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는 붓다의 사촌 동생이다. 자현 스님이 쓴 <붓다 순례> 239-243쪽에 이 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붓다의 아버지 정반왕의 동생인 백반왕의 차남인데, 붓다가 왕사성에서 깨달음을 얻고 성자가 되어 가비라로 귀국했을 당시 석가족 왕이었다. 

 

발제왕은 역시 붓다와 자신의 사촌인 아나율의 설득으로 출가하게 된다. 아나율의 부모(곡반왕)가 아나율이 출가한다고 하자 이를 반대하기 위해 현재 왕인 발제가 출가하면 출가를 허락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곡반왕과 왕비는 영화를 누리고 있던 발제왕이 출가를 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나율의 설득에 의해 처음에 발제는 쿨하게 "알았다, 내가 왕이 됐으니 딱 7년 만 이 생활을 누린 뒤 출가하자"고 했는데 아나율의 계속되는 설득에 결국 6년, 5년, 3년, 2년, 1년으로 줄고, 또다시 7개월에서 1개월, 마침내 7일로 줄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출가 전 마지막 7일 동안 발제와 아나율은 약간 과장하여 온갖 광란의 분탕질로 마지막 유흥을 즐겼다.

뭐랄까, 매우 화끈하고 호방하며, 집착이 없고 매사에 긍정적인 분이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젊은 왕과 그 동갑내기 사촌이 화끈하게 놀았으니 얼마나 대단했겠나! 약간 부럽다.

자현 스님은 이 두 사람의 일탈에 대해 이렇게 해설한다.

 

 

출가는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걸림 없는 삶으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삶의 변화는 마치 코미디 프로를 보다가 장엄한 연극을 보는 것과 같은 변화이다. 연극의 장엄함을 위해서 코미디의 재미를 희생할 필요는 없다. 코미디는 어디까지나 코미디로서 즐기는 것이고, 연극은 연극으로서 또 다른 즐거움을 내포하는 것이다. 인도인들의 생각은 이렇게 양자를 분절한다. 이것이 출가 전의 유희라는 다소 이질적인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240-242)

 

맞다. 바짝 조이기 전에 좀 풀어줘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발제왕이 출가하고 난 뒤의 사연도 감동적이고 재미있었다.

 

경전에서는 석가 귀족들이 스스로의 교만을 제어하기 위해서 신분이 낮은 (이발사였던) 우바리를 먼저 출가하도록 해 자발적으로 밑에 위치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우바리가 석가 귀족들에 비해서 선배가 된다. 그런데 선배에 대해 차례로 예를 올리는 과정에서 왕이었던 발제는 우바리 앞에 와서 주저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석가족의 왕이었던 발제에게 있어서 하인이었던 우바리의 발에 예배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발제는 스스로를 제어하여 결국 우바리의 발에 예를 갖춘다. 이때 경전에는 신들의 찬탄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는 종교적으로 미화된 것이지만, 분명 보통 사람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임에 분명하다. 붓다에게 출가하는 사촌들 중 발제는 가장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발제야말로 진정한 인격자임에 틀림없는 분이다.
발제는 출가 후에 나무 밑에서 명상하다가 가끔 “참으로 즐겁구나, 참으로 즐겁구나.”라는 독백을 하곤 한다. 이를 들은 승려들 중 일부가 붓다에게, 발제가 과거 왕이었을 때의 쾌락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준다. 아마도 왕이었던 사람이니, 발제로 인하여 소외되거나 심적인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이들이 붓다에게 발제를 고자질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는 발제를 불러서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그러자 발제는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고 했고, 붓다는 다시금 왜 그렇게 했는지를 묻는다. 이때 발제는 “왕일 때에는 모든 것을 갖추고 무사들의 보호 속에서도 혹은 지위를 잃을까, 혹은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하여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출가하고 나니 나무 밑에서 홀로 밤을 지내도 두려움이 없으니, 이것을 즐겁다고 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정 모든 것을 떨쳐 버린 자의 참다운 행복의 외침이었던 것이다. (244-245)

 

한편 석가족에서 가장 먼저 출가했던 난타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난타는 자의에 의해 출가한 게 아니라 강제로 출가한 거였다.

여자가 그리워 고민하는 난타에게 붓다는 그에게 맞는 방편으로 꼬드겨서(?)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난타의 출가
붓다의 귀향 후 석가족 중 가장 먼저 출가하는 사람은 난타이다. 그런데 난타의 경우는 붓다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출가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출가는 강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붓다가 이복동생인 난타에게 이렇게 강압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당시 난타가 순다리와의 결혼 직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붓다는 난타와 공양을 마친 후 일부러 발우를 놔두고 간다. 난타는 발우를 가져다 드리기 위해 절을 찾아가게 되는데, 이때 강제로 출가시키고 삭발을 단행한다. 난타는 순다리가 보고 싶어 탈출을 감행하지만, 귀족으로 성장한 난타에게 아무도 모르게 탈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울적해하며 붓다를 원망하고 있는데, 붓다는 난타의 성욕이 강한 것을 알고 신통으로 천상의 선녀들을 보게 해 준다.
그러자 선녀에 꽂힌 난타는 선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붓다에게 묻고, 붓다는 수행법을 지도하게 된다. 후일 난타가 깨달음을 얻자, 난타는 스스로 이 약속을 취소하는 아름다움을 보인다. 난타의 강제 출가는 위태로운 가비라국의 멸망으로부터 이복동생을 구하려는 붓다의 손길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가비라국이 멸망할 때 붓다의 지친들은 모두 출가한 상태여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이는 결코 옳은 것일 수 없다. 그래서 왕위 계승에서 배제된 난타의 석가족 내 입장과 관련해서 강제 출가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더 유력한 것으로 판단된다.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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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월간 <불광>에 3년 반 동안 연재된 칼럼을 모은 책이라 각주나 참고 문헌 목록은 없지만 책에 소개된 일화가 나오는 경전 출처는 충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불교 관련 독서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조계종출판사의 <부처님의 생애>에는 발제와 난타의 이런 숨겨진 이야기가 소개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두 책을 함께 보면 붓다 전기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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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27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붓다의 일가친척 출가 얘기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러고보니 자신을 내려놓고 내주는 종교적 자세들이 왜 신 앞에게만 집중되고 말았는지 인간의 본성과 이성의 연결고리들에 또다시 의문이 들고야 마는군요. 강약이 있을 뿐 모든 종교의 숭배가 저는 그래서 못마땅합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존경합니다!

돌궐 2015-02-27 01:20   좋아요 1 | URL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다죠. (이젠 신도 아니고) `돈`이 이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고.
정말 타락한 종교를 보면 저도 못마땅합니다. ㅜㅜ

AgalmA 2015-02-27 01:23   좋아요 0 | URL
아! 욕망(돈과 권력욕)을 깜빡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