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감동도 없다
한옥의 처마 곡선에 대해 허황된 예찬을 많이 들어왔지만 김동욱 선생은 이에 대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매우 재미있고 뜨끔한 이야기라 적어 둔다.
(우리나라에서) 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한 자세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택은 대개 1930년대에 와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작은 집을 여럿 지어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이다. 따라서 이런 집은 비좁은 대지에 집을 최대한 압축시켜 방을 여럿 만들고 구조도 전통적인 방식을 대충 흉내 내면서 간략하게 처리해서 지었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집에서 특별히 눈에 띄게 돋보이도록 한 부분이 지붕 처마이다. 처마는 집 규모에 비해 과다하게 곡선을 이루었고 거기다 함석 차양까지 덧달아서 한층 휘어오르는 느낌을 강하게 했다. 비록 도시의 비좁은 집이지만 처마만은 그럴듯하게 꾸며서 구매자들의 선호도를 높이려는 목적이 엿보이는 모습이다. 북촌마을 한옥의 지붕 처마는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일반인들에게 한국 건축의 처마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한국 건축의 처마 곡선은 확실히 이웃한 나라들의 처마보다 멋이 있다. 그런데 세상일은 역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어서 이런 멋진 처마를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수고가 따랐다. 집 지을 때의 수고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를 유지 관리하는 데도 지속적인 손길을 필요로 했다. 제일 큰 문제는 건축이란 것이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것인데 그 부분에서 뒤처진 점이다. 집 짓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큰 비중을 차지해나가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 건축이 처마 곡선을 유지하느라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국의 처마 곡선을 단지 아름답다고만 말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8-111)
요즘 북촌 한옥마을은 관광지로도 유명해서 나도 가본 일이 있는데, 지붕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물론 처마의 곡선을 살리는 예가 있지만, 대개는 궁궐이나 종교시설에 한정되었다고 한다. 일반 살림집에서는 처마의 아름다운 곡선미보다는 시공상의 간편함을 추구했고 이에 따라 아름다운 처마곡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리나라 건축에서는 이 처마 곡선을 만드느라 많은 공력을 들였다는 것이다.
'살기 위한 집'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부동산'으로서 북촌의 살림집들이 지어졌다니 참 재미있다. 속(구조)은 부실한데 겉모양(지붕)만 그럴싸한 것들로 허세 부리는 전통이 과연 어디서 왔나 했다.