 옳은 것일 수 없다. 그래서 왕위 계승에서 배제된 난타의 석가족 내 입장과 관련해서 강제 출가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더 유력한 것으로 판단된다. (230)

 

#

이 책은 월간 <불광>에 3년 반 동안 연재된 칼럼을 모은 책이라 각주나 참고 문헌 목록은 없지만 책에 소개된 일화가 나오는 경전 출처는 충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불교 관련 독서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조계종출판사의 <부처님의 생애>에는 발제와 난타의 이런 숨겨진 이야기가 소개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두 책을 함께 보면 붓다 전기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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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27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붓다의 일가친척 출가 얘기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러고보니 자신을 내려놓고 내주는 종교적 자세들이 왜 신 앞에게만 집중되고 말았는지 인간의 본성과 이성의 연결고리들에 또다시 의문이 들고야 마는군요. 강약이 있을 뿐 모든 종교의 숭배가 저는 그래서 못마땅합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존경합니다!

돌궐 2015-02-27 01:20   좋아요 1 | URL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다죠. (이젠 신도 아니고) `돈`이 이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고.
정말 타락한 종교를 보면 저도 못마땅합니다. ㅜㅜ

AgalmA 2015-02-27 01:23   좋아요 0 | URL
아! 욕망(돈과 권력욕)을 깜빡했네요!
 
제가 글로써 업을 쌓았습니다

 

 

 

 

 

 

 

 

 

 

 

 

 

 

성낙주 선생님께 드립니다.

2월 23일에 올려주신 글 '돌궐님의 비판에 대한 반론(4)' http://blog.aladin.co.kr/704498193/7392528 은 잘 보았습니다. 이 글을 포함, 그간 주신 반론글에 대한 답변 삼아 몇 말씀 올리겠습니다.

 

1.
우선 선생님 글 가운데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일전에 제가 쓴 '제가 글로써 업을 쌓았습니다' http://blog.aladin.co.kr/dolkwol/7319984 에서 선생님께서 ‘이에 의하면’을 제외한 뒤 인용했다고 지적했던 문장은 선생님 저서의 본문 288쪽에 단 주(註), 그러니까 399쪽의 주 11)번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 드렸던 것은 선생님께서 주신 '돌궐님의 비판에 대한 반론(1)' http://blog.aladin.co.kr/704498193/7234347 에서 파란 글씨로 인용하셨던 글입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이에 의하면'이 빠져 있습니다. 저는 그 글 속에서 전개된 논지와 잘못된 인용 방식을 문제 삼은 것이지 저서의 미주에 실린 인용문을 얘기한 게 아닙니다.
선생님께선 '반론(1)'에서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윗 글에서 붉은 색으로 밑줄 친 문장에서는 분명히 '이에 의하면'이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앞의 내용도 전혀 언급되지 않아서 강희정 선생이 그저 석굴암에 목조 가구는 없었다고 단정한 것처럼 읽힙니다. 저는 이걸 지적한 것이죠.
선생님 저서의 미주에 '이에 의하면'이 있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체로 인용하면 읽는 이가 '이에 의하면'의 '이'가 무엇인가 의구심이 들 수 있기 때문에 '반론(1)'에서 일부러 빼신 게 아니냐는 얘기였습니다.


어찌 됐건 이 사단이 벌어진 건 제가 미숙한 문장으로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탓이겠지요.

그 결과로 선생님의 오해를 사게 되었지만 저는 분명히 제 글 해당 단락 서두에서 '반론글'이라는 전제를 하고 썼습니다.

실수도 착각도 아니고 모략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리고 설마 제가 책만 펼쳐도 버젓이 드러나는 사실을 '모략'을 위해 거짓으로 꾸며 글을 쓰겠습니까?

저는 선생님은 물론, 제 서재에 방문하는 이웃들과 수많은 알라딘 독자들을 그런 식으로 속여 넘기는 게 가능하다는 발상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만만하신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알라딘 독자들도 마찬가지구요.

'반론(4)' 글을 쓰시면서 선생님의 억측에 대한 의심 같은 건 정말 하나도 없으셨는지요. 잠깐만이라도 돌이켜보고 검토하면 제 글이 선생님께서 '반론(1)'에서 인용한 글을 지칭한다는 걸 아셨을 텐데요. 무척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2.
되도 않는 글 몇 줄 쓴 것 때문에 이렇게 저자에게 변명이나 늘어놓고 있으려니 저도 참 구차합니다.

