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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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이야기이다. 박범신의 글은 신문 등에서 가끔 읽었는데 괜찮았던 기억이 난다.

소설은, 자못 문장이 고풍스럽고 세련된 낱말들이 적혀있다. 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생각은 옳다. 그것은 나랏것들이 독점해서는 안되고 백성들의 삶에서 쓰여야 하는 것이다.

고산자 김정호는 백성들을 위한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길 위에 서 있었다. 그가 길을 더듬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랑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김정호의 외롭고 고단한 삶을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아버지가 품고 떠난 군현도는 바로 물길과 산 들이 제각각 떨어져 맥을 이루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살이도 사람과 사람, 떼와 떼의 맥을 짚어내지 못하면 죽을 뿐이고, 산하를 치세함에 있어서도 산과 산, 물과 물의 이어짐을 잘 짚어내지 못하면 치세의 죽음뿐이다. 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줄기를 잘 엮고, 떼와 떼의 이음새를 잘 다루어, 억울하거나 원통한 이 없이, 밖으로는 방비를 든든히 하면서, 안으로는 그 맥에 따른 특성을 잘 살펴, 사람과 자연을 함께 이롭게 하는 일일 터이다.
물론 지도는 치세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임금과 재상이 강토의 형세를 알아 치국의 저울로 삼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백성이 땅을 알아 이롭게 가꾸고 넉넉히 거두며, 물과 바람을 알아 살림과 식솔을 보호하고, 험난한 곳과 평탄한 곳, 급한 곳과 원만한 곳을 알아 풍속을 바르게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마땅히 지도는 나라의 것이기에 앞서 백성의 것이라야 한다.
그가 굳이 대동여지도를 목판본으로 새기고 절첩식으로 고안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도는 당연히 나라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편협한 생각 때문에 결국 아버지가 죽은 게 아니던가. 목판본 대동여지도로써, 온 백성이 이를 지녀 더이상, 아버지 같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자는 게 그의 오랜 꿈이다. (84-85)

 

김정호가 지도를 만들게 된 동기는 꽤 절실하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그 지도 제작의 지난한 과정은 생략되거나 간략하게만 다루어져서 리얼리티에서 느껴지는 감동 같은 게 조금 부족했다. 자료와 발이 아니라 영감과 어조로 쓴 듯한 소설이다. 김정호가 길에서 홀로 맞아야 했을 그 많은 고갯길과 이슬과 호랑이가 보이지는 않았다.

 

 

저는…… 감히 말씀드리지만,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한 지도를 그리고자 합니다. 이용후생입지요. 제 선친께서 일찍이 실제와 다른 지도로 억울하게 작고하셨습니다. 관아에서 내준 지도였어요. 지도란 사람살이의 흥망은 물론이고 목숨줄이 달려 있는 겁니다.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강토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으로는 나도 대마도, 우리 땅이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적 이상이나 정치적인 목적, 판단은 제 소임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시 말해 대마도를 우리 강토로 그려내도록 하는 일은, 여기 계신 대감 같은 분의 소임이지요.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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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
김동욱 지음 / 김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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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범주의 깊이 있는 서술을 볼 때마다 부럽다. 그러다가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자괴감이 들 때쯤 공연히 별점을 한 개 줄이고 싶은 못된 심술이 솟아나기도 한다. 저자의 폭넓은 견문과 학식을 접하면서 마치 테레비에 나오는 '참 쉽죠~'라는 유행어를 듣는 거 같기 때문에. 그만큼 쉽게 읽히는 개설서지만 이런 책은 결코 쉽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여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별점을 꽉 채웠다.

 

공포와 화반의 역사적 변천과 한중일 교류 관계에 대해 개요를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고, 석조물에서도 몇 가지는 기존에 듣지 못한 분석이 있었다. 불국사 석축에 관한 건축적 분석은 귀담아 들을 만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우리 문화재에 관해 금시초문인 내용들이 많았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유물이나 유적을 깊이 있게 알게 되면 그 예술적 가치도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알면 알수록 더욱 찬탄을 하게 된다. 모르면 감동도 없는 법이다.

 

종묘 정전 월대 박석에 관한 막연한 찬탄이나 감상이 아닌 시각적, 기술적 분석은 냉철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건축사와 공장사(工匠史)를 전공한 저자가 아니라면 절대 들려주기 힘든 설명이었다. 

 

(종묘 정전 박석의) 돌은 규산염광물로 이루어진다고 하며 화강암은 실리카, 즉 규소와 산소의 화합물인 이산화규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는데 그 색상은 기본적으로 희다. 따라서 이런 흰빛을 띤 화강석 표면을 너무 곱게 다듬어서 바닥에 깔게 되면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게 되고 또 빗물이라도 표면에 남아 있으면 미끄러질 우려도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 이런 불편한 돌 표면이 적지 않다.

