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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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이야기이다. 박범신의 글은 신문 등에서 가끔 읽었는데 괜찮았던 기억이 난다.

소설은, 자못 문장이 고풍스럽고 세련된 낱말들이 적혀있다. 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생각은 옳다. 그것은 나랏것들이 독점해서는 안되고 백성들의 삶에서 쓰여야 하는 것이다.

고산자 김정호는 백성들을 위한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길 위에 서 있었다. 그가 길을 더듬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랑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김정호의 외롭고 고단한 삶을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아버지가 품고 떠난 군현도는 바로 물길과 산 들이 제각각 떨어져 맥을 이루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살이도 사람과 사람, 떼와 떼의 맥을 짚어내지 못하면 죽을 뿐이고, 산하를 치세함에 있어서도 산과 산, 물과 물의 이어짐을 잘 짚어내지 못하면 치세의 죽음뿐이다. 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줄기를 잘 엮고, 떼와 떼의 이음새를 잘 다루어, 억울하거나 원통한 이 없이, 밖으로는 방비를 든든히 하면서, 안으로는 그 맥에 따른 특성을 잘 살펴, 사람과 자연을 함께 이롭게 하는 일일 터이다.
물론 지도는 치세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임금과 재상이 강토의 형세를 알아 치국의 저울로 삼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백성이 땅을 알아 이롭게 가꾸고 넉넉히 거두며, 물과 바람을 알아 살림과 식솔을 보호하고, 험난한 곳과 평탄한 곳, 급한 곳과 원만한 곳을 알아 풍속을 바르게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마땅히 지도는 나라의 것이기에 앞서 백성의 것이라야 한다.
그가 굳이 대동여지도를 목판본으로 새기고 절첩식으로 고안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도는 당연히 나라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편협한 생각 때문에 결국 아버지가 죽은 게 아니던가. 목판본 대동여지도로써, 온 백성이 이를 지녀 더이상, 아버지 같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자는 게 그의 오랜 꿈이다. (84-85)

 

김정호가 지도를 만들게 된 동기는 꽤 절실하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그 지도 제작의 지난한 과정은 생략되거나 간략하게만 다루어져서 리얼리티에서 느껴지는 감동 같은 게 조금 부족했다. 자료와 발이 아니라 영감과 어조로 쓴 듯한 소설이다. 김정호가 길에서 홀로 맞아야 했을 그 많은 고갯길과 이슬과 호랑이가 보이지는 않았다.

 

 

저는…… 감히 말씀드리지만,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한 지도를 그리고자 합니다. 이용후생입지요. 제 선친께서 일찍이 실제와 다른 지도로 억울하게 작고하셨습니다. 관아에서 내준 지도였어요. 지도란 사람살이의 흥망은 물론이고 목숨줄이 달려 있는 겁니다.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강토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으로는 나도 대마도, 우리 땅이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적 이상이나 정치적인 목적, 판단은 제 소임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시 말해 대마도를 우리 강토로 그려내도록 하는 일은, 여기 계신 대감 같은 분의 소임이지요.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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