하지만 저도 한 번 되묻고 싶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냥 당연하다고 묻어두는 게 아니라 그걸 일반화하고 논리로 증명하는 것, 상식이 상식이어야 함을 밝혀내는 것, 그게 학문 아닌가요? 그러니까 식민사관은 식민사관이며 예불공간은 예불공간이었다고 논증하는 것 말입니다. 저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상대성 이론이란 게 지금은 상식 수준이 됐지만 과거엔 가설이었고 아인슈타인의 철저한 논증을 거쳐 겨우 상식이 된 것 아닙니까? 처음부터 상식인 지식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석굴암을 보는 시선에 식민사관이 있다고(그리고 그걸 청산하자고) 주장한 분이 강 선생님과 성낙주 선생님 말고 그 전에 누가 계셨나요? 제가 아는 한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적어도 '식민사관'에 관한 한 강희정 선생님의 저서는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선생님 저서 결론 부분에서 언급되고 넘어갈 연구가 아니다 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발가락이 닮았고’, ‘터럭만 같아도 전체가 같다’고 제가 억지주장을 한다 하셨는데요, 정말 발가락만 닮은 건지, 터럭만 같은 건지는 그런 미사여구가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실체적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 화려한 수사로만 남을 설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닮은 건지는 두 책을 나란히 읽어보고 독자들이 직접 판단할 일입니다.

 

제가 인용 문제에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존 연구 성과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정당한 인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에 앞서서 선행 연구들은 먼저 충분히 인용·검토하고, 결론 부분에서는 남의 연구를 될 수 있으면 인용하지 않고 자기만의 논지를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배워왔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저는 강희정 선생님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며,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그 분의 공적을 옹호하는 것뿐입니다. 선생님 저서가 강희정 선생님 저서의 논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행된 것임을 선생님께서 여러 차례 거듭 주장하시니 그 점은 저도 인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에 대한 의심은 철저하게 지워버리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선생님도 밝히셨듯이 고의가 아니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제가 처음에 썼던 서평 중에 선생님께서 기존 연구 성과를 '은근히 감췄다'고 했던 문장은 삭제하겠습니다. 그것은 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연구가 서로 영향 관계 없이 별도로 진행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발표하고 났더니 같은 논지의 논문이 어디 다른 곳에서 거의 시차 없이 발표된 일도 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경우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선생님께선 저서 원고를 블로그 등에 미리 작성해 놓으셨다가 출판 시기를 미루셨다고 하셨으니 강희정 선생님의 책을 나중에 보셨더라도 기존 원고에 편입시켜 서술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결론 부분에서나마 짦게 강 선생님 저서를 언급하셨던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제가 이해하기엔 그렇습니다.

다만 이제 와서야 겨우 알게된 이런 전후사정을 모르는 상태로, 더구나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두 분의 저서를 접한 저로서는 두 책의 비슷한 논지와 그 전후/영향 관계에 대해서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었다는 것만은 선생님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는 선생님의 의견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좀더 확실한 근거를 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근거는 자료만 나열한다고 성립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적절히 배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성립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석굴암 사진 전시회를 열 정도면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었지 않느냐고 하셨지만(저는 전시회는 보지 못했고, 도록만 보았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저서가 사전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료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의 '선택'과 '해석'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자료 해석에 큰 무리가 있다고 누차 주장했던 것이고, 개정판이 나올 경우 이를 더욱 완전한 논거로 보완하기를 바라며 좀 매몰차게 서평을 썼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제 알라딘 서재에 있는 과거 서평들을 훑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이나 유명 소설가가 쓴 책에 대해 선생님 저서에 대해 쓴 것보다도 더 지독한 혹평을 쓴 적도 있습니다.