조선시대 석공들은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해서 박석 표면을 일부러 거칠게 두었다. 박석의 크기도 일정하게 하지 않고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얼핏 보면 부실 공사이거나 일을 대충하고 마무리를 치밀하게 완성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결과를 두고 보면 어느 것이 더 옳았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석공들의 가슴에 담긴 천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완벽한 마무리에 매달리지 않고 재료가 갖는 속성을 숙지하여 가장 사람들에게 편안한 아름다움을 제공해주려는 미학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대해 이와 비슷한 평가가 내려지고 그 예술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 종묘 정전 월대 박석도 그런 평가의 대열에 넣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196)

 

책에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정보들이 수두룩하였다. 이는 저자의 학문적 성과에서 오는 것이다. 다만 어떤 내용에서는 충분한 도판이 소개되지 않아 막연한 짐작만 하고 넘어간 경우가 있어서 그게 조금 아쉬웠다.

 

한국건축사 수업에서는 교재 다음으로 읽어야 할 필독도서급이고, 동양건축사 수업을 한다면 거의 교재급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권위자의 경험과 관점을 골고루 담아낸 역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써 내려간 결정적 문장들을 밑줄을 좍좍 치며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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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세는 지붕부터
    from 突厥閣 2015-08-04 23:07 
    한옥의 처마 곡선에 대해 허황된 예찬을 많이 들어왔지만 김동욱 선생은 이에 대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매우 재미있고 뜨끔한 이야기라 적어 둔다. (우리나라에서) 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한 자세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택은 대개 1930년대에 와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작은 집을 여럿 지어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이다. 따라서 이런 집은 비좁은 대지
 
 
달걀부인 2015-08-05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돌궐 2015-08-05 07:40   좋아요 0 | URL
달걀부인 님 반갑습니다.^^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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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삼십대 암담한 젊은이들의 상황들,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그들의 생각이 엿보여서 몰입하며 술술 읽었다. 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고개를 주억거리며 들을 때가 있잖은가.

한국이 싫다고 하는 입장과 의견은 잘 알겠고, 어느 정도 인정한다. 2000년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비추어볼 수 있는,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와 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꽤 유용한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나 한국이 싫어서 이민 간 사람의 변명으로 읽어주기엔 너무 길지 않은가 싶다. 날씨가 싫고, 애인이 싫고, 결혼이 싫고, 직장이 싫고, 삶의 구조가 싫어서 떠난 걸 '한국이 싫다'는 편리한 핑계를 만들어서 장황하게 둘러댄다. 하소연만 있고 감동은 없는 줄거리였다. 

소설에 감동이나 여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내 취향일지는 모르겠다. 근데 요즘 청년들이 명백하게 강조하고 있는 게 바로 그 취향 아닌가. '한국이 싫다'는, 그런 뚜렷한 취향과 세태를 제대로 묘사해냈다는 점에서는 이 책은 분명히 성공적이다.

 

주인공이자 소설의 화자인 계나의 소망은 사실 단순하다. 대단한 이념이나 철학적 고민이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 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대신에 술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에는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싶어. 어차피 비싼 건 먹을 줄도 몰라. 치킨이나 떡볶이나 족발이나 그런 것들 얘기야.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고 싶어. 물건 팔면서, 아니면 손님 대하면서 얼마든지 고개 숙일 수 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자존심이랄까 존엄성이랄까 그런 것까지 팔고 싶지는 않아. 난 내가 누구를 부리게 되거나 접대를 받는 처지가 되어도 그 사람 자존심은 배려해 줄 거야. 자존심 지켜 주면서도 일 엄격하게 시킬 수 있어. 또 여유가 생기면 사회를 위해 작더라도 뭔가 봉사를 하고 싶어. (152-153)

 

그런데 이상한 건 '어떻게' 쪽이라고는 하면서 정작 바라는 것들은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게 대부분이다. 이건 (저자가 의도한 것 같긴 하지만)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말 아닌가.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안위와 자존심 뿐이다.

소설 끝 부분에 나오는 독백을 읽으면서는 일반화가 매우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좀 길지만 옮겨와 보면,

 

미연이나 은혜한테 이런 걸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걔들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어. 시어머니나 자기 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 봤자 자산성 행복도, 현금흐름성 행복도 높아지지 않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지 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 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 주잖아.

난 그렇게 살지 못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한국에서는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 주고, 인서울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 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서울대 나온 애들은 연고대를 무시하잖아. 그러니까 지방대 나온 애들, 수도권 나온 애들, 인서울 나온 애들, 연고대 나온 애들이 다 재수를 하든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아마 서울대 안에서는 법대가 농대 무시하고 과학고 출신이 일반고 출신 무시하고 그러겠지.

그런데, 그 근성 못 고치면 어딜 가도 똑같아. 호주에 와서 교민이 유학생 무시하고 유학생이 워홀러 무시하는 식으로 이어져. 그 근성 고치려면 자산성 행복을 좀 버리고,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해야 해. (185-187)

 

그런데 말이다, 호주만 가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거의 근거가 없고 너무 막연하다. 남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 진상떠는 인간, 며느리 괴롭히는 '시어머니년', 연고대 무시하는 서울대 애들 물론 있다.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마치 다인 것처럼 말하면서 그 때문에 자기가 더러워서 떠난다는 투의 주장은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한국을 싫어하게 만드는 원흉임은 맞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굴복하여 떠난다는 건 그래도 남아서 버티고 싸우려는 사람들을 맥 빠지게 만드는 짓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호주 이민을 알아보는 단순하고 성급한 젊은이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이 나라에 넌덜머리를 내며 이민을 가겠다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꼴저꼴 보기 싫고 외국 나가서 살겠다는 거다. 그 마음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나라도 능력만 되면(그리고 누가 불러주기라도 한다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능력이 있더라도 싫증 났다고 이민 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넌덜머리를 내서 나가떨어지게 하고, 불평 한 마디 없이 '축사 속의 가축'으로만 안주하도록 만들려는 무리(체제)에게 굴복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막연한 실체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근데 이건 멀리 나가 봐야 겨우 깨닫게 된다. 그런 걸 깨닫기 위해서 떠난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이 나라를 떠나도 좋다. 유학도 좋고 이민도 좋다. 하지만 그냥 싫어서 떠난다는 말은 별로다. 도대체 뭐가 싫다는 건가. 조국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던데(170), 조국은 인격체가 아니므로 누구를 사랑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쯤되면 이건 뭐 거의 어리광 수준이다. 세금은 조국이라는 허황된 개념을 위해 내는 게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위해 내는 거다.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 복지도 하고 국민들 교육도 하는 거다. 그걸 엄한 데 쓰는 거 못봐주겠거든 끝까지 이 땅에 남아 투표하고, 제대로 된 정치가를 뽑을 일이다.

 

꼰대같은 소리라 해도 할 수 없다. 싫다고 공동체를 빠져나가는 사람만 있으면 그 사회의 미래는 뻔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의 변명을 들어줄 여력이 없다. 아니, 그들이 어딜 가든말든 나는 관심이 없다. I don't care. 사람대접 받고 싶다던데, 관심이 없으므로 대접해줄 용의도 없다.

 

어차피 인생은 괴로움이다. 그럴진대 한가하게 내 행복이나 목 빼고 기다릴 시간이 어디 있나. 극단적인 예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들 때문에 세월호에서 손도 못 쓰고 돌아간 사람들만 304 명이다. 이 위태로운 나라에서 산다는 게 난파한 여객선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들으며 넋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작품 해설에서 평론가 허희가 쓴 말이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톰슨가젤들이랑 사자랑 맞짱뜨자는 게 아니야. 톰슨가젤이랑 사자랑 연대해서 우리를 부숴버리자는 거지."(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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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5-08-28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지 않아서 속단할 수는 없지만, 뭘 잘 모르고, 특히 외국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편견을 버무린 듯 하네요. 어디를 가도 사람 사는 곳이고, 얻는게 있으면 포기하는 것도 있죠. 3000만원으로 살고 어쩌고 하는데, 연 3만불 벌어서 지은이가 말하는 것들을 하고 사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하네요. 저도 외국에 살면서 이런 저런 삐딱한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지만, 그리고 종종 이곳의 삶에 만족하고 다행이란 생각도 하지만, 저자의 글 - 인용하신 부분 - 같은 이유는 아니네요.

돌궐 2015-09-05 06:27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소설이 마치 연구실적 쌓으려고 쓴 논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편적인 아이디어와 미미한 자료로 깊이 없이 급하게 쓴 논문이요. 근데 그런 실적은 선수들끼리는 거들떠 보지 않죠.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런갑다 하는 거죠.
 

논어 양화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子曰 "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자왈 "유여자여소인위난양야, 근지즉불손, 원지즉원"

 

읽어보았던 네 가지 번역본에서 이 구절과 그에 대한 해설을 각각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성백효, <논어집주>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女子와 小人은 기르기가 어려우니, 가까이 하면 불손하고 멀리 하면 원망한다."