저는 절대 선생님만을 저격해서 '음해'를 할 이유와 명분이 없습니다. 선생님께 반대하는 모든 주장이 죄다 음모라고 생각지는 말아 주십시오. 저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이 얼마나 어려운 자리에 있는 것인가를 이번에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3.
제가 했던 비판들과 별개로 저는 선생님 저서의 주장, 특히 제1장에서 말씀하신 '햇살 신화'에 관한 논의는 충분히 경청할 만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햇살'에 너무 얽매이신 게 아닌가하는 지적(만병통치약 님 서평)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햇살 신화'가 있었다고 해석하신 것도 나름 존중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부분에 관한 비판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강희정 선생님 주장과 다른 선생님만의 독창적인 논리라고 지난 글에서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크게 오해하고 계신 게 하나 있는데요, 제 첫 글을 다시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선생님께서 강 선생님 저서를 '베껴쓰거나' '표절했다'고 말한 건 아닙니다. 다만 다른 학자들은 본문에서 그렇게도 몰아치듯 논박하시면서 강희정 선생의 업적은 왜 같은 비중으로 상세히 다루지 않으셨느냐고 불평을 한 겁니다. 그게 공정한 건 아니잖습니까. 선생님 논조에 따르면 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터무니없는 주장만 할 거라고 생각하니 관련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앞으로 미술사, 그중에서도 석굴암에 대해 학계에 '누추한' 저서나 논문이라도 나오면 선생님 책에 나오는 날선 비판부터 떠올리면서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될 텐데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저도 선생님 저서의 장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도 없이 넘어가고, 단점에 대해서만 냉혹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그런 주제에 선생님한테는 기존 학계의 공과 중에서 왜 과만 드러내느냐고 항의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 주실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힘들게 공부하는 전공자들의 입장 같은 거 말입니다.

제가 선생님 책에 대해 좋지 못한 평가를 내려서 언짢게 해드린 것은 거듭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제가 제기했던 문제들을 모두 '악의적인 모략'과 '저열한 비방' '음해성 독백' 등으로 규정하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이러한 판단과 표현들이 매우 부당하다고 여기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따로 반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 제가 함부로 글을 싸지른 업보라고 생각하고 감내하겠습니다.

 

다만 이 말씀만은 드리고 싶습니다. 제 글들을 편견 없이 읽어주십시오.

이 글을 쓰면서 도대체 선생님 입장은 어떠셨을 것인가 조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선생님도 조금만 제 입장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동의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어떻든 저는 선생님 저서에 대해 <일체의 선의 없이 완벽한 악의만을 가지고> 비판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 그렇다면 오늘 이렇게 다시는 언급하지 않겠다던 선생님 저서에 대해 또 다시 번거로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쁜 시간 내셔서 글들을 적어주셨는데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해서 몇 자 적었습니다.
텍스트 사이의 유사성 외에 각각의 차이점이나 독창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정당하게 평가하라는 말씀은 잘 새겨듣겠습니다.

 

2015. 2. 24.

돌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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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5-02-24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짧은 느낌 : 어쩌다 알라딘 서재 <화제의 서재글> 코너 맨 상단에 떠오른 석굴암 논쟁(?)을 읽다가 관음증 비슷하게 호기심이 계속 일더라. 사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독자에 불과하지만 석굴암이 예사 보물이 아니다 보니...
읽다보니 돌궐님이나 저자의 입장을 충분히 알겠더라. 저자의 입장에서는 책의 장점보다 용납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더 지적하니 오랜 연구자로서 진실을 위해 가만있지 못했을거라 생각한다. 돌궐님도 일개 리뷰에 비분하는 저자의 당찬 반박에 살짝 당황한 듯도 하다.`업`을 이야기 했을때 그걸 느꼈고, 그리고 충분히 예의를 갖춰 멈추기를 바란 듯하다... 관전자(?)로서 <반박 3>즈음에서 저자께서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사안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궐님이 반박4에 즈음한 글을 올렸는데, 역시 이제 저자가 잘 마무리하고 멈춰야 할 시점이라 느낀다. 돌궐님의 견지도 충분히 이해될만한 수준이고, 학계에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도 아니고... 같은 리뷰어로서 저자의 강공이 이제 부담스러워진다. 이 정도면 저자의 의견과 반박도 충분해 보이는데 다른 분은 어떻게 생각할 지 잘 모르겠다. 남의 다툼에 내가 오버한 걸까? 저자께서는 어떻게 생각할 지 조금 걱정이 된다. 이는 저자의 확전(?)이 읽는 사람에게도 부담이 된다. 더 전문적인 것은 좀 더 공식화된 자리에서 했으면 하는 바램이 살짝 들기에 한 필 하고 만다... 이쯤에서 발전적으로 마무리 되었으면~ 한다. 역시 주제넘는 생각인가...음...