- 此小人은 亦謂僕隸下人也라 君子之於臣妾에 莊以涖之하고 慈以畜之면 則無二者之患矣라.

- 여기에서 말한 小人은 또한 僕隸와 下人을 말한다. 君子(爲政者)가 臣妾에게 장엄함으로써 임하고 자애로써 기르면 이 두 가지의 병폐가 없을 것이다. (359)

 

김원중, <논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여자와 소인은 돌보기 어렵다. 그들은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326-327)

 

이을호, <한글논어>

선생 "아무래도 계집애와 심부름꾼은 취급하기가 곤란해. 가까이하면 멋대로 하고, 멀리 하면 투덜거리거든."

- 소인과 여자를 동일시한 공자의 여성관에 대하여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 않으나 봉건시대에 있어서의 여자란 학식의 정도가 천박하여 소인과 동일시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한 의미로서의 일반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88)

 

신창호, <한글논어>

공자가 말하였다.

"시녀나 하인은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 친근하게 대하면 공손하지 않고, 소원하게 대하면 원망한다."

-이 구문의 앞부분은 흔히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로 풀이된다. 그럴 경우, 일반적인 부녀자나 서민을 다루기 어렵고 사람답게 기르기 어려운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공자는 정상적인 여성이나 서민을 비하하거나 경시하지 않았다. 『주역』의 여러 기록을 보아도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차원에서 짝으로 이해하였고, 서민은 지도자의 짝이었다. 이 구분은 여자 하인과 남자 하인의 특성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428-429)

 

이 부분 번역이나 해설을 보면 네 권 책들의 특성이 그대로 보여 재미있다.

성백효 <현토완역 논어집주>는 한자가 병기되어 조금 어렵지만, 한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환영받는 책이다. 김원중 <논어>는 매우 간결하고 원문에 충실하다. 이 부분은 각주도 없다. 원문에서 더 나아가는 해석은 읽는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 이을호 <한글논어>는 현장감 있는 한글 번역이 특징이다. 해설도 경우에 따라서는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다. 신창호 <한글논어>에서는 이 구절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자를 변호하였다. 여자를 '시녀'로 소인을 '하인'으로 풀이하였다.

 

이렇듯 고전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혀지는 것이다. 한두 번 읽었다고 다 읽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다른 동양고전들도 이런 식으로 읽어나갈 생각을 하니 조금 막막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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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7-2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창호의 <한글논어>는 말씀처럼 너무 공자를 변호한 것 같군요
아무리 성인이라도 신이 아닌 다음에야 인간이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돌궐 2015-07-20 13:09   좋아요 0 | URL
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다. 논어에 이것 말고도 얼마든지 명구절이 많은데, 굳이 이런 지엽적인 예문을 든 게 맘에 걸리긴 합니다. 신창호 <한글논어>에 나온 설명으로 원전의 의미가 좀더 명확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아무튼 한 번 정도는 읽어볼 만 합니다.

cyrus 2015-07-20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문을 공부하려는 목적에서 성백효 논어를 샀는데, 제대로 책을 펴보지 않아서 그냥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았어요. 가끔 그 책을 판 게 후회가 들어요. 다시 관심이 생기면 재구입을 해야겠어요.

돌궐 2015-07-20 22:27   좋아요 0 | URL
저도 성백효 논어는 다 못 읽었어요. 옛날에 읽다가 조용히 덮어두었었죠.ㅎㅎ
 
논어 (양장) - 세상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고전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4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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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번역과 충실한 각주로 진짜 고전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의역이 거의 없이 직역 위주로 쓰여져서 의미 파악이 어려운 구절도 가끔 있었지만, 주석을 읽고 정 막힐 때는 다른 논어도 참고하면서 계속 읽어나가니까 어느 순간 문득 ˝그렇지, 과연 그래˝ 하며 무릎을 탁하고 치는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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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7-20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성백효는 현토가 이상해서 말이죠, ㅋ~.
좌파논어가 발상이 신선하고 전 좋았어요. 김원중은 돌궐님 말씀처럼 너무 직역 위주라서 어떤 땐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친구가 논어징을 본다는데 것도 보고싶고, 요즘 유행하는 한글 사서 시리즈도 보고 그렇답니다~^^
님은 깨달음으로 무릎을 치시는데 전 읽지 않은 책을 끌어앉고 있어서 무릎이 나갈것 같아요, ㅋ~.

돌궐 2015-07-20 08:43   좋아요 0 | URL
좌파논어 궁금하네요. 무릎을 치는 구절들도 있었지만 동의하기 힘든 구절, 맘에 안 드는 구절도 있었습니다. 저는 공자 제자 중에서 자로가 정이 가더라구요. 비록 공자한테 야단은 많이 맞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