만병통치약 2015-02-24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표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즐거워야 할 논쟁이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엇나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끼어들 주제도 아니고 말릴 처지도 아니어서 쭈뼜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석굴암논쟁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두 분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상황까지 온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을 멀리하시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시간도 필요해 보입니다.

yamoo 2015-02-2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 글을 꼼꼼히 읽어 봤습니다. 돌궐님의 문제제기는 하등의 문제될 꺼리가 거의 없다고 사료됩니다. 문제 제기하신 부분들도 지극히 정당하였다고 봅니다~

이기만 2021-05-2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후 사정도 모르고 함부로 말을 하는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특히 서평을 쓸 때는 스스로에게 엄격해야할듯.
 
다 읽었지만 아직 다 못 읽었다

 

 

 

 

 

 

 

 

 

 

 

 

 

 

 

문득 펼친 시집에서 하필 이런 시가 눈에 띄어서 적어 본다.

엊그젠가 <유사>에서 조신의 꿈을 옮겨 적어서 그런가 보다.

글끼리 서로 끌어당긴 거 같기도 하고... 참 신기하기도 하지.

 

 

 30년, 하고 중얼거리다
  고교 졸업 30주년

  30년, 하는 제 소리에 놀라
  그는 퍼뜩 꿈에서 깬다
  교련복을 챙기고 도시락을 싸고
  서둘러야 할 시간

  웬 생시 같은 꿈!
  서울로 어디로 떠나 대학생이 되는 꿈 취직하는 꿈 술
담배 배우고 여자도 배우는 꿈 자취로 하숙으로 과외선생으로 돌다가 군대 3년 푹 썩는 꿈 외국으로 유학 가서 박박 기는 꿈 돌아와 눈매 고운 여자 얻어 장가드는 꿈 그 여자와 집 장만하는 꿈 그 여자와 자식 낳는 꿈 아이 자라는 꿈 그 아이 대학생 되도록 애 끓이며 지켜보는 꿈 직장생활 여의치 않은 꿈 뒤늦게 승진하는 꿈 주식으로 한몫 잡는 꿈 다시 꼬라박는 꿈 피신하는 꿈 외로워 우는 꿈 부모님 편찮은 꿈 한 분 먼저 가시는 꿈 남은 분 모시는 일로 집안 뒤집히는 꿈 그러나 아이들 때문에 차마 갈라는 못 서는 꿈 집 넓히는 꿈 승용차 커지는 꿈 접대에 골프에 허덕이는 꿈 어느날 명예퇴직도 하는 꿈 그러다 그러다 아내 먼저 먼 길 떠나기도 하는 꿈 처자식 뒤로 하고 가기도 하는 꿈 졸업 30주년 안내장 받는 꿈 ´무슨 내라는 돈이 이렇게 많대요´ 마누라 잔소리를 한쪽으로 들으면서 ´아 벌써 그렇게나 됐나´ 마음 아득해지는 꿈

  30년, 하고 중얼거리며 차가운 거울 앞에 서면
  헐거워진 머리칼 너머 주름살 너머 먼 저곳
  수1의 정석과 정통종합영어를 우겨넣은 가방을 끼고
  발갛게 상기된 까까머리 앳된 그가 달려간다

  30년, 하고 다시 가만히 말해보면
  명치끝 어디선가 화아한 박하냄새가 올라오는 듯하다
  삭은 젓국냄새도 도는 듯하다
  궂은 저녁의 쓰디쓴 소주 한 잔과 뉘우침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마른 고춧대 태우는 냄새가 도는 듯하다

  가까스로 지각을 면하고 교실로 뛰어가는
  거울 속 까까머리
  그의 새벽 꿈자리가
  기뻤는지 슬펐는지
  알 길은 없다

- 김사인, <가만히 좋아하는> 6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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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시이다
    from 突厥閣 2015-03-21 18:17 
    시인은 아주 평범한 일상이나 사물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조차도 관조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정제된 글로 표현한다. 노숙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미안하다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순한 너를 뉘였으니어찌하랴좋던 날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